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유지복"
검색결과 총 41건
이광사 필 『서결』은 조선 후기, 서예가 이광사가 전대 서예의 이론적 체계를 참고하여 저술한 서예 이론서이다. 이광사가 유배 생활을 하던 1764년에 저술을 완성하였고, 2년 뒤 1766년에 직접 필사하여 큰 아들 이긍익에게 준 서첩이다. 왕희지의 서법와 전서, 예서로 된 여러 비갈의 글씨를 학습할 것을 역설하여 후대 서단에 고비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광사 필 서결 (李匡師 筆 書訣)
이광사 필 『서결』은 조선 후기, 서예가 이광사가 전대 서예의 이론적 체계를 참고하여 저술한 서예 이론서이다. 이광사가 유배 생활을 하던 1764년에 저술을 완성하였고, 2년 뒤 1766년에 직접 필사하여 큰 아들 이긍익에게 준 서첩이다. 왕희지의 서법와 전서, 예서로 된 여러 비갈의 글씨를 학습할 것을 역설하여 후대 서단에 고비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김정희 필 「대팽고회」는 김정희가 가족과의 단란한 일상의 소중함을 표현한 두 폭의 예서 대련이다. 김정희가 생애 마지막 해인 1856년에 쓴 대련이다. 김정희의 문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치욱에게 써 준 글씨로, 가족과 지내는 평범한 일상이 가장 이상적인 최고의 경지임을 표현한 작품이다.
김정희 필 대팽고회 (金正喜 筆 大烹高會)
김정희 필 「대팽고회」는 김정희가 가족과의 단란한 일상의 소중함을 표현한 두 폭의 예서 대련이다. 김정희가 생애 마지막 해인 1856년에 쓴 대련이다. 김정희의 문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치욱에게 써 준 글씨로, 가족과 지내는 평범한 일상이 가장 이상적인 최고의 경지임을 표현한 작품이다.
김정희 필 「차호호공」은 조선 후기, 김정희가 예서 필법으로 쓴 두 폭의 대련이다. 김정희가 동한시대 촉지방의 마애각석에 새겨진 예서의 필법으로 쓴 작품이다. 동인 이근수에게 써 준 글씨로 추정되며, 한예의 고졸함을 추구했던 김정희의 예술적 경향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김정희 필 차호호공 (金正喜 筆 且呼好共)
김정희 필 「차호호공」은 조선 후기, 김정희가 예서 필법으로 쓴 두 폭의 대련이다. 김정희가 동한시대 촉지방의 마애각석에 새겨진 예서의 필법으로 쓴 작품이다. 동인 이근수에게 써 준 글씨로 추정되며, 한예의 고졸함을 추구했던 김정희의 예술적 경향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김정희 필 「침계」는 조선 후기, 김정희가 윤정현의 호 ‘침계’를 가로로 길게 쓴 글씨이다. 해서와 예서를 혼합하여 쓴 글씨로, 금석학에 정통했던 김정희의 학자로서 면모를 살필 수 있다. 관지도 함께 써 놓아 윤정현에게 이 글씨를 써서 준 배경을 알 수 있다.
김정희 필 침계 (金正喜 筆 梣溪)
김정희 필 「침계」는 조선 후기, 김정희가 윤정현의 호 ‘침계’를 가로로 길게 쓴 글씨이다. 해서와 예서를 혼합하여 쓴 글씨로, 금석학에 정통했던 김정희의 학자로서 면모를 살필 수 있다. 관지도 함께 써 놓아 윤정현에게 이 글씨를 써서 준 배경을 알 수 있다.
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는 김정희가 이광사의 서예 이론서 『서결』의 내용을 반박한 행서 서첩이다. 이광사의 『서결』 중 모두 9가지 내용을 들어 비판했으며, 마지막에는 운필법과 당비의 선행 학습을 통해 왕희지 고법으로 들어갈 것을 제안하였다.
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 (金正喜 筆 書員嶠筆訣後)
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는 김정희가 이광사의 서예 이론서 『서결』의 내용을 반박한 행서 서첩이다. 이광사의 『서결』 중 모두 9가지 내용을 들어 비판했으며, 마지막에는 운필법과 당비의 선행 학습을 통해 왕희지 고법으로 들어갈 것을 제안하였다.
김정희 필 『난맹첩』은 조선 후기, 김정희의 묵란화 16점과 제발 글씨 6점을 모아 놓은 서화첩이다. 김정희의 전담 장황사 유명훈에게 주기 위해 제작하였다. 김정희 자신이 난법을 익혀온 연원과 요체를 서술하여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김정희 필 난맹첩 (金正喜 筆 蘭盟帖)
김정희 필 『난맹첩』은 조선 후기, 김정희의 묵란화 16점과 제발 글씨 6점을 모아 놓은 서화첩이다. 김정희의 전담 장황사 유명훈에게 주기 위해 제작하였다. 김정희 자신이 난법을 익혀온 연원과 요체를 서술하여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해동명적』은 16세기 전반(1515년경) 신공제가 간행한 법첩이다. 신공제(1469∼1536)가 신라 말에서 조선 초까지의 우리나라 명필의 글씨를 모아 목판에 새겨 간행했다. 이후 1530년에는 돌에 새겨 석판본으로도 간행되었는데 목판본과 동일하게 전·후집으로 편집되어 있다. 전집에는 문종부터 무명씨까지 17인의 필적이, 후집에는 최흥효부터 김희수까지 25인의 필적이 실려 있다. 석판본이 목판본과 다른 점은 후집에 박팽년과 김희수 2인의 필적이 추가로 첨각되었다는 것이다. 이 법첩은 서예사 연구 자료로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다.
