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유지복"
검색결과 총 35건
신라부터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대 명서가의 필적을 목판에 새겨 간행한 서첩.
대동서법 (大東書法)
신라부터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대 명서가의 필적을 목판에 새겨 간행한 서첩.
근묵은 1943년 서예가 오세창이 우리나라 역대 명사들의 진적을 모아 엮은 서첩이다. 우리나라를 뜻하는 ‘근역’과 먹으로 쓴 글씨라는 뜻의 ‘묵적’이 결합된 말이다. 고려 말 정몽주부터 근대의 이도영까지 1136명의 글씨를 각 한 점씩 수록하였다. 『근묵』에 실린 서체는 행서와 초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 문장의 종류로 분류하면 서간과 시의 비중이 높다. 원본 34책을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영인본 2권과 원색 영인본 5권으로 출판하였다. 역대 명사들의 필적이 대거 실려 있어 우리나라 서예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근묵 (槿墨)
근묵은 1943년 서예가 오세창이 우리나라 역대 명사들의 진적을 모아 엮은 서첩이다. 우리나라를 뜻하는 ‘근역’과 먹으로 쓴 글씨라는 뜻의 ‘묵적’이 결합된 말이다. 고려 말 정몽주부터 근대의 이도영까지 1136명의 글씨를 각 한 점씩 수록하였다. 『근묵』에 실린 서체는 행서와 초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 문장의 종류로 분류하면 서간과 시의 비중이 높다. 원본 34책을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영인본 2권과 원색 영인본 5권으로 출판하였다. 역대 명사들의 필적이 대거 실려 있어 우리나라 서예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대한제국기 「승사인보」·「청유인보」 등을 제작한 서예가. 전각가.
김태석 (金台錫)
대한제국기 「승사인보」·「청유인보」 등을 제작한 서예가. 전각가.
조선시대 춘추관 편수관, 성천부사, 영흥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이지정 (李志定)
조선시대 춘추관 편수관, 성천부사, 영흥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여주이씨 옥산 문중 소장 『해동명적』은 이전에 목판본으로 간행된 『해동명적』을 1530년에 돌에 새겨 석판본으로 다시 간행한 서첩이다. 『해동명적』은 신공제가 신라부터 조선 초까지의 우리나라 역대 명필의 글씨를 모아 1515년경 목판본으로 간행한 법첩이다. 옥산문중본 『해동명적』은 전·후집 중 전집을 2책으로 분권한 것으로, 후집은 없다. 1책 38면, 2책 44면 도합 82면으로 편집되어 있다. 옥산문중본 『해동명적』에 실린 필적은 시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대부분 개인 문집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초고 필적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여주이씨 옥산문중 유묵 - 해동명적 (驪州李氏 玉山門中 遺墨 - 海東名迹)
여주이씨 옥산 문중 소장 『해동명적』은 이전에 목판본으로 간행된 『해동명적』을 1530년에 돌에 새겨 석판본으로 다시 간행한 서첩이다. 『해동명적』은 신공제가 신라부터 조선 초까지의 우리나라 역대 명필의 글씨를 모아 1515년경 목판본으로 간행한 법첩이다. 옥산문중본 『해동명적』은 전·후집 중 전집을 2책으로 분권한 것으로, 후집은 없다. 1책 38면, 2책 44면 도합 82면으로 편집되어 있다. 옥산문중본 『해동명적』에 실린 필적은 시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대부분 개인 문집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초고 필적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최흥효는 조선 전기 예문관 직제학, 첨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서예가이다. 1370년경에 태어나 1452년 이후에 사망했다. 관직에서는 주로 국가의 대외 문서와 각종 필사 업무를 담당하였다. 최흥효는 고려 말·조선 초에 초서로 일가를 이룬 서예가이다. 15세기 후반 『소문쇄록』에서 안평대군의 행서와 함께 최흥효의 초서를 언급하고 있다. 최흥효의 초서는 정형화된 송설체에 비해 분방한 경향을 보인다. 그의 필적으로는 『근묵』에 초서로 쓴 「두목시 염석유 외」가 유일한 진적이다. 이 밖에 해서로 쓴 「최치운묘비」가 있다.
최흥효 (崔興孝)
최흥효는 조선 전기 예문관 직제학, 첨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서예가이다. 1370년경에 태어나 1452년 이후에 사망했다. 관직에서는 주로 국가의 대외 문서와 각종 필사 업무를 담당하였다. 최흥효는 고려 말·조선 초에 초서로 일가를 이룬 서예가이다. 15세기 후반 『소문쇄록』에서 안평대군의 행서와 함께 최흥효의 초서를 언급하고 있다. 최흥효의 초서는 정형화된 송설체에 비해 분방한 경향을 보인다. 그의 필적으로는 『근묵』에 초서로 쓴 「두목시 염석유 외」가 유일한 진적이다. 이 밖에 해서로 쓴 「최치운묘비」가 있다.
