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독립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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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독립협회지장은 1897년 독립협회에서 제작하여 사용하던 나무 인장이다. 독립협회는 1896년 7월에 설립되어 1898년 12월 해산될 때까지 자주독립, 자주국권, 자유민권 등의 운동을 주도하였던 사회정치단체이다. 독립협회에서 각종 공문서 등에 사용하던 인장으로, 1897년 10월 12일에 제작하였다. 2013년 8월 27일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한국독립협회 지장 (大韓國獨立協會 之章)
대한국독립협회지장은 1897년 독립협회에서 제작하여 사용하던 나무 인장이다. 독립협회는 1896년 7월에 설립되어 1898년 12월 해산될 때까지 자주독립, 자주국권, 자유민권 등의 운동을 주도하였던 사회정치단체이다. 독립협회에서 각종 공문서 등에 사용하던 인장으로, 1897년 10월 12일에 제작하였다. 2013년 8월 27일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법부협판, 경위원총관, 경무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정근 (金禎根)
조선 후기에, 법부협판, 경위원총관, 경무사 등을 역임한 문신.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속하였던 한국 근대 국가이다. 갑오개혁으로 조선 왕조 체제가 해체된 후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새롭게 황제국을 선포하고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고쳤다. 중국에 대한 오랜 사대외교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 독립국으로서 근대 주권 국가를 지향하면서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1910년 일제에 의해 병합되었다.
대한제국 (大韓帝國)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속하였던 한국 근대 국가이다. 갑오개혁으로 조선 왕조 체제가 해체된 후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새롭게 황제국을 선포하고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고쳤다. 중국에 대한 오랜 사대외교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 독립국으로서 근대 주권 국가를 지향하면서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1910년 일제에 의해 병합되었다.
대한제국기 농상공부 광산국장, 남양군수 등을 역임한 관료.
방한덕 (方漢德)
대한제국기 농상공부 광산국장, 남양군수 등을 역임한 관료.
1896년 독립협회가 서울의 독립문 일대에 조성한 공원.
독립공원 (獨立公園)
1896년 독립협회가 서울의 독립문 일대에 조성한 공원.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있는 대한제국기 독립협회가 사무실로 사용했던 건축물. 기념관·근대건축물.
독립관 (獨立館)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있는 대한제국기 독립협회가 사무실로 사용했던 건축물. 기념관·근대건축물.
개항기 때,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에서 활동하며 정부에게 개혁을 요구하는 개혁개방운동을 전개한 관리·독립운동가.
고영근 (高永根)
개항기 때,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에서 활동하며 정부에게 개혁을 요구하는 개혁개방운동을 전개한 관리·독립운동가.
대한제국기 독립협회 제의, 사법위원서기, 협성회 회장을 역임한 사회운동가.
양홍묵 (梁鴻默)
대한제국기 독립협회 제의, 사법위원서기, 협성회 회장을 역임한 사회운동가.
대한제국기 「공립신보」 창간, 주필로 활동한 언론인. 애국계몽운동가.
송석준 (宋錫俊)
대한제국기 「공립신보」 창간, 주필로 활동한 언론인. 애국계몽운동가.
수구당(守舊黨)은 19세기 말 명성황후와 민씨 척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보수적 정치 세력으로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당과 대립하였고, 갑오개혁과 독립협회가 주도했던 개혁에 반대하며 구체제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선에서 일부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정치 세력이다. 외교적으로 친청(親淸) 노선을 취하며 청국에서 추진되던 개혁을 본받아 온건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따라서 개화당(開化黨) 과 대립하였으며, 갑신정변 실패 후 다시 집권하였다. 이후에도 구체제를 토대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부 개혁만을 추진하려 하였다.
수구당 (守舊黨)
수구당(守舊黨)은 19세기 말 명성황후와 민씨 척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보수적 정치 세력으로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당과 대립하였고, 갑오개혁과 독립협회가 주도했던 개혁에 반대하며 구체제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선에서 일부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정치 세력이다. 외교적으로 친청(親淸) 노선을 취하며 청국에서 추진되던 개혁을 본받아 온건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따라서 개화당(開化黨) 과 대립하였으며, 갑신정변 실패 후 다시 집권하였다. 이후에도 구체제를 토대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부 개혁만을 추진하려 하였다.
