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확정하는 데는 법원으로 하여금 그 사실이 진실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이 자료가 증거이다.
법원이 사실을 인정할 때 증거에 의하게 되는 이유는 법원의 전단(專斷)을 막아 재판의 공정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한편, 재판을 받는 당사자로 하여금 증거가 충분한 경우에는 쟁송에서 안심해도 좋다는 안도감을 주려는 데 있다.
증거에 의하여서만 재판의 전제가 되는 사실을 인정하는 원칙을 증거재판주의라 한다. 재판이 증거재판주의를 취하는 것은 오늘의 재판제도에 있어서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나라 왕조시대의 재판제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증거재판주의하에서 소송당사자는 나중에 생길지도 모르는 쟁송에 대비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각종 자료를 미리 마련하려고 애쓰게 된다.
증거에 대한 변천사를 살펴보려면 아무래도 우리 나라 왕조시대의 소송절차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왕조시대에서는 아직 민형사(民刑事)의 법률관계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았던 이른바 전근대적인 법률제도하에 있었고, 이 시대에는 순수한 민사쟁송(재산권이나 신분권의 귀속에 관한 것)도 사회질서의 경미한 위반의 차원에서 다루었다.
왕조시대는 전제군주시대이므로 모든 권력이 왕에게 귀속되었고, 왕은 좋은 정치를 베푸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민사에 속하는 사건도 이른바 치안유지의 각도에서 다루었던 것이다.
민사에 관한 분쟁도 윤리성 내지 도덕성에 반하는 것으로 보고 순수한 형사사건의 한 가닥으로서 파악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왕조시대에 있어서는 모든 쟁송을 오늘날의 형사적인 차원에서 다루면서도 이른바 규문주의(糾問主義)를 취하였던 것이 그 특색이다.
규문주의는 재판기관이 그 재판의 전제되는 소송의 개시와 심리를 직권으로 하는 것을 의미하며, 탄핵주의는 소송의 개시와 심리를 재판하는 기관이 독자적으로 하지 못하고, 반드시 적극적인 당사자(원고나 검사)의 제소 내지 기소가 있어야 비로소 소송을 개시하고, 심리에서도 적극적인 당사자의 소송관여를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재판은 탄핵주의가 원칙으로 되어 있는데, 탄핵주의가 서구에서 처음 그 모습을 나타낸 것은 프랑스혁명 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적으로 보아서 우리 나라의 왕조시대가 규문주의를 취한 그 배경은 서구사회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규문주의에서 탄핵주의 내지 당사자주의로의 발전은 인지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인 동시에 문화의 승리를 의미한다.
규문주의시대에는 아직 과학적인 범죄수사방법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증거수집에 있어서 피의자로부터 자백을 받는 것을 가장 으뜸으로 생각하고, 이 자백을 얻기 위하여 고문(拷問)이 합법적으로 인정되었던 것이 그 특색이다.
즉, 자백은 증거의 왕으로서 대접받았고, 자백만 있으면 유죄의 재판을 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형사소송인 옥송(獄訟)에서 자백은 반드시 구전(口傳)으로 초사(招辭:죄인의 공소사실을 진술하는 말)를 받은 것이라야 유효하고, 글로 써서 된 것은 무효인 것으로 보았다.
이와 같이 문자서납(文字書納)을 금지한 취지는 오늘날에 있어서의 전문증거(傳聞證據)의 제한과 그 취지를 같이하는 것이다. 과학적 수사방법이 발달되지 않았던 왕조시대에는 증인이 증거로서의 비중이 매우 컸다.
그러나 유교적 윤리사상 때문에 증인의 자격에 관하여 많은 제한을 두었다. 서로 은닉(隱匿)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나, 80세 이상의 자, 15세 이하의 자, 위독한 병에 걸린 자는 증인이 되지 못하게 하였다.
서로 은닉할 수 있는 사이란 동거하는 친속(親屬), 대공(大功) 이상의 친속과 외조부모·외손·처의 부모·사위 또는 손부(孫婦)·부(夫)의 형제·형제의 처 및 노비·고공인(雇工人:머슴) 등을 이른다.
살인이나 상해치사와 같은 중한 범죄에 있어서는 매우 비과학적이기는 하지만 오늘의 검증(檢證)에 해당하는 검험(檢驗)이라는 것을 시행하여 증거로 삼았다. 이것은 공무원이 현장에 가서 피해자의 시체를 검열(檢閱)하는 것이다.
이 검험의 결과는 중형의 선고와 직결되므로 그 절차에 관하여 매우 상세한 것이 규정되어 있다. 민사소송인 사송(詞訟)에서는 옥송의 경우와는 달리 서증이 증거의 왕이어서, 모든 제한은 문서에 따라 판가름해야 한다는 뜻의 종문권시행(從文券施行)이라는 법언(法諺)이 있었으며, 서증의 진부를 가리는 자세한 세칙인 청송식(聽訟式)이 적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송은 오늘날과 같이 철저한 당사자주의였다. 그에 대응하여 모든 법률행위는 반드시 정형적인 문서를 작성, 교환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인권을 존중하려는 사상에서 증거의 왕이었던 자백이나 고문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또는 정식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여 왕조시대의 전근대적인 자백을 둘러싼 온갖 폐단을 시정하였다.
