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광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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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있는 조선후기 제15대 광해군과 왕비 문화유씨의 능.
광해군묘 (光海君墓)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있는 조선후기 제15대 광해군과 왕비 문화유씨의 능.
광해군비 당의는 광해군비 유씨의 초록 봉화문단 홑당의이다. 1987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던 ‘중궁유씨의 청삼’이 2006년에 다시 ‘광해군비 당의’로 수정되었다. 겉깃 안쪽의 묵 글씨에 근거하여 여자 예복용 장저고리인 광해군비의 당의로 명명되었다. 5매 수자직의 짙은 녹색 봉화문단의 문양으로 만들어졌다. 1987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7세기 전기 왕비의 예복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임진왜란 이후 버선코처럼 뾰족한 당코 깃이 달려있는 여자 옷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광해군비 당의 (光海君妃 唐衣)
광해군비 당의는 광해군비 유씨의 초록 봉화문단 홑당의이다. 1987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던 ‘중궁유씨의 청삼’이 2006년에 다시 ‘광해군비 당의’로 수정되었다. 겉깃 안쪽의 묵 글씨에 근거하여 여자 예복용 장저고리인 광해군비의 당의로 명명되었다. 5매 수자직의 짙은 녹색 봉화문단의 문양으로 만들어졌다. 1987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7세기 전기 왕비의 예복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임진왜란 이후 버선코처럼 뾰족한 당코 깃이 달려있는 여자 옷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강홍립은 조선시대 한성부우윤, 순검사, 오도원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60년(명종 15)에 태어나 1627년(인조 5)에 사망했다. 1597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을 시작했다. 광해군 재임시 명이 후금을 치기 위해 원병을 요청하자 오도원수로서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으나 연합군이 대패하자 후금에 투항했다. ‘형세를 보아 향배를 정하라’는 광해군의 밀명에 따른 것이었다. 포로로 억류되었다가 정묘호란 때 후금군의 선도로서 입국해 화의를 주선한 뒤 국내에 머물렀다. 역신으로 몰려 관직을 삭탈당했다가 사후에 복관되었다.
강홍립 (姜弘立)
강홍립은 조선시대 한성부우윤, 순검사, 오도원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60년(명종 15)에 태어나 1627년(인조 5)에 사망했다. 1597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을 시작했다. 광해군 재임시 명이 후금을 치기 위해 원병을 요청하자 오도원수로서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으나 연합군이 대패하자 후금에 투항했다. ‘형세를 보아 향배를 정하라’는 광해군의 밀명에 따른 것이었다. 포로로 억류되었다가 정묘호란 때 후금군의 선도로서 입국해 화의를 주선한 뒤 국내에 머물렀다. 역신으로 몰려 관직을 삭탈당했다가 사후에 복관되었다.
조선후기 광해군이 즉위한 1608년부터 1623년까지의 중요 사건들을 기록한 역사서.
무계사략 (戊癸事略)
조선후기 광해군이 즉위한 1608년부터 1623년까지의 중요 사건들을 기록한 역사서.
조선시대 내금위장, 가선대부 등을 역임한 무신.
문홍원 (文弘遠)
조선시대 내금위장, 가선대부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 중기 광해군 때에 수도를 교하(交河 :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로 옮기자는 논의가 제기된 사건.
교하천도론 (交河遷都論)
조선 중기 광해군 때에 수도를 교하(交河 :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로 옮기자는 논의가 제기된 사건.
수직왜인은 조선시대, 조선 정부에서 관직을 제수받은 일본인이다. 수직왜인에는 조선 정부에서 관직을 제수받고 식량과 토지, 가옥, 노비 등을 하사받아 조선에 정착하여 거주한 향화 수직왜인과 일본에 거주하면서 관직을 받고 조선과 통교상의 혜택을 입은 일본 거주 수직왜인으로 나뉜다. 이들이 받은 관직은 그 공로나 신분에 따라 사정(司正) · 사과(司果) 등 미관말직에서부터 당상관에 이르렀으며, 이들에게는 관직에 상응하는 예우와 관복이 내려졌다.
수직왜인 (受職倭人)
수직왜인은 조선시대, 조선 정부에서 관직을 제수받은 일본인이다. 수직왜인에는 조선 정부에서 관직을 제수받고 식량과 토지, 가옥, 노비 등을 하사받아 조선에 정착하여 거주한 향화 수직왜인과 일본에 거주하면서 관직을 받고 조선과 통교상의 혜택을 입은 일본 거주 수직왜인으로 나뉜다. 이들이 받은 관직은 그 공로나 신분에 따라 사정(司正) · 사과(司果) 등 미관말직에서부터 당상관에 이르렀으며, 이들에게는 관직에 상응하는 예우와 관복이 내려졌다.
조선후기 제15대 광해군의 총애를 받아 권세를 누린 궁녀.
김개시 (金介屎)
조선후기 제15대 광해군의 총애를 받아 권세를 누린 궁녀.
『북보(北譜)』는 19세기 후반 소북파에 속한 집안의 계보를 모아 수록한 당파보이다. 소북파(小北派)는 같은 북인(北人)이면서도 광해군 때 대북파(大北派)의 비인륜적인 여러 정치 행태에 비판을 제기하고 저항하여 피해를 입거나 은거한 양심적인 인사들 및 그 후예들을 가리킨다. 28개의 성에 69집안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후 대북(大北)은 광해군 정권의 붕괴와 함께 당파로서 사라졌지만, 소북(小北)은 끝까지 명맥을 유지하였다.
