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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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한성부의 화재 예방과 화재가 발생했을 때 소화(消火)를 하기 위해 마련되었던 제도.
목차
정의
조선시대 한성부의 화재 예방과 화재가 발생했을 때 소화(消火)를 하기 위해 마련되었던 제도.
내용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병조·의금부·형조·한성부·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오부(五部)에서 당직하는 관원은 항상 순찰을 하였다.

바람이 심해 화재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에는 수성금화사의 관원이 방리 각 호구마다 방울을 흔들면서 순찰을 하여 화재를 방지했다. 화재를 대비해 공공건물이나 민가에는 우물을 파고 흙더미를 쌓고 소화기구 등을 비치하였다.

궁궐에서 화재가 났을 때에는 큰 종을 쳐서 알렸다.

화재가 발생하면 궁궐에 있던 사람들은 즉시 달려가서 소화를 하고 당직하는 사람은 그 장소를 떠나지 않았다.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던 장병들은 각기 소속 부대로 집합하고 관아의 관원은 각기 조방(朝房 : 조정의 신하들이 조회에 나아가기 위해 기다리던 임시거처)에 집합하였다.

모든 관청 소속의 제원(諸員), 장인(匠人), 출번한 별감, 각 차비인(差備人), 한성부의 방리민은 모두 궁궐 밖에 집합해 명령을 기다렸다. 민가에 화재가 났을 때 기와집은 3칸 이상, 초가는 5칸 이상이면 왕에게 보고하고, 작은 불이라도 사람이 상했거나 이웃집에 번질 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왕에게 보고했다.

한성부내의 관청은 한성부 오부에 나누어 소속시키고 구화패(救火牌:소방에 종사하던 관리에게 주던 패)를 지급하였다. 한성부 오부내에서 화재가 났을 때에는 병조·의금부·형조·한성부·수성금화사는 각기 소속부원을 인솔하고 달려가서 소화하였다.

방리인에게는 1통마다 소방에 종사하던 사람에게 주던 금화판을 지급해 통수가 통내 사람을 인솔하고 소화하였다. 의금부에서는 병조의 나장(羅將)과 사복시·군기시의 노(奴)를 각 1명씩 차출해 화재 감시인으로 정하고, 종루(鐘樓)에 올라가서 화재를 감시하게 하였다.

방화에 대한 규정도 매우 엄격하였다. 고의로 방화해 자기 집을 불태운 자는 곤장 100대, 방화해 자기 집을 불태우면서 관아나 이웃집을 불태운 자는 곤장 100대와 3년 유형(流刑), 고의로 관아나 민가의 창고와 쌓아놓은 물건을 불태운 자는 참형(斬刑), 왕릉에 방화한 자는 그 죄의 경중에 따라서 섬이나 국경변방에 유배(流配), 주인집 사우(祠宇)에 방화한 자는 교살형(絞殺刑) 등에 각각 처하였다.

참고문헌

『성종실록』
『경국대전』
『대전회통』
「조선후기한성부업무」(원영환, 『향토서울』 34,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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