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동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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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인은 삼국시대 백제에서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학자이다. 일본의 『고사기』에는 ‘와니기시[和邇吉師]’라 하였고, 『일본서기』에는 왕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사기』에는 근초고왕 때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갔다고 한다. 그러나 『천자문』이 편찬된 시기 등을 근거로 윤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서기』에는 아신왕 말기에 태자를 왜국에 파견하여 군사동맹을 맺고 우호관계를 성립하였는데, 그 답례로 인적자원을 보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백제의 오경박사 등이 왜국으로 건너가서 백제문화를 전수하여 일본 고대문화 발달에 공헌하였다.
왕인 (王仁)
왕인은 삼국시대 백제에서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학자이다. 일본의 『고사기』에는 ‘와니기시[和邇吉師]’라 하였고, 『일본서기』에는 왕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사기』에는 근초고왕 때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갔다고 한다. 그러나 『천자문』이 편찬된 시기 등을 근거로 윤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서기』에는 아신왕 말기에 태자를 왜국에 파견하여 군사동맹을 맺고 우호관계를 성립하였는데, 그 답례로 인적자원을 보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백제의 오경박사 등이 왜국으로 건너가서 백제문화를 전수하여 일본 고대문화 발달에 공헌하였다.
세자궁은 조선시대 왕세자의 처소, 혹은 세자의 여관이다. 세자궁은 동궁 · 동궁전이라 칭했으며, 세자가 거처하던 활동 권역이다. 이곳에는 세자의 관속으로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를 배치하였다. 한편, 세자궁은 이곳에 소속된 여관을 지칭하기도 한다. 여관은 종2품 양제 이하 종5품 소훈까지 내궁과 종6품 수규 · 수칙 이하 궁관으로 구성되었다.
세자궁 (世子宮)
세자궁은 조선시대 왕세자의 처소, 혹은 세자의 여관이다. 세자궁은 동궁 · 동궁전이라 칭했으며, 세자가 거처하던 활동 권역이다. 이곳에는 세자의 관속으로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를 배치하였다. 한편, 세자궁은 이곳에 소속된 여관을 지칭하기도 한다. 여관은 종2품 양제 이하 종5품 소훈까지 내궁과 종6품 수규 · 수칙 이하 궁관으로 구성되었다.
저승전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에 있던 조선전기 왕세자의 생활공간으로 지어진 궁궐 건물이다. 동궁, 춘궁, 세자궁이라고도 한다. 1487년에 왕세자의 생활공간으로 건립되었다. 시민당, 진수당, 장경각, 추경원 등으로 구성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광해군 때에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1647년 흉악한 물건이 발견되어 수리도감을 설치하여 새로 영건하였다. 숙종 초에 임금이나 왕비 등이 여러 차례 옮겨 거처하였으며 경종도 세자 시절에 머물렀다. . 1764년 이극문과 저승전에 불이 났는데 영조가 수리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승전 (儲承殿)
저승전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에 있던 조선전기 왕세자의 생활공간으로 지어진 궁궐 건물이다. 동궁, 춘궁, 세자궁이라고도 한다. 1487년에 왕세자의 생활공간으로 건립되었다. 시민당, 진수당, 장경각, 추경원 등으로 구성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광해군 때에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1647년 흉악한 물건이 발견되어 수리도감을 설치하여 새로 영건하였다. 숙종 초에 임금이나 왕비 등이 여러 차례 옮겨 거처하였으며 경종도 세자 시절에 머물렀다. . 1764년 이극문과 저승전에 불이 났는데 영조가 수리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에 있는 조선후기 왕세자가 경서를 공부하던 궁궐건물. 궁궐전각.
창덕궁 성정각 (昌德宮 誠正閣)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에 있는 조선후기 왕세자가 경서를 공부하던 궁궐건물. 궁궐전각.
시강원에서 조선 제22대왕 정조의 동궁 시절을 기록한 실록. 동궁일기.
정조동궁일기 (正祖東宮日記)
시강원에서 조선 제22대왕 정조의 동궁 시절을 기록한 실록. 동궁일기.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청.
어룡성 (御龍省)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청.
설서(說書)는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정7품 관직이다. 홍문관의 박사(博士)를 고쳐 정원 1명으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법제화되었다. 한림(翰林)과 함께 청선(淸選)이라 할 정도로 입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관직이었다. 시강원에서 대사(大事)를 기록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였다.
설서 (說書)
설서(說書)는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정7품 관직이다. 홍문관의 박사(博士)를 고쳐 정원 1명으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법제화되었다. 한림(翰林)과 함께 청선(淸選)이라 할 정도로 입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관직이었다. 시강원에서 대사(大事)를 기록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였다.
