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황영삼"
검색결과 총 24건
고본질은 소련에서 고려인들이 농번기에 팀을 이루어 거주지를 떠나 농지를 임차하여 농사를 짓고 이익금을 가지고 거주지로 되돌아오는 영농방식이다. 토지를 의미하는 고본과 행동을 뜻하는 질을 합친 말이다. 거주 이전에 대한 제한 조치가 풀린 195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영농방식이다. 기본 운용 단위는 ‘브리가다’라고 불리는 40~50명에서 100명 정도의 소규모 공동체의 농업작업반이다. 고려인들은 고본질 영농 방식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되어 체제가 변화하면서 더 이상 의미를 갖기 어려웠다.
고본질 (股本질)
고본질은 소련에서 고려인들이 농번기에 팀을 이루어 거주지를 떠나 농지를 임차하여 농사를 짓고 이익금을 가지고 거주지로 되돌아오는 영농방식이다. 토지를 의미하는 고본과 행동을 뜻하는 질을 합친 말이다. 거주 이전에 대한 제한 조치가 풀린 195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영농방식이다. 기본 운용 단위는 ‘브리가다’라고 불리는 40~50명에서 100명 정도의 소규모 공동체의 농업작업반이다. 고려인들은 고본질 영농 방식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되어 체제가 변화하면서 더 이상 의미를 갖기 어려웠다.
1927년 5월에 소련의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 설립된 조선인 사범학교.
니콜스크-우수리스크 조선인사범학교 (Nikolsk-Ussurysk 朝鮮人師範學校)
1927년 5월에 소련의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 설립된 조선인 사범학교.
1931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설립된 고려인 사범대학.
원동고려사범대학 (遠東高麗師範大學)
1931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설립된 고려인 사범대학.
1918년에 소련의 페트로그라드에 설립된 고려인 노동자 단체.
고려인 동맹 (高麗人 同盟)
1918년에 소련의 페트로그라드에 설립된 고려인 노동자 단체.
19세기 말에 러시아 국적을 갖지 않은 채 극동 지역에 살았던 고려인.
여호 (餘戶)
19세기 말에 러시아 국적을 갖지 않은 채 극동 지역에 살았던 고려인.
19세기 말에 러시아 국적을 갖고서 극동 지역에 살았던 고려인.
원호 (元戶)
19세기 말에 러시아 국적을 갖고서 극동 지역에 살았던 고려인.
고려인 정착촌은 1990년대에 소련이 해체되면서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여 형성된 거주지이다.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며 다른 언어, 경제적 궁핍, 민족 차별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고려인들의 일부가 연해주 지역으로 재이주하였다. 이주 환경은 생각보다 나빠서 직장, 주택, 자녀 교육 등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특히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국의 여러 단체가 지원하는 재정에 의존하였다. 열악한 이주 상황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하는 고려인은 거의 없다.
고려인 정착촌 (高麗人 定着村)
고려인 정착촌은 1990년대에 소련이 해체되면서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여 형성된 거주지이다.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며 다른 언어, 경제적 궁핍, 민족 차별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고려인들의 일부가 연해주 지역으로 재이주하였다. 이주 환경은 생각보다 나빠서 직장, 주택, 자녀 교육 등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특히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국의 여러 단체가 지원하는 재정에 의존하였다. 열악한 이주 상황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하는 고려인은 거의 없다.
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 국가에 주로 거주하면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 동포. 고려사람.
고려인 (高麗人)
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 국가에 주로 거주하면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 동포. 고려사람.
1937년 소련의 극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 약 172,000명이 스탈린의 명령으로 인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적으로 이주된 사건. 한인강제이주.
고려인 강제이주 (高麗人 强制移住)
1937년 소련의 극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 약 172,000명이 스탈린의 명령으로 인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적으로 이주된 사건. 한인강제이주.
소련에서 카자흐공화국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였고, 이르쿠츠크 국립사범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등을 역임하며 소련 최고의 한국학 전문가로 인정받은 {고려인 역사학자}.
박 보리스 드미트리예비치 (朴 Борис Дмитриевич)
소련에서 카자흐공화국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였고, 이르쿠츠크 국립사범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등을 역임하며 소련 최고의 한국학 전문가로 인정받은 {고려인 역사학자}.
빅토르 최는 해방 이후 소련에서 서방의 록 음악을 소개하여 유행시켰던 고려인 가수이다. 아버지는 고려인이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인이다. 1982년에 첫 앨범 「45」를 발표하였다. 1984년에 레닌그라드 록 축제에 참가해 수상하였다. 1987년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의 실행으로 개혁·개방 분위기가 전개되자 소련에 서방의 록 음악을 소개하였다. 이때 발표한 앨범 「혈액형」은 아프가니스탄 분쟁에 관여한 소련 사회에 반전 메시지를 전해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빅토르 최는 변화를 바라는 소련의 젊은이들에게 록 음악을 통해서 희망을 전하였다.
빅토르 최 (Viktor 崔)
빅토르 최는 해방 이후 소련에서 서방의 록 음악을 소개하여 유행시켰던 고려인 가수이다. 아버지는 고려인이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인이다. 1982년에 첫 앨범 「45」를 발표하였다. 1984년에 레닌그라드 록 축제에 참가해 수상하였다. 1987년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의 실행으로 개혁·개방 분위기가 전개되자 소련에 서방의 록 음악을 소개하였다. 이때 발표한 앨범 「혈액형」은 아프가니스탄 분쟁에 관여한 소련 사회에 반전 메시지를 전해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빅토르 최는 변화를 바라는 소련의 젊은이들에게 록 음악을 통해서 희망을 전하였다.
우크라이나 고려인협회 주관으로 매년 9월~10월 중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서 개최되는 한민족문화축제. 해외한인축제.