개항기 내무아문참의, 법부협판 등을 역임한 관료.
이원긍 (李源兢)
개항기 내무아문참의, 법부협판 등을 역임한 관료.
대한제국기 부사과, 시독관, 장례원상례 등을 역임한 관료.
윤하영 (尹夏榮)
대한제국기 부사과, 시독관, 장례원상례 등을 역임한 관료.
전덕기는 독립협회, 황성기독교청년회, 신민회에서 활동한 한말 대표적인 기독교 민족 운동가이다. 미감리회 선교사 스크랜턴 가정에 고용인으로 들어갔다가 성경을 읽고 기독교로 개종한 후 남대문 상동교회 전도사와 목사가 되어 남대문시장의 민중 계층을 중심으로 목회하였다. 독립협회와 황성기독교청년회, 신민회 중심 인물로 활동하면서 한말의 대표적인 기독교 민족운동가가 되었다.
전덕기 (全德基)
전덕기는 독립협회, 황성기독교청년회, 신민회에서 활동한 한말 대표적인 기독교 민족 운동가이다. 미감리회 선교사 스크랜턴 가정에 고용인으로 들어갔다가 성경을 읽고 기독교로 개종한 후 남대문 상동교회 전도사와 목사가 되어 남대문시장의 민중 계층을 중심으로 목회하였다. 독립협회와 황성기독교청년회, 신민회 중심 인물로 활동하면서 한말의 대표적인 기독교 민족운동가가 되었다.
의관은 갑오개혁 때 설치된 중추원 소속의 관직이다. 중추원은 원래 실직한 고위 관료들의 대기 발령처로 설립되었으나, 군국기무처가 폐지된 후 그 기능을 일부 계승하여 법률 칙령안과 내각에서 요청한 사항을 자문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형식적인 자문에 그쳤으므로, 1898년 독립협회는 중추원을 개편하여 의회와 같은 기능을 부여하자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중추원 의관 중 반수를 인민협회(독립협회)에서 천거하는 개정안이 만들어졌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다.
의관 (議官)
의관은 갑오개혁 때 설치된 중추원 소속의 관직이다. 중추원은 원래 실직한 고위 관료들의 대기 발령처로 설립되었으나, 군국기무처가 폐지된 후 그 기능을 일부 계승하여 법률 칙령안과 내각에서 요청한 사항을 자문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형식적인 자문에 그쳤으므로, 1898년 독립협회는 중추원을 개편하여 의회와 같은 기능을 부여하자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중추원 의관 중 반수를 인민협회(독립협회)에서 천거하는 개정안이 만들어졌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다.
대한제국기 농상공부대신, 강원도관찰사, 군부대신 등을 역임한 관료.
이종건 (李鍾健)
대한제국기 농상공부대신, 강원도관찰사, 군부대신 등을 역임한 관료.
중추원은 1894년에 설립되어 일제강점기까지 존속하였으며, 한일합병 전에는 초기 의회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의 자문 역할을 한 기관이다. 1894년, 갑오개혁기에 정치개혁과 관제개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에는 독립협회, 만만공동회의 활약에 힘입어 국정에 민의를 반영하는 의회적 성격을 띠었으며, 한일병합 후에는 조선총독의 자문기관으로 변화하였다. 이 외에 구관습을 조사하는 업무를 하였다. 문화정치기에 민심수습책의 일환으로 중추원에 지역참의를 설치하였다.
중추원 (中樞院)
중추원은 1894년에 설립되어 일제강점기까지 존속하였으며, 한일합병 전에는 초기 의회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의 자문 역할을 한 기관이다. 1894년, 갑오개혁기에 정치개혁과 관제개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에는 독립협회, 만만공동회의 활약에 힘입어 국정에 민의를 반영하는 의회적 성격을 띠었으며, 한일병합 후에는 조선총독의 자문기관으로 변화하였다. 이 외에 구관습을 조사하는 업무를 하였다. 문화정치기에 민심수습책의 일환으로 중추원에 지역참의를 설치하였다.
