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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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光州) 충효동(忠孝洞)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다. ‘광주 충효동 성안 고인돌’이라고 하기도 한다. 7기의 고인돌이 동서 방향으로 분포하는데, 1977년 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그 중 6기를 발굴 조사하였다. 덮개돌은 11~28톤 정도이며, 모두 받침돌이 있는 남방식이다. 민무늬토기 조각, 붉은간토기 조각, 돌살촉, 숫돌 등 3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광주 충효동 고인돌 (光州 忠孝洞 고인돌)
광주(光州) 충효동(忠孝洞)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다. ‘광주 충효동 성안 고인돌’이라고 하기도 한다. 7기의 고인돌이 동서 방향으로 분포하는데, 1977년 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그 중 6기를 발굴 조사하였다. 덮개돌은 11~28톤 정도이며, 모두 받침돌이 있는 남방식이다. 민무늬토기 조각, 붉은간토기 조각, 돌살촉, 숫돌 등 3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제사유구와 함께 발굴된 바둑판식 고인돌. 제사유적·지석묘.
돌산 세구지 유적 (突山 世救地 遺蹟)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제사유구와 함께 발굴된 바둑판식 고인돌. 제사유적·지석묘.
아기가 태어난지 만1년이 되는 생일날 입는 옷.
돌옷
아기가 태어난지 만1년이 되는 생일날 입는 옷.
간돌도끼는 선사시대에 나무를 베고 가공하는 데 사용된 도구이다. 나무는 집을 짓거나 도구를 만들 때 반드시 필요한 재료였으므로, 간돌도끼는 나무를 벌채하고 가공할 때 필수적으로 사용되었다. 간석기는 뗀석기로 만들 수 없는 기종을 만들거나, 같은 크기와 모양의 석기를 만드는 데 유용한 기술이었다.
간돌도끼
간돌도끼는 선사시대에 나무를 베고 가공하는 데 사용된 도구이다. 나무는 집을 짓거나 도구를 만들 때 반드시 필요한 재료였으므로, 간돌도끼는 나무를 벌채하고 가공할 때 필수적으로 사용되었다. 간석기는 뗀석기로 만들 수 없는 기종을 만들거나, 같은 크기와 모양의 석기를 만드는 데 유용한 기술이었다.
보성 죽산리 고인돌군은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축조된 60여 기의 고인돌군이다. 주암댐 수몰지역 문화유적 발굴 조사의 일환으로 3개 지역의 고인돌이 조사되었다. 고인돌들은 모두 강을 따라 열을 지어 배치되어 있다. ‘가’군의 유구 중에서 돌돌림형돌방과 유사한 것이 있다. ‘다’군에서 발견된 40여 기는 1호와 17호를 제외하고 모두 돌덧널형돌방이다. 죽산리 고인돌은 구조면에서 여타 고인돌보다 대형이고 완전한 형태를 구비하고 있는 전형적인 돌방이다. 고인돌의 형식이나 성격을 밝혀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보성 죽산리 고인돌군 (寶城 竹山里 고인돌群)
보성 죽산리 고인돌군은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축조된 60여 기의 고인돌군이다. 주암댐 수몰지역 문화유적 발굴 조사의 일환으로 3개 지역의 고인돌이 조사되었다. 고인돌들은 모두 강을 따라 열을 지어 배치되어 있다. ‘가’군의 유구 중에서 돌돌림형돌방과 유사한 것이 있다. ‘다’군에서 발견된 40여 기는 1호와 17호를 제외하고 모두 돌덧널형돌방이다. 죽산리 고인돌은 구조면에서 여타 고인돌보다 대형이고 완전한 형태를 구비하고 있는 전형적인 돌방이다. 고인돌의 형식이나 성격을 밝혀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 고인돌군. 지석묘군.
여수 미평동 고인돌군 (麗水 美坪洞 고인돌群)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 고인돌군. 지석묘군.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굴식돌방무덤. 횡혈식석실분.
