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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흥복사 설천
김제 흥복사 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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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물이 솟아 나오는 장소를 포함하는 자연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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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땅에서 물이 솟아 나오는 장소를 포함하는 자연현상.
내용

새암·시암·샘터라고도 한다. 중부 이북 지역에서는 집안에 있거나 물이 깊어서 두레박으로 뜨는 것을 우물이라 한다. 또 공동용으로 사람이 앉아서 뜨는 것을 샘이라고 따로 부르나, 남부지방에서는 이를 가리지 않고 흔히 샘이라고 한다. 샘은 물을 뜨는 방법에 따라 쪽샘·두레샘·작두샘으로 나눈다.

쪽샘은 표주박이나 쪽박 또는 바가지로 퍼내는 얕은 샘으로, 곳에 따라 이를 박우물이라고도 한다. 주위에 돌담을 쌓으며 물이 많은 경우는 물동이 받침대도 마련한다. 두레샘은 두레박이 달린 두렛대를 설치한 샘이다.

두렛대 한쪽에 적당한 크기의 돌을 달고 사람이 줄을 잡아 당겨서 두레박을 물 속에 넣은 다음, 손을 놓으면 돌의 무게 때문에 두레박이 자연히 올라오는 샘이다. 샘바닥에서 지표까지 돌벽을 쌓으며 그 위에 틀을 얹는다.

틀은 나무로 정자(井字) 모양으로 쌓지만(‘井’을 ‘우물 정’으로 새기는 것이 여기에서 왔다.) 여유를 누리는 집에서는 네 개의 큰 판석으로 짜기도 한다.

두레샘은 4세기경의 고구려 벽화에도 나타나며, 중국 동북지방과 시베리아에서도 널리 이용되었다. 추위가 심한 까닭에 샘을 깊이 팔 수 밖에 없었으므로 이와 같은 장치를 생각하였을 것이다. 작두샘은 펌프를 설치한 오늘날의 샘이다. 펌프 자루를 위아래로 움직이는 동작이 작두를 쓸 때와 비슷해서 생긴 이름이다.

또, 샘은 물이 나오는 상태에 따라 바위 틈에서 솟는 부출천(鳧出泉), 오목하게 팬 땅에서 솟아서 못처럼 괴는 지상천(池狀泉), 지하수가 땅 위 여기저기로 솟아서 습지 모양을 이룬 습지천(濕池泉)으로 나누기도 하며, 산기슭의 바위에서 나는 특별히 맛 좋은 샘을 약수터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샘을 갖추기 어려웠으므로 식수를 비롯한 생활용수는 모두 마을의 공동샘에서 길어다 썼다. 아낙네들은 물을 떠담은 자배기를 머리에 이어 날랐으며, 이 때 이마 뒤로 떨어지는 물방울 따위를 한 손으로 훔치는 모습이 외국인들에게 우리 농촌의 전형적 풍경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한편, 제주도에서는 물항아리를 구덕에 담고 이를 어깨에 져 날랐는데, 이는 샘이 마을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을의 정자나무 주위가 남성 공간이었던 것처럼 샘은 여성전용 공간이었다. 여인들은 샘에서 물을 긷는 외에 채소를 다듬거나 빨래까지도 하였으므로, 이곳에 머무르는 시간이 비교적 길었다. 여인들은 샘가에 모여 앉아 세상의 소문이나 마을 소식을 주고받았고, 심지어는 어떤 집의 부부싸움 내용까지도 속살거렸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 작은 다툼도 일어났지만, 샘은 서민층 여성들의 작업장이자 휴식처인 동시에 사교장이었고, 세상 물정에 눈을 뜨는 교육장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샘은 대체로 마을 중심지에 있다. 큰 마을인 경우는 여러 개의 샘이 있는데, 이 때는 길이나 개울 등의 자연 지형에 따라 몇 집씩 나누어 한 샘을 쓴다.

그리고 샘의 청소나 시설물 따위의 관리는 이들 집에서 공동으로 담당한다. 집안에 샘이 없는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의 상류 가옥에서는 물긷는 일만 전담하는 ‘물담살이’를 따로 두어 부리기도 하였다. 샘은 고대부터 신성한 장소로 여겨져 왔다.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 신화 가운데 그가 양산 밑 나정(蘿井)이라는 샘 곁에서 알의 상태로 나타났다는 부분이나, 그의 아내 알영부인을 알영정(閼英井)에서 용이 낳았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또, 고려 태조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作帝建)의 아내 용녀도 개성대정(開城大井)의 수신이었다.

우리네 세시풍속 가운데 정월 대보름날에 행하는 용알뜨기도 샘에 대한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날 첫닭이 울 때 마을 샘에서 퍼낸 물을 복물(福水) 또는 수복수(壽福水)라고 하며, 첫번째로 물을 긷는 사람이 그 해 농사를 제일 잘 짓는다고 여긴다.

마을 공동샘에는 나쁜 병이 돌지 않고 물이 마르지 않으며, 물맛이 변하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의 샘굿을 올리기도 하였다. 음력 정월 수신(水神)이 내려온다는 날 밤 세 사람의 제관이 샘가에 제물을 차려놓고, 각 집의 호주 이름을 부르면 당사자는 샘가에 나아가 지폐를 불사르며 절을 올린다.

이것은 샘의 신을 마을 수호신이나 그 밖의 신과 동등하게 여긴 데서 유래한 풍속이다. 그리고 개인집에서 대보름날 지신밟기를 할 때도 반드시 샘에 들러서 농악을 치며 축원을 올린다. 시월에 올리는 고사 때 샘에 상을 바치는 것은 물론이다.

참고문헌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황해·평안남북도편-』(문화재관리국, 1980)
『한국의 세시풍속』(장주근, 형설출판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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