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송현강"
검색결과 총 29건
김응태는 일제강점기, 감리교 목사이다. 동대문교회와 인천 내리교회 등에서 목회했고, 기독교조선감리교단 경기남교구장(1941년), 일본기독교조선감리교단 전도국장(1943년)에 이어서 해방 직전 조직된 조선기독교단 부통리자로 임명되어 일제의 종교 정책에 협력했다. 1955년부터 1959년까지 감리교 호헌파 총회 감독을 지냈다.
김응태 (金應泰)
김응태는 일제강점기, 감리교 목사이다. 동대문교회와 인천 내리교회 등에서 목회했고, 기독교조선감리교단 경기남교구장(1941년), 일본기독교조선감리교단 전도국장(1943년)에 이어서 해방 직전 조직된 조선기독교단 부통리자로 임명되어 일제의 종교 정책에 협력했다. 1955년부터 1959년까지 감리교 호헌파 총회 감독을 지냈다.
새문안교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에 있는 장로교회이다. 1887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에 의해 서상륜 등 14명의 한국인으로 시작되었다. 한국 장로교회의 모교회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으며,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서울노회에 소속되어 있다.
새문안교회 (새문안敎會)
새문안교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에 있는 장로교회이다. 1887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에 의해 서상륜 등 14명의 한국인으로 시작되었다. 한국 장로교회의 모교회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으며,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서울노회에 소속되어 있다.
이기선은 일제강점기 경남 김해군 김해읍교회와 평안북도 의주군 북하동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이다. 1878년 평북 박천에서 태어나 1915년 평양신학교 졸업 후 경남 김해군 김해읍교회(1918~1930)와 평북 의주군 위원면 북하동교회(1931~1938)에서 목회하였다. 일제 말기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앞장섰고 해방 이후 혁신복구파의 교회정화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기선 (李基宣)
이기선은 일제강점기 경남 김해군 김해읍교회와 평안북도 의주군 북하동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이다. 1878년 평북 박천에서 태어나 1915년 평양신학교 졸업 후 경남 김해군 김해읍교회(1918~1930)와 평북 의주군 위원면 북하동교회(1931~1938)에서 목회하였다. 일제 말기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앞장섰고 해방 이후 혁신복구파의 교회정화운동을 주도하였다.
차상진은 3·1운동 당시 「십이인 등의 장서」를 작성하여 조선총독부에 보낸 장로교 목사이다. 1875년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상심리에서 출생하여 1906년 기독교에 입교하고 1907년 세례를 받았다. 1910년 상심리교회 장로가 되었고, 1916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후 승동교회 목사(1917-1922), 피어선기념성경학원 원감(1922-1929)을 지냈다. 1919년 3월 「십이인 등의 장서」(十二人 等의 狀書)사건으로 투옥되었다.
차상진 (車相晋)
차상진은 3·1운동 당시 「십이인 등의 장서」를 작성하여 조선총독부에 보낸 장로교 목사이다. 1875년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상심리에서 출생하여 1906년 기독교에 입교하고 1907년 세례를 받았다. 1910년 상심리교회 장로가 되었고, 1916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후 승동교회 목사(1917-1922), 피어선기념성경학원 원감(1922-1929)을 지냈다. 1919년 3월 「십이인 등의 장서」(十二人 等의 狀書)사건으로 투옥되었다.
초량교회는 1892년 부산에 설립된 장로교회이다. 1892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William M. Baird)에 의해 설립되었다. 1910년 한득룡 목사가 시무하였고, 1917년 정덕생 목사가 부임하면서 70여 평의 예배당을 준공하였다. 1925년에 주기철 목사가 목회하기 시작했고, 사회사업으로 1930년 삼일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46년에 부임한 한상동 목사는 그후 장로교 고려파가 생겨날 때 초량교회를 떠나 삼일교회를 설립하였다. 2022년 설립 130주년을 맞았다.
초량교회 (草梁敎會)
초량교회는 1892년 부산에 설립된 장로교회이다. 1892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William M. Baird)에 의해 설립되었다. 1910년 한득룡 목사가 시무하였고, 1917년 정덕생 목사가 부임하면서 70여 평의 예배당을 준공하였다. 1925년에 주기철 목사가 목회하기 시작했고, 사회사업으로 1930년 삼일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46년에 부임한 한상동 목사는 그후 장로교 고려파가 생겨날 때 초량교회를 떠나 삼일교회를 설립하였다. 2022년 설립 130주년을 맞았다.
