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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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감리교에서 서울에 제일 먼저 세운 감리교 교회.
광희문교회 (光熙門敎會)
남 감리교에서 서울에 제일 먼저 세운 감리교 교회.
1906년 1월 평양 장대현교회(章臺峴敎會)에서 분립하여 평양의 닭골[鷄洞]산정현에 세워진 장로교회.
산정현교회 (山亭峴敎會)
1906년 1월 평양 장대현교회(章臺峴敎會)에서 분립하여 평양의 닭골[鷄洞]산정현에 세워진 장로교회.
영락교회는 서울특별시 중구 저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의 교회이다. 1945년 12월 2일 한경직 목사에 의해 베다니전도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 교회는 북한 서북지방 피난민을 수용하며 빠르게 성장하였다. 월남 피난민 교회의 성격이 강해 신탁통치 반대와 반공운동에 앞장섰으며 피난민 구제와 교육 및 사회복지에도 힘써 왔다. 1995년 창립 50주 년을 맞이하여 북한 선교에 중점을 두면서도 사회사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영락교회 (永樂敎會)
영락교회는 서울특별시 중구 저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의 교회이다. 1945년 12월 2일 한경직 목사에 의해 베다니전도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 교회는 북한 서북지방 피난민을 수용하며 빠르게 성장하였다. 월남 피난민 교회의 성격이 강해 신탁통치 반대와 반공운동에 앞장섰으며 피난민 구제와 교육 및 사회복지에도 힘써 왔다. 1995년 창립 50주 년을 맞이하여 북한 선교에 중점을 두면서도 사회사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예수교대한성결교회는 1962년 설립된 한국 성결교의 한 교단이다. 1921년 일본에서 설립된 조선예수교동양선교회성결교회 교단에 연원을 두고 있다. 1943년 일제 탄압으로 강제 해산되었다가 해방 후 기독교대한성결교회로 재건되었으나 신앙 노선으로 인한 혼란을 겪다가 1962년에 기존 교단에서 이탈하여 현 교단명이 설립되었다. 교육 기관으로 성결대학교, 성결교신대원, 총회성결교신학교가 있다.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예수敎大韓聖潔敎會)
예수교대한성결교회는 1962년 설립된 한국 성결교의 한 교단이다. 1921년 일본에서 설립된 조선예수교동양선교회성결교회 교단에 연원을 두고 있다. 1943년 일제 탄압으로 강제 해산되었다가 해방 후 기독교대한성결교회로 재건되었으나 신앙 노선으로 인한 혼란을 겪다가 1962년에 기존 교단에서 이탈하여 현 교단명이 설립되었다. 교육 기관으로 성결대학교, 성결교신대원, 총회성결교신학교가 있다.
우리 민족의 주체성과 기독교의 토착신앙화를 표방하며, 기성교회에 대하여 자치를 선언하고 분립한 교회.
조선기독교회 (朝鮮基督敎會)
우리 민족의 주체성과 기독교의 토착신앙화를 표방하며, 기성교회에 대하여 자치를 선언하고 분립한 교회.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벽돌로 마감된 고딕풍의 건물로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위치한 교회건물. 근대건물.
서울 정동교회 (서울 貞洞敎會)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벽돌로 마감된 고딕풍의 건물로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위치한 교회건물. 근대건물.
정동제일교회는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이다. 1885년 아펜젤러 목사 사택에서 성찬식을 거행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897년에 예배처로서 고딕양식의 벧엘예배당을 건립하였고, 배재학당·이화학당, 그리고 정동시병원과 약국소를 관할하며 한국의 선교와 근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교인들은 한말 계몽 운동과 3·1운동에 앞장섰다. 본당은 1979년에 감리교 선교 100주년 기념 성전으로 건축되었다. 정동제일교회는 순교자적 신앙과 선교 정신으로 민족과 교회를 섬겨 온 한국개신교 최초의 교회이다.
정동제일교회 (貞洞第一敎會)
정동제일교회는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이다. 1885년 아펜젤러 목사 사택에서 성찬식을 거행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897년에 예배처로서 고딕양식의 벧엘예배당을 건립하였고, 배재학당·이화학당, 그리고 정동시병원과 약국소를 관할하며 한국의 선교와 근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교인들은 한말 계몽 운동과 3·1운동에 앞장섰다. 본당은 1979년에 감리교 선교 100주년 기념 성전으로 건축되었다. 정동제일교회는 순교자적 신앙과 선교 정신으로 민족과 교회를 섬겨 온 한국개신교 최초의 교회이다.
