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설화는 신선과 방사·은사 혹은 이와 관련된 방술에 관한 설화이다. 종류에는 신선이 되는 득선설화, 신선과 만나는 우선설화, 도술을 행하는 도술설화가 있다. 중국에는 득선설화가 많은 편이고 우리나라에는 우선설화가 많다. 우리나라 신선설화로 주목할 것은 『삼국유사』의 ‘선도성모수희불사’이다. 『삼국유사』에는 김유신 관련 도술적인 내용도 많이 서술되어 있다. 후대에 서화담이나 이원익이 신선을 만난 이야기가 『오산설림』·『어우야담』에 전하기도 한다. 민간설화에는 선녀 이야기가 많은 편이고 문헌설화에는 남자 신선 이야기가 많다.
신선 사상은 본래 중국에서 발전된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사상으로, 중국에서는 겸선천하(兼善天下)의 유학사상과 독선기신(獨善其身)의 노장사상(老莊思想) 두 계통이 발달해 왔다.
이 가운데 신선사상은 노장사상에서 장생불사의 일면만을 강조하여 민간으로 전승됨에 따라 설화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이 사상은 한말(漢末)에 이르러 여러 가지 의식을 갖추고 도교(道敎)로 발전되었으며, 외래 종교인 불교와 더불어 중국의 종교를 대표하였다.
우리나라에 신선사상이 전래된 것은 아주 오랜 옛날이며, 불교보다도 먼저 한문화(漢文化)와 함께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신선을 이루는 도교가 하나의 종교로서, 도관(道觀)과 도사(道士)를 갖추어 불교와 양립할 수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완벽한 종교 의식을 갖춘 불교에 흡수되어 종교로서의 도교의 기능은 발휘하지 못하였다. 오직 민간의 토속 신앙과 무격사상(巫覡思想) 속에 스며들어 혼합되었고, 따라서 민간 설화가 이 사상을 전승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되었다.
신선의 종류로는 천선(天仙) · 지선(地仙) · 시해선(尸解仙)이 있으며, 설화도 이들에 관한 것이 주종을 이룬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설화는 다시 크게 3부류로 나눌 수 있으니, 신선을 이루는 득선설화(得仙說話)와 신선을 만나는 우선설화(遇仙說話), 그리고 도술(道術)을 행사하는 도술설화이다.
득선설화는 음식을 끊는 벽곡(辟穀), 몸을 단련하는 수련(修練), 불사약을 만들어 먹는 복약(服藥) 등의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데, 중국 신선설화에서는 이 관계 설화가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신선설화에서는 많지 않다.
일찍이 세상을 떠난 인물이 산 속이나 동굴 속, 또는 해도(海島)에서 신선이 되어 살고 있는 것을 만났다는 우선설화는 우리나라 곳곳에 매우 많이 전해지고 있다.
신선설화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이 도술설화이다. 이것은 후대의 소설 속에서도 소재로 많이 등장하며 문헌설화로도 많이 전한다. 도술의 유형으로는 몸을 숨기는 은형(隱形)과 귀신을 부리는 사귀(使鬼), 그리고 기술로써 상대를 마음대로 놀리는 사기(使技)와 숨겨진 것을 투시해 맞추는 사부(射覆) 등이 있다.
중국의 신선설화는 『신선전(神仙傳)』 · 『열선전(列仙傳)』 그리고 그리고 『태평광기(太平廣記)』 등에 많이 수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여러 패사(稗史)에 널리 실려 있다.
우리나라의 신선설화로서 가장 주목할 것은 『삼국유사』의 ‘선도성모수희불사(仙桃聖母隨喜佛事)’ 설화이다. 선도산의 성모상은 중국 제실(帝室)의 딸이었는데, 일찍이 신선이 되어 우리나라로 와서는 소리개를 날려 그것이 머문 이 산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는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와 알영(閼英) 이성(二聖)을 낳은 모태라고 하여 신라의 국모로 설정되었다.
이 성모가 비구니 지혜(智惠)의 꿈에 나타나 안흥사(安興寺)의 불전을 지을 비용을 마련해 주겠으니, 불사(佛寺)에 불상과 함께 도교의 신도 모셔서 공양하라고 지시하였는데, 지혜는 이 말대로 하여 불사의 비용을 얻고 도교의 신상을 절에 모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불교와 도교가 습합하는 증거를 보여주는 내용으로, 우리 나라의 많은 신선설화가 불교와 융합되어 있는 것은 이 설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아울러 불교와 상충관계를 나타낸 설화도 『삼국유사』에 실려 있으니, 고구려 연개소문(淵蓋蘇文)과 관련된 보덕이암(普德移庵) 설화가 그것이다.
고구려의 멸망에 대하여, 불교를 소홀히 하고 도교를 장려한 결과라고 서술하고 있다. 또, 『삼국유사』에는 김유신(金庾信)의 전공(戰功)과 관련하여 도술적인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소설의 무용담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후대의 신선설화로는 서화담(徐花潭)이 지리산에서 신선을 만난 이야기를 서술한 『오산설림(五山說林)』의 기록이 있고, 이원익(李元翼)이 신선을 만나 도골(道骨)이 있음을 시사받고 선경(仙境)까지 다녀온 내용이 『어우야담(於于野譚)』에 전한다.
또한 『어우야담』에는 성현(成俔)이 중국 고대 신선 여진인(呂眞人)을 만난 이야기와 즉석에서 참외를 가꾸어 따먹는 도술설화가 실려 있다. 안서우(安瑞羽)의 기록인 「금강탄유록(金剛誕遊錄)」은 신선사상이 허망한 것임을 풍자한 내용으로서, 신선사상을 대하는 우리 민족의 의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민간에 입으로 전해지는 신선 이야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 나무꾼이 목욕하던 선녀의 옷을 감추어 선녀를 아내로 맞이했다는 이야기는 구전 신선설화의 대표적인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 경치 좋고 아름다운 곳에는 예외 없이 신선이 놀았다든가,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결부되어 있다.
민간설화에는 선녀 이야기가 많은 편인데, 문헌설화에는 남자 신선 이야기가 많고 선녀 이야기가 매우 드문 것도 우리 나라 신선설화의 한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