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에 문하찬성사, 조선 초에 검교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관료.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창왕(昌王)을 폐위하고 공양왕(恭讓王)을 세울 때 모의에 참여하여 1390년(공양왕 2) 충의군(忠義君)에 봉해졌고,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 승진하였다. 이듬해 정난공신(定難功臣)의 호를 받았고, 1392년(공양왕 4) 판삼사사(判三司事)로서 지공거(知貢擧)를 겸하였다. 이해 정몽주(鄭夢周)가 살해될 때 일당으로 지목되어 유배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뒤 태조(太祖)의 특명으로 1396년(태조 5)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으로 복직되었다. 아울러 계림(鷄林: 현, 경상북도 경주)을 본관으로 받고 연산부원군(燕山府院君)에 봉해졌다.
1398년(정종 즉위년) 정종(定宗)이 즉위하자, 계품사(啓禀使)로 명(明)나라에 가던 도중 명나라 태조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진향사(進香使)로 임무를 바꾸어 파견되었다가 이듬해 귀국하였다.
설장수는 전후 1373년을 시작으로 이후 총 8차례에 걸쳐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명나라 태조 홍무제(洪武帝)는 그를 “고가(高家)의 자손”이라면서 직접 만나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며 양국의 정세 등을 논하였다.
학문과 저술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태조실록(太祖實錄)』
- 『정종실록(定宗實錄)』
단행본
- 박용운, 『고려시대 음서제와 과거제 연구』 (일지사, 1990)
논문
- 류영봉, 「왕조교체기의 ‘귀화시인’ 설손과 설장수 부자」 (『한문학보』 23, 우리한문학회, 2010)
- 백옥경, 「여말 선초 설장수의 정치활동과 현실인식」 (『조선시대사학보』 46, 조선시대사학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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