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위치한다. 1985년 9월 20일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의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오리(梧里)이다. 그는 선조,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쳐 다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다. 특히 임진왜란 때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웠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전쟁 복구와 민생안정을 위해 대동법 시행을 건의하였다. 오랫동안 고위직에 올랐음에도 청빈하게 살아 청백리에 선정되었다.
묘역 규모는 404㎡이다. 봉분은 쌍분(雙墳)이며, 부인 영일정씨(迎日鄭氏)와의 합장묘이다. 쌍분의 중앙 앞에는 대리석으로 된 묘비와 상석(床石)·향로석(香爐石)이 있다. 상석의 전방에는 장명등(長明燈)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이 1쌍씩 배열되었다.
묘비의 규모는 높이 190㎝, 너비 67㎝, 두께 17㎝이며, 앞면에는 ‘증시문충권정량효절협책호성공신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겸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세자사완평부원군이공지묘(贈諡文忠勸貞亮效節協策扈聖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完平府院君李公之墓)’라는 명문이 있다. 뒷면 끝 부분에는 그의 4세손 이존도(李存道)가 안진경(顔眞卿)의 글씨체를 집자(集字)하여 1734년(영조 10)에 건립하였다는 것을 밝혔다.
신도비는 묘역의 아래 길가에 위치하며, 이수(螭首)·비신(碑身)·기대(基臺)로 구성되었다. 이수에는 두 마리의 이무기가 여의주를 다투는 형상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고, 기대에는 안상문(眼象紋)과 연꽃잎 모양이 장식되었다.
신도비는 총높이 335㎝, 높이 185㎝, 폭 90㎝, 두께 28㎝이다. 이준(李埈)이 글을 짓고 손자사위인 미수(眉叟) 허목(許穆)이 글씨를 썼는데, 비문은 마모가 심하여 판독이 어려운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