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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부석 설화(望夫石 說話)」는 멀리 떠난 남편이 약속한 기한에도 돌아오지 않자 기다리던 아내가 돌이 되었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아내가 선 채로 그대로 돌이 된 유형, 아내가 죽은 후에 돌이 된 유형, 아내가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은 자리에 돌을 세운 유형, 원래 돌이 있었고 그 돌 곁에서 남편을 기다려서 '망부석'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내용의 유형 등이 있다.
망부석 설화 (望夫石 說話)
「망부석 설화(望夫石 說話)」는 멀리 떠난 남편이 약속한 기한에도 돌아오지 않자 기다리던 아내가 돌이 되었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아내가 선 채로 그대로 돌이 된 유형, 아내가 죽은 후에 돌이 된 유형, 아내가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은 자리에 돌을 세운 유형, 원래 돌이 있었고 그 돌 곁에서 남편을 기다려서 '망부석'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내용의 유형 등이 있다.
염전은 바닷물을 농축시켜 소금을 만들기 위하여 자연 증발지로 구획된 토지이다. 천일염전·소금강 염전·돌소금 염전 등으로 나누는데 천일염전이 가장 널리 이용되었다. 천일염전은 생산지에 따라 그 영양성분과 맛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해안 도처에서 소금이 제조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도염원을 두어 국가가 소금을 직접 제조·판매하기도 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전라도 영광군이 전국에서 소금가마가 가장 많았다. 1907년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제염은 경기도 부천군에서 시도되었다. 현재 전라남도의 염전 면적이 가장 넓다.
염전 (鹽田)
염전은 바닷물을 농축시켜 소금을 만들기 위하여 자연 증발지로 구획된 토지이다. 천일염전·소금강 염전·돌소금 염전 등으로 나누는데 천일염전이 가장 널리 이용되었다. 천일염전은 생산지에 따라 그 영양성분과 맛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해안 도처에서 소금이 제조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도염원을 두어 국가가 소금을 직접 제조·판매하기도 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전라도 영광군이 전국에서 소금가마가 가장 많았다. 1907년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제염은 경기도 부천군에서 시도되었다. 현재 전라남도의 염전 면적이 가장 넓다.
「박제상 설화」는 신라 눌지왕 때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충신 박제상과 그를 기다리다 돌이 된 그의 부인에 관한 설화이다. 박제상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서사적으로 초점화된 것은 그만이 아니다. 박제상을 기다리다 돌이 된 그의 부인은 죽어서 치술령의 신모가 되었고 종교적 의례와 주술의 대상 신격으로 숭배되었다. 이야기에 따라 죽은 박제상의 부인과 그의 딸들이 새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박제상 설화 (朴堤上 說話)
「박제상 설화」는 신라 눌지왕 때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충신 박제상과 그를 기다리다 돌이 된 그의 부인에 관한 설화이다. 박제상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서사적으로 초점화된 것은 그만이 아니다. 박제상을 기다리다 돌이 된 그의 부인은 죽어서 치술령의 신모가 되었고 종교적 의례와 주술의 대상 신격으로 숭배되었다. 이야기에 따라 죽은 박제상의 부인과 그의 딸들이 새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있는 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돌도끼 등이 출토된 집터. 주거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 (서울 巖寺洞 遺蹟)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있는 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돌도끼 등이 출토된 집터. 주거유적.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 제10대 구형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능. 왕릉.
전 구형왕릉 (傳 仇衡王陵)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 제10대 구형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능. 왕릉.
「토끼와 호랑이」는 토끼가 힘으로 위협하는 호랑이를 꾀로써 골탕 먹이는 내용의 민담이다. 이 설화는 동물담 유형군의 하나로, 여러 독립된 삽화로 유형화된다. 「호랑이 꼬리 낚시」·「돌떡 먹는 호랑이」·「참새 기다리는 호랑이」 등의 유형이 있다. 「토끼와 호랑이」 설화의 꾀쟁이 토끼는 설화적 ‘사기꾼(trickster)’적 성격을 지닌다. 또한, 토끼와 호랑이를 지혜로운 민중과 횡포를 일삼는 권력자의 상징으로 볼 때, 토끼와 호랑이의 관계에는 권력층에 대한 민중 의식과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토끼와 호랑이 (토끼와 虎狼이)
「토끼와 호랑이」는 토끼가 힘으로 위협하는 호랑이를 꾀로써 골탕 먹이는 내용의 민담이다. 이 설화는 동물담 유형군의 하나로, 여러 독립된 삽화로 유형화된다. 「호랑이 꼬리 낚시」·「돌떡 먹는 호랑이」·「참새 기다리는 호랑이」 등의 유형이 있다. 「토끼와 호랑이」 설화의 꾀쟁이 토끼는 설화적 ‘사기꾼(trickster)’적 성격을 지닌다. 또한, 토끼와 호랑이를 지혜로운 민중과 횡포를 일삼는 권력자의 상징으로 볼 때, 토끼와 호랑이의 관계에는 권력층에 대한 민중 의식과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발해고분(渤海古墳)은 고구려계의 돌무덤과 말갈계의 흙무덤을 중심으로 벽돌무덤, 탑무덤, 금당식무덤이 나타나는 발해 영역의 무덤이다. 돌무덤은 굴식과 구덩식의 돌방무덤 및 돌널무덤이 있고, 흙무덤도 널무덤, 돌깐무덤, 돌돌린무덤 등으로 다양하다. 장법도 단인장, 다인합장, 1차장, 2차장 등이 있다. 이는 발해 주민 구성이 단일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탑무덤과 금당식무덤의 존재는 발해 왕실이 불교에 심취하였음을 말해 주며, 돌무덤과 흙무덤의 분포는 발해를 구성하였던 고구려계와 말갈계 주민들의 기본 거주 지역을 반영한다.
