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조경철"
검색결과 총 49건
법천사는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승달산에 있는, 고려 후기 원나라 승려 원명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당나라 때 서역의 금지국 승려 정명이 창건하고, 남송 때 승려 원명이 중창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관련 문화유산으로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인 법천사 목우암과 전라남도 민속문화유산인 법천사석장승이 있다.
법천사 (法泉寺)
법천사는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승달산에 있는, 고려 후기 원나라 승려 원명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당나라 때 서역의 금지국 승려 정명이 창건하고, 남송 때 승려 원명이 중창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관련 문화유산으로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인 법천사 목우암과 전라남도 민속문화유산인 법천사석장승이 있다.
북지장사는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팔공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한 지장 신앙 절이다. 원래 이름은 지장사였는데, 조선시대에 남지장사가 생기면서 북지장사로 불린 듯하다. 북지장사에는 통일신라 때 세워진 북지장사삼층석탑과 북지장사석조지장보살좌상이 있다. 이 밖에 문화유산으로 대구 북지장사 지장전과 대구 북지장사 아미타삼존불좌상이 경내에 있다.
북지장사 (北地藏寺)
북지장사는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팔공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한 지장 신앙 절이다. 원래 이름은 지장사였는데, 조선시대에 남지장사가 생기면서 북지장사로 불린 듯하다. 북지장사에는 통일신라 때 세워진 북지장사삼층석탑과 북지장사석조지장보살좌상이 있다. 이 밖에 문화유산으로 대구 북지장사 지장전과 대구 북지장사 아미타삼존불좌상이 경내에 있다.
수리사는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추정되는 절이다. 고려시대 수좌 관오가 주지로 있었다. 법상종 사찰로, 고려 무인 정권기인 1217년에 최충헌 제거 반란에 가담하였다. 최근 수리사 대웅전 뒤편에서 통일신라 때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불상이 발견되었다.
수리사 (修理寺)
수리사는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추정되는 절이다. 고려시대 수좌 관오가 주지로 있었다. 법상종 사찰로, 고려 무인 정권기인 1217년에 최충헌 제거 반란에 가담하였다. 최근 수리사 대웅전 뒤편에서 통일신라 때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불상이 발견되었다.
아도는 삼국시대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고구려의 승려이다. 모례의 집에 머물며 불교를 전파했다. 성국공주의 병을 고치기도 했으나, 나라 사람들이 그를 해치려고 하자 스스로 모례의 집에 무덤을 만들고 문을 닫고 죽었다고 한다. 신라에 불교를 전한 세 성인으로 아도, 법흥왕, 이차돈을 든다. 또한 흥륜사의 금당에는 흙으로 만든 10성의 진흙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그중 아도가 맨 처음 언급되어 있다.
아도 (阿道)
아도는 삼국시대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고구려의 승려이다. 모례의 집에 머물며 불교를 전파했다. 성국공주의 병을 고치기도 했으나, 나라 사람들이 그를 해치려고 하자 스스로 모례의 집에 무덤을 만들고 문을 닫고 죽었다고 한다. 신라에 불교를 전한 세 성인으로 아도, 법흥왕, 이차돈을 든다. 또한 흥륜사의 금당에는 흙으로 만든 10성의 진흙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그중 아도가 맨 처음 언급되어 있다.
