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선_후기"
검색결과 총 13건
동사는 조선 후기 학자 이종휘가 본기, 세가, 열전, 연표, 표, 지로 구성된 기전체 형식으로 서술한 역사서이다. 이종휘의 문집인 『수산집(修山集)』 안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고조선과 삼한, 부여, 고구려 계통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고 있다. 특이한 점은 단군 신앙의 내력을 독립적으로 신사지(神事志)라는 항목에 정리한 것이다. 이를 통해 부여·예맥·비류·옥저·고구려·백제 등을 단군의 후예로 간주하여 단군의 혈통과 문화적 위치를 격상시켰다. 또한 발해를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 설정하여 발해사를 확실하게 한국사로 편입시켰다.
동사 (東史)
동사는 조선 후기 학자 이종휘가 본기, 세가, 열전, 연표, 표, 지로 구성된 기전체 형식으로 서술한 역사서이다. 이종휘의 문집인 『수산집(修山集)』 안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고조선과 삼한, 부여, 고구려 계통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고 있다. 특이한 점은 단군 신앙의 내력을 독립적으로 신사지(神事志)라는 항목에 정리한 것이다. 이를 통해 부여·예맥·비류·옥저·고구려·백제 등을 단군의 후예로 간주하여 단군의 혈통과 문화적 위치를 격상시켰다. 또한 발해를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 설정하여 발해사를 확실하게 한국사로 편입시켰다.
대구광역시 중구에 있는 조선시대 경상감영의 정문으로 건립된 누정. 누각·조경건축물.
관풍루 (觀風樓)
대구광역시 중구에 있는 조선시대 경상감영의 정문으로 건립된 누정. 누각·조경건축물.
『백일헌유집』은 조선 후기 무신 이삼의 시문을 편집한 문집이다. 그는 소론 윤증 문하에서 수학한 무인으로서 이인좌의 난 때 도성을 지킨 공을 세운 이력을 지녔다. 저자의 시는 유실되어 30여 수인 반면 상소는 59편이나 되는데 대체로 사직소와 변무소이다. 조선시대 무인의 문집은 드문 만큼 그 몇 되지 않는 무관의 문집으로 가치가 있다. 저자 사후 7세손 이달헌이 원고를 수습하여 1949년에 간행하였다.
백일헌유집 (白日軒遺集)
『백일헌유집』은 조선 후기 무신 이삼의 시문을 편집한 문집이다. 그는 소론 윤증 문하에서 수학한 무인으로서 이인좌의 난 때 도성을 지킨 공을 세운 이력을 지녔다. 저자의 시는 유실되어 30여 수인 반면 상소는 59편이나 되는데 대체로 사직소와 변무소이다. 조선시대 무인의 문집은 드문 만큼 그 몇 되지 않는 무관의 문집으로 가치가 있다. 저자 사후 7세손 이달헌이 원고를 수습하여 1949년에 간행하였다.
조선후기 학자 유득공이 발해의 역사·문화에 대한 내용을 엮어 1784년에 저술한 역사서.
발해고 (渤海考)
조선후기 학자 유득공이 발해의 역사·문화에 대한 내용을 엮어 1784년에 저술한 역사서.
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시대구분론 (時代區分論)
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사군지』는 조선 후기 학자 유득공이 편찬하고 서유구가 교정 · 필사한 한사군의 역사서이다. 1795년 즈음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서유구의 필사본을 저본으로 1910년 조선고서간행회에서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체재는 표·건치연혁·산천·사실·명환·인물·봉작·방언·토산·고적·제영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치연혁에서는 진번군을 고구려의 땅으로 비정하는 등 북방 지역에 대한 연구를 통해 민족의 자존심을 고취하고 있다. 숙종대 이후 청나라와의 국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발해 및 북방의 지리에 대해 적극적인 연구의 필요성이 강조되던 시대적 상황의 소산물이기도 하다.
사군지 (四郡志)
『사군지』는 조선 후기 학자 유득공이 편찬하고 서유구가 교정 · 필사한 한사군의 역사서이다. 1795년 즈음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서유구의 필사본을 저본으로 1910년 조선고서간행회에서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체재는 표·건치연혁·산천·사실·명환·인물·봉작·방언·토산·고적·제영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치연혁에서는 진번군을 고구려의 땅으로 비정하는 등 북방 지역에 대한 연구를 통해 민족의 자존심을 고취하고 있다. 숙종대 이후 청나라와의 국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발해 및 북방의 지리에 대해 적극적인 연구의 필요성이 강조되던 시대적 상황의 소산물이기도 하다.