발해 고분 (渤海 古墳)
발해고분(渤海古墳)은 고구려계의 돌무덤과 말갈계의 흙무덤을 중심으로 벽돌무덤, 탑무덤, 금당식무덤이 나타나는 발해 영역의 무덤이다. 돌무덤은 굴식과 구덩식의 돌방무덤 및 돌널무덤이 있고, 흙무덤도 널무덤, 돌깐무덤, 돌돌린무덤 등으로 다양하다. 장법도 단인장, 다인합장, 1차장, 2차장 등이 있다. 이는 발해 주민 구성이 단일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탑무덤과 금당식무덤의 존재는 발해 왕실이 불교에 심취하였음을 말해 주며, 돌무덤과 흙무덤의 분포는 발해를 구성하였던 고구려계와 말갈계 주민들의 기본 거주 지역을 반영한다.
서낭제는 매년 정월, 삼월~오월, 구월 중 택일하여, 마을 서낭당에서 주민들이 서낭신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이다. 동제, 서낭굿, 서낭거리라고도 한다. 산천, 수목, 암석 등의 자연숭배가 중국에서 유입된 성황 신앙과 융합하여 서낭 신앙이 되었다고 여긴다. 서낭제의 제관은 부부가 생존하여 화목하게 지내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거나 좋은 평판을 듣는 사람이다. 제관으로 뽑히면 수일 전부터 금기하면서 제물을 준비한다. 택일날 신목이나 돌무더기 앞에 제물을 차리고 서낭제를 치른다.
서낭제 (서낭祭)
서낭제는 매년 정월, 삼월~오월, 구월 중 택일하여, 마을 서낭당에서 주민들이 서낭신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이다. 동제, 서낭굿, 서낭거리라고도 한다. 산천, 수목, 암석 등의 자연숭배가 중국에서 유입된 성황 신앙과 융합하여 서낭 신앙이 되었다고 여긴다. 서낭제의 제관은 부부가 생존하여 화목하게 지내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거나 좋은 평판을 듣는 사람이다. 제관으로 뽑히면 수일 전부터 금기하면서 제물을 준비한다. 택일날 신목이나 돌무더기 앞에 제물을 차리고 서낭제를 치른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무덤군·경작지 관련 마을터. 취락유적.
진주 대평리 유적 (晉州 大坪里 遺蹟)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무덤군·경작지 관련 마을터. 취락유적.
간돌도끼는 선사시대에 나무를 베고 가공하는 데 사용된 도구이다. 나무는 집을 짓거나 도구를 만들 때 반드시 필요한 재료였으므로, 간돌도끼는 나무를 벌채하고 가공할 때 필수적으로 사용되었다. 간석기는 뗀석기로 만들 수 없는 기종을 만들거나, 같은 크기와 모양의 석기를 만드는 데 유용한 기술이었다.
간돌도끼
간돌도끼는 선사시대에 나무를 베고 가공하는 데 사용된 도구이다. 나무는 집을 짓거나 도구를 만들 때 반드시 필요한 재료였으므로, 간돌도끼는 나무를 벌채하고 가공할 때 필수적으로 사용되었다. 간석기는 뗀석기로 만들 수 없는 기종을 만들거나, 같은 크기와 모양의 석기를 만드는 데 유용한 기술이었다.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간돌도끼·간돌끌 등이 발견된 동굴.
춘천 혈거유지 (春川 穴居遺址)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간돌도끼·간돌끌 등이 발견된 동굴.
아기가 태어난지 만1년이 되는 생일날 입는 옷.
돌옷
아기가 태어난지 만1년이 되는 생일날 입는 옷.
멥쌀가루로 만든 작은 절편.