응석사는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집현산에 있는, 고려 후기에 창건한 절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응석사가 집현산에 있고 하연의 할아버지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고 하였다. 응석사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 진주 하씨의 원찰이기도 하였다. 2010년 보물로 지정된 진주 응석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응석사 (凝石寺)
응석사는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집현산에 있는, 고려 후기에 창건한 절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응석사가 집현산에 있고 하연의 할아버지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고 하였다. 응석사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 진주 하씨의 원찰이기도 하였다. 2010년 보물로 지정된 진주 응석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정림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었던, 백제시대에 창건한 절이다. 백제 사비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본다. 백제 때의 절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고, 고려시대 기와에 ‘정림사’라는 글귀가 보여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 이전에는 속칭 평제탑으로 불렸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유명하다. 석탑 이전에 목탑이 있었는지는 논란 중이다. 1탑 1금당 양식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다. 고려시대까지 존속하다가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정림사 터 강당 자리에는 고려시대의 석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정림사 (定林寺)
정림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었던, 백제시대에 창건한 절이다. 백제 사비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본다. 백제 때의 절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고, 고려시대 기와에 ‘정림사’라는 글귀가 보여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 이전에는 속칭 평제탑으로 불렸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유명하다. 석탑 이전에 목탑이 있었는지는 논란 중이다. 1탑 1금당 양식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다. 고려시대까지 존속하다가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정림사 터 강당 자리에는 고려시대의 석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정혜사는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 칠갑산에 있는, 조선시대에 창건한 절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이지 않아 조선시대 중후기에 창건된 것 같다. 통일신라 때 진감혜소가 세웠다고 하나 근거가 없다. 정혜사 현판은 3·1운동 33인 중 1인인 오세창의 글씨이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인 ‘청양 정혜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인 ‘청양 정혜사 혜림암 목조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정혜사 (定慧寺)
정혜사는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 칠갑산에 있는, 조선시대에 창건한 절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이지 않아 조선시대 중후기에 창건된 것 같다. 통일신라 때 진감혜소가 세웠다고 하나 근거가 없다. 정혜사 현판은 3·1운동 33인 중 1인인 오세창의 글씨이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인 ‘청양 정혜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인 ‘청양 정혜사 혜림암 목조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현조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승려와 함께 인도에 다녀온 당나라 구법 승려이다. 『해동고승전』에는 현조가 통일신라의 승려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서는 당나라 승려라고 하였다. 신라 승려와 함께 두 차례 인도 구법 여행을 떠나서 신라 승려로 오해받았을 수도 있다.
현조 (玄照)
현조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승려와 함께 인도에 다녀온 당나라 구법 승려이다. 『해동고승전』에는 현조가 통일신라의 승려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서는 당나라 승려라고 하였다. 신라 승려와 함께 두 차례 인도 구법 여행을 떠나서 신라 승려로 오해받았을 수도 있다.
희랑대는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에 있는, 고려 전기 승려 희랑이 창건한 절이다. 해인사의 산내 암자이다. 후삼국 시기 왕건을 도왔던 희랑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금강산 보덕굴에 비유될 정도로 기묘한 지형과 뛰어난 풍치를 가지고 있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는다.
희랑대 (希朗臺)
희랑대는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에 있는, 고려 전기 승려 희랑이 창건한 절이다. 해인사의 산내 암자이다. 후삼국 시기 왕건을 도왔던 희랑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금강산 보덕굴에 비유될 정도로 기묘한 지형과 뛰어난 풍치를 가지고 있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는다.
약사전은 약사여래를 모시는 전각이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병을 고쳐 주는 부처님이며 보통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다. 또한 약사여래는 동방정유리세계의 부처님이다. 세 분의 부처가 나란히 서 있을 경우 동쪽의 부처님이 약사여래다.
약사전 (藥師殿)
약사전은 약사여래를 모시는 전각이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병을 고쳐 주는 부처님이며 보통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다. 또한 약사여래는 동방정유리세계의 부처님이다. 세 분의 부처가 나란히 서 있을 경우 동쪽의 부처님이 약사여래다.
신원사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보덕이 창건한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계룡산(鷄龍山)에 있는 사찰이다. 삼국시대 고구려 보덕이 창건한 사찰이라고 전하지만 믿기 어렵다. 다만 백제 때 기와가 출토되어 백제 때 지어진 사찰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산악신앙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 중악단이 있다. 국보 공주 신원사 괘불이 유명하다.