경주 서악동 돌베개무덤 (慶州 西岳洞 돌베개무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굴식돌방무덤. 횡혈식석실분.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축조된 6기의 고인돌군. 지석묘군.
경주 방내리 고인돌군 (慶州 坊內里 고인돌群)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축조된 6기의 고인돌군. 지석묘군.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돌림무덤. 위석식묘.
담양 제월리 고분 (潭陽 齊月里 古墳)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돌림무덤. 위석식묘.
멥쌀가루로 만든 작은 절편.
골무떡
멥쌀가루로 만든 작은 절편.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한 쌍의 장승. 석장승.
남원 서천리 당산 (南原 西川里 堂山)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한 쌍의 장승. 석장승.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 입구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3기의 장승. 석장승.
남원 실상사 석장승 (南原 實相寺 石장승)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 입구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3기의 장승. 석장승.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북방식 고인돌. 지석묘.
내가 지석묘 (內可 支石墓)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북방식 고인돌. 지석묘.
북한 평안북도 강계군 어뢰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청동단추형 장식·검은간토기 등이 출토된 돌널무덤. 석관묘.
강계 풍룡동 유적 (江界 豊龍洞 遺蹟)
북한 평안북도 강계군 어뢰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청동단추형 장식·검은간토기 등이 출토된 돌널무덤. 석관묘.
「박제상 설화」는 신라 눌지왕 때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충신 박제상과 그를 기다리다 돌이 된 그의 부인에 관한 설화이다. 박제상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서사적으로 초점화된 것은 그만이 아니다. 박제상을 기다리다 돌이 된 그의 부인은 죽어서 치술령의 신모가 되었고 종교적 의례와 주술의 대상 신격으로 숭배되었다. 이야기에 따라 죽은 박제상의 부인과 그의 딸들이 새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박제상 설화 (朴堤上 說話)
「박제상 설화」는 신라 눌지왕 때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충신 박제상과 그를 기다리다 돌이 된 그의 부인에 관한 설화이다. 박제상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서사적으로 초점화된 것은 그만이 아니다. 박제상을 기다리다 돌이 된 그의 부인은 죽어서 치술령의 신모가 되었고 종교적 의례와 주술의 대상 신격으로 숭배되었다. 이야기에 따라 죽은 박제상의 부인과 그의 딸들이 새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문경공고조기묘(文敬公高兆基墓)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고려 전기 문신 고조기의 무덤이다. 제주도에서 피장자가 알려진 분묘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무덤이다. 독특한 구조의 고려시대 방형분으로 고조기의 생애와 고려시대 제주의 문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문경공 고조기 묘 (文敬公 高兆基 墓)
문경공고조기묘(文敬公高兆基墓)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고려 전기 문신 고조기의 무덤이다. 제주도에서 피장자가 알려진 분묘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무덤이다. 독특한 구조의 고려시대 방형분으로 고조기의 생애와 고려시대 제주의 문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금릉 송죽리 유적은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고인돌 · 회곽무덤이 발굴된 복합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수혈주거지는 대부분 장방형으로 바닥에 화덕자리가 나타난다. 바리 모양과 단지 모양의 토기가 출토되었고 갈판, 갈돌, 돌낫 등의 생활 용구가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집자리 바닥에 기둥구멍이나 주춧돌을 놓여 있으며 내부에 저장구덩이와 냇돌을 세워 돌린 화덕자리도 확인되었다. 민무늬토기와 붉은간토기, 가락바퀴와 그물추, 화살촉과 반달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 통일신라시대의 주거지와 고려시대 구덩식 돌덧널무덤, 조선시대 회곽묘가 조사되었다.
금릉 송죽리 유적 (金陵 松竹里 遺蹟)
금릉 송죽리 유적은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고인돌 · 회곽무덤이 발굴된 복합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수혈주거지는 대부분 장방형으로 바닥에 화덕자리가 나타난다. 바리 모양과 단지 모양의 토기가 출토되었고 갈판, 갈돌, 돌낫 등의 생활 용구가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집자리 바닥에 기둥구멍이나 주춧돌을 놓여 있으며 내부에 저장구덩이와 냇돌을 세워 돌린 화덕자리도 확인되었다. 민무늬토기와 붉은간토기, 가락바퀴와 그물추, 화살촉과 반달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 통일신라시대의 주거지와 고려시대 구덩식 돌덧널무덤, 조선시대 회곽묘가 조사되었다.
