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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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법은 국가형벌권의 행사 절차인 형사절차를 규율하는 법이다. 실질적 의미의 형사소송법은 「법원조직법」 등을 포함하나 형식적 의미의 형사소송법은 법률로서의 「형사소송법」을 의미한다. 법률로서 「형사소송법」은 공판절차 외에 수사절차, 형집행절차도 규율한다. 소송절차에 있어서는 당사자주의에 직권주의를 가미한 절충적 소송구조를 취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刑事訴訟法)
형사소송법은 국가형벌권의 행사 절차인 형사절차를 규율하는 법이다. 실질적 의미의 형사소송법은 「법원조직법」 등을 포함하나 형식적 의미의 형사소송법은 법률로서의 「형사소송법」을 의미한다. 법률로서 「형사소송법」은 공판절차 외에 수사절차, 형집행절차도 규율한다. 소송절차에 있어서는 당사자주의에 직권주의를 가미한 절충적 소송구조를 취하고 있다.
형집행정지처분은 사형 및 자유형의 집행 중 일정한 사유가 발생 시 형집행을 정지하는 처분이다. 형집행의 취지를 이해할 수 없는 자에 대한 집행을 정지하는 등 형집행의 적절성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사형의 집행정지는 「형사소송법」 제469조가, 자유형의 집행정지는 「형사소송법」 제470, 471조가 규정한다. 2015년 형집행 정지에 대한 투명성 제고를 위하여 형집행정지심의위원회가 도입되었다. 형집행의 적절성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지만 남용 가능성이 있어 신중한 운용이 필요하다.
형집행정지처분 (刑執行停止處分)
형집행정지처분은 사형 및 자유형의 집행 중 일정한 사유가 발생 시 형집행을 정지하는 처분이다. 형집행의 취지를 이해할 수 없는 자에 대한 집행을 정지하는 등 형집행의 적절성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사형의 집행정지는 「형사소송법」 제469조가, 자유형의 집행정지는 「형사소송법」 제470, 471조가 규정한다. 2015년 형집행 정지에 대한 투명성 제고를 위하여 형집행정지심의위원회가 도입되었다. 형집행의 적절성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지만 남용 가능성이 있어 신중한 운용이 필요하다.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에 있는 고려시대 유물과 유적이 출토된 사찰터.
공주 구룡사지 (公州 九龍寺址)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에 있는 고려시대 유물과 유적이 출토된 사찰터.
대전광역시 동구 갈고개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석성.
갈현성 (葛峴城)
대전광역시 동구 갈고개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석성.
신앙의 대상을 봉안하는 불교의식.
단법 (壇法)
신앙의 대상을 봉안하는 불교의식.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적갈색연질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야철지.
동래 패총 (東萊 貝塚)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적갈색연질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야철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삼성미술관 리움에 있는 초기철기시대 세형동검·동투겁창 등이 출토된 선사유적.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 (大邱 飛山洞 靑銅器 一括)
서울특별시 용산구 삼성미술관 리움에 있는 초기철기시대 세형동검·동투겁창 등이 출토된 선사유적.
인류가 처음으로 나타난 시기부터 약 1만년 전에 신석기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돌을 깨뜨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
구석기시대 (舊石器時代)
인류가 처음으로 나타난 시기부터 약 1만년 전에 신석기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돌을 깨뜨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에 있는 대한제국기 에 건립된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 천주교성당.
부여 금사리성당 (扶餘 金寺里聖堂)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에 있는 대한제국기 에 건립된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 천주교성당.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돌널무덤·돌덧널무덤·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高靈 池山洞 古墳群)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돌널무덤·돌덧널무덤·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울주 언양읍성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소재하는, 1500년(연산군 6)에 축조된 평지 방형 읍성이다.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와 서부리 일대 평지에 평면 형태 방형으로 동서남북 사방의 성벽 몸체 중간에 옹성을 두른 사대문과 12개소의 치성과 해자를 갖춘 구조이다. 1966년 12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최초 지정 면적은 40,972㎡이다. 2011년 8월 18일 남쪽 성곽과 성곽 외벽에 접한 주변 지역 26,997㎡이 사적 지정 구역으로 추가되어, 총 면적이 84,493㎡로 지정되었다.
