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상대편으로부터 당연히 받아낼 재산이 있다 하더라도 폭력이나 비평화적인 방법에 의하여 돌려받을 수는 없다.
만일, 이러한 행위를 허용한다면 질서가 문란하여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당사자들 사이에 올바른 권리행사가 되지 못하거나, 그 금액이나 수량에 있어서 적정하지 못할 경우가 많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재산권의 침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당사자는 반드시 법원에 호소하여 법관으로 하여금 그 재산권의 회복을 명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재산권의 반환이나 회복을 에워싸고 전개되는 법원을 중심으로 하는 절차를 민사소송이라 이르는데, 이 민사소송이 제대로 신속하고 적정하게 이루어질 때 그 사회는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거추장스러운 민사소송을 벌이는 대신 경찰력이나 그 밖의 공권력으로 해결이 되는 사회라면 거기에 자유민주주의가 뿌리박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민사소송은 전문적인 법률지식이 필요한 어렵고 복잡한 절차이다.
그리하여 비법률인으로서는 좀처럼 손대기가 쉽지 않은 어려운 점이 있다. 이러한 당사자로부터 사건을 맡아 본인의 이름으로 소송을 대리하여 주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을 변호사라고 이르고, 국가에서 엄격한 시험과 기술적 훈련을 통하여 인격면이나 법적 소양면에서 손색이 없는 사람을 변호사로 인정하여 민사소송의 당사자를 대리하는 영업을 하게 한다.
그렇다고 당사자 본인이 법관 앞에 나타나서 민사소송행위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본인이 직접 소송을 하게 되면 민사소송을 주재하는 법원이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만일 상대편 당사자가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을 진행하고 있을 경우 법률적인 항쟁이 균형을 잃어서 당사자편이 매우 불리하게 되는 입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결과는 소송에서 패하기 쉽다.
민사소송을 법원에 제기하려면 원칙적으로 소장(訴狀)이라는 서면을 작성하여 제출하여야 한다. 이 소장에 적극적 당사자인 원고가 소극적 당사자인 피고를 상대로 원하는 청구가 무엇인지 확정되는 것이다.
한 번 소장을 내서 특정된 청구를 민사소송의 대상으로 삼으면 이것과 중복하여 동일한 청구를 민사소송의 대상으로 삼지 못한다.
만일, 이러한 중복소송을 무제한 인정하게 되면 당사자가 도박삼아 민사소송을 제기할 염려가 있고, 법원도 법관에 따라서 결론을 다르게 내릴 위험이 있어서 혼란을 빚을 것이기 때문이다.
법원이 소장을 접수하면 곧 그 부본을 상대편 당사자에게 우송하고 이 소장부본을 받은 상대편 당사자는 이 공격에 대한 답변을 서면으로 작성하여 법원에 낸다.
그러면 이 답변서를 받은 당사자측은 이것에 대한 재답변을 서면으로 마련하여 법원에 낸다. 이와 같이, 법원이 양측 당사자의 가운데 서서 각자의 공격과 방어에 관한 서면들을 받아서 상대편에게 우송하여 이른바 서면을 통한 준비를 하게 한다.
이러한 소장 답변서 따위가 제대로 교환되면 변론을 위하여 법정에 나가기 전에 이미 그 사건에 대한 쟁점이 무엇인가가 자연히 표출되게 마련이다.
이 무렵 법원은 공개한 법정에서 당사자 양측을 동시에 대면할 수 있도록 기일을 정하여 부른다. 이 기일에 당사자는 반드시 출정하여 이미 서로 교환한 서면들에 기재된 사항을 구술로 진술하고, 법원을 중심으로 하여 그 사건의 쟁점을 정리, 표출시킨다.
우리의 <민사소송법>에서는 모든 공격과 방어의 자료는 반드시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절차를 거치도록 마련하여 놓고 있다.
이처럼 구술을 통하여 상정된 소송자료만이 심판의 대상이 되게 한 까닭은 그렇게 함으로써만 비로소 소송의 적정을 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하여야 할 점은 이러한 이상적인 구술주의는 실제 서면주의에 의하여 많이 수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사법정을 방청한다면 모든 자료가 구술을 통하여 공개법정에서 상정될 터이므로, 소송의 전모가 모두 짐작이 갈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제출한 서면대로 진술하기 때문에, 그 서면을 미리 이해하지 못한 제삼자는 도저히 그 진상을 이해하기 곤란하다.