공주제일교회는 1903년, 충청남도 공주에 설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이다. 1903년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1919년 공주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주도 세력은 이 교회의 교인들이었다. 1931년 11월 세워진 공주제일교회 건물은 2011년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어 현재 공주기독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공주제일교회 (公州第一敎會)
공주제일교회는 1903년, 충청남도 공주에 설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이다. 1903년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1919년 공주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주도 세력은 이 교회의 교인들이었다. 1931년 11월 세워진 공주제일교회 건물은 2011년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어 현재 공주기독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주 서문교회는 1896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테이트(Lewis B. Tate)에 의해 시작된 전라북도 전주의 장로교회이다. 1905년 9월 서문 밖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남장로교 전주 스테이션(선교기지)의 직할교회로 신흥학교, 기전여학교, 전주예수병원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발전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전북노회에 소속되어 있다.
전주 서문교회 (全州 西門敎會)
전주 서문교회는 1896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테이트(Lewis B. Tate)에 의해 시작된 전라북도 전주의 장로교회이다. 1905년 9월 서문 밖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남장로교 전주 스테이션(선교기지)의 직할교회로 신흥학교, 기전여학교, 전주예수병원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발전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전북노회에 소속되어 있다.
귀일원은 1949년 이현필(李鉉弼, 1913~1964)의 제자들이 설립한 기독교 사회 복지 기관이다. ‘맨발의 성자’ 이현필에 의해 동광원이 시작되었고, 1951년의 귀일원 운동은 1954년 동광원 폐쇄 후에도 지속되었다. 이현필 사망 1년인 1965년 2월 백춘성 장로가 희사한 수도 공동체 자산을 기반으로 재단법인 귀일원 설립인가를 받고, 초대 이사장 겸 원장에 오북환, 총무에 김은연이 취임하여 봉선동에서 폐질자 수용 시설로 사회 복지 사역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귀일원 (歸一園)
귀일원은 1949년 이현필(李鉉弼, 1913~1964)의 제자들이 설립한 기독교 사회 복지 기관이다. ‘맨발의 성자’ 이현필에 의해 동광원이 시작되었고, 1951년의 귀일원 운동은 1954년 동광원 폐쇄 후에도 지속되었다. 이현필 사망 1년인 1965년 2월 백춘성 장로가 희사한 수도 공동체 자산을 기반으로 재단법인 귀일원 설립인가를 받고, 초대 이사장 겸 원장에 오북환, 총무에 김은연이 취임하여 봉선동에서 폐질자 수용 시설로 사회 복지 사역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칠곡교회는 1992년 북한에 설립된 개신교 교회이다. 1980년대 말 북한은 해외 방문자들에게 예배드릴 장소를 마련해 주고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칠곡교회를 재건하였다. 칠곡교회는 김일성의 외조부인 강돈욱이 시무 장로로 재직한 교회이고, 어머니인 강반석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다녔던 곳이며, 김일성 자신도 어렸을 때 이 교회에 다녔다고 한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 소속되어 있다.
칠곡교회 (七谷敎會)
칠곡교회는 1992년 북한에 설립된 개신교 교회이다. 1980년대 말 북한은 해외 방문자들에게 예배드릴 장소를 마련해 주고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칠곡교회를 재건하였다. 칠곡교회는 김일성의 외조부인 강돈욱이 시무 장로로 재직한 교회이고, 어머니인 강반석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다녔던 곳이며, 김일성 자신도 어렸을 때 이 교회에 다녔다고 한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 소속되어 있다.
강화중앙교회는 1900년 강화도에 설립된 감리교회이다. 홍의교회에 다니던 주선일과 그의 인척들이 1900년 9월 1일에 강화읍 신문리 144번지에 6칸 반짜리 초가집을 사 예배처로 사용해 첫 예배를 드렸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교회 부설 잠두의숙이 신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으며, 1908년 정식 학교가 되면서 ‘사립제일합일학교’로 개칭되었다. 1909년에는 부설 여자소학교인 ‘제일합일여학교’가 설립되었다. 교회 명칭은 강화읍잠두교회에서 강화읍교회로 바뀌었으며, 1976년에 현재의 명칭인 강화중앙교회로 개칭되었다.
강화중앙교회 (江華中央敎會)
강화중앙교회는 1900년 강화도에 설립된 감리교회이다. 홍의교회에 다니던 주선일과 그의 인척들이 1900년 9월 1일에 강화읍 신문리 144번지에 6칸 반짜리 초가집을 사 예배처로 사용해 첫 예배를 드렸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교회 부설 잠두의숙이 신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으며, 1908년 정식 학교가 되면서 ‘사립제일합일학교’로 개칭되었다. 1909년에는 부설 여자소학교인 ‘제일합일여학교’가 설립되었다. 교회 명칭은 강화읍잠두교회에서 강화읍교회로 바뀌었으며, 1976년에 현재의 명칭인 강화중앙교회로 개칭되었다.
