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심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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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거열산성은 거창군 건흥산 해발 572m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거창 거열산성은 정상부를 둘러서 쌓은 내성과 덧붙여서 쌓은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은 6세기 중엽 신라에 의해 축성되었으며, 외성은 673년(문무왕 13) 당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쌓은 '건흥사 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내성과 외성은 100여 년의 축성 시기 차이로 인하여 축성법의 변화 양상을 잘 관측할 수 있다. 1974년에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2020년에 사적으로 승격되면서 성의 공식적인 명칭이 거열성에서 거창 거열산성으로 바뀌었다.
거창 거열산성 (居昌 居列山城)
거창 거열산성은 거창군 건흥산 해발 572m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거창 거열산성은 정상부를 둘러서 쌓은 내성과 덧붙여서 쌓은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은 6세기 중엽 신라에 의해 축성되었으며, 외성은 673년(문무왕 13) 당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쌓은 '건흥사 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내성과 외성은 100여 년의 축성 시기 차이로 인하여 축성법의 변화 양상을 잘 관측할 수 있다. 1974년에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2020년에 사적으로 승격되면서 성의 공식적인 명칭이 거열성에서 거창 거열산성으로 바뀌었다.
견훤산성은 경상북도 상주시 장바위산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쌓은 성이라 하지만 협축식으로 쌓은 정교한 체성벽과 높은 내벽, 보축 성벽, 현문식 성문 등 초기 신라 산성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성벽의 둘레는 650m이며 성벽의 높이는 최대 15m에 달한다. 5세기 말경에 처음 축성되었으며, 통일신라 시기에 수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84년에 경상북도 기념물 53호로 지정되었다.
견훤산성 (甄萱山城)
견훤산성은 경상북도 상주시 장바위산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쌓은 성이라 하지만 협축식으로 쌓은 정교한 체성벽과 높은 내벽, 보축 성벽, 현문식 성문 등 초기 신라 산성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성벽의 둘레는 650m이며 성벽의 높이는 최대 15m에 달한다. 5세기 말경에 처음 축성되었으며, 통일신라 시기에 수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84년에 경상북도 기념물 53호로 지정되었다.
나성(羅城)은 내성을 둘러싸고 있는 외성을 의미한다. 『통감』에 의하면 외성 중 큰 것을 나성이라 하고, 작은 것을 자성이라 했다고 한다. 내성을 성(城)이라 하고 외성을 곽(郭)이라 하였으므로 나성은 성곽의 곽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산성이나 읍성은 대부분 외성이 없이 내성만 있는 성이다. 그러나 고구려 평양성과 백제 사비성, 고려 도성 등의 도성에는 나성이 축조되었다. 나성은 백성들의 주거 지역을 포괄하도록 축조되었으므로 다른 성들에 비하여 규모가 큰 것이 특징이다.
나성 (羅城)
나성(羅城)은 내성을 둘러싸고 있는 외성을 의미한다. 『통감』에 의하면 외성 중 큰 것을 나성이라 하고, 작은 것을 자성이라 했다고 한다. 내성을 성(城)이라 하고 외성을 곽(郭)이라 하였으므로 나성은 성곽의 곽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산성이나 읍성은 대부분 외성이 없이 내성만 있는 성이다. 그러나 고구려 평양성과 백제 사비성, 고려 도성 등의 도성에는 나성이 축조되었다. 나성은 백성들의 주거 지역을 포괄하도록 축조되었으므로 다른 성들에 비하여 규모가 큰 것이 특징이다.
대국산성은 남해 대국산(大局山: 370m)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석축 산성이다. 대국산 정상부에서 능선을 따라 먼저 쌓아 올려진 석축성과 동쪽 비탈면으로 석축성에 덧대어 산 중턱까지 연결하여 쌓은 토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축 산성은 가늘고 긴 성돌로 바른층 쌓기를 하였으며, 보축 성벽과 현문식 문지를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신라 석축 산성이다. 토성은 기단식 판축 토성으로 덧붙여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신라 전야산군의 치소성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성과 사천 지역뿐만 아니라 남해 도서 지역이 넓게 조망되는 요충지이다.
