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일(梁在日: 1863~?)의 자는 태규(太圭)이다. 과거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간재(艮齋) 전우(田愚)에게 수학하였다.
저자 사후, 그의 아들인 양경석(梁敬錫)이 원고를 가지고 1940년에 유영선에게 서문을 받고 1941년에는 오진영에게 서문과 교정을 받아 이후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확한 간행 연도는 미상이다.
권1에 부(賦) 3편, 시 147수, 권2~4에 시 480수, 권5·6에 서(書) 116편, 권7에 서(序) 39편, 권8에 기(記) 22편, 발(跋) 3편, 권9·10에 제문, 권11‧12에 잡저 49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는 가을 밤에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그 감회를 바탕으로 쓴 「명공부(鳴蛩賦)」, 초시(初試) 응제(應製)로 지은 「정재양민(政在養民)」, 과거시험을 대비하여 습작으로 지은 「행유여력즉이학문(行有餘力則以學文)」이다.
시는 시체에 따라 다양하게 있으나 시체별로 분류되어 있지는 않다. 「근차간재선생동오시(謹次艮齋先生凍梧詩)」를 비롯하여 스승인 전우의 시에 차운한 작품이 많다. 「학산당성(鶴山堂成)」, 「당리재낙성(堂里齋洛城)」 등과 같이 학문을 연마하고 교유를 하였던 서재나 누대 같은 건물을 대상으로 쓴 시도 다수 보인다. 유영선 등 전우의 문하에서 함께 수학했던 이들에게 보내는 시와 최익현(崔益鉉), 김병훈(金秉勳) 등에 대한 만시도 있다.
서(書)는 학문과 관련하여 스승 전우와 주고답은 편지가 많다. 그 외 저술을 남기기를 독려하는 등의 내용으로 박수훈(朴秀勳)과 주고받은 편지와 스승 전우의 문집 출판과 관련하여 논의하는 내용으로 김세기(金世基)와 주고받은 편지 등이 있다.
서(序)는 송나라 한기(韓琦)가 화금당(畵錦堂)을 지어 경계했던 것을 본받아 만든 동래의 진신계(搢紳契)에 대한 「진신계서(搢紳契序)」, 스승 전우 사후 그의 가르침을 계승하기 위해 만든 위사계(爲師契)에 대한 「위사계서(爲師契序)」와 김용구(金容九)의 『감수록(敢收錄)』에 대한 「김군용구감수록서(金君容九敢收錄序)』 등이다.
기는 광주 운곡(雲谷)[현, 광주시 운림동 부근]에 있는 운림당(雲林堂)에 대한 「운림당기(雲林堂記)」, 김윤세(金允世)의 아내인 전주 최씨에 대한 「열부최씨정려기(烈婦崔氏旌閭記)」, 계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부친의 부스럼을 입으로 빨아 낫게 했던 정영모(鄭昶謨)에 대한 「정영모효행실기(鄭昶謨孝行實記)」 등이다. 상량문은 학산재(鶴山齋), 당리재(堂里齋), 회산재(晦山齋) 등에 대한 것들이다.
잡저에는 『논어』, 『대학』, 『중용』의 장구에 대해 상세한 문답이나 설명을 기록한 「성균관경의강록(成均館經義講錄)」, 학문을 가르쳐 인재를 양성함의 중요성을 설파한 「시무책(時務策)」,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논한 「전가낙지론(田家樂志論)」, 자신을 경계하고 반성하는 내용의 「제석자계설(除夕自戒說)」 · 「자면설(自勉說)」 · 「오순자계설(五旬自戒說)」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