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차기진"
검색결과 총 31건
김대건은 1846년 병오박해 때 서울 새남터에서 처형된 신부로 한국인 최초의 사제이다. 1821년,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태어나 1836년, 중국 마카오에서 유학한 뒤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김가항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로부터 2주일 뒤인 8월 31일 상해를 출발하여 제주에 표착했다가 10월 12일 충청도 강경을 통해 귀국했으며, 11월부터 서울과 경기도 용인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846년 5월 프랑스 선교사들의 해상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해 황해도로 갔다가 체포된 후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았다.
김대건 (金大建)
김대건은 1846년 병오박해 때 서울 새남터에서 처형된 신부로 한국인 최초의 사제이다. 1821년,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태어나 1836년, 중국 마카오에서 유학한 뒤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김가항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로부터 2주일 뒤인 8월 31일 상해를 출발하여 제주에 표착했다가 10월 12일 충청도 강경을 통해 귀국했으며, 11월부터 서울과 경기도 용인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846년 5월 프랑스 선교사들의 해상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해 황해도로 갔다가 체포된 후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았다.
『벽위신편(闢衛新編)』은 고종 때 문신 윤종의가 척사(斥邪)와 해방(海防) 이론을 수록한 저술서이다. 1848년(헌종 14) 7권의 초고본을 완성하였으며, 이후 1880년대 초까지 계속 새로운 자료를 보완하여 7권 5책의 현행본을 완성하였으나 간행되지 않았다.
벽위신편 (闢衛新編)
『벽위신편(闢衛新編)』은 고종 때 문신 윤종의가 척사(斥邪)와 해방(海防) 이론을 수록한 저술서이다. 1848년(헌종 14) 7권의 초고본을 완성하였으며, 이후 1880년대 초까지 계속 새로운 자료를 보완하여 7권 5책의 현행본을 완성하였으나 간행되지 않았다.
병오박해는 1846년(헌종 12) 신부 김대건(金大建)의 체포를 계기로 일어난 천주교 박해의 옥사이다. 한국 천주교 4대 박해 중의 하나로, 1846년 6월 5일(음력 5월 12일) 김대건의 체포를 계기로 시작되어 9월 20일(음력 7월 30일)에 종결되었다. 이 박해로 신부(사제) 1명과 일반 신자 8명이 처형되었으며, 1984년에 모두 시성(諡聖)되었다.
병오박해 (丙午迫害)
병오박해는 1846년(헌종 12) 신부 김대건(金大建)의 체포를 계기로 일어난 천주교 박해의 옥사이다. 한국 천주교 4대 박해 중의 하나로, 1846년 6월 5일(음력 5월 12일) 김대건의 체포를 계기로 시작되어 9월 20일(음력 7월 30일)에 종결되었다. 이 박해로 신부(사제) 1명과 일반 신자 8명이 처형되었으며, 1984년에 모두 시성(諡聖)되었다.
서학은 17세기 이후 중국을 통해 조선에 들어온 서양의 학문 사상, 과학 기술, 천주교 신앙 등을 연구, 수용, 비판하던 사조를 폭넓게 지칭하는 용어이다. 처음에는 기호남인을 중심으로 서양의 과학, 철학, 종교, 지리 등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북학파는 특히 과학 기술에 주목하여 근대 지향적인 서기(西器) 수용론을 주장하면서도 천주교 교리만은 배척하였다. 전통 유학자들과 노론계 위정자들은 처음부터 서학을 배척하는 척사론(斥邪論)을 주장하여, 근대 지향적인 학문 조류가 점차 사라지고 척사 운동과 천주교 박해만이 남게 되었다.
서학 (西學)
서학은 17세기 이후 중국을 통해 조선에 들어온 서양의 학문 사상, 과학 기술, 천주교 신앙 등을 연구, 수용, 비판하던 사조를 폭넓게 지칭하는 용어이다. 처음에는 기호남인을 중심으로 서양의 과학, 철학, 종교, 지리 등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북학파는 특히 과학 기술에 주목하여 근대 지향적인 서기(西器) 수용론을 주장하면서도 천주교 교리만은 배척하였다. 전통 유학자들과 노론계 위정자들은 처음부터 서학을 배척하는 척사론(斥邪論)을 주장하여, 근대 지향적인 학문 조류가 점차 사라지고 척사 운동과 천주교 박해만이 남게 되었다.
