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속색 ()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 후기, 병조에 속한 하부 관서 가운데 하나.
제도/관청
설치 시기
조선 후기
폐지 시기
1895년(고종 32)
상급 기관
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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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결속색은 조선 후기, 병조에 속한 하부 관서 가운데 하나이다. 기본적으로 국왕이 행사에 참석하거나 거둥하였을 때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사람을 단속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병조의 업무와 조직이 개편되면서 금훤 이외의 신전(信箭) 등의 관리, 거둥할 때 수행하는 군병의 징발 등을 맡기도 하였다.

정의
조선 후기, 병조에 속한 하부 관서 가운데 하나.
결속색의 성립 및 변천

설치 목적

본래 왕과 왕비가 행차할 때 질서를 유지하거나 허락 없이 난입하는 것 등을 차단하는 금훤(禁喧)을 담당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초기에는 거둥이 있을 때 병조가 임시로 결속색리(結束色吏)를 차출하여 행렬을 점검하고 주변을 단속하였다. 후기에 들어와 임금의 행차가 늘어나고 행사 참여가 빈번해지면서 체계적인 호위가 필요해지자 병조에 금훤을 전담할 수 있는 하부 관서를 만들어 대처하게 하였다.

결속색의 제도화와 변천 사항

영조 · 정조 때 병조의 하부 관서로서 『대전통편』에 정식으로 법제화되었다. 그 뒤 병조의 업무와 기구의 개편이 이루어졌는데, 『만기요람』에 따르면 금훤 이외에 군정(軍政) 분야의 여러 가지 일들을 맡게 되었다. 임금의 군령을 전달하는 증표로 사용되는 화살 등을 관리하고, 심지어 백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데 활용된 신문고 등도 관장하였다.

『육전조례』에 이르면 담당 직무가 더욱 확대된다. 조선 전기 병조에 딸린 하급 관청 가운데 하나였던 승여사(乘輿司)『대전통편』에서 마색(馬色)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일부 업무를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노부(鹵簿) 등이 그것인데, 『만기요람』 간행 전부터 이미 맡고 있었는데도 군정 분야로 국한하였기 때문에 실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고종실록』에 의하면 갑오개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1895년(고종 32)에 궁내대신서리(宮內大臣署理)였던 김종한(金宗漢)의 건의로 관련 사무가 신설된 시종원(侍從院)으로 이관되면서 혁파된 것으로 보인다.

기능과 역할

기본적인 역할은 금훤이다. 그 외에 『만기요람』에는 신전(信箭), 표신(標信), 부험(符驗), 신부(信符) 등의 부신(符信) 관리, 거둥할 때 수행하는 군병 등의 징발(徵發), 궁궐내의 순찰, 능마아강(能麽兒講)의 실시, 문신 당하관의 활쏘기 시험, 별운검(別雲劍)의 의망(擬望), 신문고 등을 담당하였다고 기록되었다. 『육전조례』에는 노부, 전루(傳漏) 등이 추가되었다.

의의 및 평가

조선 후기 병조의 하부 관서 및 업무 체계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고종실록(高宗實錄)』
『대전통편(大典通編)』
『만기요람(萬機要覽)』
『육전조례(六典條例)』

단행본

이왕무, 『조선후기 국왕의 능행 연구』(민속원, 2016)

논문

김지영, 「조선후기 국왕 행차에 대한 연구」(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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