내성(內省)은 신라 · 통일신라 시대, 왕실과 궁궐 관련 사무를 총괄하던 신라의 관청이다. 진평왕 44년(622) 2월에 내성의 장관 사신(私臣)을 두면서 시작되었고, 경덕왕 대에 크게 정비되면서 기능이 강화되었다. 이때 태자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동궁아가 설치되어 내성의 역할을 분담하였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어룡성이 내성과 대등한 관청이 되면서, 내성과 동궁아, 어룡성이 역할을 나누어 맡게 되었다.
내성 (內省)
내성(內省)은 신라 · 통일신라 시대, 왕실과 궁궐 관련 사무를 총괄하던 신라의 관청이다. 진평왕 44년(622) 2월에 내성의 장관 사신(私臣)을 두면서 시작되었고, 경덕왕 대에 크게 정비되면서 기능이 강화되었다. 이때 태자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동궁아가 설치되어 내성의 역할을 분담하였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어룡성이 내성과 대등한 관청이 되면서, 내성과 동궁아, 어룡성이 역할을 나누어 맡게 되었다.
고려시대 한림원(翰林院)과 동궁(東宮 : 太子宮)에 소속한 관직.
시강학사 (侍講學士)
고려시대 한림원(翰林院)과 동궁(東宮 : 太子宮)에 소속한 관직.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제18왕비.
예화부인 (禮和夫人)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제18왕비.
1721년 8월부터 1724년 8월까지 시강원에서 조선 제21대왕 영조의 동궁 시절을 기록한 실록.
영조동궁일기 (英祖東宮日記)
1721년 8월부터 1724년 8월까지 시강원에서 조선 제21대왕 영조의 동궁 시절을 기록한 실록.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서.
동궁아 (東宮衙)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서.
문학(文學)은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정5품 관직이다. 조선이 건국된 후, 좌우 문학 2인으로 설치되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1명으로 법제화되었다. 이후 겸직으로 겸문학(兼文學) 1명이 증치되었다. 세자시강원의 녹관(祿官)이며, 상번으로 서연에 참여하였다. 문학은 주로 문장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특히 경전이나 서적을 탐구하여 문장을 작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문학 (文學)
문학(文學)은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정5품 관직이다. 조선이 건국된 후, 좌우 문학 2인으로 설치되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1명으로 법제화되었다. 이후 겸직으로 겸문학(兼文學) 1명이 증치되었다. 세자시강원의 녹관(祿官)이며, 상번으로 서연에 참여하였다. 문학은 주로 문장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특히 경전이나 서적을 탐구하여 문장을 작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조선 말기 황태자의 강학(講學)과 시종(侍從)을 담당했던 기관.
황태자궁시강원 (皇太子宮侍講院)
조선 말기 황태자의 강학(講學)과 시종(侍從)을 담당했던 기관.
조선 초기 대전(大殿)과 동궁(東宮)의 천례로서 청소를 맡은 동남(童男).
파지 (巴只)
조선 초기 대전(大殿)과 동궁(東宮)의 천례로서 청소를 맡은 동남(童男).
신라시대의 관서.
세택 (洗宅)
신라시대의 관서.
시강원에서 효장세자의 동궁 시절을 기록한 실록. 동궁일기.
진종동궁일기 (眞宗東宮日記)
시강원에서 효장세자의 동궁 시절을 기록한 실록. 동궁일기.
고려중기 동궁(東宮)에 소속된 정5품 관직.
중윤 (中允)
고려중기 동궁(東宮)에 소속된 정5품 관직.
조선후기 제27대 왕 순종의 탄생부터 즉위까지의 모든 사안을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 왕실기록물.
동궁일록 (東宮日錄)
조선후기 제27대 왕 순종의 탄생부터 즉위까지의 모든 사안을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 왕실기록물.
좌서자는 고려시대에 태자를 보도(輔導)하는 정4품 동궁 관직이다. 고려시대에는 태자를 책봉한 뒤에 동궁 관직을 두어 보좌하도록 하였는데, 좌서자는 우서자와 더불어 태자가 주관하는 의례를 돕는 일을 한 것으로 보인다. 태자좌서자는 겸직으로 제수되었으며, 그에 대한 댓가로 문종록제에서 16석 10두, 인종록제에서 16석의 녹봉을 받았다. 원간섭기 이후 좌서자는 좌서윤으로 바뀌었으며, 뒤에 익선으로 고치면서 좌우의 구분을 없앴다.
좌서자 (左庶子)
좌서자는 고려시대에 태자를 보도(輔導)하는 정4품 동궁 관직이다. 고려시대에는 태자를 책봉한 뒤에 동궁 관직을 두어 보좌하도록 하였는데, 좌서자는 우서자와 더불어 태자가 주관하는 의례를 돕는 일을 한 것으로 보인다. 태자좌서자는 겸직으로 제수되었으며, 그에 대한 댓가로 문종록제에서 16석 10두, 인종록제에서 16석의 녹봉을 받았다. 원간섭기 이후 좌서자는 좌서윤으로 바뀌었으며, 뒤에 익선으로 고치면서 좌우의 구분을 없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