까레야다 (Koreyada)
우크라이나 고려인협회 주관으로 매년 9월~10월 중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서 개최되는 한민족문화축제. 해외한인축제.
벨라루스 거주 고려인들이 만든 단체.
벨라루스 고려인협회 (Belarus 高麗人協會)
벨라루스 거주 고려인들이 만든 단체.
북극성 콜호즈는 소련의 우즈베크공화국에 있었던 고려인 집단농장이다. 소련은 1928년에 농촌사회를 국영농장인 솝호즈와 집단농장인 콜호즈 체제로 재조직하였다. 북극성 콜호즈는 소련 전국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집단농장이다. 1929년에 연해주 지역에 설립되었다가 1937년에 우즈베크공화국의 타슈켄트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이주 초기에는 어려웠으나 김병화를 지도자로 영입한 후 다민족 공동체로 발전하였다. 1974년에 김병화가 세상을 떠나자 ‘김병화 콜호즈’라고 불렸다. 북극성 콜호즈는 고려인들의 근면함과 민족적 우수성을 소련에 널리 알린 대표적인 고려인 콜호즈이다.
북극성 콜호즈 (北極星 kolkhoz)
북극성 콜호즈는 소련의 우즈베크공화국에 있었던 고려인 집단농장이다. 소련은 1928년에 농촌사회를 국영농장인 솝호즈와 집단농장인 콜호즈 체제로 재조직하였다. 북극성 콜호즈는 소련 전국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집단농장이다. 1929년에 연해주 지역에 설립되었다가 1937년에 우즈베크공화국의 타슈켄트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이주 초기에는 어려웠으나 김병화를 지도자로 영입한 후 다민족 공동체로 발전하였다. 1974년에 김병화가 세상을 떠나자 ‘김병화 콜호즈’라고 불렸다. 북극성 콜호즈는 고려인들의 근면함과 민족적 우수성을 소련에 널리 알린 대표적인 고려인 콜호즈이다.
우쿠라이나 고려인협회는 1991년 우크라이나 고려인이 설립한 단체이다. 고려인이 우크라이나 공화국 안에 거주한 것은 1922년부터였다.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선언하자, 우쿠라이나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이 민족의 동질성을 확립하고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고자 이 단체를 설립하였다. 초기에는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했지만 1995년부터 고려인 문화축제인 '까레야다'를 개최하고 점차 조직적으로 활동하였다. 2006년에는 우크라이나 안의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들의 국적 회복 사업을 돕기도 하였다. 협회는 민족문화의 보존과 부흥, 한국어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고려인협회 (Ukraine 高麗人協會)
우쿠라이나 고려인협회는 1991년 우크라이나 고려인이 설립한 단체이다. 고려인이 우크라이나 공화국 안에 거주한 것은 1922년부터였다.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선언하자, 우쿠라이나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이 민족의 동질성을 확립하고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고자 이 단체를 설립하였다. 초기에는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했지만 1995년부터 고려인 문화축제인 '까레야다'를 개최하고 점차 조직적으로 활동하였다. 2006년에는 우크라이나 안의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들의 국적 회복 사업을 돕기도 하였다. 협회는 민족문화의 보존과 부흥, 한국어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1999년에 러시아 고려인들이 만든 단체.
전 러시아 고려인연합회 (全 Russia 高麗人聯合會)
1999년에 러시아 고려인들이 만든 단체.
1930~1940년대에 작성된 러시아 고려인 강제이주 관련 문서를 엮어 1992년과 1997년에 간행한 자료집. 해외한인문헌.
고려인강제이주백서 (高麗人强制移住白書)
1930~1940년대에 작성된 러시아 고려인 강제이주 관련 문서를 엮어 1992년과 1997년에 간행한 자료집. 해외한인문헌.
1999년에, 러시아 고려인 연합회에서 고려인들의 정보 교류를 위하여 창간한 해외 한인 신문.
재러한인 (在露韓人)
1999년에, 러시아 고려인 연합회에서 고려인들의 정보 교류를 위하여 창간한 해외 한인 신문.
1869년 12월에 함경도 경흥에서 러시아 이주 조선인 문제를 논의하였던 협상.
경흥협상 (慶興協商)
1869년 12월에 함경도 경흥에서 러시아 이주 조선인 문제를 논의하였던 협상.
고려인 노동영웅은 구소련에서 1938년부터 1991년까지 사회주의 노동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은 고려인이다. 1938년 소련 최고회의에서는 '사회주의 노동영웅'의 칭호를 제정하였다. 국력을 신장시킨 경우, 경제나 과학, 문화 발전에 기여한 경우, 개인의 생산성이 월등히 향상한 경우 등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을 때 훈장을 주었다. 고려인은 농업이나 축산 분야에서 공적을 인정받은 경우가 많았다. 209명의 고려인이 칭호를 받았는데, 이중 북극성 콜호즈의 회장이었던 김병화는 2번을 받았다. 사회주의 노동영웅으로 불린 고려인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명예와 영광을 얻었다.
고려인 노동영웅 (高麗人 勞動英雄)
고려인 노동영웅은 구소련에서 1938년부터 1991년까지 사회주의 노동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은 고려인이다. 1938년 소련 최고회의에서는 '사회주의 노동영웅'의 칭호를 제정하였다. 국력을 신장시킨 경우, 경제나 과학, 문화 발전에 기여한 경우, 개인의 생산성이 월등히 향상한 경우 등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을 때 훈장을 주었다. 고려인은 농업이나 축산 분야에서 공적을 인정받은 경우가 많았다. 209명의 고려인이 칭호를 받았는데, 이중 북극성 콜호즈의 회장이었던 김병화는 2번을 받았다. 사회주의 노동영웅으로 불린 고려인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명예와 영광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