해동명적 (海東名迹)
『해동명적』은 16세기 전반(1515년경) 신공제가 간행한 법첩이다. 신공제(1469∼1536)가 신라 말에서 조선 초까지의 우리나라 명필의 글씨를 모아 목판에 새겨 간행했다. 이후 1530년에는 돌에 새겨 석판본으로도 간행되었는데 목판본과 동일하게 전·후집으로 편집되어 있다. 전집에는 문종부터 무명씨까지 17인의 필적이, 후집에는 최흥효부터 김희수까지 25인의 필적이 실려 있다. 석판본이 목판본과 다른 점은 후집에 박팽년과 김희수 2인의 필적이 추가로 첨각되었다는 것이다. 이 법첩은 서예사 연구 자료로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다.
『동국명필』은 1664년(현종 5)에 이우가 간행한 법첩이다. 이우는 선조의 열두째 아들 인흥군의 아들이다. 이 서첩에는 신라의 최치원 등 4인, 고려의 승려 탄연·문공유 등 5인, 조선의 성수침·이황·한호 등 16인 등 모두 25인의 필적이 실려 있다. 서첩의 마지막에는 이우가 쓴 발문이 있다. 서체는 해서·행서·초서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전기까지의 서가의 글씨는 비문 및 불가의 법어를 쓴 것이 대부분이고, 조선 중기에 해당하는 글씨는 두보와 이백의 시가 대부분이다. 『동국명필』은 서예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동국명필 (東國名筆)
『동국명필』은 1664년(현종 5)에 이우가 간행한 법첩이다. 이우는 선조의 열두째 아들 인흥군의 아들이다. 이 서첩에는 신라의 최치원 등 4인, 고려의 승려 탄연·문공유 등 5인, 조선의 성수침·이황·한호 등 16인 등 모두 25인의 필적이 실려 있다. 서첩의 마지막에는 이우가 쓴 발문이 있다. 서체는 해서·행서·초서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전기까지의 서가의 글씨는 비문 및 불가의 법어를 쓴 것이 대부분이고, 조선 중기에 해당하는 글씨는 두보와 이백의 시가 대부분이다. 『동국명필』은 서예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근묵은 1943년 서예가 오세창이 우리나라 역대 명사들의 진적을 모아 엮은 서첩이다. 우리나라를 뜻하는 ‘근역’과 먹으로 쓴 글씨라는 뜻의 ‘묵적’이 결합된 말이다. 고려 말 정몽주부터 근대의 이도영까지 1136명의 글씨를 각 한 점씩 수록하였다. 『근묵』에 실린 서체는 행서와 초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 문장의 종류로 분류하면 서간과 시의 비중이 높다. 원본 34책을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영인본 2권과 원색 영인본 5권으로 출판하였다. 역대 명사들의 필적이 대거 실려 있어 우리나라 서예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근묵 (槿墨)
근묵은 1943년 서예가 오세창이 우리나라 역대 명사들의 진적을 모아 엮은 서첩이다. 우리나라를 뜻하는 ‘근역’과 먹으로 쓴 글씨라는 뜻의 ‘묵적’이 결합된 말이다. 고려 말 정몽주부터 근대의 이도영까지 1136명의 글씨를 각 한 점씩 수록하였다. 『근묵』에 실린 서체는 행서와 초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 문장의 종류로 분류하면 서간과 시의 비중이 높다. 원본 34책을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영인본 2권과 원색 영인본 5권으로 출판하였다. 역대 명사들의 필적이 대거 실려 있어 우리나라 서예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대한제국기 「승사인보」·「청유인보」 등을 제작한 서예가. 전각가.
김태석 (金台錫)
대한제국기 「승사인보」·「청유인보」 등을 제작한 서예가. 전각가.
신라부터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대 명서가의 필적을 목판에 새겨 간행한 서첩.
대동서법 (大東書法)
신라부터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대 명서가의 필적을 목판에 새겨 간행한 서첩.
