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석사(禪石寺)는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제9 교구 본사(本寺)인 동화사(桐華寺)의 주1로 경상북도 성주 선석산(禪石山)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선석산은 서진산(棲鎭山) 또는 누진산(樓鎭山)이라고도 불린다.
692년(효소왕 1)에 의상이 창건하였으며 그때 사찰의 이름은 신광사(神光寺)로, 현재보다 서쪽에 있었다고 한다. 의상 창건설을 근거로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꼽기도 하지만, 화엄십찰을 언급한 『삼국유사(三國遺事)』 「의상전교」나 최치원(崔致遠)의 「법장화상전」에는 보이지 않아 화엄십찰로 보긴 어렵다.
1361년(공민왕 10)에는 나옹 혜근이 신광사 주2로 부임한 뒤, 절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그런데 당시 새 절터를 닦다가 큰 바위가 나왔다하여 닦을 선(禪), 돌 석(石) 자를 넣어 절 이름을 선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바위는 대웅전 앞뜰에 묻힌 채 머리 부분만 땅 위로 나와 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1684년(숙종 10)에 은현(訔玄) · 혜묵(惠默) · 나헌(懶軒) 등이 주3. 1725년(영조 1)에 서쪽의 옛터로 옮겼다가 1804년(순조 4)에 서윤(瑞允)이 신도들의 도움을 얻어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주4로는 경상북도 유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웅전(大雄殿)을 비롯하여 영상회상 괘불전 · 태장전 · 종각 · 명부전(冥府殿) · 칠성각(七星閣) · 산신각(山神閣) · 사천왕문(四天王門) · 주5가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 다포(多包) 양식으로 조선 후기 건축물의 양식을 보여준다.
세종(世宗)의 왕자 태실(胎室)이 있는 태봉(胎峰)에서 약 200m 거리에 위치했던 이 절은 왕자의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었으므로 영조(英祖)로부터 주6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이 어필을 보관했던 곳이 주7이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 영조 어필의 병풍은 정법료(正法寮)에 보관되어 있다. 또 경 내의 느티나무 인근에 바람이 불면 이상한 소리를 내는 쌍곡죽(雙谷竹)이라는 대나무 숲이 있었다고 한다. 이 대나무를 잘라 만든 피리는 그 소리의 맑고 깨끗하기가 다른 피리와 비길 바가 아니었으며, 이를 교방적(敎坊笛)이라고 하였다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 쌍곡죽이 남아 있지 않다. 소실된 어필각도 이 주위에 있었다.
영산회상 괘불전은 보물로 지정된 성주 선석사 영산회 괘불탱을 모신 전각이다. 괘불탱은 1702년(숙종 28)에 제작된 것으로 18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괘불화(掛佛畵)로 그 가치가 크다. 왕과 왕비, 세자의 주8를 기원하는 18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성주 선석사 영산회 괘불탱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