조선일보(朝鮮日報)
또, 향토문화사업위원회를 사내에 두어 우리 고유의 민속과 향토문화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각종 사업을 주관했으며, 관련 기사를 장기 연재하는 한편, 축구 등 운동경기의 보급과 백두산 · 금강산 탐승단을 조직, 젊은 기상을 함양하고 체력단련을 꾀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 『조선일보』는 민족지로 부를 수 없는 모습을 보였다. 변모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 첫째, 일제의 통제에 놓여 사실상 언론자유가 없었다. - 둘째, 일제강점 이후 20여년이 흘러 지식인 사이 항일의식이 다소 무뎌졌다. - 셋째, 항일투쟁 노선이 분열하며, 지식인 역시 분열하였다. - 넷째, 상업성에 치우치며 언론의 사명을 잊었다. 그 결과 1930년대에 들어서자 조선일보는 총독부 기관지와 구분이 힘들 정도로 변모하였다. 태평양전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