재령성당(載寧聖堂)은 1899년,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 문창리(文昌里)에 있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895년에 설정된 재령 공소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1899년 4월 22일 재령성당으로 승격되었다. 1950년 10월 5일 7대 주임 양덕환 신부가 공산당원들에게 납치되어 피살되면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재령성당 (載寧聖堂)
재령성당(載寧聖堂)은 1899년,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 문창리(文昌里)에 있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895년에 설정된 재령 공소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1899년 4월 22일 재령성당으로 승격되었다. 1950년 10월 5일 7대 주임 양덕환 신부가 공산당원들에게 납치되어 피살되면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시복시성운동은 천주교에서 복자(福者)나 성인(聖人) 칭호를 부여하고, 공적인 공경을 바치도록 하는 선언을 얻기 위해 추진하는 일이다. 즉 시복과 시성은 천주교에서 성덕(聖德)이나 순교로 명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복자나 성인 칭호를 부여하고 명부에 올리는 것을 말한다. 복자품에 오른 사람들은 특정 교구나 지역, 수도회에서, 성인품에 오른 사람들은 전 세계 교회에서 공적인 공경을 바칠 수 있는데, 이를 선언하는 것을 시복식 · 시성식이라고 하며, 이러한 선언을 얻기 위해 추진하는 것을 시복시성운동이라고 한다.
시복시성운동 (諡福諡聖運動)
시복시성운동은 천주교에서 복자(福者)나 성인(聖人) 칭호를 부여하고, 공적인 공경을 바치도록 하는 선언을 얻기 위해 추진하는 일이다. 즉 시복과 시성은 천주교에서 성덕(聖德)이나 순교로 명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복자나 성인 칭호를 부여하고 명부에 올리는 것을 말한다. 복자품에 오른 사람들은 특정 교구나 지역, 수도회에서, 성인품에 오른 사람들은 전 세계 교회에서 공적인 공경을 바칠 수 있는데, 이를 선언하는 것을 시복식 · 시성식이라고 하며, 이러한 선언을 얻기 위해 추진하는 것을 시복시성운동이라고 한다.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면에 있던 천주교 덕원면속구(德源免屬區)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887년 5월 안변성당으로 설립되었다. 1896년 2월 내평(內坪)성당으로, 1930년 초 고산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40년 1월 12일 원산대목구에서 덕원면속구가 분리 설정되면서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 북한 공산 정권이 수립되면서 탄압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1949년 5월 11일에는 오트 신부와 수녀들이 체포되고, 성당과 교회 재산이 몰수되면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고산성당 (高山聖堂)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면에 있던 천주교 덕원면속구(德源免屬區)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887년 5월 안변성당으로 설립되었다. 1896년 2월 내평(內坪)성당으로, 1930년 초 고산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40년 1월 12일 원산대목구에서 덕원면속구가 분리 설정되면서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 북한 공산 정권이 수립되면서 탄압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1949년 5월 11일에는 오트 신부와 수녀들이 체포되고, 성당과 교회 재산이 몰수되면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중국 간도성 연길현 차조구(茶條溝)에 있던 천주교 연길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
대령동성당 (大嶺洞聖堂)
중국 간도성 연길현 차조구(茶條溝)에 있던 천주교 연길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
평안남도 평양시 대신리(大新里)에 있던 천주교 평양대목구 소속 침묵의 성당.