대국산성 (大局山城)
대국산성은 남해 대국산(大局山: 370m)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석축 산성이다. 대국산 정상부에서 능선을 따라 먼저 쌓아 올려진 석축성과 동쪽 비탈면으로 석축성에 덧대어 산 중턱까지 연결하여 쌓은 토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축 산성은 가늘고 긴 성돌로 바른층 쌓기를 하였으며, 보축 성벽과 현문식 문지를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신라 석축 산성이다. 토성은 기단식 판축 토성으로 덧붙여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신라 전야산군의 치소성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성과 사천 지역뿐만 아니라 남해 도서 지역이 넓게 조망되는 요충지이다.
도성은 왕이 거주하는 왕성과 백성들의 거주 지역을 아우르도록 쌓은 성곽이다. 국도 또는 왕도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읍(邑)이라 하였으며, 읍이 국(國)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통합 권력의 상징인 종묘와 사직을 갖추고 있는 읍을 도(都)라 하였다. 따라서 도성은 백성의 거주 지역을 아우르는 외곽 성이 없더라도 왕이 거주하는 지역을 의미하였으므로 왕도라 부르기도 한다.
도성 (都城)
도성은 왕이 거주하는 왕성과 백성들의 거주 지역을 아우르도록 쌓은 성곽이다. 국도 또는 왕도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읍(邑)이라 하였으며, 읍이 국(國)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통합 권력의 상징인 종묘와 사직을 갖추고 있는 읍을 도(都)라 하였다. 따라서 도성은 백성의 거주 지역을 아우르는 외곽 성이 없더라도 왕이 거주하는 지역을 의미하였으므로 왕도라 부르기도 한다.
미숭산성(美崇山城)은 경상남도 합천군에 있는 고려시대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해발 고도가 높은 미숭산의 험준한 자연 지형에 따라 쌓은 성으로 그 둘레는 1,325m에 이른다. 합천은 역사·지리적으로 대가야에 속했던 지역이고 남쪽의 불무골은 대가야의 철산지로 알려진 곳이기 때문에 한동안 미숭산성은 가야의 성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발굴 조사 결과 이 성은 고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미숭산성 (美崇山城)
미숭산성(美崇山城)은 경상남도 합천군에 있는 고려시대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해발 고도가 높은 미숭산의 험준한 자연 지형에 따라 쌓은 성으로 그 둘레는 1,325m에 이른다. 합천은 역사·지리적으로 대가야에 속했던 지역이고 남쪽의 불무골은 대가야의 철산지로 알려진 곳이기 때문에 한동안 미숭산성은 가야의 성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발굴 조사 결과 이 성은 고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배산성지(盃山城址)는 삼국시대 부산의 배산에 지어진 신라 석축 산성의 터이다. 배산은 해발 고도 250m의 낮은 산이지만, 해운대구와 연제구, 동래구, 금정구 등 부산 시내 일원이 조망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배산성의 성곽은 배산의 정상부를 둘러싸는 토성, 성의 사면과 능선을 아우르는 석축 성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축성 기법이나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볼 때, 배산성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신라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배산성지 (盃山城址)
배산성지(盃山城址)는 삼국시대 부산의 배산에 지어진 신라 석축 산성의 터이다. 배산은 해발 고도 250m의 낮은 산이지만, 해운대구와 연제구, 동래구, 금정구 등 부산 시내 일원이 조망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배산성의 성곽은 배산의 정상부를 둘러싸는 토성, 성의 사면과 능선을 아우르는 석축 성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축성 기법이나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볼 때, 배산성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신라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산성(山城)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산지의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성곽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산성이 발달하었다. 현존하는 성곽 중 왕성이나 도성, 조선시대의 읍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산성이다. 산성은 대부분 적의 공격을 관측하기 좋은 교통의 요충지에 구축되었다. 산성은 방어에 유리하지만 적의 포위 공격에 대비하여 성내에 집수 시설과 군수 물자를 비축해 두어야 하였다. 산성을 쌓는 방법은 축성 시기나 축성 주체에 따라 달랐으며, 군사적인 기능 외에 행정을 관할하는 치소성의 역할도 하었다.
