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산 선석사 ( )

불교
유적
경상북도 성주군 월향면 선석산(禪石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인 의상(義湘)이 창건했다는 사찰.
이칭
이칭
신광사(神光寺)
유적/건물
건립 시기
693년
소재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세종대왕자태실로 6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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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선석사는 경상북도 성주군 월향면 선석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인 의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 시의 이름은 신광사(神光寺)였으나 1361년, 나옹 혜근(懶翁 惠勤)이 새 절터를 닦으면서 선석사라고 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탄 후 조선 후기 중창(重創)과 이건(移建)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성주 선석사 영산회 괘불탱(星州 禪石寺 靈山會 掛佛幀)을 소장하고 있다.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월향면 선석산(禪石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인 의상(義湘)이 창건했다는 사찰.
건립 경위와 변천

선석사(禪石寺)는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제9 교구 본사(本寺)동화사(桐華寺)주1로 경상북도 성주 선석산(禪石山)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선석산은 서진산(棲鎭山) 또는 누진산(樓鎭山)이라고도 불린다.

692년(효소왕 1)에 의상이 창건하였으며 그때 사찰의 이름은 신광사(神光寺)로, 현재보다 서쪽에 있었다고 한다. 의상 창건설을 근거로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꼽기도 하지만, 화엄십찰을 언급한 『삼국유사(三國遺事)』 「의상전교」나 최치원(崔致遠)의 「법장화상전」에는 보이지 않아 화엄십찰로 보긴 어렵다.

1361년(공민왕 10)에는 나옹 혜근이 신광사 주2로 부임한 뒤, 절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그런데 당시 새 절터를 닦다가 큰 바위가 나왔다하여 닦을 선(禪), 돌 석(石) 자를 넣어 절 이름을 선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바위는 대웅전 앞뜰에 묻힌 채 머리 부분만 땅 위로 나와 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1684년(숙종 10)에 은현(訔玄) · 혜묵(惠默) · 나헌(懶軒) 등이 주3. 1725년(영조 1)에 서쪽의 옛터로 옮겼다가 1804년(순조 4)에 서윤(瑞允)이 신도들의 도움을 얻어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황

현존하는 주4로는 경상북도 유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웅전(大雄殿)을 비롯하여 영상회상 괘불전 · 태장전 · 종각 · 명부전(冥府殿) · 칠성각(七星閣) · 산신각(山神閣) · 사천왕문(四天王門) · 주5가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 다포(多包) 양식으로 조선 후기 건축물의 양식을 보여준다.

세종(世宗)의 왕자 태실(胎室)이 있는 태봉(胎峰)에서 약 200m 거리에 위치했던 이 절은 왕자의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었으므로 영조(英祖)로부터 주6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이 어필을 보관했던 곳이 주7이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 영조 어필의 병풍은 정법료(正法寮)에 보관되어 있다. 또 경 내의 느티나무 인근에 바람이 불면 이상한 소리를 내는 쌍곡죽(雙谷竹)이라는 대나무 숲이 있었다고 한다. 이 대나무를 잘라 만든 피리는 그 소리의 맑고 깨끗하기가 다른 피리와 비길 바가 아니었으며, 이를 교방적(敎坊笛)이라고 하였다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 쌍곡죽이 남아 있지 않다. 소실된 어필각도 이 주위에 있었다.

영산회상 괘불전은 보물로 지정된 성주 선석사 영산회 괘불탱을 모신 전각이다. 괘불탱은 1702년(숙종 28)에 제작된 것으로 18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괘불화(掛佛畵)로 그 가치가 크다. 왕과 왕비, 세자의 주8를 기원하는 18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성주 선석사 영산회 괘불탱을 소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여지도서』

단행본

권상로 편,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이정, 『한국불교사찰사전』 (불교시대사, 1996)
주석
주1

불교의 한 종파의 우두머리인 큰절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큰절에서 갈라져 나온 절. 우리말샘

주2

절을 주관하는 승려. 우리말샘

주3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짓다. 우리말샘

주4

정당(正堂)과 옥우(屋宇)라는 뜻으로, 규모가 큰 집과 작은 집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5

절에 있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 우리말샘

주6

임금이 손수 글씨를 씀. 또는 그 글씨. 우리말샘

주7

임금이 손수 쓴 글씨를 보관하던 전각(殿閣). 우리말샘

주8

목숨이 길어 오래 삶. 어린아이의 명이 길어 오래 살기를 빌 때 쓴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박미선(명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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