조선전기 「초서가행」을 쓴 서예가.
황기로 (黃耆老)
조선전기 「초서가행」을 쓴 서예가.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 묵재 이문건이 1536년에 묘 앞에 세운 한글 묘비이다. 이 묘비는 이문건이 부친인 이윤탁의 묘를 모친인 고령 신씨의 묘와 합장하면서 세운 것이다. 200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묘비에는 앞면과 뒷면에 각각 묘주의 이름과 그 일대기가 새겨져 있다. 또 왼쪽과 오른쪽 옆면에는 한글과 한문으로 경고문이 새겨져 있다. 특히 비석 왼쪽 면의 한글 비문은 훈민정음 창제 이래 조선 500년 동안 최초의 것이다. 이 영비는 16세기에 순수 국문으로만 쓰여 중세 국어와 서체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서울 李允濯 한글靈碑)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 묵재 이문건이 1536년에 묘 앞에 세운 한글 묘비이다. 이 묘비는 이문건이 부친인 이윤탁의 묘를 모친인 고령 신씨의 묘와 합장하면서 세운 것이다. 200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묘비에는 앞면과 뒷면에 각각 묘주의 이름과 그 일대기가 새겨져 있다. 또 왼쪽과 오른쪽 옆면에는 한글과 한문으로 경고문이 새겨져 있다. 특히 비석 왼쪽 면의 한글 비문은 훈민정음 창제 이래 조선 500년 동안 최초의 것이다. 이 영비는 16세기에 순수 국문으로만 쓰여 중세 국어와 서체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전기 문신·서예가 양사언이 친필로 쓴 시문을 모아 엮은 서첩.
봉래유묵 (蓬萊遺墨)
조선전기 문신·서예가 양사언이 친필로 쓴 시문을 모아 엮은 서첩.
조선전기 문신·학자 서거정의 행서 필적을 모아 엮은 서첩.
서거정 필적 (徐居正 筆蹟)
조선전기 문신·학자 서거정의 행서 필적을 모아 엮은 서첩.
조선전기 학자 성수침의 행서 필적을 모아 엮은 서첩.
성수침 필적 (成守琛 筆蹟)
조선전기 학자 성수침의 행서 필적을 모아 엮은 서첩.
조선전기 문신·서예가 양사언이 당나라 저광의의 오언시 「낙양도」를 초서로 필사하여 엮은 서축. 서예·초서.
양사언 초서 (楊士彦 草書)
조선전기 문신·서예가 양사언이 당나라 저광의의 오언시 「낙양도」를 초서로 필사하여 엮은 서축. 서예·초서.
조선시대 문신이자 서화가인 김현성이 이증(李增)의 절구와 율시 9편을 행서로 필사한 서첩.
김현성 필적 (金玄成 筆蹟)
조선시대 문신이자 서화가인 김현성이 이증(李增)의 절구와 율시 9편을 행서로 필사한 서첩.
해방 이후 예술원 회원,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동국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서예가.
배길기 (裵吉基)
해방 이후 예술원 회원,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동국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서예가.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에 있는 고려전기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의 신도비.
춘천 장절공 신숭겸 신도비 (春川 壯節公 申崇謙 神道碑)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에 있는 고려전기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의 신도비.
해방 이후 「윤봉길 열사 기의비」·「백범 김구 선생 묘비」·「사육신 묘비」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김충현 (金忠顯)
해방 이후 「윤봉길 열사 기의비」·「백범 김구 선생 묘비」·「사육신 묘비」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조선시대 종친 윤산군 이탁의 묘에서 출토된 묘지(墓誌).
윤산군 이탁 백자 음각 묘지 (輪山君 李濯 白磁 陰刻 墓誌)
조선시대 종친 윤산군 이탁의 묘에서 출토된 묘지(墓誌).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에 있는 조선시대 학자 한강 정구의 신도비.
한강 정구 신도비 (寒岡 鄭逑 神道碑)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에 있는 조선시대 학자 한강 정구의 신도비.
경상북도 상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사서 전식의 신도비.
상주 사서 전식 신도비 (尙州 沙西 全湜 神道碑)
경상북도 상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사서 전식의 신도비.
조선후기 양명학자·서예가 이광사가 두보의 시 18수를 다양한 서체로 필사하여 엮은 서첩.
이광사 필적 원교법첩 (李匡師 筆蹟 員嶠法帖)
조선후기 양명학자·서예가 이광사가 두보의 시 18수를 다양한 서체로 필사하여 엮은 서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