발해고분(渤海古墳)은 고구려계의 돌무덤과 말갈계의 흙무덤을 중심으로 벽돌무덤, 탑무덤, 금당식무덤이 나타나는 발해 영역의 무덤이다. 돌무덤은 굴식과 구덩식의 돌방무덤 및 돌널무덤이 있고, 흙무덤도 널무덤, 돌깐무덤, 돌돌린무덤 등으로 다양하다. 장법도 단인장, 다인합장, 1차장, 2차장 등이 있다. 이는 발해 주민 구성이 단일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탑무덤과 금당식무덤의 존재는 발해 왕실이 불교에 심취하였음을 말해 주며, 돌무덤과 흙무덤의 분포는 발해를 구성하였던 고구려계와 말갈계 주민들의 기본 거주 지역을 반영한다.
발해 고분 (渤海 古墳)
발해고분(渤海古墳)은 고구려계의 돌무덤과 말갈계의 흙무덤을 중심으로 벽돌무덤, 탑무덤, 금당식무덤이 나타나는 발해 영역의 무덤이다. 돌무덤은 굴식과 구덩식의 돌방무덤 및 돌널무덤이 있고, 흙무덤도 널무덤, 돌깐무덤, 돌돌린무덤 등으로 다양하다. 장법도 단인장, 다인합장, 1차장, 2차장 등이 있다. 이는 발해 주민 구성이 단일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탑무덤과 금당식무덤의 존재는 발해 왕실이 불교에 심취하였음을 말해 주며, 돌무덤과 흙무덤의 분포는 발해를 구성하였던 고구려계와 말갈계 주민들의 기본 거주 지역을 반영한다.
「망부석 설화(望夫石 說話)」는 멀리 떠난 남편이 약속한 기한에도 돌아오지 않자 기다리던 아내가 돌이 되었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아내가 선 채로 그대로 돌이 된 유형, 아내가 죽은 후에 돌이 된 유형, 아내가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은 자리에 돌을 세운 유형, 원래 돌이 있었고 그 돌 곁에서 남편을 기다려서 '망부석'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내용의 유형 등이 있다.
망부석 설화 (望夫石 說話)
「망부석 설화(望夫石 說話)」는 멀리 떠난 남편이 약속한 기한에도 돌아오지 않자 기다리던 아내가 돌이 되었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아내가 선 채로 그대로 돌이 된 유형, 아내가 죽은 후에 돌이 된 유형, 아내가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은 자리에 돌을 세운 유형, 원래 돌이 있었고 그 돌 곁에서 남편을 기다려서 '망부석'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내용의 유형 등이 있다.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하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군이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원래 백영기씨 집 울타리 안에 13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중 10기만이 확인되었다. 구암리의 지석묘군은 대체로 자연 암석을 떼어내어 덮개돌로 사용하였고 그 아래 고임돌을 몇 개씩 괴어 놓았다. 덮개돌은 가장 큰 것은 길이 6.35m, 너비 4.5m가 되며 거북 모양으로 생겼다. 고임돌은 4개인 것과 8개인 것이 있는데 고임돌 8개를 둥글게 돌려 세워놓은 것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扶安 龜岩里 支石墓群)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하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군이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원래 백영기씨 집 울타리 안에 13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중 10기만이 확인되었다. 구암리의 지석묘군은 대체로 자연 암석을 떼어내어 덮개돌로 사용하였고 그 아래 고임돌을 몇 개씩 괴어 놓았다. 덮개돌은 가장 큰 것은 길이 6.35m, 너비 4.5m가 되며 거북 모양으로 생겼다. 고임돌은 4개인 것과 8개인 것이 있는데 고임돌 8개를 둥글게 돌려 세워놓은 것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