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부 ()

효행록
효행록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우정언, 시강학사, 삼중대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제만(齊滿)
국재(菊齋)
이칭
권영(權永)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262년(원종 3)
사망 연도
1346년(충목왕 2)
본관
안동
주요 관직
박사|우정언|시강학사|삼중대광
정의
고려 후기에, 우정언, 시강학사, 삼중대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권영(權永), 자는 제만(齊滿), 호는 국재(菊齋).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 권단(權㫜)이며, 어머니는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노연(盧演)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세에 진사가 되고 1279년(충렬왕 5) 18세로 급제, 이듬해 전시(殿試)를 거쳐 첨사부녹사(詹事府錄事)에 보임되었다. 국자학유(國子學諭)를 거쳐, 박사(博士)에 올랐다가 우정언(右正言)에 이르렀으며 여러 번 옮겨 첨의사인(僉議舍人)이 되었다.

1298년 1월 충선왕이 즉위해 사림원(詞林院)을 설치, 개혁을 시도할 때 시강학사(侍講學士)가 되었는데, 박전지(朴全之) · 오한경(吳漢卿) · 이진(李瑱)과 함께 4학사의 일원으로 왕의 자문에 응하였다. 이 해 8월, 왕이 원나라에 소환되고 충렬왕이 복위하자 조간(趙簡) · 김태현(金台鉉) · 김우(金祐)와 함께 전선(銓選)을 맡기도 하였다.

여러 번 옮겨 우부승지 판예빈시사(右副承旨判禮賓寺事)에 오르고 밀직사사(密直司使)를 거쳐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에 올랐다. 밀직사사로 있으면서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왔다. 또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예부시를 주관하기도 하였다.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를 거쳤다.

1308년 충선왕이 복위하자 찬성사에 올랐다. 이어 정승이 되었으며 판총부사(判摠部事)를 겸해, 왕명에 따라 무선(武選)을 전주(銓注)하였다. 그 뒤 수문전대제학 영도첨의사사사(修文殿大提學領都僉議使司事)가 더해지고 부원군이 진봉되었으며 추성익조동덕보리공신호(推誠翊祚同德輔理功臣號)가 더해졌다. 1313년 영가군(永嘉君)이 되었다.

충숙왕 이후 미묘하였던 대원관계에서 국로(國老)의 자격으로 여러 차례 어려운 정국을 해결하였다. 충렬 · 충선 · 충숙 · 충혜 · 충목의 다섯 왕을 섬기면서 벼슬은 8품의 승사랑(承事郎)에서 시작해 정1품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이르렀고, 85세를 누렸으니 당대의 부귀로 견줄 자가 없었다.

아들은 권준(權準) · 권종정(權宗頂) · 권고(權皐) · 권후(權煦) · 권겸(權謙)이고, 사위는 안유충(安惟忠) · 이제현 · 순정대군(順正大君) 왕도(王璹) · 회안대군(淮安大君) 왕순(王珣)인데 모두 봉군되어 9봉군 집안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전형(銓衡)을 맡으면서 가산을 늘렸다는 비난도 받았다.

학술분야에도 많은 업적을 남겨 역사학에 있어서는 민지(閔漬)를 도와 『세대편년절요(世代編年節要)』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태조 이래의 실록을 약찬하였다.

『사서집주(四書集註)』의 간행을 건의해 간행됨으로써 성리학의 전파에 상당한 공헌을 하였다. 『은대집(銀臺集)』 20권을 주석했으며, 아들 권준(權準), 사위 이제현(李齊賢)과 함께 역대 효자 64명의 행적을 기린 『효행록』을 편찬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부묘지명(權溥墓誌銘)』
『익재집(益齋集)』
『양촌집(陽村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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