민사소송에서는 기일에 출석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마련인데, 사전에 서면을 통하여 공격, 방어방법을 써서 제출하여 두면 그것은 구술로 진술한 것으로 간주되어 이익을 보게 되어 있다.
이러한 점을 보더라도 원칙적인 구술주의보다도 서면주의에 대한 실질적인 비중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법원은 이러한 변론을 통하여 그 사건의 쟁점을 알아내야 한다.
사실관계에 관하여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고, 다만 그 사실에 적용할 법규의 해석 따위에 다툼이 있을 경우 우선 변론을 종결하고, 법원의 전권에 속하는 법규해석에 관한 의견을 표명하여 결론을 내리면 된다. 그런데 실무에서는 이와 같은 사건은 매우 드물고, 오히려 사실관계에 관하여 당사자들 사이에 다투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사실관계 중 다툼이 있는 부분을 가려내어 그 사실에 대하여 증명할 책임이 있는 당사자측으로 하여금 그러한 사실이 진실이라는 것을 밝히게 한다.
당사자가 과거의 사실이 진실임을 법원으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하여 법이 허용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이 문서에 의한 증거방법이요, 다른 하나는 증언에 의한 증거방법이다. 문서는 한번 작성된 뒤 그 보존이 잘 되면 그 기재사항대로 완전한 증거가 될 수 있어서 민사소송에서는 가장 으뜸가는 증거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사람의 증언은 그다지 믿음성이 진하지 못하다. 증인은 그가 과거에 보고 들은 것을 숨김없이 진술하는 것이지만, 그 보고 들은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어느 정도 합치되는지 그 정확성에 있어서 의문일 뿐 아니라, 그때로부터 시간이 경과되면 기억력이 감소되어 정확성을 기하기 어려운 난점이 있다.
더욱이, 상대편이 이쪽 증인과는 정반대되는 이른바 반대증인을 세웠을 때는 법원이 어느 편의 증언을 채택하여야 될 것인지 곤경에 빠지게 된다. 이 경우 법관은 양심에 좇아서 건전한 사회상식과 올바른 형평의 원칙에 따라 자유로운 심증으로 한 쪽의 증언을 채택하게 된다. <헌법> 제103조에서 법관은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 것은 바로 이러한 경우도 포함한 것이다.
법관이 민사재판을 하는 데 가장 힘든 것이 이 사실확정절차라고 말할 수 있다. 확정된 사실에 올바른 해석을 거친 법규를 적용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러한 일의 몇 곱이나 힘들고, 고생스러운 작업이 당사자가 제시할 여러 증거자료를 잘 취사하여 근사한 사실확정을 하는 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래에 확실한 대비를 갖추기 위해서는 불확실한 증인보다는 절대적인 서면을 통한 증거를 마련하여 두는 것이 안전하다. 요사이 거래하는 사람들 사이에 서면을 작성할 뿐 아니라 여기에 공증까지 받아놓는 관행이 성행하고 있는데, 장래 일어날지도 모를 민사소송에 대비하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것이다.
민사소송에서 당사자가 그 밖에 이용할 수 있는 증거로서는 감정이라는 것이 있다.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의 지식을 빌려서 어떠한 사실의 진위여부를 가리자는 것이다. 그리고 검증이라는 것이 있다. 법관의 지각(오관작용)을 통하여 얻은 자료를 증거로 삼자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이 현장을 검증하는 경우이다.
그 밖에 당사자 본인을 증인으로 신청하는 당사자신문이라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소송자료를 제출할 책임이 있는 당사자를 증인으로 세우는 것이 모순된 법리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증거가 있을 때 보충적인 범위 내에서만 증거로 인정된다. 따라서 증거의 가치에 있어서는 그다지 기대할 것이 못된다.
이리하여 그 소송에서 승패의 양단간 결론이 나면 법원은 반드시 판결문을 작성하고, 이에 따라 외부에 발표한다. 이 판결문에는 결론 부분인 주문과 이러한 주문을 이끌어내게 된 사유를 소상하게 적은 이유를 적는다. 법관으로서 판결문에 기재할 이유를 그럴듯하게 적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패소자를 납득시킬 수 있을 정도로 앞뒤가 맞아야 하고, 법이론상 추호도 빈 틈이 없어야 한다. 그 이유에 흠이 있으면 그것이 상소심에서 취소나 파기될 염려가 있다.
이처럼 법원이 내리는 판결은 그 자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까다로운 이유로써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법관은 판결문 작성에 있어서 항상 긴장하고 조심하게 된다.