산성 (山城)
산성(山城)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산지의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성곽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산성이 발달하었다. 현존하는 성곽 중 왕성이나 도성, 조선시대의 읍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산성이다. 산성은 대부분 적의 공격을 관측하기 좋은 교통의 요충지에 구축되었다. 산성은 방어에 유리하지만 적의 포위 공격에 대비하여 성내에 집수 시설과 군수 물자를 비축해 두어야 하였다. 산성을 쌓는 방법은 축성 시기나 축성 주체에 따라 달랐으며, 군사적인 기능 외에 행정을 관할하는 치소성의 역할도 하었다.
서울 한양도성은 조선시대 수도였던 한양을 방어하기 위하여 쌓은 성곽이다. 백악산과 인왕산, 목멱산, 남산을 연결하여 쌓은 평산성이며, 둘레는 18,127m에 달한다. 1396년(조선 태조 5) 축성을 시작하여 2년 뒤인 1398년에 완공하였다. 1422년(세종 4)에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였으며, 영조 대를 거쳐 숙종 대에 대대적인 개축이 이루어졌다. 성벽에는 숙청문과 흥인문, 돈의문, 숭례문 등 사대문과 혜화문, 광희문, 창의문, 소덕문 등 사소문 등 8개의 성문이 있었다.
서울 한양도성 (서울 漢陽都城)
서울 한양도성은 조선시대 수도였던 한양을 방어하기 위하여 쌓은 성곽이다. 백악산과 인왕산, 목멱산, 남산을 연결하여 쌓은 평산성이며, 둘레는 18,127m에 달한다. 1396년(조선 태조 5) 축성을 시작하여 2년 뒤인 1398년에 완공하였다. 1422년(세종 4)에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였으며, 영조 대를 거쳐 숙종 대에 대대적인 개축이 이루어졌다. 성벽에는 숙청문과 흥인문, 돈의문, 숭례문 등 사대문과 혜화문, 광희문, 창의문, 소덕문 등 사소문 등 8개의 성문이 있었다.
순천 검단산성은 순천시 해룡면에 있는 석축산성이다. 정유재란 당시 조명 연합군이 이 산성에 머물면서 순천왜성의 왜군과 격전을 벌였던 전적지여서 조선시대에 쌓은 성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3차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검단산성은 삼국시대 백제가 쌓은 석축산성으로 확인되었다. 둘레는 430m이며, 성내에서는 다수의 건물지와 집수지가 확인되었다.
순천 검단산성 (順天 檢丹山城)
순천 검단산성은 순천시 해룡면에 있는 석축산성이다. 정유재란 당시 조명 연합군이 이 산성에 머물면서 순천왜성의 왜군과 격전을 벌였던 전적지여서 조선시대에 쌓은 성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3차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검단산성은 삼국시대 백제가 쌓은 석축산성으로 확인되었다. 둘레는 430m이며, 성내에서는 다수의 건물지와 집수지가 확인되었다.
