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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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일제강점기 에 완공된 학교건물. 근대건물.
구 서울대학교 본관 (舊 서울大學校 本館)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일제강점기 에 완공된 학교건물. 근대건물.
조선후기 문신·학자 최석정 등이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를 1708년에 모사한 지도. 세계지도.
곤여만국전도 (坤輿萬國全圖)
조선후기 문신·학자 최석정 등이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를 1708년에 모사한 지도. 세계지도.
김철준은 해방 이후 「한국고대사회 연구」, 「한국문화사론」, 「한국문화전통론」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23년에 태어나 1989년에 사망했다. 1948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52년 역사학회 창립에 동참하였다. 일본이 주장한 식민사학의 잔재를 청산하고, 문헌 고증학의 방법론적 한계를 극복해 자주적이고 과학적인 새로운 학풍을 수립하고자 노력하였다. 한국학 발전과 문화재(현, 국가유산) 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 한국사연구회와 국사편찬위원회, 문화재위원회(현, 문화유산위원회)의 위원을 역임하였다. 저서와 논문을 엮어서 『일계전집(一溪全集)』(4책)으로 간행하였다.
김철준 (金哲埈)
김철준은 해방 이후 「한국고대사회 연구」, 「한국문화사론」, 「한국문화전통론」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23년에 태어나 1989년에 사망했다. 1948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52년 역사학회 창립에 동참하였다. 일본이 주장한 식민사학의 잔재를 청산하고, 문헌 고증학의 방법론적 한계를 극복해 자주적이고 과학적인 새로운 학풍을 수립하고자 노력하였다. 한국학 발전과 문화재(현, 국가유산) 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 한국사연구회와 국사편찬위원회, 문화재위원회(현, 문화유산위원회)의 위원을 역임하였다. 저서와 논문을 엮어서 『일계전집(一溪全集)』(4책)으로 간행하였다.
일성록은 1760년부터 1910년까지 국왕의 동정과 국정에 관한 제반 사항을 수록한 정무 일지이다. 필사본 총 2,329책으로 1973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정조 자신이 반성하는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작성하기 시작했다. 1783년(정조 7)부터 국왕의 개인 일기에서 공식적인 국정 일기로 전환되었다. 이 책에는 신하들의 소차, 임금의 윤음, 일반 정사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정부 편찬 서적, 죄수 심리, 진휼 등에 대한 내용도 있다. 이 책은 임금이 국정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실록 편찬에도 이용되었다.
일성록 (日省錄)
일성록은 1760년부터 1910년까지 국왕의 동정과 국정에 관한 제반 사항을 수록한 정무 일지이다. 필사본 총 2,329책으로 1973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정조 자신이 반성하는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작성하기 시작했다. 1783년(정조 7)부터 국왕의 개인 일기에서 공식적인 국정 일기로 전환되었다. 이 책에는 신하들의 소차, 임금의 윤음, 일반 정사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정부 편찬 서적, 죄수 심리, 진휼 등에 대한 내용도 있다. 이 책은 임금이 국정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실록 편찬에도 이용되었다.
향토개척단운동은 1961부터 1985년까지 ‘서울대학교 향토개척단’이 전개한 전국적 농촌활동이다. 1961년 7월 19일 공식 출범한 서울대학교 향토개척단은 주로 방학을 이용해 전국 각지로 내려가 다양한 농촌 조사, 계몽, 봉사, 지도 활동을 전개했다. 정부의 재건국민운동과 연결되어 1960년대 전반기에는 학생 운동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으나, 1960년대 중반 이후 정부의 견제를 받다가 1970년대 정부의 탄압과 통제 속에서 점차 힘을 잃었다.
향토개척단운동 (鄕土開拓團運動)
향토개척단운동은 1961부터 1985년까지 ‘서울대학교 향토개척단’이 전개한 전국적 농촌활동이다. 1961년 7월 19일 공식 출범한 서울대학교 향토개척단은 주로 방학을 이용해 전국 각지로 내려가 다양한 농촌 조사, 계몽, 봉사, 지도 활동을 전개했다. 정부의 재건국민운동과 연결되어 1960년대 전반기에는 학생 운동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으나, 1960년대 중반 이후 정부의 견제를 받다가 1970년대 정부의 탄압과 통제 속에서 점차 힘을 잃었다.
해방 이후 『생화학』, 『유기화학』 등을 저술한 학자. 생화학자.
이기영 (李基寧)
해방 이후 『생화학』, 『유기화학』 등을 저술한 학자. 생화학자.
해방 이후 KBS교향악단, 서울시립교향악단 수석연주자로 활동한 음악인. 트럼본, 비올라연주자.
