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공 ()

고려시대사
인물
조선 초, 개국 3등 공신에 책록된 공신.
이칭
손보(遜甫)
시호
양도(良度)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347년(충목왕 3)
사망 연도
1421년(세종 3)
본관
순흥(順興)
주요 관직
도승지|대사헌
관련 사건
조선 건국
내용 요약

안경공은 조선 초 개국 3등 공신에 책록된 공신이다. 고려 말 공민왕 때 과거에 합격하여 경상도 안렴사, 전법판서 등을 지냈으며, 조선왕조 건국에 협력하여 도승지, 대사헌 등의 중요한 직책을 역임하였다. 태조 때에는 제1차 왕자의 난(1398)에서 주살 당한 정도전의 죄를 감면할 것을 요청했다가 대간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정의
조선 초, 개국 3등 공신에 책록된 공신.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순흥(順興), 자(字)는 손보(遜甫)이다. 할아버지는 충목왕(忠穆王)찬성사(贊成事)를 지낸 안축(安軸)이고, 아버지는 조선 건국에 참여해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에 오른 안종원(安宗源)이며, 어머니는 우상시(右常侍) 김휘남(金輝南)의 딸이다. 오천정씨(烏川鄭氏) 정사도(鄭思道)의 딸인 의정택주(懿靜宅主)와 혼인하여 안순(安純)을 비롯한 자녀를 낳았다. 안순은 세종의정부 찬성사 · 주1 등의 관직을 지냈다. 이색(李穡) 문하의 인물로 이름이 올라 있다.

주요 활동

1365년(공민왕 14) 국자감시(國子監試)에 합격하고 산원(散員) · 낭장(郎將)주2을 거친 뒤 1376년(우왕 2) 의영고 부사(義盈庫副使)로서 지공거(知貢擧) 홍중선(洪仲宣)동지공거(同知貢擧) 한수(韓脩)가 주관한 과거 시험에 정총(鄭摠) · 양수생(楊首生) · 성석용(成石瑢) · 류백순(柳佰淳) · 강회백(姜淮伯) · 이종학(李種學) 등과 함께 선발되었다. 이후 전리좌랑(典理佐郎) · 전법좌랑(典法佐郎) · 사헌지평(司憲持平) · 예의정랑(禮儀正郎)을 역임했다. 1382년(우왕 8)에는 경상도 안렴사(按廉使)로 있으면서, 합주(陜州: 현 경상남도 합천)에서 사노(私奴)들이 검대장군(劍大將軍) · 초군장군(抄軍將軍) · 산군장군(散軍將軍) 등을 칭하며 일으킨 난을 진압하였다.

삼사좌사(三司左使) ·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 · 진현관 제학 ·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지제교(知制敎) · 예의판서(禮儀判書)를 거쳐 전법 판서(典法判書)가 되었고, 1390년(공양왕 2) 정몽주(鄭夢周)윤이(尹彛) · 이초(李初)의 옥사(獄事)에 연루된 사람들을 두둔했다고 해 탄핵했다가 오히려 자신이 좌천되었다.

이듬해에 예문관(藝文館) 제학(提學)이 되고, 1392년(공양왕 4) 좌부대언(左副代言)을 거쳐 좌대언(左代言)에 올랐다. 그 해에 이성계(李成桂)가 왕위에 오르는 조선 건국에 참여하여 중추원(中樞院) 도승지(都承旨)가 되고 개국공신이 책봉될 때 3등 공신이 되었다. 1393년(태조 2)에는 사헌부(司憲府) 대사헌(大司憲)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 보문각(寶文閣) 학사(學士)에 올랐고, 같은 해에 전라도관찰출척사(全羅道觀察黜陟使)로 나아갔으며 이듬해에 흥녕군(興寧君)으로 봉해졌다.

1406년(태종 6)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에 임명되었다가 곧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로 옮겼으며, 1410년(태종 10)에는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가 되었다. 그 이듬해 정탁(鄭擢) · 유창(劉敞) · 조견(趙狷) · 한상경(韓尙敬) · 조온(趙溫) 등의 개국공신들과 더불어 1398년(태조 7)의 ‘왕자의 난’ 때 주살된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의 죄를 감해 주도록 요청했다가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았다. 1416년(태종 16)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집현전(集賢殿) 대제학(大提學)에 특별 임명되고 흥녕부원군(興寧府院君)으로 주3되었다. 고려, 조선조의 전환기에 신왕조 개창에 부응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순흥안씨 양도공파 묘역(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양도(良度)이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태조실록(太祖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동문선(東文選)』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목은시고(牧隱詩稿)』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단행본

박용운, 『고려시대 음서제와 과거제연구』(일지사, 1990)

논문

박천식, 「조선 개국공신에 대한 일고찰: 책봉과정과 대우를 중심으로」(『전북사학』 1, 전북대학교 사학회, 1977)
유주희, 「왕자난을 전후한 조선 개국공신의 정치적 동향」(『조선시대사학보』 11, 조선시대사학회, 1999)
주석
주1

고려 시대에 둔, 중추원의 으뜸 벼슬. 종이품 벼슬로 현종 1년(1095)에 판추밀원사, 충렬왕 1년(1275)에 판밀직사사로 고쳤다. 우리말샘

주2

고려 시대에, 사헌부(司憲府)에 속한 종육품 벼슬. 우리말샘

주3

제후(諸侯)로 봉하고 관작(官爵)을 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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