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회주의"
검색결과 총 66건
북한 체제가 ‘주체사상’에 기초 하여 다른 나라의 경험에 의거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사회주의라는 점을 강조하는 용어.
우리식 사회주의 (우리式 社會主義)
북한 체제가 ‘주체사상’에 기초 하여 다른 나라의 경험에 의거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사회주의라는 점을 강조하는 용어.
사회주의 혁명을 통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지양하고 극복하려고 하는 사회운동.
사회주의운동 (社會主義運動)
사회주의 혁명을 통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지양하고 극복하려고 하는 사회운동.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북한 노동당의 가장 중요한 외곽단체.
김일성 사회주의청년동맹 (金日成 社會主義靑年同盟)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북한 노동당의 가장 중요한 외곽단체.
1991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조직원들이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체포된 사건.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 (南韓社會主義勞動者同盟 事件)
1991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조직원들이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체포된 사건.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은 1989년 11월 12일 백태웅, 박기평(박노해), 은수미 등이 결성한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비합법 사회주의 조직이다. 사회주의적인 선전 선동이나 가두 투쟁, 그리고 경찰서를 비롯한 권력 하부 통치 기구에 대한 타격 투쟁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전국의 여러 공장에 조직원을 파견하여 공장 소조를 건설하고자 시도하였다. 1992년 4월 29일 총책 백태웅을 비롯한 중앙위원과 주요 간부들이 대거 구속됨으로써 해체되었다.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南韓社會主義勞動者同盟)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은 1989년 11월 12일 백태웅, 박기평(박노해), 은수미 등이 결성한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비합법 사회주의 조직이다. 사회주의적인 선전 선동이나 가두 투쟁, 그리고 경찰서를 비롯한 권력 하부 통치 기구에 대한 타격 투쟁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전국의 여러 공장에 조직원을 파견하여 공장 소조를 건설하고자 시도하였다. 1992년 4월 29일 총책 백태웅을 비롯한 중앙위원과 주요 간부들이 대거 구속됨으로써 해체되었다.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의 남단에 있는 공화국.
그리스 (Greece)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의 남단에 있는 공화국.
남아메리카 동북단에 있는 공화국.
가이아나 (Guyana)
남아메리카 동북단에 있는 공화국.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강순 (姜舜)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청소년의 사상교양도서 및 중․고등학생용 교재를 출판하는 북한의 출판사.
금성청년출판사 (金星靑年出版社)
청소년의 사상교양도서 및 중․고등학생용 교재를 출판하는 북한의 출판사.
김철은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울파 조직인 고려공산청년동맹에서 활동한 서울신파이다. 고려공산청년동맹과 고려공산청년회의 ‘합청(合靑)’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의 책임비서로 활동하였다.
김철 (金哲)
김철은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울파 조직인 고려공산청년동맹에서 활동한 서울신파이다. 고려공산청년동맹과 고려공산청년회의 ‘합청(合靑)’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의 책임비서로 활동하였다.
김철산은 일제강점기 중국공산당 화룡현위원회 서기를 지낸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927년 중국 광저우에서 소비에트 건립을 목적으로 발생한 봉기에 참가하였다가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왕우구지부, 연화현위원회, 의란구위원회, 화룡현위원회 등의 서기를 지냈다.
김철산 (金鐵山)
김철산은 일제강점기 중국공산당 화룡현위원회 서기를 지낸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927년 중국 광저우에서 소비에트 건립을 목적으로 발생한 봉기에 참가하였다가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왕우구지부, 연화현위원회, 의란구위원회, 화룡현위원회 등의 서기를 지냈다.
김한은 일제강점기 대한제국의 관료로, 일본 유학을 경험하였고,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사법부 비서국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사회주의운동과 의혈 투쟁에 투신하여 무산자동지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김한 (金翰)
김한은 일제강점기 대한제국의 관료로, 일본 유학을 경험하였고,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사법부 비서국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사회주의운동과 의혈 투쟁에 투신하여 무산자동지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박윤세는 만주에서 사회주의운동 통일을 위해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분열된 만주의 조선인 사회주의운동을 통일할 목적으로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을 조직하고 책임비서가 되었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중국공산당 등에서 활동하였다.
박윤세 (朴允世)
박윤세는 만주에서 사회주의운동 통일을 위해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분열된 만주의 조선인 사회주의운동을 통일할 목적으로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을 조직하고 책임비서가 되었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중국공산당 등에서 활동하였다.