대신리성당 (大新里聖堂)
평안남도 평양시 대신리(大新里)에 있던 천주교 평양대목구 소속 침묵의 성당.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동부동(東部洞)에 있던 천주교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
강계성당 (江界聖堂)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동부동(東部洞)에 있던 천주교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
관후리성당은 평안남도 평양시 관후리 251번지에 있던 천주교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896년 평천리에서 평양성당으로 설립된 이후 1898년 관후리로 이전되었으며, 1934년 관후리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00년 고딕식 연와조 성당을 완공하였고, 기명학교와 성모여학교를 설립하였다. 1943년 평양대목구의 주교좌성당이 되었으나, 1944년 성당과 부속 건물들이 징발되었다. 1949년 주교와 보좌 신부가 공산당에게 피랍되면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역대 주임 신부 중 일부가 한국 천주교의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관후리성당 (館後里聖堂)
관후리성당은 평안남도 평양시 관후리 251번지에 있던 천주교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896년 평천리에서 평양성당으로 설립된 이후 1898년 관후리로 이전되었으며, 1934년 관후리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00년 고딕식 연와조 성당을 완공하였고, 기명학교와 성모여학교를 설립하였다. 1943년 평양대목구의 주교좌성당이 되었으나, 1944년 성당과 부속 건물들이 징발되었다. 1949년 주교와 보좌 신부가 공산당에게 피랍되면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역대 주임 신부 중 일부가 한국 천주교의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성당.
구산성당 (龜山聖堂)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성당.
돈화성당은 중국 길림성 돈화현(현 지린성 둔화시)에 있던 천주교 연길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926년 원산대목구 소속으로 설립되었으나, 1931년 만주사변 후 한동안 폐쇄되었다. 1936년 연길지목구 성당으로 재설립되었으며, 1937년 대목구로 승격되었다. 1942년 새로운 성당이 봉헌되었으나, 1945년 소련군의 진주로 사목 활동이 제한되었다. 1946년 성당이 다시 폐쇄되었고, 신부들은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948년 렌츠 신부가 잠시 선교활동을 재개했지만, 곧 교회 재산이 몰수되면서 성당은 다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돈화성당 (敦化本堂)
돈화성당은 중국 길림성 돈화현(현 지린성 둔화시)에 있던 천주교 연길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926년 원산대목구 소속으로 설립되었으나, 1931년 만주사변 후 한동안 폐쇄되었다. 1936년 연길지목구 성당으로 재설립되었으며, 1937년 대목구로 승격되었다. 1942년 새로운 성당이 봉헌되었으나, 1945년 소련군의 진주로 사목 활동이 제한되었다. 1946년 성당이 다시 폐쇄되었고, 신부들은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948년 렌츠 신부가 잠시 선교활동을 재개했지만, 곧 교회 재산이 몰수되면서 성당은 다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산정동성당은 전라남도 목포시 산정동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광주대교구 최초의 성당으로, 1897년 5월 8일 전라북도 김제의 수류성당에서 분리되어 목포성당으로 설립되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데예 신부가 초대 주임이다. 14대 주임 모란 신부 재임기인 1951년에 경동성당을 분리하면서 ‘산정동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98년 5월 23일 한국 천주교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을 완공하였다. 한국전쟁 때 순교한 13대 주임 쿠삭 신부와 당시의 보좌 오브라이언 신부가 한국 천주교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산정동성당 (山亭洞聖堂)
산정동성당은 전라남도 목포시 산정동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광주대교구 최초의 성당으로, 1897년 5월 8일 전라북도 김제의 수류성당에서 분리되어 목포성당으로 설립되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데예 신부가 초대 주임이다. 14대 주임 모란 신부 재임기인 1951년에 경동성당을 분리하면서 ‘산정동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98년 5월 23일 한국 천주교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을 완공하였다. 한국전쟁 때 순교한 13대 주임 쿠삭 신부와 당시의 보좌 오브라이언 신부가 한국 천주교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수류성당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성당이다. 1888년 파리외방전교회의 베르모렐 신부가 김제시 금구현에 배재성당을 설립하였다. 1895년 성당이 금구 배재에서 수류(현 금산면 화율리)로 이전되면서 수류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893년 조조 신부가 2대 주임이 되었으나 이듬해 7월 피살되었다. 1907년 한옥 목조 성당을 완공하였고, 한국전쟁 직후 성당이 전소되고 신자들이 피살되었다. 1960년 금산면으로 이전해 원평성당이 되었다가 1966년 수류로 복귀했다. 2009년 수류성당 설립 120주년 기념행사를 치렀다.
