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조경철"
검색결과 총 14건
남북국시대 때, 일본에 망명한 백제의 유민.
귀실집사 (鬼室集斯)
남북국시대 때, 일본에 망명한 백제의 유민.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역사용어.
배달 (倍達)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역사용어.
백제의 제12대(재위: 344년~346년) 왕.
계왕 (契王)
백제의 제12대(재위: 344년~346년) 왕.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터.
부여 군수리 사지 (扶餘 軍守里 寺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터.
분황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선덕여왕 당시 창건한 사찰이다. 왕분사(王芬寺)라고도 한다. ‘분황(芬皇)’은 ‘향기날 분’, ‘황제 황’자로 ‘향기나는 황제절’이란 뜻으로, 신라 최초로 여왕이 왕위에 올라선 것을 알리는 상징적인 절이다. 분황사는 창건 이후 최소 3차례 이상 가람배치가 변하였다. 창건 당시 가람은 석탑을 남쪽 중앙에 배치하고 그 북쪽에 남향의 삼금당을 ‘품(品)’자형으로 배치한 소위 ‘일탑삼금당식’ 가람배치였다. 1차~3차 중건으로 가람은 1동의 대형 금당을 배치한 ‘일탑일금당식’으로 바뀌었다.
경주 분황사 (慶州 芬皇寺)
분황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선덕여왕 당시 창건한 사찰이다. 왕분사(王芬寺)라고도 한다. ‘분황(芬皇)’은 ‘향기날 분’, ‘황제 황’자로 ‘향기나는 황제절’이란 뜻으로, 신라 최초로 여왕이 왕위에 올라선 것을 알리는 상징적인 절이다. 분황사는 창건 이후 최소 3차례 이상 가람배치가 변하였다. 창건 당시 가람은 석탑을 남쪽 중앙에 배치하고 그 북쪽에 남향의 삼금당을 ‘품(品)’자형으로 배치한 소위 ‘일탑삼금당식’ 가람배치였다. 1차~3차 중건으로 가람은 1동의 대형 금당을 배치한 ‘일탑일금당식’으로 바뀌었다.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터.
부여 왕흥사지 (扶餘 王興寺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터.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왕산사의 사찰터.
산청 왕산사지 (山淸 王山寺址)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왕산사의 사찰터.
인용사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인문을 위한 원찰로 창건한 사찰이다. 7세기 후반에 지어져 통일신라 때까지 존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16년 조선총독부 경주 지도에 인왕사지라는 표기로 처음 나타난다. 1931년 오사카 긴타로가 인용사지라 하였으나 근거가 분명하지 않아 2016년에 인왕동 사지로 이름을 바꾸었다. 사찰은 쌍탑일금당의 전형적인 통일신라 가람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십자형 건물지나 서회랑의 조영방위 등의 특징적인 점도 있다. 와적 기단을 볼 때, 백제가 멸망한 통일신라 이후에도 백제의 문화 교류가 지속되었음을 보여 준다.
경주 인용사 (慶州 仁容寺)
인용사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인문을 위한 원찰로 창건한 사찰이다. 7세기 후반에 지어져 통일신라 때까지 존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16년 조선총독부 경주 지도에 인왕사지라는 표기로 처음 나타난다. 1931년 오사카 긴타로가 인용사지라 하였으나 근거가 분명하지 않아 2016년에 인왕동 사지로 이름을 바꾸었다. 사찰은 쌍탑일금당의 전형적인 통일신라 가람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십자형 건물지나 서회랑의 조영방위 등의 특징적인 점도 있다. 와적 기단을 볼 때, 백제가 멸망한 통일신라 이후에도 백제의 문화 교류가 지속되었음을 보여 준다.
제왕연대력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학자 최치원이 저술한 연표적 성격의 역사서이다. 이 책은 남아 있지 않고 일부 내용이 『삼국사기』에 인용되어 있다. 신라의 연대기를 정리·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며,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 등 신라 고유의 왕호를 모두 왕이라 호칭했다고 한다. 신라 고유의 왕호들을 뭉뚱그려 왕이라 지칭한 것은 최치원이 중국적 가치관과 역사개념으로 신라의 역사를 해석한 결과로 보기도 한다. 고려시대 『삼국유사』 왕력과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에 영향을 주었다.
제왕연대력 (帝王年代曆)
제왕연대력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학자 최치원이 저술한 연표적 성격의 역사서이다. 이 책은 남아 있지 않고 일부 내용이 『삼국사기』에 인용되어 있다. 신라의 연대기를 정리·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며,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 등 신라 고유의 왕호를 모두 왕이라 호칭했다고 한다. 신라 고유의 왕호들을 뭉뚱그려 왕이라 지칭한 것은 최치원이 중국적 가치관과 역사개념으로 신라의 역사를 해석한 결과로 보기도 한다. 고려시대 『삼국유사』 왕력과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에 영향을 주었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금제 사리봉안기는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있는 삼국시대 미륵사 사리봉안 기록이다. 2009년 미륵사 서석탑 해체복원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가로 15.5㎝, 세로 10.5㎝이고 두께는 1.3㎝쯤 된다. 금판 앞면과 뒷면에 각 11행에, 한 줄에 9자씩, 앞면 99자, 뒷면 94자, 총 193자가 새겨져 있다. 미륵사 창건의 구체적 연대, 역사적 인물과 '폐하'와 '즉신' 등의 용례 등 백제사의 다양한 측면을 제공해 주고 있다. 특히 『삼국유사』의 내용과는 달리 미륵사 창건주체가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의 사택왕후로 기록되어 있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금제 사리봉안기 (益山 彌勒寺址 西塔 金製 舍利奉安記)
익산 미륵사지 서탑 금제 사리봉안기는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있는 삼국시대 미륵사 사리봉안 기록이다. 2009년 미륵사 서석탑 해체복원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가로 15.5㎝, 세로 10.5㎝이고 두께는 1.3㎝쯤 된다. 금판 앞면과 뒷면에 각 11행에, 한 줄에 9자씩, 앞면 99자, 뒷면 94자, 총 193자가 새겨져 있다. 미륵사 창건의 구체적 연대, 역사적 인물과 '폐하'와 '즉신' 등의 용례 등 백제사의 다양한 측면을 제공해 주고 있다. 특히 『삼국유사』의 내용과는 달리 미륵사 창건주체가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의 사택왕후로 기록되어 있다.
백제부흥군의 거점성.
지라성 (支羅城)
백제부흥군의 거점성.
삼국시대 백제 성.
각산성 (角山城)
삼국시대 백제 성.
삼국시대 백제 성.
고목성 (高木城)
삼국시대 백제 성.
삼국시대 백제 성.
마천성 (馬川城)
삼국시대 백제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