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차기진"
검색결과 총 24건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최종철 신부가 설계하여 건립된 성당. 천주교성당.
공주 중동성당 (公州 中洞聖堂)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최종철 신부가 설계하여 건립된 성당. 천주교성당.
중국 북경에서 예수회 선교사 마이야가 주일과 축일의 복음성서를 한역(漢譯)하여 1740년에 간행한 천주교서. 한역서학서.
성경광익 (聖經廣益)
중국 북경에서 예수회 선교사 마이야가 주일과 축일의 복음성서를 한역(漢譯)하여 1740년에 간행한 천주교서. 한역서학서.
1705년에 간행한 교리서. 천주교교리서.
성교절요 (聖敎切要)
1705년에 간행한 교리서. 천주교교리서.
대구광역시 중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천주교 관련 건물.
성모당 (聖母堂)
대구광역시 중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천주교 관련 건물.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있는 천주교 관련 사적.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 (서울 楊花나루와 蠶頭峰 遺蹟)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있는 천주교 관련 사적.
천주교 원주교구 소속으로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신림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에 건립된 성당.
원주 용소막성당 (原州 龍召幕聖堂)
천주교 원주교구 소속으로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신림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에 건립된 성당.
해방 이후 주교회의인성회 총재주교, 한국천주교사회복지협의회 총재주교 등에 서임된 사제. 주교, 인권운동가.
지학순 (池學淳)
해방 이후 주교회의인성회 총재주교, 한국천주교사회복지협의회 총재주교 등에 서임된 사제. 주교, 인권운동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일제강점기 한·양 절충식으로 건립된 성당. 성공회성당.
청주 성공회성당 (淸州 聖公會聖堂)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일제강점기 한·양 절충식으로 건립된 성당. 성공회성당.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동부동(東部洞)에 있던 천주교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
강계성당 (江界聖堂)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동부동(東部洞)에 있던 천주교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
관후리성당은 평안남도 평양시 관후리 251번지에 있던 천주교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896년 평천리에서 평양성당으로 설립된 이후 1898년 관후리로 이전되었으며, 1934년 관후리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00년 고딕식 연와조 성당을 완공하였고, 기명학교와 성모여학교를 설립하였다. 1943년 평양대목구의 주교좌성당이 되었으나, 1944년 성당과 부속 건물들이 징발되었다. 1949년 주교와 보좌 신부가 공산당에게 피랍되면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역대 주임 신부 중 일부가 한국 천주교의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관후리성당 (館後里聖堂)
관후리성당은 평안남도 평양시 관후리 251번지에 있던 천주교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896년 평천리에서 평양성당으로 설립된 이후 1898년 관후리로 이전되었으며, 1934년 관후리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00년 고딕식 연와조 성당을 완공하였고, 기명학교와 성모여학교를 설립하였다. 1943년 평양대목구의 주교좌성당이 되었으나, 1944년 성당과 부속 건물들이 징발되었다. 1949년 주교와 보좌 신부가 공산당에게 피랍되면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역대 주임 신부 중 일부가 한국 천주교의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성당.
구산성당 (龜山聖堂)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성당.
돈화성당은 중국 길림성 돈화현(현 지린성 둔화시)에 있던 천주교 연길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926년 원산대목구 소속으로 설립되었으나, 1931년 만주사변 후 한동안 폐쇄되었다. 1936년 연길지목구 성당으로 재설립되었으며, 1937년 대목구로 승격되었다. 1942년 새로운 성당이 봉헌되었으나, 1945년 소련군의 진주로 사목 활동이 제한되었다. 1946년 성당이 다시 폐쇄되었고, 신부들은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948년 렌츠 신부가 잠시 선교활동을 재개했지만, 곧 교회 재산이 몰수되면서 성당은 다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돈화성당 (敦化本堂)
돈화성당은 중국 길림성 돈화현(현 지린성 둔화시)에 있던 천주교 연길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926년 원산대목구 소속으로 설립되었으나, 1931년 만주사변 후 한동안 폐쇄되었다. 1936년 연길지목구 성당으로 재설립되었으며, 1937년 대목구로 승격되었다. 1942년 새로운 성당이 봉헌되었으나, 1945년 소련군의 진주로 사목 활동이 제한되었다. 1946년 성당이 다시 폐쇄되었고, 신부들은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948년 렌츠 신부가 잠시 선교활동을 재개했지만, 곧 교회 재산이 몰수되면서 성당은 다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산정동성당은 전라남도 목포시 산정동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광주대교구 최초의 성당으로, 1897년 5월 8일 전라북도 김제의 수류성당에서 분리되어 목포성당으로 설립되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데예 신부가 초대 주임이다. 14대 주임 모란 신부 재임기인 1951년에 경동성당을 분리하면서 ‘산정동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98년 5월 23일 한국 천주교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을 완공하였다. 한국전쟁 때 순교한 13대 주임 쿠삭 신부와 당시의 보좌 오브라이언 신부가 한국 천주교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산정동성당 (山亭洞聖堂)
산정동성당은 전라남도 목포시 산정동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광주대교구 최초의 성당으로, 1897년 5월 8일 전라북도 김제의 수류성당에서 분리되어 목포성당으로 설립되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데예 신부가 초대 주임이다. 14대 주임 모란 신부 재임기인 1951년에 경동성당을 분리하면서 ‘산정동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98년 5월 23일 한국 천주교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을 완공하였다. 한국전쟁 때 순교한 13대 주임 쿠삭 신부와 당시의 보좌 오브라이언 신부가 한국 천주교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수류성당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성당이다. 1888년 파리외방전교회의 베르모렐 신부가 김제시 금구현에 배재성당을 설립하였다. 1895년 성당이 금구 배재에서 수류(현 금산면 화율리)로 이전되면서 수류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893년 조조 신부가 2대 주임이 되었으나 이듬해 7월 피살되었다. 1907년 한옥 목조 성당을 완공하였고, 한국전쟁 직후 성당이 전소되고 신자들이 피살되었다. 1960년 금산면으로 이전해 원평성당이 되었다가 1966년 수류로 복귀했다. 2009년 수류성당 설립 120주년 기념행사를 치렀다.
