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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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득공은 삼국시대 신라 태종무열왕의 서자로 문무왕이 총재로 임명한 관리이다. ‘거득령공(車得令公)’ 또는 ‘차득공’이라고 한다. 총재에 임명된 후 강원도와 전라도를 순행하며 민심을 살폈다고 한다. 총재의 역할과 임명 시기 등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재상직에 왕의 친척이 임명되는 것은 신라 중대왕실의 전제정치와 관련된다. 또한 전라도 무진주의 주리(州吏) 안길(安吉)과의 일화는 지방의 향리가 교대로 서울에 거주하는 상수리제도가 강화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거득공 (車得公)
거득공은 삼국시대 신라 태종무열왕의 서자로 문무왕이 총재로 임명한 관리이다. ‘거득령공(車得令公)’ 또는 ‘차득공’이라고 한다. 총재에 임명된 후 강원도와 전라도를 순행하며 민심을 살폈다고 한다. 총재의 역할과 임명 시기 등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재상직에 왕의 친척이 임명되는 것은 신라 중대왕실의 전제정치와 관련된다. 또한 전라도 무진주의 주리(州吏) 안길(安吉)과의 일화는 지방의 향리가 교대로 서울에 거주하는 상수리제도가 강화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견훤은 남북국시대 후백제를 건국한 시조이다. 재위 기간은 892년~935년이며, 신라 서남해안의 변방비장으로 공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진성여왕 때 각 지역의 호족들이 지방을 점거하여 독립적인 세력을 이루는 사태에 이르자, 892년 무진주를 점령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후삼국 분쟁에서 뛰어난 전투력으로 명성을 날렸으나, 왕위계승 다툼이 일어나 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당했다가 도망쳐 왕건에게 의탁하다가 936년에 사망했다. 특정한 지역기반이 없었고 혼란기를 해소할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 단명으로 끝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견훤 (甄萱)
견훤은 남북국시대 후백제를 건국한 시조이다. 재위 기간은 892년~935년이며, 신라 서남해안의 변방비장으로 공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진성여왕 때 각 지역의 호족들이 지방을 점거하여 독립적인 세력을 이루는 사태에 이르자, 892년 무진주를 점령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후삼국 분쟁에서 뛰어난 전투력으로 명성을 날렸으나, 왕위계승 다툼이 일어나 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당했다가 도망쳐 왕건에게 의탁하다가 936년에 사망했다. 특정한 지역기반이 없었고 혼란기를 해소할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 단명으로 끝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일신라의 제54대(재위: 917년~924년) 왕.
경명왕 (景明王)
통일신라의 제54대(재위: 917년~924년) 왕.
경문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61년~875년이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 국선의 자리에 있었는데, 헌안왕이 그 사람됨을 보고 사위로 삼고자 두 딸 중 한 사람을 택하게 하자 큰 딸을 택해 결혼하여 왕위에 올랐다. 불교에 관심이 많아서 낭도 중에는 승려가 많았으며, 국학에도 관심을 쏟아 국학에 행차해 박사로 하여금 경전의 뜻을 강론하게 하는 등 통치질서를 확립하려고 의욕적으로 노력했다. 국선 출신의 지도적 인물들도 왕의 통치에 적극 협력했지만 진골귀족간의 오랜 분쟁을 바로잡지는 못했고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경문왕 (景文王)
경문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61년~875년이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 국선의 자리에 있었는데, 헌안왕이 그 사람됨을 보고 사위로 삼고자 두 딸 중 한 사람을 택하게 하자 큰 딸을 택해 결혼하여 왕위에 올랐다. 불교에 관심이 많아서 낭도 중에는 승려가 많았으며, 국학에도 관심을 쏟아 국학에 행차해 박사로 하여금 경전의 뜻을 강론하게 하는 등 통치질서를 확립하려고 의욕적으로 노력했다. 국선 출신의 지도적 인물들도 왕의 통치에 적극 협력했지만 진골귀족간의 오랜 분쟁을 바로잡지는 못했고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통일신라의 제55대(재위: 924년~927년) 왕.
경애왕 (景哀王)
통일신라의 제55대(재위: 924년~927년) 왕.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집사부시랑을 역임한 관리.
녹진 (祿眞)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집사부시랑을 역임한 관리.
삼국시대 신라의 제10대 내해이사금 때 포상, 갈화성전투에 참전한 장수.
물계자 (勿稽子)
삼국시대 신라의 제10대 내해이사금 때 포상, 갈화성전투에 참전한 장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조정에 반기를 들어 죽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호족. 반란자.
기훤 (箕萱)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조정에 반기를 들어 죽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호족. 반란자.
