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 침굉(枕肱) 윤현변(尹懸辯, 1616~1684)은 8세에 부친을 여의고 13세에 출가,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수제자 소요화상(逍遙和尙)을 지리산으로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으며, 그 뒤 오도(悟道)의 선승(禪僧)이라는 칭호를 들은 사람이다.
그의 사후에 제자인 약휴(若休)가 기록해 둔 스승의 글과 구비(口碑) 상태의 글들을 모아 문집을 만들면서 침굉이 지은 가사들 가운데 「귀산가(歸山歌)」,「태평곡(太平曲)」,「청학동가(靑鶴洞歌)」등 3편의 작품을 기록해 넣었다. 이것은 그의 문집 『침굉집(枕肱集)』에 수록된 3편의 불교가사이다.
침굉화상은 시와 문에 능통하여 생전에 자필문집(自筆文集)이 있었으나, 노자(老子)의 ‘무명위귀(無名爲貴)’를 숭상한 나머지 그것을 후세에 전하지 않으려 불 속에 넣어버렸다. 그의 사후 12년 만에 제자 약휴가 평소에 기록해 둔 스승의 글들과 구비 상태로 전해지는 것들을 합하여 숙종 21년(1696) 10월 전남 승주군 선암사(仙岩寺)에서 59매(枚)의 목판본 단권 『침굉집』을 간행하였다.
단권(單卷). 59장. 목판본인 『침굉집』은 제자인 약휴가 기록해 둔 것과 구비상태의 내용을 합하여 만든 것으로서, 와전(訛傳)된 부분과 자구의 오(誤)·탈(脫)이 적지 않은 불완전한 상태의 문서이며, 침굉의 가사들 또한 그러하다.
“십이(十二)에 출가(出家)ᄒᆞ야 십삼(十三)에 위승(爲僧)ᄒᆞ야”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귀산곡」은 작자의 생애를 기록한 일종의 자서가(自敍歌)라 할 수 있다. 인생무상과 세상의 부귀공명에 깊은 허무를 느껴 자연으로 돌아가 청빈(淸貧)을 즐기겠다는 심정을 그렸다.
「청학동가」는 작자가 지리산 청학동을 찾아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면서 느낀 감회를 적은 일종의 기행가사이고, 「태평곡」은 사이비(似而非) 승려에 대한 질책과 승려 본연의 사명인 중생제도(衆生濟度)의 염원을 노래한 작품으로 한문투가 많고 불교 술어와 불교적인 내용을 담은 특색을 갖고 있다.
침굉의 가사는 「서왕가(西往歌)」,「심우가(尋牛歌)」등 고려 말 나옹화상(懶翁和尙)의 가사, 「회심곡(回心曲)」등 조선조 서산대사의 가사 등을 잇는 불교가사의 대표작으로, 불도를 닦는 승려로서의 마음가짐과 인생관이 불교 사상을 통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