재판이 증거에 의지하여 이루어지는 경우에 그 증거에 대한 증명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가 매우 어려운 문제로 등장한다.
입증책임(立證責任)이 있는 당사자가 유리한 증거를 제출한 데 반하여 그 상대편이 그 증명력을 깨뜨리고자 반대되는 증거, 즉 반증(反證)을 제출하였을 때 어느 편의 증거를 믿을 것인가가 문제이다. 여기에도 법관의 자의(恣意)가 끼어들면 공정한 재판은 기약하기 어렵다.
이에 관하여 <민사소송법>은 “변론의 전취지(全趣旨)와 증거조사의 결과를 합작하여 자유심증으로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사실주장의 진실여부를 판단한다.”라고 규정하였고, <형사소송법>은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라고 규정하였다.
어떻든 증거의 증명력에 대한 판단은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법관에게 일임되어 있으므로 청렴하고 교양과 인격을 고루 갖춘 양심적인 법관이 요청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민사재판에서는 당사자가 자백한 사실과 현저한 사실에 한하여는 증거가 필요하지 않지만, 형사재판에서는 자백의 증거능력이 제한된다.
법원이 재판할 사항에는 쟁송 그 자체에 관한 것(이것은 판결로 재판한다)과 그에 파생되거나 부수되는 사항에 관한 것(이것은 결정·명령으로 재판한다)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전자의 경우는 그 증거가 법원에 확신을 줄 수 있는 것이라야 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러리라는 경신(輕信)을 줄 정도이면 족한 것으로 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증명이 필요하고, 후자의 경우는 소명(疎明)이면 족하다고 말한다. 소명은 시간이 걸리지 않고 즉시 조사할 수 있는 것이라야 증거가 된다(법정에 출석하고 있는 증인이나 서면 등).
<민사소송법>·<형사소송법>에서 허용되는 증거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증 인 법원은 누구든지 증인으로 신문할 수 있다. 증인은 원칙적으로 지정한 장소에 출석하여 선서하고 진술할 의무가 있다. 선서하고 허위의 진술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 위증죄의 벌을 받는다. 민사소송·형사소송에서 증인의 증언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을 정도로 증언은 증거로서 막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증언은 증인이 과거에 보고 듣는 등 오관(五官)의 작용에 의하여 경험한 바를 진술하는 것이므로 그 경험한 내용이 우선 정확하여야 되고, 다음으로 그 정확한 내용을 양심대로 진술하여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
그런데 우리의 오관작용을 통한 경험은 특히 그것이 무관심할 경우에는 매우 부정확한 것이 상례이며, 사람의 능력여하에 따라서는 그 정확성의 정도가 천차만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연 정확한 어휘를 구사하여 양심을 속이지 않고 바른대로 진술하느냐가 문제이다.
사전에 유리한 증언을 청탁하여 위증을 하는 수가 적지 않으며, 동일한 일시에 동일한 장소에 참여하였던 두 사람이 각기 대립되는 당사자의 양쪽에 증언을 하면서 정반대되는 진술을 하는 수도 흔히 있다. 따라서, 증인은 불안한 증거방법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법관은 증언의 신빙성을 밝히기 위하여 크게 고심하게 된다.
법관이 위증을 믿고 오판을 내렸을 때 그것이 상급법원에서 바로잡히지 않으면 그 증인을 위증자로 고소하여 처벌을 받게 하고, 이것을 자료로 하여 재심의 소를 제거하는 예가 적지 않다.
증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구인(拘引)할 수 있다. 공무상 비밀, 근친자의 형사책임, 업무상 비밀에 관하여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데, 이는 국가이익과 윤리적 내지 도의적 사상을 중시한 것이다.
16세 미만의 자와 선서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선서를 시키지 못한다. 증인이 자기나 근친자에게 현저한 이해관계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신문을 받은 때에는 선서를 거부할 수 있다. 증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거나 선서나 증언을 거부하면 그로 인한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되고, 또 과태료의 처벌을 받게 된다.
증인을 신문할 때에는 이른바 교호신문(交互訊問)의 방법에 의한다. 즉, 그 증인을 신청한 당사자가 먼저 신문하고, 다음에 상대방 당사자가 신문한다.
이 상대방 당사자가 하는 신문을 반대신문이라 하는데, 이는 그 증인이 주신문(主訊問)에서 진술한 내용의 허구성을 밝혀내는 데 큰 몫을 한다. 법원은 원칙적으로 반대신문이 끝난 뒤에 필요한 사항을 신문할 수 있다.
(2) 감정(鑑定) 특별한 학식·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학식·경험이나 이것을 바탕으로 한 판단을 보고하게 하여 이것을 증거로 삼는 제도가 감정이다. 증인은 자연인에 한하지만 감정인은 법인도 될 수 있다.
감정에 필요한 학식·경험이 있는 자는 감정인이 될 의무가 있으며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과태료의 처벌을 받으나 증인처럼 구인당하지는 않는다.