울주 언양읍성 (蔚州 彦陽邑城)
울주 언양읍성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소재하는, 1500년(연산군 6)에 축조된 평지 방형 읍성이다.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와 서부리 일대 평지에 평면 형태 방형으로 동서남북 사방의 성벽 몸체 중간에 옹성을 두른 사대문과 12개소의 치성과 해자를 갖춘 구조이다. 1966년 12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최초 지정 면적은 40,972㎡이다. 2011년 8월 18일 남쪽 성곽과 성곽 외벽에 접한 주변 지역 26,997㎡이 사적 지정 구역으로 추가되어, 총 면적이 84,493㎡로 지정되었다.
시효는 일정한 사실 상태가 일정 기간 계속된 경우에 그 상태가 진정한 권리관계와 합치하느냐 여부를 묻지 않고 그 사실 상태를 존중하여 그 상태에 대응하는 법률효과를 인정하는 제도이다. 통상 민법상 시효를 의미하고 여기에는 취득시효와 소멸시효가 있다. 이외의 시효제도에는 형법상 형의 시효와 공소시효, 행정법상 징계시효가 있다. 취득시효는 권리행사의 외관이 일정 기간 계속된 경우 권리취득의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제도이다. 소멸시효는 권리불행사의 외관이 일정 기간 계속될 시 권리를 소멸시키는 제도이다.
시효 (時效)
시효는 일정한 사실 상태가 일정 기간 계속된 경우에 그 상태가 진정한 권리관계와 합치하느냐 여부를 묻지 않고 그 사실 상태를 존중하여 그 상태에 대응하는 법률효과를 인정하는 제도이다. 통상 민법상 시효를 의미하고 여기에는 취득시효와 소멸시효가 있다. 이외의 시효제도에는 형법상 형의 시효와 공소시효, 행정법상 징계시효가 있다. 취득시효는 권리행사의 외관이 일정 기간 계속된 경우 권리취득의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제도이다. 소멸시효는 권리불행사의 외관이 일정 기간 계속될 시 권리를 소멸시키는 제도이다.
조선시대 「오강루소집」, 「대황강노인」, 『운초당시고』 등을 저술한 기생. 시인.
운초 (雲楚)
조선시대 「오강루소집」, 「대황강노인」, 『운초당시고』 등을 저술한 기생. 시인.
범죄의 정도가 비교적 경미한 범죄인에 대해 일정한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유예기간을 특정한 사고 없이 경과하면 면소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
선고유예 (宣告猶豫)
범죄의 정도가 비교적 경미한 범죄인에 대해 일정한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유예기간을 특정한 사고 없이 경과하면 면소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주먹도끼·긁개·석핵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
연천 전곡리 유적 (漣川 全谷里 遺蹟)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주먹도끼·긁개·석핵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
지례동 양동댁은 1663년(현종 4) 조선시대 문신 지촌 김방걸의 중형인 순포 김방형이 안동 지례리에 지은 가옥이다. 후대에 유학자인 지곡 김정한과 수산 김병종이 살았고 임하댐으로 인한 수몰을 피하여 1988년 이건하였다. 정침과 사랑채는 중간 규모의 경상북도 ㅁ자집의 구성을 잘 보여주면서 안대청 우측의 고방과 상방 구성, 중문간 좌측의 마루방과 고방 구성 방식 등이 특징적이다. 온돌방을 둔 사당 또한 독특하다.
지례동 양동댁 (知禮洞 良洞宅)
지례동 양동댁은 1663년(현종 4) 조선시대 문신 지촌 김방걸의 중형인 순포 김방형이 안동 지례리에 지은 가옥이다. 후대에 유학자인 지곡 김정한과 수산 김병종이 살았고 임하댐으로 인한 수몰을 피하여 1988년 이건하였다. 정침과 사랑채는 중간 규모의 경상북도 ㅁ자집의 구성을 잘 보여주면서 안대청 우측의 고방과 상방 구성, 중문간 좌측의 마루방과 고방 구성 방식 등이 특징적이다. 온돌방을 둔 사당 또한 독특하다.