성령과 침례를 중시하는 개신교 오순절 계통의 한 교단.
한국연합오순절교회 (韓國聯合五旬節敎會)
성령과 침례를 중시하는 개신교 오순절 계통의 한 교단.
내리교회는 인천지역에 설립된 최초 개신교회이다. 선교사 아펜젤러가 1885년 6월 20일~7월 29일까지 인천에 머물면서 선교를 준비했다. 1890년 안골(내리)에 초가집을 마련하고 집회를 시작하였다. 1901년 내리 언덕 용동에 ‘웨슬리회당’ 통상 ‘내리교회’를 건축하였다. 1904년 한국인 목사 김기범이 내리교회를 담임하였다. 1910년 이후 내리교회는 인천과 강화, 연안, 해주 지역 선교의 거점이 되었다. 1985년 1백 주년 기념예배당을 건축하였고, 『내리교회 100년사』를 출간하였다. 2013년에는 십자형 ‘웨슬리예배당’을 복원 건축하였다.
내리교회 (內里敎會)
내리교회는 인천지역에 설립된 최초 개신교회이다. 선교사 아펜젤러가 1885년 6월 20일~7월 29일까지 인천에 머물면서 선교를 준비했다. 1890년 안골(내리)에 초가집을 마련하고 집회를 시작하였다. 1901년 내리 언덕 용동에 ‘웨슬리회당’ 통상 ‘내리교회’를 건축하였다. 1904년 한국인 목사 김기범이 내리교회를 담임하였다. 1910년 이후 내리교회는 인천과 강화, 연안, 해주 지역 선교의 거점이 되었다. 1985년 1백 주년 기념예배당을 건축하였고, 『내리교회 100년사』를 출간하였다. 2013년에는 십자형 ‘웨슬리예배당’을 복원 건축하였다.
원주제일교회는 1905년 강원도 영서지방에 최초로 설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 동부연회 원주서지방 소속 교회이다. 1905년 무스 선교사에 의해 원주읍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남감리회에서 북장로회, 다시 북감리회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1914년 중등 교육기관인 의정학교를, 1916년에는 정신유치원을 설립하였으며, 같은 해(1916년) 붉은 벽돌 예배당을 신축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예배당이 전소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1955년 재건하였다. 1995년 새로운 예배당을 봉헌하였으며, 국내에 20개의 지(支)교회를 개척하고 해외 선교에도 힘을 쏟았다.
원주제일교회 (原州第一敎會)
원주제일교회는 1905년 강원도 영서지방에 최초로 설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 동부연회 원주서지방 소속 교회이다. 1905년 무스 선교사에 의해 원주읍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남감리회에서 북장로회, 다시 북감리회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1914년 중등 교육기관인 의정학교를, 1916년에는 정신유치원을 설립하였으며, 같은 해(1916년) 붉은 벽돌 예배당을 신축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예배당이 전소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1955년 재건하였다. 1995년 새로운 예배당을 봉헌하였으며, 국내에 20개의 지(支)교회를 개척하고 해외 선교에도 힘을 쏟았다.
종교교회는 1900년 설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종로지방 소속 교회이다. 미국 남감리회의 여선교사 캠벨 부인이 1900년 부활주일을 기해 집회를 시작하며 잣골교회라고 하였다. 여성 중심의 학교 교회인 잣골교회가 1908년 4월 도렴동에 벽돌예배당을 건축하고 ‘종교교회’라고 이름하였다. 잣골교회를 지켰던 교인들은 후에 창성동 자수교 아래 자리 잡으면서 ‘자교교회’라 하였다. 종교교회에는 윤치호 등의 교육 운동가들이 출석하고 배화학당 교사들이 출석하면서 청년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종교교회 (琮橋敎會)
종교교회는 1900년 설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종로지방 소속 교회이다. 미국 남감리회의 여선교사 캠벨 부인이 1900년 부활주일을 기해 집회를 시작하며 잣골교회라고 하였다. 여성 중심의 학교 교회인 잣골교회가 1908년 4월 도렴동에 벽돌예배당을 건축하고 ‘종교교회’라고 이름하였다. 잣골교회를 지켰던 교인들은 후에 창성동 자수교 아래 자리 잡으면서 ‘자교교회’라 하였다. 종교교회에는 윤치호 등의 교육 운동가들이 출석하고 배화학당 교사들이 출석하면서 청년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칠곡교회는 1992년 북한에 설립된 개신교 교회이다. 1980년대 말 북한은 해외 방문자들에게 예배드릴 장소를 마련해 주고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칠곡교회를 재건하였다. 칠곡교회는 김일성의 외조부인 강돈욱이 시무 장로로 재직한 교회이고, 어머니인 강반석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다녔던 곳이며, 김일성 자신도 어렸을 때 이 교회에 다녔다고 한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 소속되어 있다.