감정인은 증인과 달리 대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감정인이 선서를 하고 허위감정을 하면 허위감정죄의 벌을 받는다. 증인은 구술로 진술하는 것이 원칙이나 감정인은 서면이나 구술로 진술할 수 있다.
과거의 어떠한 사실을 특별한 학식·경험에 따라 안 경우에 그 사실을 신문할 때에는 증인으로서 신문하며, 이러한 증인을 특히 감정증인이라 한다. 감정인은 당사자가 특정하여 신청하더라도 법원이 이것에 구속받지 않고 다른 사람을 지정할 수 있다.
(3) 검증(檢證) 법관이 오관의 작용으로 물건의 성상(性狀)이나 사물의 현상을 실험하여 그 결과를 증거로 삼는 것이 검증이다. 검증을 법정 밖의 장소에 가서 할 때에 현장검증이라 하고, 공판정에서 개개의 물건에 대하여 하는 검증을 증거물의 조사라 한다.
문서라도 그 기재내용을 증거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지질이나 필적 내지 인영(印影)을 증거로 할 때에는 검증의 대상이 된다.
사람도 그 진술내용을 증거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용모나 신체를 증거로 할 때에는 검증의 대상이 된다. 당사자와 제3자는 그가 소지 내지 점유하는 물건을 법원에 제시하여 검증을 받을 의무가 있다. 형사사건에서 수사기관이 하는 검증은 검증조서로 작성되고, 이것이 서증(書證)으로 바뀌어서 공판정에서 증거조사를 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민사사건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당사자가 검증을 거절하거나 상대방의 사용을 방해할 목적으로 검증물을 파괴, 은닉하였을 때에는 법원은 그 상대방의 주장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형사사건에서 검증을 할 때에는 신체검사·사체해부·분묘발굴·물건파괴 기타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검증을 하기 위해 일출 전이나 일몰 후에 남의 주거나 간수인이 있는 건조물 등에 들어가려면 원칙적으로 가주(家主)나 간수인의 승낙이 있어야 한다.
(4) 당사자신문 민사소송에서 당사자는 소송자료를 제출하는 사람이지 당사자 자신이 증거자료가 되지 못한다. 재판의 객관성을 보장하려는 취지에 비추어볼 때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데 <민사소송법>은 법원이 일반 증거조사에 의하여 심증을 얻지 못할 때에는 직권 또는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당사자 본인을 신문하고 그 내용을 증거로 삼을 수 있게 한다.
당사자신문의 내용을 증거로 할 수 있는 것은 보충적인 의미에서만 인정된다. 따라서, 판례는 이것만으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직권탐지주의가 채택된 인사소송이나, 신속한 재판을 요하는 제1심, 소액사건에 관하여는 당사자신문의 보충성이 배제되어 언제든지 당사자를 신문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5) 서증(書證) 민사소송에서 문서에 기재된 내용을 증거로 삼는 것을 서증이라고 한다. 민사재판에서는 여러 증거 중 가장 무게 있는 증거로서 존중된다.
증인이 경험한 것을 양심껏 진술할 것인지는 불안하기 때문에 거래사회에서는 되도록 이러한 불안감이 없는 문서를 증거자료로 마련해 두려고 애쓴다. 문서는 어떠한 사문서라 할지라도 증거능력이 있다.
민사소송에서 문서가 증거로서 생명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문서가 작성명의인에 의하여 진정하게 작성되어야 하며, 이 경우에 형식적 증거력이 있다고 한다.
공문서의 경우는 그 진정함이 추정(推定)되지만 사문서의 경우는 반대로 증거로 제출하는 당사자가 그 진정함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사문서에 본인 또는 그 대리인의 서명이나 날인이 있을 때에는 진정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처럼 문서가 진정한 것으로 추정 내지 인정되면 비로소 그 문서에 기재된 내용을 믿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 이 증거력을 실질적 증거력이라 한다.
판결문 또는 매도증서의 형식적 증거력이 인정되면 그 문서를 통하여 판결이나 매도행위가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실질적 증거력이 보장된다. 이러한 문서들은 여느 문서와는 달리 처분문서이기 때문이다.
형사소송에서 서증이라 할 때에는 증거물인 서면과 증거서류의 두 가지가 있다. 전자 중에는 문서의 존재 자체가 증거로 되는 것과 문서의 내용만이 증거로 되는 것이 있다.
법원이 서증을 증거로 삼으려면 법정에서 반드시 증거조사를 거쳐야 한다. 증거물인 서면의 경우에는 피고인에게 제시하고, 그 문서에 기재된 요지(要旨)를 고지(告知) 내지 낭독하여주어야 한다.
반면에 증거서류의 경우에는 그 문서의 요지를 고지하거나 낭독만 하면 된다. 대개는 법원이 작성한 조서(調書)이기 때문이다. 검사와 사법경찰관이 작성한 조서 등 기타 서류는 증거서류가 아니고 증거물인 서면이다.
인권옹호를 위하여 <형사소송법>이 이 검사를 소송당사자로 격하시켰기 때문이다. 법원이 작성한 증인신문조서는 그 사건에서는 증거서류이나 그 증인에 대한 위증사건에서는 증거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