그러므로 법관의 실력은 이 판결문을 통하여 충분히 평가될 수 있다. 법관이 선고한 판결이 윗법원에서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그 판결이 훌륭하고 법관 개인의 사심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
한번 판결이 선고되면 그 판결의 존엄성 때문에 그 판결을 선고한 법관 자신도 이것을 고치지 못한다. 다만, 거기에 흠이 있으면 상소에 의하여 상소법원만이 시정할 수가 있다.
당사자는 일정한 기간 내 제1심판결에 대하여는 항소법원인 제2심법원에 불복할 수 있다. 이 불복을 항소라 한다. 항소심은 제1심절차의 계속이기 때문에 당사자는 항소심에서도 제1심에서 미처 제출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공격방법이나 방어방법을 제출할 수 있다. 항소심법원은 제1·2심에 걸쳐서 제출된 모든 소송 내지 증거자료를 종합하여 새로운 결론을 판결로써 내리게 된다.
이 항소심의 판결이 선고되면 일정한 기간 내 불복인 당사자는 대법원에 마지막으로 호소할 수 있는데, 이 대법원에 대한 불복을 상고라고 일컫는다. 대법원에서 다루는 상고절차는 항소심까지의 모든 자료를 기초로 하여 기록상으로만 항소심판결의 정당성 여부를 심판하기 때문에 흔히 법률심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대법원에서는 새로운 사실은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증거도 제출하지 못한다. 이러한 점에서 제1·2심절차를 사실심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제2심에서 적법하게 인정한 사실에 대하여는 대법원에 불복하지 못하고 오직 법령위반만을 이유로 하여서만 상고이유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마저 대법원의 사무경감을 목적으로 하여 사전에 대법원의 허가를 얻은 경우에만 상고를 허용하는 이른바 변칙적인 상고허가제가 시행되고 있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중대하게 제한되고 있어서 유감이다.
대법원이 선고한 판결에 대하여는 불복할 길이 없다. 하급심 판결에 대하여 당사자가 일정한 기간 내 상소를 하지 않으면 그 판결은 대법원이 선고한 판결과 마찬가지로 확정된다.
판결이 한번 확정되면 동일한 당사자는 그 청구에 관하여 다시 다툴 수 없을뿐더러, 법원으로서는 그것과 반대되는 판단을 하지 못한다. 확정된 민사판결에 대한 구제방법은 오직 재심절차가 있을 뿐인데 재심사유는 극히 제한적으로 열거되어 있어서 재심으로 확정판결을 취소하는 예는 매우 드물다.
판결이 확정되었는데도 패소자가 승소자에게 그 내용대로 이행을 하지 않을 때는 그 판결대로 강제집행을 하여달라고 집행기관에 신청할 수 있다. 확정판결에서 승소하였다 하여 국가기관이 자동적으로 강제집행까지 떠맡고 나서지는 않는다.
강제집행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은 집달관과 법원이다. 집행과정에서 물리적인 실력행사가 필요한 것은 자연인인 집달관에게 맡기고, 이러한 실력행사가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재판절차만으로 손쉽게 집행이 이룩될 수 있는 분야는 법원으로 하여금 담당시킨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즉, 금전채권을 추심하기 위하여 패소자 소유의 동산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할 때는 주로 집달관이 담당하고, 패소자 소유의 채권 기타 무채재산권 또는 부동산에 대하여 집행하는 절차는 주로 법원인 법관이 담당한다.
확정판결의 채무가 건물철거이거나, 채무자가 그 예술성을 기울여서 특정인의 초상화를 그리라는 따위일 경우의 집행절차에는 특별한 집행절차가 마련되어 있다.
부동산소유권 이전등기 절차를 이행하라는 내용의 판결은 확정되면 채무자가 그러한 의사를 승소자에게 표시한 것으로 보아버린다. 따라서, 이 경우 곧 일방적으로 등기신청을 하면 그 목적은 달성된다.
민사소송은 형사소송과 더불어 우리 나라의 양대 소송의 한 가닥을 이룬다. 형사소송이 검사의 기소를 계기로 하여 피고인에게 대한 죄가 인정되는지의 여부를 가리는 절차라면, 민사소송은 제소를 계기로 하여 재산권이나 신분권에 관한 분쟁을 가리는 절차이다. 한 나라에서 민사소송이 활발한 현상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민사소송은 모든 소송의 원초적 형태라 한다. 민사소송의 양당사자는 생래적으로 평등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형사소송도 민사소송화하는 것이 이상적이라 한다. 민사소송은 이러한 까닭으로 행정소송 및 각종 선거소송에도 그 골격이 준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