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강민기"
검색결과 총 26건
일제강점기 평양의 기성서화회에서 활동한 서화가.
임청계 (任淸溪)
일제강점기 평양의 기성서화회에서 활동한 서화가.
조선후기 제25대 철종의 어진을 그린 화가.
김용원 (金鏞元)
조선후기 제25대 철종의 어진을 그린 화가.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이 1900년대 초부터 서울 종로구의 당주동 자택에서 운영한 개인 화실이자 사설 미술 교육 기관.
경묵당 (耕墨堂)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이 1900년대 초부터 서울 종로구의 당주동 자택에서 운영한 개인 화실이자 사설 미술 교육 기관.
김규진이 1913년에 자신이 경영하던 천연당사진관(天然堂寫眞館) 안에 개설한 상업화랑.
고금서화관 (古今書畵館)
김규진이 1913년에 자신이 경영하던 천연당사진관(天然堂寫眞館) 안에 개설한 상업화랑.
1922년 서병오(徐丙五, 1862∼1935)가 대구 지역 서화계의 교류와 교육을 위해 개설한 기관.
교남시서화연구회 (嶠南詩書畵硏究會)
1922년 서병오(徐丙五, 1862∼1935)가 대구 지역 서화계의 교류와 교육을 위해 개설한 기관.
1913년에 개설한 서화교육기관.
기성서화미술회 (箕城書畵美術會)
1913년에 개설한 서화교육기관.
1915년에 개설한 근대기의 서화교육 기관.
서화연구회 (書畵硏究會)
1915년에 개설한 근대기의 서화교육 기관.
1919년 즈음에 한국에서 활동하던 일본 화가들의 단체.
여운사 (如雲社)
1919년 즈음에 한국에서 활동하던 일본 화가들의 단체.
1938년 허백련이 중심이 되어 전라남도 광주에 개설되어 전통 서화교육과 교유를 목적으로 한 단체.
연진회 (鍊眞會)
1938년 허백련이 중심이 되어 전라남도 광주에 개설되어 전통 서화교육과 교유를 목적으로 한 단체.
1936년에 개설한 근대 미술교육기관.
조선미술원 (朝鮮美術院)
1936년에 개설한 근대 미술교육기관.
1933년경 개설되어 회화를 교육했던 이상범의 개인 화숙.
청전화숙 (靑田畵塾)
1933년경 개설되어 회화를 교육했던 이상범의 개인 화숙.
19세기 말 최영년(崔永年)이 개설한 상업 화랑.
한성서화관 (漢城書畵館)
19세기 말 최영년(崔永年)이 개설한 상업 화랑.
1936년에 개설한 김은호(金殷鎬) 문도 출신 동양화가들의 단체.
후소회 (後素會)
1936년에 개설한 김은호(金殷鎬) 문도 출신 동양화가들의 단체.
일제강점기 「시골소녀」, 「화단의 일우」, 「추응」 등을 그린 화가. 동양화가.
이영일 (李英一)
일제강점기 「시골소녀」, 「화단의 일우」, 「추응」 등을 그린 화가. 동양화가.
김기창(金基昶)이 1955년에 제작한 군마도 초기작.
군마도 (群馬圖)
김기창(金基昶)이 1955년에 제작한 군마도 초기작.
안상철(安相喆)이 1959년에 제작한 작품.
맑은 날
안상철(安相喆)이 1959년에 제작한 작품.
천경자가 1973년에 그린 인물화.
길례언니
천경자가 1973년에 그린 인물화.
천경자가 1976년에 그린 작품.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내 슬픈 전설의 四十九page)
천경자가 1976년에 그린 작품.
「미인도」는 작가인 천경자에 의해 진위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천경자는 꽃과 나비를 소재로 한 여인 시리즈를 제작했는데 몇 차례 위작 사건에 휘말렸다. 그중 「미인도」는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이 아님을 밝혔다. 미인도라는 작품 제목, 머리를 검정색으로 ‘개칠’하듯 그린 것이 위작 이유였다. 또 그려본 적이 없는 흰꽃을 화관으로 그린 것 등도 위작의 증거라고 하였다. 그녀는 「미인도」가 자신의 둘째 딸을 모델로 그린 그림을 위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작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인도」는 당시 위작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미인도 (美人圖)
「미인도」는 작가인 천경자에 의해 진위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천경자는 꽃과 나비를 소재로 한 여인 시리즈를 제작했는데 몇 차례 위작 사건에 휘말렸다. 그중 「미인도」는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이 아님을 밝혔다. 미인도라는 작품 제목, 머리를 검정색으로 ‘개칠’하듯 그린 것이 위작 이유였다. 또 그려본 적이 없는 흰꽃을 화관으로 그린 것 등도 위작의 증거라고 하였다. 그녀는 「미인도」가 자신의 둘째 딸을 모델로 그린 그림을 위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작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인도」는 당시 위작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총석정절경도」는 김규진이 1920년에 창덕궁 희정당에 그린 부벽화이다. 1917년 창덕궁 대화재 이후 재건된 건물의 벽화 장식을 김규진(1868-1933)이 맡았다. 순종의 명에 의해 당시 화단의 중진인 김규진이 희정당 벽에 「총석정절경도」를 그렸다. 「총석정절경도」는 가로 길이가 880㎝나 되는 대작이다. 수직으로 솟아오른 총석정의 절경을 청록산수 기법으로 파노라믹하게 표현하였다. 관념적인 수묵산수가 유행하던 당시 화단에서 실경산수를 시도한 예이다. 「총석정절경도」는 한국 근대회화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총석정절경도 (叢石亭絶景圖)
「총석정절경도」는 김규진이 1920년에 창덕궁 희정당에 그린 부벽화이다. 1917년 창덕궁 대화재 이후 재건된 건물의 벽화 장식을 김규진(1868-1933)이 맡았다. 순종의 명에 의해 당시 화단의 중진인 김규진이 희정당 벽에 「총석정절경도」를 그렸다. 「총석정절경도」는 가로 길이가 880㎝나 되는 대작이다. 수직으로 솟아오른 총석정의 절경을 청록산수 기법으로 파노라믹하게 표현하였다. 관념적인 수묵산수가 유행하던 당시 화단에서 실경산수를 시도한 예이다. 「총석정절경도」는 한국 근대회화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념비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