칠곡교회 (七谷敎會)
칠곡교회는 1992년 북한에 설립된 개신교 교회이다. 1980년대 말 북한은 해외 방문자들에게 예배드릴 장소를 마련해 주고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칠곡교회를 재건하였다. 칠곡교회는 김일성의 외조부인 강돈욱이 시무 장로로 재직한 교회이고, 어머니인 강반석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다녔던 곳이며, 김일성 자신도 어렸을 때 이 교회에 다녔다고 한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 소속되어 있다.
강화중앙교회는 1900년 강화도에 설립된 감리교회이다. 홍의교회에 다니던 주선일과 그의 인척들이 1900년 9월 1일에 강화읍 신문리 144번지에 6칸 반짜리 초가집을 사 예배처로 사용해 첫 예배를 드렸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교회 부설 잠두의숙이 신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으며, 1908년 정식 학교가 되면서 ‘사립제일합일학교’로 개칭되었다. 1909년에는 부설 여자소학교인 ‘제일합일여학교’가 설립되었다. 교회 명칭은 강화읍잠두교회에서 강화읍교회로 바뀌었으며, 1976년에 현재의 명칭인 강화중앙교회로 개칭되었다.
강화중앙교회 (江華中央敎會)
강화중앙교회는 1900년 강화도에 설립된 감리교회이다. 홍의교회에 다니던 주선일과 그의 인척들이 1900년 9월 1일에 강화읍 신문리 144번지에 6칸 반짜리 초가집을 사 예배처로 사용해 첫 예배를 드렸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교회 부설 잠두의숙이 신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으며, 1908년 정식 학교가 되면서 ‘사립제일합일학교’로 개칭되었다. 1909년에는 부설 여자소학교인 ‘제일합일여학교’가 설립되었다. 교회 명칭은 강화읍잠두교회에서 강화읍교회로 바뀌었으며, 1976년에 현재의 명칭인 강화중앙교회로 개칭되었다.
충현교회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역삼동)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이다. 19,835㎡의 대지에 본당, 교육관 등 1만 평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고딕식 외관 형태를 갖춘 대형 교회이다. 2012년 9월 현재 신자 수는 22,000명이다. 김창인 전도사가 1952년 부산에 동일교회를 개척하였다. 동일교회는 1956년 8월 서울 충무로에 충현교회를 세웠다. 김창인 목사가 1958년부터 1987년까지 시무하였다. 1997년 김창인 목사의 아들 김성관 목사가 담임 목사가 되면서 교회 세습 문제가 발생하였다. 2013~2016까지 김동하 목사가 시무하였다.
충현교회 (忠峴敎會)
충현교회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역삼동)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이다. 19,835㎡의 대지에 본당, 교육관 등 1만 평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고딕식 외관 형태를 갖춘 대형 교회이다. 2012년 9월 현재 신자 수는 22,000명이다. 김창인 전도사가 1952년 부산에 동일교회를 개척하였다. 동일교회는 1956년 8월 서울 충무로에 충현교회를 세웠다. 김창인 목사가 1958년부터 1987년까지 시무하였다. 1997년 김창인 목사의 아들 김성관 목사가 담임 목사가 되면서 교회 세습 문제가 발생하였다. 2013~2016까지 김동하 목사가 시무하였다.
구암교회는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영명길 22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이다. 구암교회의 설립 시기에 대해서는 1893년 설, 1896년 설, 1899년 설이 있다. 이는 전킨과 드루 선교사의 선교활동 시작을 기점으로 삼느냐, 교회를 설립한 것을 기점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1910년 오인묵이 장로로 장립되고, 1913년 김필수 목사가 구암교회 당회장을 겸했다. 1915년 구암교회 교인의 수는 499명으로 증가하였고, 군산 지방의 모교회로서 역할을 하였다. 2009년 새로 교회를 건축하여 ‘호남선교기념예배당’으로 명명하였다.
