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덧널은 대부분 지표에서 얕게 묻혀 있었기 때문에 유구의 상부는 많이 유실되었다. 그러나 몇몇 유구에서는 뚜껑돌〔蓋石〕이 완전하게 남아 있는 것도 있었다. 평면은 장방형을 이룬다.
측벽은 수직의 무덤구덩이〔墓壙〕를 판 뒤 최하단을 납작한 자연석이나 깬돌로 세우거나 눕히고 그 위에 깬돌로 2∼3단 횡평적(橫平積)해 쌓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닥에는 자갈을 깐 2호분 외에는 특별한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구조를 가진 돌덧널무덤은 가야 후기 묘제에 있어서 하나의 특징적인 요소로 생각된다.
유물은 토기 60점, 철기 18점, 청동피금제 귀걸이 4점, 가락바퀴〔紡錘車〕1점 등 모두 83점이 발견되었다. 토기는 긴 목항아리〔長頸壺〕 · 짧은목항아리〔短頸壺〕 · 뚜껑접시〔蓋杯〕 · 연질 항아리(軟質甕) · 소형 그릇받침〔小形器臺〕 · 굽다리 접시〔高杯〕등이 발견되었으나 굽다리 접시가 2점밖에 발견되지 않은 것이 특이하다. 또한 대부분의 유구에서 뚜껑접시와 연질항아리· 항아리〔壺〕가 하나의 조합을 이루며 발견되는 것이 특색이다. 토기와 귀걸이 이외에도 화살촉( 철촉) · 낫 · 손칼( 도자) · 집게 등이 발견되었다.
중반계 고분군의 조성연대는 구덩식 돌덧널무덤의 구조나 출토된 토기의 형태 등으로 볼 때, 고령 지산동 45호분 단계인 6세기 전반대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유물의 출토량이 빈약하며 강대한 신분을 상징하는 자료도 없다. 다만 이 유적의 피장자들은 고분군의 규모가 작고 부장유물이 소량의 토기류와 농공구류로 구성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당시의 피지배층으로 생각된다.
중반계 고분군은 1㎞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반계제 고분군의 하위고분군으로 여겨진다. 출토된 유물은 고령 · 합천 등 ‘ 대가야문화권’에 속하는 유적에서 출토되는 자료들과 거의 같은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유적의 발굴은 대가야문화가 이 지역으로 파급된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