수류성당 (水流聖堂)
수류성당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성당이다. 1888년 파리외방전교회의 베르모렐 신부가 김제시 금구현에 배재성당을 설립하였다. 1895년 성당이 금구 배재에서 수류(현 금산면 화율리)로 이전되면서 수류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893년 조조 신부가 2대 주임이 되었으나 이듬해 7월 피살되었다. 1907년 한옥 목조 성당을 완공하였고, 한국전쟁 직후 성당이 전소되고 신자들이 피살되었다. 1960년 금산면으로 이전해 원평성당이 되었다가 1966년 수류로 복귀했다. 2009년 수류성당 설립 120주년 기념행사를 치렀다.
황해도 송림시 산서리(山西里)에 있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
송림성당 (松林聖堂)
황해도 송림시 산서리(山西里)에 있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
서울특별시 은평구 증산동에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성당.
수색성당 (水色聖堂)
서울특별시 은평구 증산동에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성당.
평안북도 신의주시 진사동(眞沙洞)에 있던 천주교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
신의주성당 (新義州聖堂)
평안북도 신의주시 진사동(眞沙洞)에 있던 천주교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
양양성당은 강원특별자치도 양양읍 성내리에 있는 천주교 춘천교구 소속 성당이다. 천주 신앙의 양양 지역 전파는 1866년 병인박해로 핍박받던 충청 지역 신자들이 이주하면서 비롯되었다. 1882년부터 약 20년간 9개 지역에 공소가 설정되었고, 1921년 양양성당을 설립 후 1940년 성내리로 이전하였다. 광복 이후 북한 공산 정권 수립으로 성당은 몰수되었고, 이광재 신부는 1950년 6월 24일 피랍 후 총살되었다. 한국전쟁 중에 소실되었으나, 1954년에 신축·완공하였다. 유재옥 신부와 이광재 신부는 한국 천주교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이 추진되고 있다.
양양성당 (襄陽聖堂)
양양성당은 강원특별자치도 양양읍 성내리에 있는 천주교 춘천교구 소속 성당이다. 천주 신앙의 양양 지역 전파는 1866년 병인박해로 핍박받던 충청 지역 신자들이 이주하면서 비롯되었다. 1882년부터 약 20년간 9개 지역에 공소가 설정되었고, 1921년 양양성당을 설립 후 1940년 성내리로 이전하였다. 광복 이후 북한 공산 정권 수립으로 성당은 몰수되었고, 이광재 신부는 1950년 6월 24일 피랍 후 총살되었다. 한국전쟁 중에 소실되었으나, 1954년에 신축·완공하였다. 유재옥 신부와 이광재 신부는 한국 천주교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이 추진되고 있다.
장충성당은 평양직할시 장충동에 있는 북한의 유일한 천주교 성당이다. 북한의 천주교 성당은 공산 정권 수립과 한국전쟁으로 모두 폐쇄되었다. 1980년대부터 남한 천주교회가 북한 선교에 관심을 가졌고, 그 결과 1988년 장충성당이 완공되어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듬해 남북 천주교 대표들이 평양 신자들과 장충성당에서 합동 미사를 봉헌하였고, 이후 남북한 천주교 신자들 간 교류가 이어졌다. 최근에는 노후화된 성당 재건축과 상주 사제 파견 문제 등이 논의되고 있다. 북한 천주교 신자들과 남한 천주교회는 물론 로마 가톨릭 교회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오고 있다.
장충성당 (長忠聖堂)
장충성당은 평양직할시 장충동에 있는 북한의 유일한 천주교 성당이다. 북한의 천주교 성당은 공산 정권 수립과 한국전쟁으로 모두 폐쇄되었다. 1980년대부터 남한 천주교회가 북한 선교에 관심을 가졌고, 그 결과 1988년 장충성당이 완공되어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듬해 남북 천주교 대표들이 평양 신자들과 장충성당에서 합동 미사를 봉헌하였고, 이후 남북한 천주교 신자들 간 교류가 이어졌다. 최근에는 노후화된 성당 재건축과 상주 사제 파견 문제 등이 논의되고 있다. 북한 천주교 신자들과 남한 천주교회는 물론 로마 가톨릭 교회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