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기(金萬基: 1633~1687)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영숙(永淑), 호는 서석(瑞石) 또는 정관재(靜觀齋)이다. 아버지는 생원 김익겸(金益兼), 어머니는 해평 윤씨로 참판 윤지(尹墀)의 딸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이자 숙종(肅宗)의 장인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1652년(효종 3) 증광 진사시에 동생 김만중(金萬重)과 함께 합격하고, 같이 치러진 생원시에서도 합격한 뒤, 1653년(효종 4)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주서, 설서, 정언 등을 거쳤고, 1671년에 딸을 세자빈(世子嬪)으로 들였다. 이후 병조판서를 거쳐 숙종 즉위 후에는 영돈녕부사에 오르고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대제학에 올랐다. 1680년(숙종 6) 경신환국(庚申換局) 때 공을 세워 보사공신(保社功臣)이 되었다. 사후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나 삭직되었으나 이후에 복권되었다. 현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서석집(瑞石集)』은 18권 9책의 활자본[교서관자(校書館字)]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권말에 동생 김만중의 발문(跋文)이 실려 있다. 또한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서석산인산고(瑞石山人散稿)』 필사본 10책이 소장되어 있는데 편집 과정의 초고본(草稿本)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활자본이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 144~145책으로 영인 출간되었다.
권1~4는 시(詩)로, 412제(題)의 시를 형식 구분 없이 창작 연도순으로 배열하였다. 수창시(酬唱詩)는 주로 저자의 친인척들과 주고받은 것이 많다. 한편 당(唐)나라 때 시인들의 시에 차운한 작품이 많이 보이는데, 생애 후반에는 두보(杜甫)의 작품을 즐겨 차운하여 시를 지었다. 만사(輓詞)는 대체로 권4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는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권5는 서(序), 기(記), 제후(題後), 제문(祭文), 송(頌), 잠(箴)이 실려 있다. 이중 「등서장대기(登西將臺記)」는 남한산성 서장대에 올라 감회를 서술하였는데, 병무(兵務)를 맡아 여러 차례 이곳에 올랐음에도 승경(勝景)을 즐기지 못했던 과거를 회상하였다. 권6에는 전(箋), 비답(批答), 교서(敎書), 상량문(上樑文), 애책문(哀冊文), 고제문(告祭文), 치제문(致祭文) 책문(策問), 서계(書契) 등 대제학으로서 지었던 각종 공령문(功令文)을 수록하였다.
권7~12는 소차(疏箚)와 계(啓)이다. 저자가 오랜 기간 중앙 정계에서 활약하였던 만큼, 저자 생존 시의 다양한 정치적 상황과 그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 상당수 수록되어 있다. 소차는 사직소(辭職疏)의 비중이 높고, 계는 간원(諫院)과 헌부(憲府)에 재직할 때 인피(引避) 등의 목적으로 올려진 것들이다.
권13은 행장(行狀)으로 내외 가족들을 위해 지어진 것들이고, 권1415는 시장(諡狀)으로 권14는 정충신(鄭忠信), 권15는 김석주(金錫胄)를 위해 지은 것인데, 특히 김석주의 시장은 1만 3000자에 달하는 대작(大作)이다. 권16은 묘도문자(墓道文字)로, 신익전(申翊全), 김석주 등 당대 명사들의 묘지나 묘표 등이 수록되었다. 권1718은 부록(附錄)으로, 저자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을 한데 모아 놓았다. 이중 권18에 수록된 가장(家狀)은 아들 김진규(金鎭圭)가 직접 지은 것이다.
이 책은 조선 후기 문신 김만기의 삶과 사상, 정치 활동 등을 두루 살피는 데 요긴한 자료이다. 특히 그가 서인(西人)의 실력자였던 만큼, 조선 후기 당쟁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참고 자료라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