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임중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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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의 수립과 운영에 참여하며 국무위원, 제15대 임시의정원 의장 등을 역임하였고, 해방 이후, 좌우합작위원회 대표로 활동하며 민족통일운동을 전개한 정치인·독립운동가.
김붕준 (金朋濬)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의 수립과 운영에 참여하며 국무위원, 제15대 임시의정원 의장 등을 역임하였고, 해방 이후, 좌우합작위원회 대표로 활동하며 민족통일운동을 전개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제5대 민의원, 통일사회당 공동대표 등을 역임한 정치인.
김성숙 (金成淑)
제5대 민의원, 통일사회당 공동대표 등을 역임한 정치인.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건국부녀동맹을 조직하여 반탁운동을 벌였고,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부회장, 대한부인회총본부 회장, 제2·4·5·6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박순천 (朴順天)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건국부녀동맹을 조직하여 반탁운동을 벌였고,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부회장, 대한부인회총본부 회장, 제2·4·5·6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해방 이후 대법원장, 제2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정치인.
김용무 (金用茂)
해방 이후 대법원장, 제2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정치인.
백범 김구가 1945년부터 1949년까지 사용했던 석조마감 건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에 위치한 개인 사저 겸 집무실.
서울 경교장 (서울 京橋莊)
백범 김구가 1945년부터 1949년까지 사용했던 석조마감 건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에 위치한 개인 사저 겸 집무실.
제4·5대 국회의원, 교통부장관, 인도대사, 세종대학교 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언론인·외교관.
박찬현 (朴瓚鉉)
제4·5대 국회의원, 교통부장관, 인도대사, 세종대학교 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언론인·외교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백선행기념관 재단법인을 설립한 사회사업가.
백선행 (白善行)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백선행기념관 재단법인을 설립한 사회사업가.
제6·7·8·10대 국회의원, 민추협 부의장, 교통부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
김창근 (金昌槿)
제6·7·8·10대 국회의원, 민추협 부의장, 교통부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
해방 이후 신민당 전당대회 의장, 민정당 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교육자. 정치인.
백남훈 (白南薰)
해방 이후 신민당 전당대회 의장, 민정당 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교육자.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며 역사학자인 백범 김구가 1929년 상해와 1942년 충칭에서 집필한 자서전.
백범일지 (白凡逸志)
독립운동가이며 역사학자인 백범 김구가 1929년 상해와 1942년 충칭에서 집필한 자서전.
해방 이후 5.30총선에서 제2대 국회에 진출한 학자. 정치인.
백상규 (白象圭)
해방 이후 5.30총선에서 제2대 국회에 진출한 학자. 정치인.
한국의 첫 신문학 박사로, 성균관대학교 학장과 조선대학교 문리학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사회학개론』 등을 저술한 사회철학자.
김현준 (金賢準)
한국의 첫 신문학 박사로, 성균관대학교 학장과 조선대학교 문리학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사회학개론』 등을 저술한 사회철학자.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김홍일 (金弘壹)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김구는 일제강점기 안명근사건, 안중근 하얼빈 의거, 모스크바3상회의 등과 관련된 독립운동가이다. 1876년(고종 13)에 태어나 1949년에 사망했다. 젊은 시절 항일 투쟁 중에 두 차례 투옥, 동학 입교, 출가, 기독교 입교 등 분주하게 살았다. 3·1운동 직후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경무국장·내무총장·국무령을 역임했고,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를 주도하고 항일무력투쟁을 전개했다. 임시정부 주석으로 재임하다 환국한 후 민족통일정부 수립에 전심하다가 1949년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김구 (金九)
김구는 일제강점기 안명근사건, 안중근 하얼빈 의거, 모스크바3상회의 등과 관련된 독립운동가이다. 1876년(고종 13)에 태어나 1949년에 사망했다. 젊은 시절 항일 투쟁 중에 두 차례 투옥, 동학 입교, 출가, 기독교 입교 등 분주하게 살았다. 3·1운동 직후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경무국장·내무총장·국무령을 역임했고,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를 주도하고 항일무력투쟁을 전개했다. 임시정부 주석으로 재임하다 환국한 후 민족통일정부 수립에 전심하다가 1949년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일제강점기 망부석, 억지 춘향전 등의 작품을 그린 만화가. 삽화가.
김규택 (金奎澤)
일제강점기 망부석, 억지 춘향전 등의 작품을 그린 만화가. 삽화가.
국회의원, 추풍회 대표 등을 역임한 정치인.
오재영 (吳在泳)
국회의원, 추풍회 대표 등을 역임한 정치인.
일제강점기 상해임시정부 경상도대의원, 부산애국부인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사회사업가.
양한나 (梁漢拿)
일제강점기 상해임시정부 경상도대의원, 부산애국부인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사회사업가.
송요찬은 해방 이후 수도사단장, 육군참모총장, 계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918년 충남 청양 출생으로 1946년 군사영어학교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1948년 10월부터 제주 4·3사건 진압에 관여하였고 6·25 전쟁에서도 많은 전공을 세웠다. 4·19혁명 당시 계업사령관으로서 군의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고 유혈사태를 방지해 4·19혁명을 성취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1961년 5·16군사정변 당시 즉각 지지성명을 발표하였으며, 이후 군사정부의 요청에 따라 요직을 역임하였다.
송요찬 (宋堯讚)
송요찬은 해방 이후 수도사단장, 육군참모총장, 계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918년 충남 청양 출생으로 1946년 군사영어학교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1948년 10월부터 제주 4·3사건 진압에 관여하였고 6·25 전쟁에서도 많은 전공을 세웠다. 4·19혁명 당시 계업사령관으로서 군의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고 유혈사태를 방지해 4·19혁명을 성취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1961년 5·16군사정변 당시 즉각 지지성명을 발표하였으며, 이후 군사정부의 요청에 따라 요직을 역임하였다.
일제강점기 『매일신보』 연재소설, 역사소설 『금삼의 피』 등을 그린 화가. 삽화가.
이승만 (李承萬)
일제강점기 『매일신보』 연재소설, 역사소설 『금삼의 피』 등을 그린 화가. 삽화가.
해방 이후 보건사회부장관, 노동청장 등을 역임한 관료. 의사, 정치인. 군인.
정희섭 (鄭熙燮)
해방 이후 보건사회부장관, 노동청장 등을 역임한 관료. 의사, 정치인. 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