봉화 설매리 3겹 까치구멍집은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설매리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까치구멍집 주택이다. 약 1830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강원도나 경상북도의 산간 지역에서 주로 살펴볼 수 있는 겹집인데, 그 중에서도 마루를 중심으로 온돌방, 부엌, 외양간 등을 3겹으로 둔 점이 특징적이다. 지붕틀은 5량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팔작 지붕 양 측면 합각 부분을 비워 채광과 환기 구멍으로 사용한다. 이 외에도 벽면을 뚫은 환기구가 곳곳에 있다. 조선시대 산간 지역 주택의 폐쇄적 평면 구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봉화 설매리 3겹 까치구멍집 (奉化 雪梅里 三겹 까치구멍집)
봉화 설매리 3겹 까치구멍집은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설매리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까치구멍집 주택이다. 약 1830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강원도나 경상북도의 산간 지역에서 주로 살펴볼 수 있는 겹집인데, 그 중에서도 마루를 중심으로 온돌방, 부엌, 외양간 등을 3겹으로 둔 점이 특징적이다. 지붕틀은 5량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팔작 지붕 양 측면 합각 부분을 비워 채광과 환기 구멍으로 사용한다. 이 외에도 벽면을 뚫은 환기구가 곳곳에 있다. 조선시대 산간 지역 주택의 폐쇄적 평면 구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조선후기 전국의 행정단위와 군사행정단위의 대소를 품계 순으로 정리한 문서. 관문서.
진신안 (搢紳案)
조선후기 전국의 행정단위와 군사행정단위의 대소를 품계 순으로 정리한 문서. 관문서.
단군조선에서 고려까지를 다룬 역사서.
찬수동국사 (纂修東國史)
단군조선에서 고려까지를 다룬 역사서.
석가모니의 제자 중 16명의 나한을 그린 그림.
십육나한도 (十六羅漢圖)
석가모니의 제자 중 16명의 나한을 그린 그림.
조사도는 불교 종파의 조사나 고승을 그린 그림이다. 진영 또는 영정이라고 한다. 스승에 대한 존경의 뜻도 있지만 법통을 확인하고 역대 스승의 체계를 세워 종파와 사찰의 입지를 분명히 하려는 목적에서 조성되었다. 일반 초상화와 달리 불교의 조사신앙을 표현한 종교미술이다. 진영은 사찰 내 조사당이나 진영각 등에 모셔지는데 역사 깊은 사찰에는 창건주와 역대 고승의 진영이 수십여 점이 있다. 본격적인 진영 제작은 선종이 보급된 통일신라 말기부터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은 단독상이지만 20세기 초에 제작된 대흥사 「십육강사도」와 같이 군상도 있다.
조사도 (祖師圖)
조사도는 불교 종파의 조사나 고승을 그린 그림이다. 진영 또는 영정이라고 한다. 스승에 대한 존경의 뜻도 있지만 법통을 확인하고 역대 스승의 체계를 세워 종파와 사찰의 입지를 분명히 하려는 목적에서 조성되었다. 일반 초상화와 달리 불교의 조사신앙을 표현한 종교미술이다. 진영은 사찰 내 조사당이나 진영각 등에 모셔지는데 역사 깊은 사찰에는 창건주와 역대 고승의 진영이 수십여 점이 있다. 본격적인 진영 제작은 선종이 보급된 통일신라 말기부터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은 단독상이지만 20세기 초에 제작된 대흥사 「십육강사도」와 같이 군상도 있다.
고성 장의사 석조 관음 반가상은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장의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불석으로 조성된 석조관음보살반가상이다. 2011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높이 36㎝로 기암괴석을 대좌로 삼아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올린 반가좌를 하고 있다. 강렬하면서도 독특한 인상 등으로 보아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승호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바다를 생계의 터전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음이 신앙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18세기 초 전후해 조성된 석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고성 장의사 석조 관음 반가상 (固城 藏義寺 石造 觀音 半跏像)
고성 장의사 석조 관음 반가상은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장의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불석으로 조성된 석조관음보살반가상이다. 2011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높이 36㎝로 기암괴석을 대좌로 삼아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올린 반가좌를 하고 있다. 강렬하면서도 독특한 인상 등으로 보아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승호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바다를 생계의 터전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음이 신앙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18세기 초 전후해 조성된 석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예인집단은 조선 후기에 민간의 악가무희를 담당했던 공연예술집단을 가리키는 국악용어이다. 연희집단·광대집단이라도 한다. 조선 후기 공연예술에 대한 민간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성행하였다. 예인집단은 천민들로 구성된 기능집단이므로 중인출신 동호인 집단과는 성격이 다르다. 조선 후기의 예인집단은 주류집단과 아류 집단으로 위계가 형성되었다. 주류집단은 독자적인 조직과 학습 프로그램, 개성적 레퍼토리를 가졌다. 19세기 주류집단은 산대패, 창우집단, 사당패 등이 있었다. 아류 집단은 각설이패, 남사당패 등으로 주류집단을 모방하였다.
예인집단 (藝人集團)
예인집단은 조선 후기에 민간의 악가무희를 담당했던 공연예술집단을 가리키는 국악용어이다. 연희집단·광대집단이라도 한다. 조선 후기 공연예술에 대한 민간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성행하였다. 예인집단은 천민들로 구성된 기능집단이므로 중인출신 동호인 집단과는 성격이 다르다. 조선 후기의 예인집단은 주류집단과 아류 집단으로 위계가 형성되었다. 주류집단은 독자적인 조직과 학습 프로그램, 개성적 레퍼토리를 가졌다. 19세기 주류집단은 산대패, 창우집단, 사당패 등이 있었다. 아류 집단은 각설이패, 남사당패 등으로 주류집단을 모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