최병헌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정동제일교회 담임 목사 겸 신학자, 언론인, 정미의병 선유사로 활동하였다. 감리교 최초의 한국인 신학자이자 목회자로 정동교회를 담임하여 교회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목회 활동뿐만 아니라 근대적 선각자로 한말 언론인, 독립협회와 기독교청년회(YMCA) 지도자로도 활동하였다. 또한 농상공부 관료, 대한제국 선유사로 충청남도에 파견되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선유사로 파견되어 정미의병과 백성의 실태를 보고한 부분은 논란과 연구의 대상이지만 보고문 자체가 소중한 역사 자료란 의의가 있다.
최병헌 (崔炳憲)
최병헌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정동제일교회 담임 목사 겸 신학자, 언론인, 정미의병 선유사로 활동하였다. 감리교 최초의 한국인 신학자이자 목회자로 정동교회를 담임하여 교회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목회 활동뿐만 아니라 근대적 선각자로 한말 언론인, 독립협회와 기독교청년회(YMCA) 지도자로도 활동하였다. 또한 농상공부 관료, 대한제국 선유사로 충청남도에 파견되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선유사로 파견되어 정미의병과 백성의 실태를 보고한 부분은 논란과 연구의 대상이지만 보고문 자체가 소중한 역사 자료란 의의가 있다.
입헌정체론은 근대국가의 수립 이후 주권 국가의 권력 분립이나 권력 통제를 규정하는 정치체제이다. 국헌, 국제, 약헌, 입헌론라고도 한다. 서양은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시민의 자유와 권리에 바탕을 둔 근대 입헌 국가를 형성했다. 이러한 서양의 입헌제도에 대해 『만국공법』, 『해국도지』, 『이언』을 통해서 일부 소개되었다. 입헌 정체 논의는 대한제국기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전개되다가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탄되면서 중단되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제정 공포하여 국민주권에 기초한 민주공화제가 정착되었다.
입헌정체론 (立憲政體論)
입헌정체론은 근대국가의 수립 이후 주권 국가의 권력 분립이나 권력 통제를 규정하는 정치체제이다. 국헌, 국제, 약헌, 입헌론라고도 한다. 서양은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시민의 자유와 권리에 바탕을 둔 근대 입헌 국가를 형성했다. 이러한 서양의 입헌제도에 대해 『만국공법』, 『해국도지』, 『이언』을 통해서 일부 소개되었다. 입헌 정체 논의는 대한제국기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전개되다가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탄되면서 중단되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제정 공포하여 국민주권에 기초한 민주공화제가 정착되었다.
홍정후는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을 지낸 정치인이자 독립협회 회원이다. 1898년 만민공동회 청년 연사로 한로은행(韓露銀行) 내막을 폭로하고 재정 고문과 군사 교관의 부당성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였다. 중추원 관제개혁 때는 독립협회 대표의 한 사람으로 중추원의관이 되었다.
홍정후 (洪正厚)
홍정후는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을 지낸 정치인이자 독립협회 회원이다. 1898년 만민공동회 청년 연사로 한로은행(韓露銀行) 내막을 폭로하고 재정 고문과 군사 교관의 부당성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였다. 중추원 관제개혁 때는 독립협회 대표의 한 사람으로 중추원의관이 되었다.
황국협회(皇國協會)는 1898년 독립협회(獨立協會) 활동에 대항하기 위해 보부상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어용단체이다. 1898년 6월 보부상들이 부국강병(富國强兵), 문명개화(文明開化), 충군애국(忠君愛國)을 기치로 농상공 실업을 진흥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결성하였다. 보수파 대신들에게 동원되어 독립협회의 활동을 방해하고,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공격하여 해산시키려 하였다. 1898년 12월 독립협회와 함께 황국협회도 해산되었으나, 1899년 3월 상무회사(商務會社)가 설립되어 보부상들의 활동을 이어갔다.
황국협회 (皇國協會)
황국협회(皇國協會)는 1898년 독립협회(獨立協會) 활동에 대항하기 위해 보부상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어용단체이다. 1898년 6월 보부상들이 부국강병(富國强兵), 문명개화(文明開化), 충군애국(忠君愛國)을 기치로 농상공 실업을 진흥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결성하였다. 보수파 대신들에게 동원되어 독립협회의 활동을 방해하고,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공격하여 해산시키려 하였다. 1898년 12월 독립협회와 함께 황국협회도 해산되었으나, 1899년 3월 상무회사(商務會社)가 설립되어 보부상들의 활동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