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 · 덧널무덤 등이다. 1996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해발 52m의 소구릉을 중심으로 동북쪽에는 4∼5세기대의 덧널무덤〔木槨墓〕이, 남서쪽에는 5∼6세기대의 돌덧널무덤〔石槨墓〕가 분포되어 있다. 유구는 모두 26기로 구덩식〔竪穴式〕돌덧널무덤 15기, 소형 돌덧널무덤 7기, 움무덤〔土壙墓〕2기, 독무덤〔甕棺墓〕옹관묘 2기이다. 출토된 토기로 보아 5세기 전반∼6세기 중엽 무렵으로 편년할 수 있다. 철제갑주류 등은 피장자의 지위 등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덧널무덤 등.
개설
내용
구덩식 돌덧널무덤은 목재를 뚜껑으로 한 것과 석재를 뚜껑으로 한 것이 구분된다. 목재를 뚜껑으로 한 것은 돌덧널의 평면형태가 장방형이고 돌덧널의 바닥에 깬돌을 깐 특징이 있다. 이러한 무덤으로는 제5호분이 대표적이다. 돌을 뚜껑으로 한 것은 돌덧널의 평면형태가 세장하고 바닥에는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 이러한 무덤으로는 제2·6·7·8·9호분 등이 있다.
무덤구덩이〔墓壙〕가 깊고 뚜껑돌이 없는 2기의 돌덧널무덤은 발굴조사된 유구 중 가장 이른 것으로 5세기 중엽으로 비정된다.
소형 돌덧널무덤은 독무덤과 함께 소아용으로서 구덩식 돌덧널무덤의 배묘적(陪墓的)인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소형 돌덧널무덤 중 돌덧널의 이음돌덧널〔合口式石槨〕의 내부에 이음독〔合口式甕棺〕을 안치한 것이 1기 있다.
움무덤은 출토토기로 보아 구덩식 돌덧널무덤과 동일한 시기의 무덤이다. 무덤을 설치한 암반이 단단해서 석벽을 쌓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출토유물은 약 300여 점인데 3분의 1이 도굴된 갱내에서 교란된 채로 수습되었다. 그 가운데 뚜껑굽다리 접시 · 목항아리 · 항아리 등의 토기류가 170여 점, 칼 · 철촉 · 손칼(도자) 등의 철기류가 100여 점, 기타 금동제가는고리귀걸이 등의 장신구류가 30여 점인데, 토기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의의와 평가
이 고분군의 중심연대는 출토된 토기로 보아 5세기 전반∼6세기 중엽 무렵으로 편년할 수 있고 출토된 유물이 비교적 빈약한 것으로 보아 하위집단의 무덤들로 평가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도굴갱과 주변에서 철제의 판갑옷편〔板甲片〕과 낚시바늘 · 작살 · 고리자루 큰 칼〔環頭大刀〕등이 수집되었는데, 특히 판갑옷편과 고리자루 큰 칼의 경우 이 고분군 축조집단의 지위가 그렇게 낮지는 않았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정황을 통해서 이 고분군은 김해지역과 주변지역의 교류상황을 밝힐 수 있는 단서가 되며, 철제갑주류 등은 이 집단의 성격 및 피장자의 지위 등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평가된다.
참고문헌
-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 『생곡동가달고분군』Ⅰ(부산직할시립박물관, 1993)
- 「김해 예안리 유적과 신라의 낙동강 서안 진출」(이희준,『한국고고학보』39, 한국고고학회, 1998)
- 「부산생곡동가달고분군발굴조사개요」(송계현,『부산직할시립박물관연보』12, 1990)
- 「김해 가달유적 지표조사 보고」(김두철,『가야통신』15·16,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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