『삼국사기』 백제본기 동성왕 23년조의 주(註)에서 『책부원귀(冊府元龜)』의 백제 관련 기록을 부인하는 근거로 인용된 역사서.
삼한고기 (三韓古記)
『삼국사기』 백제본기 동성왕 23년조의 주(註)에서 『책부원귀(冊府元龜)』의 백제 관련 기록을 부인하는 근거로 인용된 역사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신충봉성사와 관련된 노비.
신충 (信忠)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신충봉성사와 관련된 노비.
삼한시대 천신에게 제사를 지낸 성지. 입간.
소도 (蘇塗)
삼한시대 천신에게 제사를 지낸 성지. 입간.
통일신라의 제39대(재위: 798년~800년) 왕.
소성왕 (昭聖王)
통일신라의 제39대(재위: 798년~800년) 왕.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기훤에게서 이탈하여 북원의 적괴 양길에게 투항한 관리. 반역자.
신훤 (申煊)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기훤에게서 이탈하여 북원의 적괴 양길에게 투항한 관리. 반역자.
선종구산문은 중국 선종이 유입된 후 신라 말 고려 초에 형성된 9개 산문을 가리킨다. 구산문이라고도 한다. 신라 말기에 중앙 왕실의 권위가 떨어지면서, 지방호족이 대두하여 그 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여 가는 분위기 속에서 선종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구산선문은 지방호족의 세력 기반을 배경으로 성립되었다. 가지산문 건립에는 김언경 등이 관여하였고, 희양산문은 심충과 가은현의 장군인 희필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이외에도 동리산문, 사자산문, 성주산문, 사굴산문, 희양산문, 봉림산문, 수미산문 등이 건립되었다.
선종구산문 (禪宗九山門)
선종구산문은 중국 선종이 유입된 후 신라 말 고려 초에 형성된 9개 산문을 가리킨다. 구산문이라고도 한다. 신라 말기에 중앙 왕실의 권위가 떨어지면서, 지방호족이 대두하여 그 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여 가는 분위기 속에서 선종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구산선문은 지방호족의 세력 기반을 배경으로 성립되었다. 가지산문 건립에는 김언경 등이 관여하였고, 희양산문은 심충과 가은현의 장군인 희필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이외에도 동리산문, 사자산문, 성주산문, 사굴산문, 희양산문, 봉림산문, 수미산문 등이 건립되었다.
사두품은 신라 시대 골품 제도에서의 중앙 귀족을 떠받치는 하급 관인 계급이다. 하급 관인 계급을 광범위하게 포괄하였으며 제12관등인 대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신라가 정복한 성읍 국가의 신료들이 서울로 이주하면 상당수가 4두품으로 편입되었다. 4두품과 5두품은 분명하게 구분하였으나 4두품과 평민 신분은 확실한 구분은 없었다. 4두품에 해당하는 차촌주는 지방 촌락의 행정 실무를 담당하며 기술자나 잡역부를 지휘, 감독하였다. 중앙 관서에서도 일반 백성과 직접 접촉하는 기능직 또는 기술직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대민 활동을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는 점차 향상되었다.
사두품 (四頭品)
사두품은 신라 시대 골품 제도에서의 중앙 귀족을 떠받치는 하급 관인 계급이다. 하급 관인 계급을 광범위하게 포괄하였으며 제12관등인 대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신라가 정복한 성읍 국가의 신료들이 서울로 이주하면 상당수가 4두품으로 편입되었다. 4두품과 5두품은 분명하게 구분하였으나 4두품과 평민 신분은 확실한 구분은 없었다. 4두품에 해당하는 차촌주는 지방 촌락의 행정 실무를 담당하며 기술자나 잡역부를 지휘, 감독하였다. 중앙 관서에서도 일반 백성과 직접 접촉하는 기능직 또는 기술직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대민 활동을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는 점차 향상되었다.
통일신라의 제53대(재위: 913년~917년) 왕.
신덕왕 (神德王)
통일신라의 제53대(재위: 913년~917년) 왕.
신라건국기 주변에 있던 소국.
용성국 (龍成國)
신라건국기 주변에 있던 소국.
1980년 역사학자 이기동의 신라시대의 정치·사회사에 관한 학술서.
신라골품제사회와 화랑도 (新羅骨品制社會와 花郎徒)
1980년 역사학자 이기동의 신라시대의 정치·사회사에 관한 학술서.
삼국시대 신라에서 자식을 버려 노모를 배부르게 하려한 효자.
손순 (孫順)
삼국시대 신라에서 자식을 버려 노모를 배부르게 하려한 효자.
신라시대의 특수 지역.
성 (成)
신라시대의 특수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