계룡산 신원사 (鷄龍山 新元寺)
신원사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보덕이 창건한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계룡산(鷄龍山)에 있는 사찰이다. 삼국시대 고구려 보덕이 창건한 사찰이라고 전하지만 믿기 어렵다. 다만 백제 때 기와가 출토되어 백제 때 지어진 사찰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산악신앙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 중악단이 있다. 국보 공주 신원사 괘불이 유명하다.
실상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홍척이 창건한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智異山) 천황봉(天皇峯)에 있는 사찰이다. 통일신라의 사찰로 신라 말 선종구산 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의 중심 사찰이다. 실상산문의 개창자는 홍척이고 2대조는 수철 3대조는 편운화상이다. 후백제 견훤의 관할 사찰이기도 했다. 상륜부가 남아 있는 쌍탑과 철제여래좌상이 유명하다.
지리산 실상사 (天皇峯 實相寺)
실상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홍척이 창건한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智異山) 천황봉(天皇峯)에 있는 사찰이다. 통일신라의 사찰로 신라 말 선종구산 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의 중심 사찰이다. 실상산문의 개창자는 홍척이고 2대조는 수철 3대조는 편운화상이다. 후백제 견훤의 관할 사찰이기도 했다. 상륜부가 남아 있는 쌍탑과 철제여래좌상이 유명하다.
불갑사는 백제 또는 통일신라 때 세워진 사찰이다. 불갑사가 384년 호승 마라난타가 세웠다는 설이 있지만 믿기 어렵다. 조선시대 기록에 신라 때 창건된 절로 나온다. 불갑사가 최초로 언급된 기록은 고려 말에 등장한다. 호승 마라난타 창건설은 믿을 수 없지만 백제에 인도불교적 전통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모악산 불갑사 (母岳山 佛甲寺)
불갑사는 백제 또는 통일신라 때 세워진 사찰이다. 불갑사가 384년 호승 마라난타가 세웠다는 설이 있지만 믿기 어렵다. 조선시대 기록에 신라 때 창건된 절로 나온다. 불갑사가 최초로 언급된 기록은 고려 말에 등장한다. 호승 마라난타 창건설은 믿을 수 없지만 백제에 인도불교적 전통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불회사는 백제 마라난타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고려시대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18세기 기록에 백제에 불교를 전한 호승(胡僧) 출신의 동진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창건한 절로 나오나 믿기 어렵다. 고려시대에 창건된 절로 추정되며, 처음에는 불호사(佛護寺)라 하였다가 나중에 불회사로 바뀌었다.
덕룡산 불회사 (德龍山 佛會寺)
불회사는 백제 마라난타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고려시대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18세기 기록에 백제에 불교를 전한 호승(胡僧) 출신의 동진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창건한 절로 나오나 믿기 어렵다. 고려시대에 창건된 절로 추정되며, 처음에는 불호사(佛護寺)라 하였다가 나중에 불회사로 바뀌었다.
비암사는 백제 말 통일신라 초 창건된 사찰이다. 백제 유민들이 조성한 불비상이 전한다. 계유(673)명아미타삼존불비상은 백제 유민 달솔 신차가 조성에 참여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에도 비암사(飛庵寺)가 등장한다.
운주산 비암사 (雲住山 碑巖寺)
비암사는 백제 말 통일신라 초 창건된 사찰이다. 백제 유민들이 조성한 불비상이 전한다. 계유(673)명아미타삼존불비상은 백제 유민 달솔 신차가 조성에 참여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에도 비암사(飛庵寺)가 등장한다.
사자암은 백제 때 세워진 사찰이다. 당시 이름은 사자사였으며, 용화산 중턱에 위치하였다. 사자사의 지명 법사는 백제의 서동을 도와 황금을 신라에 실어 보냈고, 나중에 무왕이 미륵사를 세울 때 연못을 메꿔주었다. 미륵사는 미륵하생, 용화사는 미륵상생 신앙과 관련이 있다.