북보 (北譜)
『북보(北譜)』는 19세기 후반 소북파에 속한 집안의 계보를 모아 수록한 당파보이다. 소북파(小北派)는 같은 북인(北人)이면서도 광해군 때 대북파(大北派)의 비인륜적인 여러 정치 행태에 비판을 제기하고 저항하여 피해를 입거나 은거한 양심적인 인사들 및 그 후예들을 가리킨다. 28개의 성에 69집안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후 대북(大北)은 광해군 정권의 붕괴와 함께 당파로서 사라졌지만, 소북(小北)은 끝까지 명맥을 유지하였다.
북인은 조선시대 광해군 대 집권 세력이었던 붕당의 한 정파이다. 동인은 분당 이후 임진왜란 종전까지 20여 년 동안 정국을 주도했는데, 주류는 퇴계학파, 비주류는 남명 · 화담학파였다. 동인 비주류 세력이었던 북인은 1589년 기축옥사 당시 서인으로부터 큰 피해를 입었지만, 임진왜란 당시 적극적인 의병 참여와 주전론(主戰論)의 제기를 통해 세력을 키웠다. 광해군을 줄곧 지지했던 이들은 광해군이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집권 세력이 되었다.
북인 (北人)
북인은 조선시대 광해군 대 집권 세력이었던 붕당의 한 정파이다. 동인은 분당 이후 임진왜란 종전까지 20여 년 동안 정국을 주도했는데, 주류는 퇴계학파, 비주류는 남명 · 화담학파였다. 동인 비주류 세력이었던 북인은 1589년 기축옥사 당시 서인으로부터 큰 피해를 입었지만, 임진왜란 당시 적극적인 의병 참여와 주전론(主戰論)의 제기를 통해 세력을 키웠다. 광해군을 줄곧 지지했던 이들은 광해군이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집권 세력이 되었다.
『선조실록』은 1567년(선조 즉위) 7월부터 1608년(선조 41) 1월까지 선조 재위 40년 7개월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다. 221권 116책으로 된 인본(印本)으로, 1609년(광해군 1) 7월부터 편찬하기 시작하여 1617년(광해군 9)에 편찬을 마쳤다. 처음에는 이항복(李恒福)이 총재관(摠裁官)으로 편찬했고, 계축옥사 전후로 이이첨(李爾瞻), 기자헌(奇自獻)이 편찬을 주관하였는데, 사론에 왜곡이 많아 후일 실록이 수정되었다.
선조실록 (宣祖實錄)
『선조실록』은 1567년(선조 즉위) 7월부터 1608년(선조 41) 1월까지 선조 재위 40년 7개월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다. 221권 116책으로 된 인본(印本)으로, 1609년(광해군 1) 7월부터 편찬하기 시작하여 1617년(광해군 9)에 편찬을 마쳤다. 처음에는 이항복(李恒福)이 총재관(摠裁官)으로 편찬했고, 계축옥사 전후로 이이첨(李爾瞻), 기자헌(奇自獻)이 편찬을 주관하였는데, 사론에 왜곡이 많아 후일 실록이 수정되었다.
조선 후기에, 회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소 (李소)
조선 후기에, 회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승려.
성지 (性智)
조선후기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승려.
영창대군은 조선후기 제14대 선조의 열네째 아들인 왕자이다. 1606년(선조 39)에 태어나 1614년(광해군 6)에 사망했다. 선조의 아들 중 유일한 정비 소생으로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선조가 세자를 광해군에서 영창대군으로 바꾸려 하자 소북파가 이에 동조했다. 그러나 선조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실현되지 못했고 영창대군은 대북파의 미움만 사게 되었다. 1613년 역모사건이 일어나자 서인으로 강등되어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 후로도 조야에서 구원의 상소가 이어지자 대북파 이이첨의 명을 받은 강화부사 정항이 이듬해에 살해했다.
영창대군 (永昌大君)
영창대군은 조선후기 제14대 선조의 열네째 아들인 왕자이다. 1606년(선조 39)에 태어나 1614년(광해군 6)에 사망했다. 선조의 아들 중 유일한 정비 소생으로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선조가 세자를 광해군에서 영창대군으로 바꾸려 하자 소북파가 이에 동조했다. 그러나 선조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실현되지 못했고 영창대군은 대북파의 미움만 사게 되었다. 1613년 역모사건이 일어나자 서인으로 강등되어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 후로도 조야에서 구원의 상소가 이어지자 대북파 이이첨의 명을 받은 강화부사 정항이 이듬해에 살해했다.
조선 후기에, 광해군의 폭정과 조정을 비판하여 처형된 유생.
이창록 (李昌祿)
조선 후기에, 광해군의 폭정과 조정을 비판하여 처형된 유생.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호종하는 데 공을 세운 관원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위성공신 (衛聖功臣)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호종하는 데 공을 세운 관원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었던 조선후기 광해군의 세자빈 간택 관련 주택. 잠저(潛邸)·별궁.
이현궁 (梨峴宮)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었던 조선후기 광해군의 세자빈 간택 관련 주택. 잠저(潛邸)·별궁.
조선시대 예조판서, 대제학,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이호민 (李好閔)
조선시대 예조판서, 대제학,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서울특별시 인왕산(仁王山)에 있었던 조선후기 제15대 광해군이 건립한 궁궐.
인경궁 (仁慶宮)
서울특별시 인왕산(仁王山)에 있었던 조선후기 제15대 광해군이 건립한 궁궐.
조선후기 문신 박정현이 1609년 11월부터 1635년 8월까지의 사건을 조보·소초 등을 참고하여 기록한 실기.
응천일록 (凝川日錄)
조선후기 문신 박정현이 1609년 11월부터 1635년 8월까지의 사건을 조보·소초 등을 참고하여 기록한 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