옥포성(玉浦城)은 1490년(성종 21)에 왜구를 방하기 위하여 쌓은 진성이다. 이곳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해전인 옥포대첩이 일어난 곳으로, 이순신 장군이 왜선 300여 척 중 26척을 격파시킨 전적지이다. 1973년 대우조선소가 건립되고 옥포동 일대가 도시화되는 과정에서 성벽과 성 내부 대부분이 파괴되어, 현재 남동 성벽의 일부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옥포성 (玉浦城)
옥포성(玉浦城)은 1490년(성종 21)에 왜구를 방하기 위하여 쌓은 진성이다. 이곳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해전인 옥포대첩이 일어난 곳으로, 이순신 장군이 왜선 300여 척 중 26척을 격파시킨 전적지이다. 1973년 대우조선소가 건립되고 옥포동 일대가 도시화되는 과정에서 성벽과 성 내부 대부분이 파괴되어, 현재 남동 성벽의 일부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우금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우금산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해발 340m 우금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주변 봉우리를 아우르고 있으며, 둘레 3,960m에 달하는 대규모 석축 산성이다. 백제 부흥운동의 최후 거점이었던 주류성으로 비정되어 왔으나 수차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백제 축성 관련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성벽은 자연 지형을 따라 능선을 연결하며 쌓아 사다리꼴에 가까운 모양이다. 성벽 몸체 부분의 축조 방식이나 출토 유물 등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에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 내기 위해 쌓은 '입보용 산성'으로 추정된다.
우금산성 (禹金山城)
우금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우금산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해발 340m 우금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주변 봉우리를 아우르고 있으며, 둘레 3,960m에 달하는 대규모 석축 산성이다. 백제 부흥운동의 최후 거점이었던 주류성으로 비정되어 왔으나 수차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백제 축성 관련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성벽은 자연 지형을 따라 능선을 연결하며 쌓아 사다리꼴에 가까운 모양이다. 성벽 몸체 부분의 축조 방식이나 출토 유물 등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에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 내기 위해 쌓은 '입보용 산성'으로 추정된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이궁지로 추정되는 건물터.
부여 화지산 유적 (扶餘 花枝山 遺蹟)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이궁지로 추정되는 건물터.
경상북도 경주시 손곡동·물천리 일대에 있는 신라와 통일신라의 덧널무덤·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경주 손곡동과 물천리 유적 (慶州 蓀谷洞과 勿川里 遺蹟)
경상북도 경주시 손곡동·물천리 일대에 있는 신라와 통일신라의 덧널무덤·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연천 호로고루는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이다. 200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임진강 북안에 있는 현무암 대지 위에 구축되어 있는 삼각형 모양의 강안평지성이다. 200여 년간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 역할을 했던 임진강 유역에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호로고루의 성벽 축성에는 토성과 석성을 결합한 독특한 토목기술이 적용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토기와 기와류, 석기, 철기 등 위계가 높은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호로고루는 고구려 축성기술과 생활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연천 호로고루 (漣川 瓠蘆古壘)
연천 호로고루는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이다. 200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임진강 북안에 있는 현무암 대지 위에 구축되어 있는 삼각형 모양의 강안평지성이다. 200여 년간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 역할을 했던 임진강 유역에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호로고루의 성벽 축성에는 토성과 석성을 결합한 독특한 토목기술이 적용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토기와 기와류, 석기, 철기 등 위계가 높은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호로고루는 고구려 축성기술과 생활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연천 당포성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이다. 200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지류와 만나 형성하는 약 13m 높이의 긴 삼각형 단애 위에 축성되어 있다. 동성벽은 길이 50m, 잔존높이 6m 정도이며, 동벽에서 성의 서쪽 끝까지의 길이는 약 200m에 달하며 전체 둘레는 450m 정도이다.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수직 단애를 이루지 않은 동쪽에만 토성과 석성의 축성기법을 결합하여 성벽을 쌓았다. 임진강이 국경 하천 역할을 했던 삼국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귀중한 문화유적이다.