주일선거 반대사건은 1946년 11월 3일 일요일에 실시한 북한 정권의 인민위원회 선거에 대한 기독교계의 반대 투쟁이다. 당시 북한의 장로교를 대표했던 5도연합노회는 선거일이 일요일, 즉 주일이라는 점을 내세워 그 선거를 거부하였다. 공산 정권 수립에 대한 기독교계의 정치적 저항의 성격을 지닌 사건이었다.
주일선거 반대사건 (主日選擧 反對事件)
주일선거 반대사건은 1946년 11월 3일 일요일에 실시한 북한 정권의 인민위원회 선거에 대한 기독교계의 반대 투쟁이다. 당시 북한의 장로교를 대표했던 5도연합노회는 선거일이 일요일, 즉 주일이라는 점을 내세워 그 선거를 거부하였다. 공산 정권 수립에 대한 기독교계의 정치적 저항의 성격을 지닌 사건이었다.
봉수교회는 1988년 설립된 북한 평양시 만경대구역 건국동 보통강변에 있는 조선기독교도연맹 소속의 교회이다. 매주 목회자들에 의해 설교가 행해지고 있어서 북한 기독교의 실질적인 선교기관으로서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공산정권 치하에서 북한의 기독교는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 봉수교회의 설립은 북한교회사의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봉수교회 (鳳岫敎會)
봉수교회는 1988년 설립된 북한 평양시 만경대구역 건국동 보통강변에 있는 조선기독교도연맹 소속의 교회이다. 매주 목회자들에 의해 설교가 행해지고 있어서 북한 기독교의 실질적인 선교기관으로서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공산정권 치하에서 북한의 기독교는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 봉수교회의 설립은 북한교회사의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자유당은 1947년 북한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을 시도한 정당이다. 당시 평양 장대현교회의 김화식 목사는 다수의 동지들과 함께 기독교자유당 결성을 추진하였다. 결당식 날짜는 1947년 11월 19일로 잡혀 있었다. 그러나 결당식을 하루 앞둔 11월 18일 이 사실이 누설되어 김화식 목사를 비롯한 40여 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일제히 검거 투옥되었고, 창당은 무산되었다.
기독교자유당 (基督敎自由黨)
기독교자유당은 1947년 북한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을 시도한 정당이다. 당시 평양 장대현교회의 김화식 목사는 다수의 동지들과 함께 기독교자유당 결성을 추진하였다. 결당식 날짜는 1947년 11월 19일로 잡혀 있었다. 그러나 결당식을 하루 앞둔 11월 18일 이 사실이 누설되어 김화식 목사를 비롯한 40여 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일제히 검거 투옥되었고, 창당은 무산되었다.
이자익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장로교 총회장과 대전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목사이다. 1882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남장로교 선교사 테이트(Lewis B. Tate)의 조사(助事)로 기독교에 입문하여 김제 금산교회 장로, 원평교회 목사, 장로교 총회장(3선), 대전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자익 (李自益)
이자익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장로교 총회장과 대전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목사이다. 1882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남장로교 선교사 테이트(Lewis B. Tate)의 조사(助事)로 기독교에 입문하여 김제 금산교회 장로, 원평교회 목사, 장로교 총회장(3선), 대전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기독교구국회는 6.25전쟁 시기 대전에서 결성된 개신교 구국 단체이다. 1950년 7월 3일 한경직 등 개신교 교역자들에 의해 대전 제일장로교회에서 결성되었다. 이후 선무·구호·방송·의용대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여 개신교 각 교파 사이의 협력과 연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개신교반공주의 강화의 요인이 되었다.
대한기독교구국회 (大韓基督敎救國會)
대한기독교구국회는 6.25전쟁 시기 대전에서 결성된 개신교 구국 단체이다. 1950년 7월 3일 한경직 등 개신교 교역자들에 의해 대전 제일장로교회에서 결성되었다. 이후 선무·구호·방송·의용대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여 개신교 각 교파 사이의 협력과 연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개신교반공주의 강화의 요인이 되었다.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는 일제강점기 개신교 성결교단 교회.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 (舊 江景聖潔敎會 禮拜堂)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는 일제강점기 개신교 성결교단 교회.
1891년 호주 선교부에 의해 설립된 부산진의 장로교회.
부산진교회 (釜山鎭敎會)
1891년 호주 선교부에 의해 설립된 부산진의 장로교회.
1909년 안동에 최초로 설립된 장로교회.
안동교회 (安東敎會)
1909년 안동에 최초로 설립된 장로교회.
1894년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에 의해 설립된 경기도 김포시의 장로교회.
김포제일교회 (金浦第一敎會)
1894년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에 의해 설립된 경기도 김포시의 장로교회.
1904년 청주에 설립된 장로교회.
청주제일교회 (淸州第一敎會)
1904년 청주에 설립된 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