김호반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25년 말경 코민테른의 지시로 국내에서 고려공산청년회 경남도책을 맡았으며, 1926년에는 조선공산당 경남도당 위원을 맡았다. 1931년 2월 함흥질소비료회사의 공장 지대를 중심으로 하여 프로핀테른 조선지부 함흥위원회를 조직하였으나, 체포되어 7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김호반 (金鎬盤)
김호반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25년 말경 코민테른의 지시로 국내에서 고려공산청년회 경남도책을 맡았으며, 1926년에는 조선공산당 경남도당 위원을 맡았다. 1931년 2월 함흥질소비료회사의 공장 지대를 중심으로 하여 프로핀테른 조선지부 함흥위원회를 조직하였으나, 체포되어 7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박진순은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의 중앙위원 겸 제2비서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서 코민테른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고려공산당 창립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7년 테러 조직에 가담한 혐의로 총살되었다가 복권되었다.
박진순 (朴鎭淳)
박진순은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의 중앙위원 겸 제2비서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서 코민테른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고려공산당 창립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7년 테러 조직에 가담한 혐의로 총살되었다가 복권되었다.
박창은은 러시아 극동국 한인부에서 활동하고 대한의용군 결성에 참여하고 대한국민의회 비서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이명은 박이반이며, 1920년 12월부터 러시아 '극동국 한인부’ 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 초에 러시아령에서 소집된 전한의병대회와 대한의용단 결성에 참여하였다.
박창은 (朴昌殷)
박창은은 러시아 극동국 한인부에서 활동하고 대한의용군 결성에 참여하고 대한국민의회 비서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이명은 박이반이며, 1920년 12월부터 러시아 '극동국 한인부’ 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 초에 러시아령에서 소집된 전한의병대회와 대한의용단 결성에 참여하였다.
김규면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기독교도로 개종하였지만, 포교 규칙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교단을 탈퇴하면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만주와 연해주에서 무장투쟁을 하였고, 중국 관내로 건너가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로 양분된 민족운동의 통합을 시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김규면 (金圭冕)
김규면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기독교도로 개종하였지만, 포교 규칙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교단을 탈퇴하면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만주와 연해주에서 무장투쟁을 하였고, 중국 관내로 건너가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로 양분된 민족운동의 통합을 시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925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학생 단체.
경성학생연맹 (京城學生聯盟)
1925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학생 단체.
무산자동맹회는 1922년 3월 서울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조직하였던 사상단체이다. 무산자동지회(無産者同志會)와 신인동맹회(新人同盟會)가 통합하여 설립된 단체이다. 1922년 12월 22일 서울 천도교당에서 개최한 강연회에는 1,500여 명의 청중이 참여하였고, 참석자 가운데 양화공(洋靴工)만도 200여 명에 달하였다. 1925년 4월 사회주의단체인 화요회(火曜會) · 북풍회(北風會) · 조선노동당과 함께 ‘4단체 합동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1926년 4월 이들 세 단체와 함께 정우회(正友會)를 발족시키고 발전적으로 해산되었다.
무산자동맹회 (無産者同盟會)
무산자동맹회는 1922년 3월 서울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조직하였던 사상단체이다. 무산자동지회(無産者同志會)와 신인동맹회(新人同盟會)가 통합하여 설립된 단체이다. 1922년 12월 22일 서울 천도교당에서 개최한 강연회에는 1,500여 명의 청중이 참여하였고, 참석자 가운데 양화공(洋靴工)만도 200여 명에 달하였다. 1925년 4월 사회주의단체인 화요회(火曜會) · 북풍회(北風會) · 조선노동당과 함께 ‘4단체 합동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1926년 4월 이들 세 단체와 함께 정우회(正友會)를 발족시키고 발전적으로 해산되었다.
무산자동지회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 1월 서울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조직하였던 사상단체이다. 1922년 1월 19일 ‘조선공산당’의 합법적 외곽 사상단체로 서울에서 조직되었으며, 식민지 조선에서 결성된 최초의 합법적 사상단체였다. 이 단체는 청년 ‧ 노동 ‧ 농민 단체를 통일적으로 결속하는 활동을 수행하였고, ‘사회운동유지간담회’를 개최하여 정세와 정책에 관한 토론을 이끌어 나갔다. 발족 3개월 뒤인 1922년 3월 31일에 신인동맹회(新人同盟會)와 함께 통합하여 무산자동맹회(無産者同盟會)로 발전적 해체를 하였다.
무산자동지회 (無産者同志會)
무산자동지회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 1월 서울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조직하였던 사상단체이다. 1922년 1월 19일 ‘조선공산당’의 합법적 외곽 사상단체로 서울에서 조직되었으며, 식민지 조선에서 결성된 최초의 합법적 사상단체였다. 이 단체는 청년 ‧ 노동 ‧ 농민 단체를 통일적으로 결속하는 활동을 수행하였고, ‘사회운동유지간담회’를 개최하여 정세와 정책에 관한 토론을 이끌어 나갔다. 발족 3개월 뒤인 1922년 3월 31일에 신인동맹회(新人同盟會)와 함께 통합하여 무산자동맹회(無産者同盟會)로 발전적 해체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