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현숙"
검색결과 총 13건
일제강점기 「자화상」·「님프의 죽음」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문장가.
김찬영 (金瓚永)
일제강점기 「자화상」·「님프의 죽음」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문장가.
일제강점기 한국 서양화가 1세대이자 골동품 수장가. 서양화가.
김창섭 (金昌燮)
일제강점기 한국 서양화가 1세대이자 골동품 수장가. 서양화가.
일제강점기 녹향회의 주요 멤버로 활동한 화가. 유화가.
박광진 (朴廣鎭)
일제강점기 녹향회의 주요 멤버로 활동한 화가. 유화가.
일제강점기 한국 최초로 ‘아세아주의미술론’을 주창한 화가. 유화가.
심영섭 (沈英燮)
일제강점기 한국 최초로 ‘아세아주의미술론’을 주창한 화가. 유화가.
해방 이후 홍익대학교 초대 미술학장, 홍익대학교 총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등을 역임한 화가. 유화가.
이대원 (李大源)
해방 이후 홍익대학교 초대 미술학장, 홍익대학교 총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등을 역임한 화가. 유화가.
동양의 연대와 서양에 대한 동양의 문화적 우위를 주장하는 사상. 아시아주의·아세아주의.
동양주의 (東洋主義)
동양의 연대와 서양에 대한 동양의 문화적 우위를 주장하는 사상. 아시아주의·아세아주의.
아카데미의 관학계 혹은 관전계의 작풍이나 양식을 가리키는 학술용어. 관전 화풍.
아카데미즘 (academism)
아카데미의 관학계 혹은 관전계의 작풍이나 양식을 가리키는 학술용어. 관전 화풍.
자연 풍경이나 도시의 환경 등 집 밖의 경치를 그린 그림.
풍경화 (風景畵)
자연 풍경이나 도시의 환경 등 집 밖의 경치를 그린 그림.
정물화는 과일·꽃·그릇·어류 등 정지된 물체를 배치하여 구도를 잡아 그리는 그림이다. 서양에서 18세기 프랑스 화가 샤르뎅에 이르러 아카데미에서 인정하는 위상을 획득했다. 우리나라 20세기 초 서구 미술의 수용과 더불어 유입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조선미술전람회와 광복 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통해서 아카데미즘 양식으로 뿌리를 내렸다. 1930년대부터 야수주의, 상징주의, 초현실주의 화풍의 정물화도 그려졌으며, 광복 후에는 반추상, 추상 양식의 추상화도 그려졌다. 정물화는 순수미술의 한 장르로 객관적 시각과 인식을 확립시켜 근대성의 획득에 일조했다.
정물화 (靜物畵)
정물화는 과일·꽃·그릇·어류 등 정지된 물체를 배치하여 구도를 잡아 그리는 그림이다. 서양에서 18세기 프랑스 화가 샤르뎅에 이르러 아카데미에서 인정하는 위상을 획득했다. 우리나라 20세기 초 서구 미술의 수용과 더불어 유입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조선미술전람회와 광복 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통해서 아카데미즘 양식으로 뿌리를 내렸다. 1930년대부터 야수주의, 상징주의, 초현실주의 화풍의 정물화도 그려졌으며, 광복 후에는 반추상, 추상 양식의 추상화도 그려졌다. 정물화는 순수미술의 한 장르로 객관적 시각과 인식을 확립시켜 근대성의 획득에 일조했다.
추상화는 가시적 형상을 모방해서 재현하는 방식을 벗어나 점·선·면·색채의 순수조형 요소로 구성한 그림이다. 한국의 추상화는 1930년대 중반 일본에서 유학하던 김환기, 유영국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전후 1세대 청년 작가들이 주도한 앵포르멜 미술에 이르러 현대미술의 주류가 되었다. 1970년대 단색조의 추상화는 ‘한국적 모더니즘’이라 일컬어지면서 1980년대까지 화단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199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류에 의해 추상화의 열기는 서서히 식어 갔다.
추상화 (抽象畵)
추상화는 가시적 형상을 모방해서 재현하는 방식을 벗어나 점·선·면·색채의 순수조형 요소로 구성한 그림이다. 한국의 추상화는 1930년대 중반 일본에서 유학하던 김환기, 유영국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전후 1세대 청년 작가들이 주도한 앵포르멜 미술에 이르러 현대미술의 주류가 되었다. 1970년대 단색조의 추상화는 ‘한국적 모더니즘’이라 일컬어지면서 1980년대까지 화단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199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류에 의해 추상화의 열기는 서서히 식어 갔다.
누드화는 벌거벗은 인체를 대상으로 그린 그림이다. 나체화라고도 한다. 1910년대 일본으로 유학을 간 한국인 유화가들에 의해 한국 누드화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한국인이 제작한 최초의 누드화는 김관호의 「해질녘」(1916)이다. 이쾌대는 근대 미술가 중에서 가장 많은 누드 스케치를 남겼다. 그의 작품 중 「군상Ⅳ」(1948)은 한국인의 이상적인 신체 군상에 서사성을 가미하여 누드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일본 관학파풍으로 출발한 누드화는 점차 한국인의 체형을 고려하고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미감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진전하였다.
누드화 (nude畵)
누드화는 벌거벗은 인체를 대상으로 그린 그림이다. 나체화라고도 한다. 1910년대 일본으로 유학을 간 한국인 유화가들에 의해 한국 누드화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한국인이 제작한 최초의 누드화는 김관호의 「해질녘」(1916)이다. 이쾌대는 근대 미술가 중에서 가장 많은 누드 스케치를 남겼다. 그의 작품 중 「군상Ⅳ」(1948)은 한국인의 이상적인 신체 군상에 서사성을 가미하여 누드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일본 관학파풍으로 출발한 누드화는 점차 한국인의 체형을 고려하고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미감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진전하였다.
향토색은 시골 및 고향의 경관과 풍물에 담긴 정서이다. 도시적 정서와 대칭을 이루는 향촌의 경관·풍물에 담긴 고유의 정서나 특색을 일컫는다. 일제강점기의 문예계 전반에 크게 유행하였다. 미술 분야에서 향토색은 1920년대 초부터 권장되었다. 193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조선 향토색 발현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 대표적으로 윤희순은 황폐한 산과 들의 절망적 정조 대신 약동하는 향토색 창출을 촉구했다. 광복 후 활동한 향토색 화가는 박수근, 양달석 등이다. 향토색 담론은 한국 근대미술의 역동적인 전개사를 대변한다.
향토색 (鄕土色)
향토색은 시골 및 고향의 경관과 풍물에 담긴 정서이다. 도시적 정서와 대칭을 이루는 향촌의 경관·풍물에 담긴 고유의 정서나 특색을 일컫는다. 일제강점기의 문예계 전반에 크게 유행하였다. 미술 분야에서 향토색은 1920년대 초부터 권장되었다. 193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조선 향토색 발현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 대표적으로 윤희순은 황폐한 산과 들의 절망적 정조 대신 약동하는 향토색 창출을 촉구했다. 광복 후 활동한 향토색 화가는 박수근, 양달석 등이다. 향토색 담론은 한국 근대미술의 역동적인 전개사를 대변한다.
일제강점기 한국 추상미술 1세대 화가.
유영국 (劉永國)
일제강점기 한국 추상미술 1세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