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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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불교학자 권상로가 전국의 지명을 망라하여 편찬한 사전. 지명사전.
한국지명연혁고 (韓國地名沿革考)
1961년 불교학자 권상로가 전국의 지명을 망라하여 편찬한 사전. 지명사전.
1925년 서상우가 발해의 강역과 지명 고증에 관하여 저술한 학술서.
발해강역고 (渤海疆域考)
1925년 서상우가 발해의 강역과 지명 고증에 관하여 저술한 학술서.
보경사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지명이 창건했다고 전하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내연산(內延山)에 있는 사찰이다. 고려 때 원진국사가 주석했으며, 조선시대 중창된 이후 사세를 이어가 동종과 불화 등 다양한 불교 국가유산이 전한다.
보경사 (寶鏡寺)
보경사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지명이 창건했다고 전하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내연산(內延山)에 있는 사찰이다. 고려 때 원진국사가 주석했으며, 조선시대 중창된 이후 사세를 이어가 동종과 불화 등 다양한 불교 국가유산이 전한다.
삼국시대 신라의 대나마 관등을 역임한 관리.
상군 (上軍)
삼국시대 신라의 대나마 관등을 역임한 관리.
염상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이찬(伊湌)으로 시중(侍中)을 지낸 진골 귀족이다. 그가 시중으로 있을 때, 759년(경덕왕 18) 신라의 고유 지명을 비롯해 기존의 관청과 관직 등 관호(官號)를 중국식으로 개명하였고, 그가 반란을 일으켜 처형된 직후인 776년(혜공왕 12)에 지명과 관호를 종전대로 복구하는 조치가 단행되었다는 점에서 경덕왕을 도와 왕권 강화 정책을 추진하였던 친왕 세력의 일원으로 보고 있다.
염상 (廉相)
염상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이찬(伊湌)으로 시중(侍中)을 지낸 진골 귀족이다. 그가 시중으로 있을 때, 759년(경덕왕 18) 신라의 고유 지명을 비롯해 기존의 관청과 관직 등 관호(官號)를 중국식으로 개명하였고, 그가 반란을 일으켜 처형된 직후인 776년(혜공왕 12)에 지명과 관호를 종전대로 복구하는 조치가 단행되었다는 점에서 경덕왕을 도와 왕권 강화 정책을 추진하였던 친왕 세력의 일원으로 보고 있다.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용화산(龍華山)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지명이 머물던 사찰.
용화산 사자사 (龍華山 獅子寺)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용화산(龍華山)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지명이 머물던 사찰.
사자암은 백제 때 세워진 사찰이다. 당시 이름은 사자사였으며, 용화산 중턱에 위치하였다. 사자사의 지명 법사는 백제의 서동을 도와 황금을 신라에 실어 보냈고, 나중에 무왕이 미륵사를 세울 때 연못을 메꿔주었다. 미륵사는 미륵하생, 용화사는 미륵상생 신앙과 관련이 있다.
사자암 (獅子庵)
사자암은 백제 때 세워진 사찰이다. 당시 이름은 사자사였으며, 용화산 중턱에 위치하였다. 사자사의 지명 법사는 백제의 서동을 도와 황금을 신라에 실어 보냈고, 나중에 무왕이 미륵사를 세울 때 연못을 메꿔주었다. 미륵사는 미륵하생, 용화사는 미륵상생 신앙과 관련이 있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德崇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지명이 창건한 사찰.
덕숭산 정혜사 (德崇山 定慧寺)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德崇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지명이 창건한 사찰.
「장수바위설화」는 옛날에 존재했던 장수가 살거나 움직였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일컬어지는 바위에 관한 설화이다. 주로 장수가 움직였던 바위, 장수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바위, 장수가 공깃돌로 들고 놀던 바위, 장수의 칼이나 갑옷이 숨겨져 있는 바위, 장수가 사라지면서 들어간 바위 등에 얽힌 이야기로 전승(傳承)되는데, 이들 바위는 연행 및 전승 집단 내에서 신성(神聖)한 힘이 흐르는 장소, 혹은 주술적(呪術的) 의례(儀禮)나 종교적(儀禮) 기원과 연관이 있는 장소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장수바위설화 (將帥바위說話)
「장수바위설화」는 옛날에 존재했던 장수가 살거나 움직였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일컬어지는 바위에 관한 설화이다. 주로 장수가 움직였던 바위, 장수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바위, 장수가 공깃돌로 들고 놀던 바위, 장수의 칼이나 갑옷이 숨겨져 있는 바위, 장수가 사라지면서 들어간 바위 등에 얽힌 이야기로 전승(傳承)되는데, 이들 바위는 연행 및 전승 집단 내에서 신성(神聖)한 힘이 흐르는 장소, 혹은 주술적(呪術的) 의례(儀禮)나 종교적(儀禮) 기원과 연관이 있는 장소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문은 마을을 보호하고 침입자를 단속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인공적 장치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문은 국가적 방범 시책으로 세조 11년인 1465년에 처음 한성에 설치하면서 전국적으로 실시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문은 물리적으로 주로 야간 통행자를 검문하는 곳이지만, 민속 신앙적인 관념에 근거하여 외부의 잡귀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세운 장승, 입석, 솟대 등의 인공물이 세워진 곳으로도 확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문 (里門)
이문은 마을을 보호하고 침입자를 단속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인공적 장치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문은 국가적 방범 시책으로 세조 11년인 1465년에 처음 한성에 설치하면서 전국적으로 실시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문은 물리적으로 주로 야간 통행자를 검문하는 곳이지만, 민속 신앙적인 관념에 근거하여 외부의 잡귀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세운 장승, 입석, 솟대 등의 인공물이 세워진 곳으로도 확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장자못 설화」는 인색한 장자가 시주받으러 온 스님에게 쇠똥을 담아 주자,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스님에게 제대로 시주하고 장자의 집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피해 스님의 뒤를 따르다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기는 바람에 돌이 되었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이와 유사한 서사적 구성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전승되고 있다. 한국에도 전국 여러 지역에서 지명, 혹은 지형 유래담으로 연행·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광포 전설」이다.