조선시대 춘추관 편수관, 성천부사, 영흥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이지정 (李志定)
조선시대 춘추관 편수관, 성천부사, 영흥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최흥효는 조선 전기 예문관 직제학, 첨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서예가이다. 1370년경에 태어나 1452년 이후에 사망했다. 관직에서는 주로 국가의 대외 문서와 각종 필사 업무를 담당하였다. 최흥효는 고려 말·조선 초에 초서로 일가를 이룬 서예가이다. 15세기 후반 『소문쇄록』에서 안평대군의 행서와 함께 최흥효의 초서를 언급하고 있다. 최흥효의 초서는 정형화된 송설체에 비해 분방한 경향을 보인다. 그의 필적으로는 『근묵』에 초서로 쓴 「두목시 염석유 외」가 유일한 진적이다. 이 밖에 해서로 쓴 「최치운묘비」가 있다.
최흥효 (崔興孝)
최흥효는 조선 전기 예문관 직제학, 첨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서예가이다. 1370년경에 태어나 1452년 이후에 사망했다. 관직에서는 주로 국가의 대외 문서와 각종 필사 업무를 담당하였다. 최흥효는 고려 말·조선 초에 초서로 일가를 이룬 서예가이다. 15세기 후반 『소문쇄록』에서 안평대군의 행서와 함께 최흥효의 초서를 언급하고 있다. 최흥효의 초서는 정형화된 송설체에 비해 분방한 경향을 보인다. 그의 필적으로는 『근묵』에 초서로 쓴 「두목시 염석유 외」가 유일한 진적이다. 이 밖에 해서로 쓴 「최치운묘비」가 있다.
여주이씨 옥산 문중 소장 『해동명적』은 이전에 목판본으로 간행된 『해동명적』을 1530년에 돌에 새겨 석판본으로 다시 간행한 서첩이다. 『해동명적』은 신공제가 신라부터 조선 초까지의 우리나라 역대 명필의 글씨를 모아 1515년경 목판본으로 간행한 법첩이다. 옥산문중본 『해동명적』은 전·후집 중 전집을 2책으로 분권한 것으로, 후집은 없다. 1책 38면, 2책 44면 도합 82면으로 편집되어 있다. 옥산문중본 『해동명적』에 실린 필적은 시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대부분 개인 문집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초고 필적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여주이씨 옥산문중 유묵 - 해동명적 (驪州李氏 玉山門中 遺墨 - 海東名迹)
여주이씨 옥산 문중 소장 『해동명적』은 이전에 목판본으로 간행된 『해동명적』을 1530년에 돌에 새겨 석판본으로 다시 간행한 서첩이다. 『해동명적』은 신공제가 신라부터 조선 초까지의 우리나라 역대 명필의 글씨를 모아 1515년경 목판본으로 간행한 법첩이다. 옥산문중본 『해동명적』은 전·후집 중 전집을 2책으로 분권한 것으로, 후집은 없다. 1책 38면, 2책 44면 도합 82면으로 편집되어 있다. 옥산문중본 『해동명적』에 실린 필적은 시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대부분 개인 문집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초고 필적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조선전기 「초서가행」을 쓴 서예가.
황기로 (黃耆老)
조선전기 「초서가행」을 쓴 서예가.
인조 연간에 활동한 문신이자 서예가 이지정(1588∼1650)이 1647년에 쓴 서첩이다.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모두 20면으로 이루어진 절첩(折帖)으로, 이지정의 지기(知己) 이민구(李敏求, 1589∼1670)가 지은 칠언절구 8수와 오언절구 2수를 초서로 쓴 것이다. 아산 서호라는 문화적 공간을 배경으로 17세기를 대표할 만한 문장가 이민구와 명필 이지정의 유배의 시름과 파직의 고통이 시와 유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지정 초서의 유일한 기년작이자 만년의 필적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이지정 초서 취영구절 (李志定 草書 醉詠九絶)
인조 연간에 활동한 문신이자 서예가 이지정(1588∼1650)이 1647년에 쓴 서첩이다.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모두 20면으로 이루어진 절첩(折帖)으로, 이지정의 지기(知己) 이민구(李敏求, 1589∼1670)가 지은 칠언절구 8수와 오언절구 2수를 초서로 쓴 것이다. 아산 서호라는 문화적 공간을 배경으로 17세기를 대표할 만한 문장가 이민구와 명필 이지정의 유배의 시름과 파직의 고통이 시와 유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지정 초서의 유일한 기년작이자 만년의 필적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에 있는 고려전기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의 신도비.
춘천 장절공 신숭겸 신도비 (春川 壯節公 申崇謙 神道碑)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에 있는 고려전기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의 신도비.
조선시대 종친 윤산군 이탁의 묘에서 출토된 묘지(墓誌).
윤산군 이탁 백자 음각 묘지 (輪山君 李濯 白磁 陰刻 墓誌)
조선시대 종친 윤산군 이탁의 묘에서 출토된 묘지(墓誌).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에 있는 조선시대 학자 한강 정구의 신도비.
한강 정구 신도비 (寒岡 鄭逑 神道碑)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에 있는 조선시대 학자 한강 정구의 신도비.
경상북도 상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사서 전식의 신도비.
상주 사서 전식 신도비 (尙州 沙西 全湜 神道碑)
경상북도 상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사서 전식의 신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