골무떡
멥쌀가루로 만든 작은 절편.
금릉 송죽리 유적은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고인돌 · 회곽무덤이 발굴된 복합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수혈주거지는 대부분 장방형으로 바닥에 화덕자리가 나타난다. 바리 모양과 단지 모양의 토기가 출토되었고 갈판, 갈돌, 돌낫 등의 생활 용구가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집자리 바닥에 기둥구멍이나 주춧돌을 놓여 있으며 내부에 저장구덩이와 냇돌을 세워 돌린 화덕자리도 확인되었다. 민무늬토기와 붉은간토기, 가락바퀴와 그물추, 화살촉과 반달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 통일신라시대의 주거지와 고려시대 구덩식 돌덧널무덤, 조선시대 회곽묘가 조사되었다.
금릉 송죽리 유적 (金陵 松竹里 遺蹟)
금릉 송죽리 유적은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고인돌 · 회곽무덤이 발굴된 복합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수혈주거지는 대부분 장방형으로 바닥에 화덕자리가 나타난다. 바리 모양과 단지 모양의 토기가 출토되었고 갈판, 갈돌, 돌낫 등의 생활 용구가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집자리 바닥에 기둥구멍이나 주춧돌을 놓여 있으며 내부에 저장구덩이와 냇돌을 세워 돌린 화덕자리도 확인되었다. 민무늬토기와 붉은간토기, 가락바퀴와 그물추, 화살촉과 반달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 통일신라시대의 주거지와 고려시대 구덩식 돌덧널무덤, 조선시대 회곽묘가 조사되었다.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돌무지무덤·앞트기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울릉 현포동 고분군 (蔚陵 玄圃洞 古墳群)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돌무지무덤·앞트기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어린아이들의 누비버선.
타래버선
어린아이들의 누비버선.
북한 평안남도 온천군 궁산마을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용강 궁산리 유적 (龍岡 弓山里 遺蹟)
북한 평안남도 온천군 궁산마을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울진후포리유적은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에 있는 신석기시대 간돌도끼 등이 출토된 집단묘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조기~전기(서기전 5000~4000년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은 화강암괴로 둘린 부정형의 자연 구덩이를 매장 시설로 이용한 구조이다. 무덤에서는 40여 구의 사람의 뼈를 포함하여 180여 점의 간돌도끼와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매장 방식은 인골 출토 상태로 보아 세골장(洗骨葬)으로 추정되며, 이와 같은 장법(葬法)은 한반도 선사시대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다.
울진 후포리 유적 (蔚珍 厚浦里 遺蹟)
울진후포리유적은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에 있는 신석기시대 간돌도끼 등이 출토된 집단묘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조기~전기(서기전 5000~4000년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은 화강암괴로 둘린 부정형의 자연 구덩이를 매장 시설로 이용한 구조이다. 무덤에서는 40여 구의 사람의 뼈를 포함하여 180여 점의 간돌도끼와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매장 방식은 인골 출토 상태로 보아 세골장(洗骨葬)으로 추정되며, 이와 같은 장법(葬法)은 한반도 선사시대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다.
사내아이의 머리에 쓰는 관모.
호건 (虎巾)
사내아이의 머리에 쓰는 관모.
전주 여의동 유적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움무덤[토광묘]이다. 집자리 1기, 돌뚜껑움무덤 3기, 유물포함층이 발굴되었으며 백제시대의 돌방무덤도 일부 확인되었다. 움무덤은 타원형 움을 파고 다시 장방형 무덤구덩을 설치하였고 무덤구덩 벽면에 깬돌을 축석하지 않고 때붙였다. 붉은간토기와 민무늬토기가 다량 출토되었으며, 간돌검, 돌화살촉, 대팻날도끼, 돌끌, 삼각형돌칼 등 다양한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여러꼭지거친무늬거울, 청동도끼, 청동끌도 출토되었다. 대전 괴정동 유적, 청원 비하리, 아산 남성리, 부여 구봉리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주 여의동 유적 (全州 如意洞 遺蹟)
전주 여의동 유적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움무덤[토광묘]이다. 집자리 1기, 돌뚜껑움무덤 3기, 유물포함층이 발굴되었으며 백제시대의 돌방무덤도 일부 확인되었다. 움무덤은 타원형 움을 파고 다시 장방형 무덤구덩을 설치하였고 무덤구덩 벽면에 깬돌을 축석하지 않고 때붙였다. 붉은간토기와 민무늬토기가 다량 출토되었으며, 간돌검, 돌화살촉, 대팻날도끼, 돌끌, 삼각형돌칼 등 다양한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여러꼭지거친무늬거울, 청동도끼, 청동끌도 출토되었다. 대전 괴정동 유적, 청원 비하리, 아산 남성리, 부여 구봉리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