장자못 설화 (장자못 說話)
「장자못 설화」는 인색한 장자가 시주받으러 온 스님에게 쇠똥을 담아 주자,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스님에게 제대로 시주하고 장자의 집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피해 스님의 뒤를 따르다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기는 바람에 돌이 되었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이와 유사한 서사적 구성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전승되고 있다. 한국에도 전국 여러 지역에서 지명, 혹은 지형 유래담으로 연행·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광포 전설」이다.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읍 읍내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지도초등학교 (智島初等學校)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읍 읍내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조선후기 승려 치조가 지명(持名) 염불을 권유하는 내용을 발췌하여 1870년에 간행한 의례서. 불교의례서·염불서.
청주집 (淸珠集)
조선후기 승려 치조가 지명(持名) 염불을 권유하는 내용을 발췌하여 1870년에 간행한 의례서. 불교의례서·염불서.
「호남가(湖南歌)」는 호남의 여러 지명을 넣어 노래한 단가(短歌)이다. 서술자가 제주도에서 호남 지방으로 건너와 여러 지명을 하나씩 들어가며, 지명의 뜻을 살려 그 지방의 특색과 풍경 등을 노래하는 내용으로, 단가 계열과 가사 계열이 존재한다. 신재효(申在孝) 창작설이 가장 유력하다.
호남가 (湖南歌)
「호남가(湖南歌)」는 호남의 여러 지명을 넣어 노래한 단가(短歌)이다. 서술자가 제주도에서 호남 지방으로 건너와 여러 지명을 하나씩 들어가며, 지명의 뜻을 살려 그 지방의 특색과 풍경 등을 노래하는 내용으로, 단가 계열과 가사 계열이 존재한다. 신재효(申在孝) 창작설이 가장 유력하다.
「궁예 설화」는 태봉국(泰封國)을 건국했던 궁예(弓裔)에 관한 설화이다. 궁예의 신이한 탄생과 유년 시절의 기아와 고난, 태봉국의 건국 과정 및 몰락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웅 일대기 서사 구조의 전형과 몰락한 폭군의 이야기로 이뤄진 특징이 있고, 문헌 전승과 구비 전승이 상호 영향을 준 이야기이면서 고구려 건국신화(建國神話)의 후대적 변이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된다.
궁예 설화 (弓裔 說話)
「궁예 설화」는 태봉국(泰封國)을 건국했던 궁예(弓裔)에 관한 설화이다. 궁예의 신이한 탄생과 유년 시절의 기아와 고난, 태봉국의 건국 과정 및 몰락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웅 일대기 서사 구조의 전형과 몰락한 폭군의 이야기로 이뤄진 특징이 있고, 문헌 전승과 구비 전승이 상호 영향을 준 이야기이면서 고구려 건국신화(建國神話)의 후대적 변이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된다.
촌락신화는 마을의 자연‧문화‧역사에 대한 내력을 신화적으로 의미화하여 전승하는 이야기이다. 마을 공동체의 신화적 관념이 드러난 서사 형태와 언술의 총체로, 마을의 자연물에 대한 신화적 이야기, 마을의 시작에 신화적 요소를 담아낸 이야기, 마을 수호신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전래되고 있다. 촌락신화에는 우리가 사는 마을을 신성한 공간으로 여기면서 삶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이러한 신화는 공동체의 유대감 및 지역 정체성을 구성하고 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촌락신화 (村落神話)
촌락신화는 마을의 자연‧문화‧역사에 대한 내력을 신화적으로 의미화하여 전승하는 이야기이다. 마을 공동체의 신화적 관념이 드러난 서사 형태와 언술의 총체로, 마을의 자연물에 대한 신화적 이야기, 마을의 시작에 신화적 요소를 담아낸 이야기, 마을 수호신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전래되고 있다. 촌락신화에는 우리가 사는 마을을 신성한 공간으로 여기면서 삶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이러한 신화는 공동체의 유대감 및 지역 정체성을 구성하고 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