구암교회 (九巖敎會)
구암교회는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영명길 22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이다. 구암교회의 설립 시기에 대해서는 1893년 설, 1896년 설, 1899년 설이 있다. 이는 전킨과 드루 선교사의 선교활동 시작을 기점으로 삼느냐, 교회를 설립한 것을 기점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1910년 오인묵이 장로로 장립되고, 1913년 김필수 목사가 구암교회 당회장을 겸했다. 1915년 구암교회 교인의 수는 499명으로 증가하였고, 군산 지방의 모교회로서 역할을 하였다. 2009년 새로 교회를 건축하여 ‘호남선교기념예배당’으로 명명하였다.
홍의교회는 1896년 강화도에 두 번째로 세워진 교회이다. 1896년 훈장 박능일(朴能一)이 교산교회의 김상임을 만나고 돌아와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초기 홍의교회 교인은 7명이었다. 이들은 성경에서 중요한 단어 7글자를 고르고, 돌림자로 한 일(一)을 선택하여 박능일, 권신일, 김경일 등으로 개명하였다. 1년 만에 교인 수가 80여 명에 이르자 토담집 예배당을 세웠다. 1935년 일제에 의해 교회가 폐쇄되었다. 1953년 교회를 재건하였다. 1982년 붉은 벽돌 예배당으로 새롭게 건축하였다. 2008년 역사전시실을 개설하였다.
홍의교회 (紅衣敎會)
홍의교회는 1896년 강화도에 두 번째로 세워진 교회이다. 1896년 훈장 박능일(朴能一)이 교산교회의 김상임을 만나고 돌아와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초기 홍의교회 교인은 7명이었다. 이들은 성경에서 중요한 단어 7글자를 고르고, 돌림자로 한 일(一)을 선택하여 박능일, 권신일, 김경일 등으로 개명하였다. 1년 만에 교인 수가 80여 명에 이르자 토담집 예배당을 세웠다. 1935년 일제에 의해 교회가 폐쇄되었다. 1953년 교회를 재건하였다. 1982년 붉은 벽돌 예배당으로 새롭게 건축하였다. 2008년 역사전시실을 개설하였다.
1938년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설립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교회.
병촌 성결교회 (餠村 聖潔敎會)
1938년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설립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교회.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에 위치한 한국기독교 장로회 소속의 교회.
향린교회 (香隣敎會)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에 위치한 한국기독교 장로회 소속의 교회.
광주양림교회는 선교사 유진 벨(Eugene Bell)이 창립한 광주교회(광주금정교회)에서 1924년 분립한 개신교 교회이다. 1904년 유진 벨(E. Bell)이 양림리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양림교회). 1906년 북문 안으로 이전하며 북문안교회로 개칭했다. 1919년 교인들의 3·1운동 참여로 교회가 폐쇄되자 남문 밖에 교회를 세웠다(남문밖교회). 1920년 북문안교회(현 광주중앙교회)가 분립했다. 1924년 금정교회(현 광주제일교회)와 양림교회가 분립했다. 현재 양림동에는 3개 교단(통합, 합동, 기장) 소속 양림교회가 있다.
광주양림교회 (光州楊林敎會)
광주양림교회는 선교사 유진 벨(Eugene Bell)이 창립한 광주교회(광주금정교회)에서 1924년 분립한 개신교 교회이다. 1904년 유진 벨(E. Bell)이 양림리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양림교회). 1906년 북문 안으로 이전하며 북문안교회로 개칭했다. 1919년 교인들의 3·1운동 참여로 교회가 폐쇄되자 남문 밖에 교회를 세웠다(남문밖교회). 1920년 북문안교회(현 광주중앙교회)가 분립했다. 1924년 금정교회(현 광주제일교회)와 양림교회가 분립했다. 현재 양림동에는 3개 교단(통합, 합동, 기장) 소속 양림교회가 있다.
수촌교회는 1905년 3월 10일 한국에 진출한 미국 북감리회의 선교 정책에 따라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에 설립된 교회로 교인들이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이후 일제에 의해 교인이 학살되고 교당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은 교회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의 교회는 주변의 제암리 교회가 있다. 스코필드(F. W. Scofield), 헨리 정(Henry Chung)에 의해 일제의 탄압과 교회의 참상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현재 기독교대한감리회 중부연회 조암지방에 소속되어 있다.
수촌교회 (水村敎會)
수촌교회는 1905년 3월 10일 한국에 진출한 미국 북감리회의 선교 정책에 따라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에 설립된 교회로 교인들이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이후 일제에 의해 교인이 학살되고 교당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은 교회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의 교회는 주변의 제암리 교회가 있다. 스코필드(F. W. Scofield), 헨리 정(Henry Chung)에 의해 일제의 탄압과 교회의 참상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현재 기독교대한감리회 중부연회 조암지방에 소속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