연천 당포성 (漣川 堂浦城)
연천 당포성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이다. 200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지류와 만나 형성하는 약 13m 높이의 긴 삼각형 단애 위에 축성되어 있다. 동성벽은 길이 50m, 잔존높이 6m 정도이며, 동벽에서 성의 서쪽 끝까지의 길이는 약 200m에 달하며 전체 둘레는 450m 정도이다.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수직 단애를 이루지 않은 동쪽에만 토성과 석성의 축성기법을 결합하여 성벽을 쌓았다. 임진강이 국경 하천 역할을 했던 삼국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귀중한 문화유적이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이다. 200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으로 내성과 외성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으며, 남한지역에서 확인되는 중요한 고구려성 중의 하나이다. 차탄천이 한탄강에 합류하는 지점으로 성은 두 하천에 의하여 형성된 삼각형의 침식대지 위에 축조되어 있다. 동벽은 외성과 내성의 이중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외성의 전체규모는 1,069m이고 내성의 둘레는 230m이다. 대형건물터 1개소, 치성 3개소가 확인되었다.고구려군의 남진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연천 은대리성 (漣川 隱垈里城)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이다. 200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으로 내성과 외성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으며, 남한지역에서 확인되는 중요한 고구려성 중의 하나이다. 차탄천이 한탄강에 합류하는 지점으로 성은 두 하천에 의하여 형성된 삼각형의 침식대지 위에 축조되어 있다. 동벽은 외성과 내성의 이중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외성의 전체규모는 1,069m이고 내성의 둘레는 230m이다. 대형건물터 1개소, 치성 3개소가 확인되었다.고구려군의 남진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상주 복룡동 유적은 경상북도 상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도시유적이다.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조선시대의 적심건물지, 우물, 수혈, 배수로 등 1,005기의 유구와 도기류, 토기류, 와전류, 명문이 새겨진 자기류 등 총 2,187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적은 통일신라시대 사벌주 설치 당시에 적용된 이방제(里坊制)의 공간 구획에 의해 이방도로(里坊道路)와 내부의 주거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조선시대에 읍성을 설치할 때까지 활용되었다. 상주 지역 고대도시의 구조와 성격을 복원하는 데 역사적 가치가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상주 복룡동 유적 (尙州 伏龍洞 遺蹟)
상주 복룡동 유적은 경상북도 상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도시유적이다.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조선시대의 적심건물지, 우물, 수혈, 배수로 등 1,005기의 유구와 도기류, 토기류, 와전류, 명문이 새겨진 자기류 등 총 2,187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적은 통일신라시대 사벌주 설치 당시에 적용된 이방제(里坊制)의 공간 구획에 의해 이방도로(里坊道路)와 내부의 주거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조선시대에 읍성을 설치할 때까지 활용되었다. 상주 지역 고대도시의 구조와 성격을 복원하는 데 역사적 가치가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광양 마로산성은 전라남도 광양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시기에 초축된 협축식 성곽이다. 200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마로산 정상에 축성되었는데 백제에 의해 초축되어 통일신라 시대까지 사용되었다. 산성은 둘레가 550m, 폭은 5.5m, 외벽의 높이는 3∼5m이다. 이곳에서 성벽과 건물지 17동, 문지 3개소 및 유구와 기와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마로관이 새겨진 평기와가 출토됨에 따라 마로현이 치소였다는 역사 기록과 일치한다. 이는 산성이 군사적인 기능뿐 아니라 행정치소의 기능을 했음을 입증하는 근거 자료이다.
광양 마로산성 (光陽 馬老山城)
광양 마로산성은 전라남도 광양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시기에 초축된 협축식 성곽이다. 200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마로산 정상에 축성되었는데 백제에 의해 초축되어 통일신라 시대까지 사용되었다. 산성은 둘레가 550m, 폭은 5.5m, 외벽의 높이는 3∼5m이다. 이곳에서 성벽과 건물지 17동, 문지 3개소 및 유구와 기와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마로관이 새겨진 평기와가 출토됨에 따라 마로현이 치소였다는 역사 기록과 일치한다. 이는 산성이 군사적인 기능뿐 아니라 행정치소의 기능을 했음을 입증하는 근거 자료이다.
경상남도 거제시 둔덕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성곽.
거제 둔덕기성 (巨濟 屯德岐城)
경상남도 거제시 둔덕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성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