미륵산 사자암 (彌勒山 獅子庵)
사자암은 백제 때 세워진 사찰이다. 당시 이름은 사자사였으며, 용화산 중턱에 위치하였다. 사자사의 지명 법사는 백제의 서동을 도와 황금을 신라에 실어 보냈고, 나중에 무왕이 미륵사를 세울 때 연못을 메꿔주었다. 미륵사는 미륵하생, 용화사는 미륵상생 신앙과 관련이 있다.
사천왕사는 명랑법사가 통일신라 문무왕 때 경주 낭산에 세운 사찰로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 문두루비법을 설한 절이다. 풀로 오방신상을 만들어 문두루비법을 설하자 바다를 건너오던 당나라 배들이 모두 침몰하였다. 통일신라 최초의 쌍탑가람이기도 하다.
낭산 사천왕사 (狼山 四天王寺)
사천왕사는 명랑법사가 통일신라 문무왕 때 경주 낭산에 세운 사찰로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 문두루비법을 설한 절이다. 풀로 오방신상을 만들어 문두루비법을 설하자 바다를 건너오던 당나라 배들이 모두 침몰하였다. 통일신라 최초의 쌍탑가람이기도 하다.
상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제24교구 본사(本寺)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末寺)이다. 고려시대에 창건된 절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반등산 상원사로 나온다. 현재 대웅전(大雄殿), 보광전, 산신각(山神閣) 등의 전각(殿閣)이 있다. 11층 청석탑으로 유명하다. 신라 진흥왕(眞興王)이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믿기 어렵다. 반등산은 지금 신선이 산다는 방장산으로 바뀌었다.
방장산 상원사 (方丈山 上院寺)
상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제24교구 본사(本寺)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末寺)이다. 고려시대에 창건된 절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반등산 상원사로 나온다. 현재 대웅전(大雄殿), 보광전, 산신각(山神閣) 등의 전각(殿閣)이 있다. 11층 청석탑으로 유명하다. 신라 진흥왕(眞興王)이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믿기 어렵다. 반등산은 지금 신선이 산다는 방장산으로 바뀌었다.
서고사는 후백제 견훤이 명덕에게 명하게 짓게 하였다고 하나 믿기 어렵다. 명덕은 7세기 후반,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의 여러 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 삼국시대의 명덕이 후백제 때 서고사를 지은 것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로 추정된다.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주를 중심으로 동고사(東固寺), 서고사, 남고사, 북구사가 있었다.
황방산 서고사 (黃尨山 西固寺)
서고사는 후백제 견훤이 명덕에게 명하게 짓게 하였다고 하나 믿기 어렵다. 명덕은 7세기 후반,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의 여러 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 삼국시대의 명덕이 후백제 때 서고사를 지은 것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로 추정된다.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주를 중심으로 동고사(東固寺), 서고사, 남고사, 북구사가 있었다.
선본사는 팔공산 관봉 아래 세워진 통일신라 때 사찰이다. 496년(소지왕 18)에 극달 화상이 세웠다고 전하나 신라의 불교 공인 연대인 528년보다 30여 년이 앞서기 때문에 믿기 어렵다. 선본사 삼층석탑, 갓바위 부처와 관련하여 통일신라 때 세워진 사찰로 추정된다. 갓바위 부처는 원광의 제자 의현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638년(선덕여왕 7)에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인조 때 수총대사가 중창하였다. 현재 대웅전, 극락보전, 산신각,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다. 문화유산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인 선본사 신중탱화가 있다.
팔공산 선본사 (八公山 禪本寺)
선본사는 팔공산 관봉 아래 세워진 통일신라 때 사찰이다. 496년(소지왕 18)에 극달 화상이 세웠다고 전하나 신라의 불교 공인 연대인 528년보다 30여 년이 앞서기 때문에 믿기 어렵다. 선본사 삼층석탑, 갓바위 부처와 관련하여 통일신라 때 세워진 사찰로 추정된다. 갓바위 부처는 원광의 제자 의현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638년(선덕여왕 7)에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인조 때 수총대사가 중창하였다. 현재 대웅전, 극락보전, 산신각,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다. 문화유산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인 선본사 신중탱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