수류성당 (水流聖堂)
수류성당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성당이다. 1888년 파리외방전교회의 베르모렐 신부가 김제시 금구현에 배재성당을 설립하였다. 1895년 성당이 금구 배재에서 수류(현 금산면 화율리)로 이전되면서 수류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893년 조조 신부가 2대 주임이 되었으나 이듬해 7월 피살되었다. 1907년 한옥 목조 성당을 완공하였고, 한국전쟁 직후 성당이 전소되고 신자들이 피살되었다. 1960년 금산면으로 이전해 원평성당이 되었다가 1966년 수류로 복귀했다. 2009년 수류성당 설립 120주년 기념행사를 치렀다.
황해도 송림시 산서리(山西里)에 있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
송림성당 (松林聖堂)
황해도 송림시 산서리(山西里)에 있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
서울특별시 은평구 증산동에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성당.
수색성당 (水色聖堂)
서울특별시 은평구 증산동에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성당.
평안북도 신의주시 진사동(眞沙洞)에 있던 천주교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
신의주성당 (新義州聖堂)
평안북도 신의주시 진사동(眞沙洞)에 있던 천주교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
양양성당은 강원특별자치도 양양읍 성내리에 있는 천주교 춘천교구 소속 성당이다. 천주 신앙의 양양 지역 전파는 1866년 병인박해로 핍박받던 충청 지역 신자들이 이주하면서 비롯되었다. 1882년부터 약 20년간 9개 지역에 공소가 설정되었고, 1921년 양양성당을 설립 후 1940년 성내리로 이전하였다. 광복 이후 북한 공산 정권 수립으로 성당은 몰수되었고, 이광재 신부는 1950년 6월 24일 피랍 후 총살되었다. 한국전쟁 중에 소실되었으나, 1954년에 신축·완공하였다. 유재옥 신부와 이광재 신부는 한국 천주교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이 추진되고 있다.
양양성당 (襄陽聖堂)
양양성당은 강원특별자치도 양양읍 성내리에 있는 천주교 춘천교구 소속 성당이다. 천주 신앙의 양양 지역 전파는 1866년 병인박해로 핍박받던 충청 지역 신자들이 이주하면서 비롯되었다. 1882년부터 약 20년간 9개 지역에 공소가 설정되었고, 1921년 양양성당을 설립 후 1940년 성내리로 이전하였다. 광복 이후 북한 공산 정권 수립으로 성당은 몰수되었고, 이광재 신부는 1950년 6월 24일 피랍 후 총살되었다. 한국전쟁 중에 소실되었으나, 1954년에 신축·완공하였다. 유재옥 신부와 이광재 신부는 한국 천주교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이 추진되고 있다.
장충성당은 평양직할시 장충동에 있는 북한의 유일한 천주교 성당이다. 북한의 천주교 성당은 공산 정권 수립과 한국전쟁으로 모두 폐쇄되었다. 1980년대부터 남한 천주교회가 북한 선교에 관심을 가졌고, 그 결과 1988년 장충성당이 완공되어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듬해 남북 천주교 대표들이 평양 신자들과 장충성당에서 합동 미사를 봉헌하였고, 이후 남북한 천주교 신자들 간 교류가 이어졌다. 최근에는 노후화된 성당 재건축과 상주 사제 파견 문제 등이 논의되고 있다. 북한 천주교 신자들과 남한 천주교회는 물론 로마 가톨릭 교회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오고 있다.
장충성당 (長忠聖堂)
장충성당은 평양직할시 장충동에 있는 북한의 유일한 천주교 성당이다. 북한의 천주교 성당은 공산 정권 수립과 한국전쟁으로 모두 폐쇄되었다. 1980년대부터 남한 천주교회가 북한 선교에 관심을 가졌고, 그 결과 1988년 장충성당이 완공되어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듬해 남북 천주교 대표들이 평양 신자들과 장충성당에서 합동 미사를 봉헌하였고, 이후 남북한 천주교 신자들 간 교류가 이어졌다. 최근에는 노후화된 성당 재건축과 상주 사제 파견 문제 등이 논의되고 있다. 북한 천주교 신자들과 남한 천주교회는 물론 로마 가톨릭 교회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오고 있다.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면에 있던 천주교 덕원면속구(德源免屬區)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887년 5월 안변성당으로 설립되었다. 1896년 2월 내평(內坪)성당으로, 1930년 초 고산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40년 1월 12일 원산대목구에서 덕원면속구가 분리 설정되면서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 북한 공산 정권이 수립되면서 탄압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1949년 5월 11일에는 오트 신부와 수녀들이 체포되고, 성당과 교회 재산이 몰수되면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고산성당 (高山聖堂)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면에 있던 천주교 덕원면속구(德源免屬區)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887년 5월 안변성당으로 설립되었다. 1896년 2월 내평(內坪)성당으로, 1930년 초 고산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40년 1월 12일 원산대목구에서 덕원면속구가 분리 설정되면서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 북한 공산 정권이 수립되면서 탄압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1949년 5월 11일에는 오트 신부와 수녀들이 체포되고, 성당과 교회 재산이 몰수되면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