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寫經)은 베껴 쓴 경전, 곧 필사한 경전을 가리킨다. 사경은 불교를 널리 전하기 위해 경전을 서사(書寫)하는 것이며, 대승 불전에서 서사 자체를 공덕으로 강조하면서 확산되었다. 특히 『법화경(法華經)』 「법사공덕품(法師功德品)」에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해설하고 서사하는 공덕이 강조되어 서사 실천이 대승불교 교의(敎義)의 하나로 적극적으로 제시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남조 이후 종이 생산이 늘어나고 서예가 확산되면서 경전의 서사가 늘어났다.
신라 통일기에 『 화엄경(華嚴經)』 사경 작품으로 알 수 있듯이 장식 사경이 제작되었으나, 작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사경은 대부분 고려 후기의 작품이며, 국왕과 개인이 발원한 사경으로 나뉜다. 국왕이 발원한 사경은 밀교 경전과 논장부가 많으며, 개인이 발원한 사경은 『법화경』, 『화엄경』이 많이 제작되었다. 국왕이 발원한 사경은 사경원이나 금자 · 은자원에서 제작되었다.
충렬왕이 발원한 사경 작품이 가장 많은데, 1275년(충렬왕 1)에 "지원십이년이월을해고려국/왕발원사성은자대장(至元十二年二月乙亥高麗國/王發願寫成銀字大藏)"이라는 간기가 있는 『불공견삭신변진언경(不空羂索神變眞言經)』을 비롯한 7종의 사경이 알려져 있다. 충렬왕 때에는 원나라가 고려에서 사경에 능숙한 사경승을 요청하고, 사경을 할 수 있는 사경지(寫經紙)를 수입하였다.
기장군의 개인이 소장한 『감지금니묘법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권7은 마지막에 "지원십삼년병자고려국/왕발원사성금자대장(至元十三年丙子高麗國/王發願寫成金字大藏)"이라는 간기가 있다. 이 사경은 충렬왕이 1276년에 발원하여, 구마라집(鳩摩羅什)이 한역(漢譯)한 『법화경』의 제20품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부터 제24품 '묘음보살품(妙音菩薩品)'까지를 감지(紺紙)에 금니(金泥)로 필사한 사경이다. 권서(卷緖), 첨(籤), 표제(標題) 등이 근래에 수리되어 원형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법화경』은 대표적인 초기 대승 경전이며, 여러 한역본(漢譯本) 가운데 구마라집이 406년에 번역한 것이 동아시아 불교에서 유행하였다. 『법화경』은 관음 신앙을 비롯한 불교 신앙의 기본적인 전적이며, 천태종의 근본 경전이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법화경』은 우리나라 불교에서 가장 많이 간행된 경전이었다. 또한,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송의 임제종 황룡파 선승인 계환(戒環)이 저술한 『법화경요해(法華經要解)』가 고려 후기 이래 조선시대에 『법화경』의 대표적인 주석서로서 함께 간행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7은 충렬왕이 동왕 2년에 발원하여 제작한 사경 작품이고 간행 시기를 알 수 있으며, 사경, 미술사, 불교사 연구에 자료적 가치가 있다. 국가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9월 21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