이재옥 (李在玉)
해방 이후 KBS교향악단, 서울시립교향악단 수석연주자로 활동한 음악인. 트럼본, 비올라연주자.
해방 이후 『일반생물학』, 『한국의 자연 , 담수어편, 』 등을 저술한 학자. 생물학자.
최기철 (崔基哲)
해방 이후 『일반생물학』, 『한국의 자연 , 담수어편, 』 등을 저술한 학자. 생물학자.
대학로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사거리에서 혜화동 로터리에 이르는 문화예술의 거리이다. 1926년에 경성제국대학의 법문학부와 의학부가 건립되면서 조성되었다.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로 개편되면서 중심 캠퍼스이자 대학생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1975년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이후에 문화예술 관련 기관과 단체 및 공연장이 밀집해 있다. 실내외 공연시설에서 연극·영화·음악·뮤지컬 등의 다양한 공연 활동이 이루어지는 종합적 문화예술의 거리가 되었다. 1995년 이후 ‘리틀 마닐라’라고 불리는 필리핀인들의 시장이 열리는 등 초국가적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대학로 (大學路)
대학로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사거리에서 혜화동 로터리에 이르는 문화예술의 거리이다. 1926년에 경성제국대학의 법문학부와 의학부가 건립되면서 조성되었다.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로 개편되면서 중심 캠퍼스이자 대학생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1975년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이후에 문화예술 관련 기관과 단체 및 공연장이 밀집해 있다. 실내외 공연시설에서 연극·영화·음악·뮤지컬 등의 다양한 공연 활동이 이루어지는 종합적 문화예술의 거리가 되었다. 1995년 이후 ‘리틀 마닐라’라고 불리는 필리핀인들의 시장이 열리는 등 초국가적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허웅은 해방 이후 『국어음운론』, 『우리 옛말본』, 『20세기 우리말의 형태론』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918년에 태어나 2004년에 사망하였으며 호는 눈뫼이다.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을 읽고 국어를 연구하기로 결심하였다. 해방 후에 부산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국어음운론』(1958)에서 국어의 음운론을 공시적·통시적 기술을 시도하였다. 『우리 옛말본』(1975)에서 15세기 국어의 형태론을 공시적으로 기술하였다. 『20세기 우리말의 형태론』(1995)에서 우리말 연구의 정통성을 이었다.
허웅 (許雄)
허웅은 해방 이후 『국어음운론』, 『우리 옛말본』, 『20세기 우리말의 형태론』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918년에 태어나 2004년에 사망하였으며 호는 눈뫼이다.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을 읽고 국어를 연구하기로 결심하였다. 해방 후에 부산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국어음운론』(1958)에서 국어의 음운론을 공시적·통시적 기술을 시도하였다. 『우리 옛말본』(1975)에서 15세기 국어의 형태론을 공시적으로 기술하였다. 『20세기 우리말의 형태론』(1995)에서 우리말 연구의 정통성을 이었다.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한국음악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피아노연주자.
백낙호 (白樂皓)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한국음악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피아노연주자.
1971년 11월 13일 서울대 제적생 4명과 사법연수원생 1명이 국가 전복을 위해 내란 음모를 모의했다고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사건.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서울大生 內亂陰謀 事件)
1971년 11월 13일 서울대 제적생 4명과 사법연수원생 1명이 국가 전복을 위해 내란 음모를 모의했다고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사건.
사법대학원은 1962년 4월에 서울대학교에 설치한 사법 관련 인재 양성 기관이다. 이 기관은 고등고시 사법과 시험에 합격한 자에게 이론 및 실무를 지도함으로써 학식과 덕망을 갖춘 판사, 검사, 변호사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판사·검사·변호사의 자질 향상을 위하여 보다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연수 제도가 요구됨에 따라 1962년 4월에는 사법관 시보제를 폐지하고 서울대학교에 일반대학원과 같은 과정인 사법대학원을 설치하여 이를 마친 자에게 판사·검사의 임용 자격과 함께 석사 학위도 수여하였다. 1970년 8월에 폐지되었다.
사법대학원 (司法大學院)
사법대학원은 1962년 4월에 서울대학교에 설치한 사법 관련 인재 양성 기관이다. 이 기관은 고등고시 사법과 시험에 합격한 자에게 이론 및 실무를 지도함으로써 학식과 덕망을 갖춘 판사, 검사, 변호사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판사·검사·변호사의 자질 향상을 위하여 보다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연수 제도가 요구됨에 따라 1962년 4월에는 사법관 시보제를 폐지하고 서울대학교에 일반대학원과 같은 과정인 사법대학원을 설치하여 이를 마친 자에게 판사·검사의 임용 자격과 함께 석사 학위도 수여하였다. 1970년 8월에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