전민변정도감은 고려 후기에 권세가의 대토지 불법 소유 및 농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고려 후기에 토지 침탈과 백성의 궁핍 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1269년(원종 10)에 처음 설치된 기구였다. 이후 1288년(충렬왕 14), 1301년(충렬왕 27), 1352년(공민왕 1), 1366년(공민왕 15), 1381년(우왕 7), 1388년(우왕 14)에도 역시 토지와 백성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해 반복해서 설치되었으나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폐지되었다.
전민변정도감 (田民辨整都監)
전민변정도감은 고려 후기에 권세가의 대토지 불법 소유 및 농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고려 후기에 토지 침탈과 백성의 궁핍 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1269년(원종 10)에 처음 설치된 기구였다. 이후 1288년(충렬왕 14), 1301년(충렬왕 27), 1352년(공민왕 1), 1366년(공민왕 15), 1381년(우왕 7), 1388년(우왕 14)에도 역시 토지와 백성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해 반복해서 설치되었으나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폐지되었다.
『학포금보』는 20세기 초 민간 풍류 음악과 성악곡을 모아 편찬한 거문고 악보집이다. 민간에서 연주되던 「영산회상」과 「여민락」 같은 풍류 음악과 가곡의 거문고 선율을 수록하고 있다. 이 외에도 거문고 연주 범례, 장구, 단소, 매화점 장단, 가곡의 각 수를 기록한 각표, 수파형 선율선 악보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악보집은 『현학금보』와 『오희상금보』와 유사한 점이 많아 같은 계통의 음악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포금보 (學圃琴譜)
『학포금보』는 20세기 초 민간 풍류 음악과 성악곡을 모아 편찬한 거문고 악보집이다. 민간에서 연주되던 「영산회상」과 「여민락」 같은 풍류 음악과 가곡의 거문고 선율을 수록하고 있다. 이 외에도 거문고 연주 범례, 장구, 단소, 매화점 장단, 가곡의 각 수를 기록한 각표, 수파형 선율선 악보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악보집은 『현학금보』와 『오희상금보』와 유사한 점이 많아 같은 계통의 음악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분모양 토기는 아가리가 곡선이나 직각으로 꺾여 벌어지고, 몸통은 약간의 직선을 이루면서 바닥쪽으로 좁아지며, 바닥이 납작하거나 굽이 붙은 화분 모양의 토기이다. 몸통이 가장 넓고 아가리가 약간 오므라드는 바리모양 토기와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화분모양 토기는 낙랑군 설치를 전후하여 낙랑 지역에 발굴된 독널무덤, 움무덤, 덧널무덤, 귀틀무덤, 벽돌무덤 등에서 출토되었다. 사용한 흔적이 확인되므로 음식을 삶고 끓이는 자비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바탕흙에 활석이 혼입된 토기 가운데 유일하게 무덤의 껴묻거리로 사용되었다.
화분모양 토기 (花盆形 土器)
화분모양 토기는 아가리가 곡선이나 직각으로 꺾여 벌어지고, 몸통은 약간의 직선을 이루면서 바닥쪽으로 좁아지며, 바닥이 납작하거나 굽이 붙은 화분 모양의 토기이다. 몸통이 가장 넓고 아가리가 약간 오므라드는 바리모양 토기와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화분모양 토기는 낙랑군 설치를 전후하여 낙랑 지역에 발굴된 독널무덤, 움무덤, 덧널무덤, 귀틀무덤, 벽돌무덤 등에서 출토되었다. 사용한 흔적이 확인되므로 음식을 삶고 끓이는 자비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바탕흙에 활석이 혼입된 토기 가운데 유일하게 무덤의 껴묻거리로 사용되었다.
허련은 조선 후기 「선면산수도」·「김정희초상」 등을 그린 화가이다. 초년에는 해남의 윤선도 고택에서 윤두서의 작품을 통하여 전통 화풍을 익혔다. 대흥사 초의의 소개로 1839년 상경하여 김정희 문하에서 서화를 수업하였다. 1846년 헌종에게 그림을 바쳐 궁중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1856년에는 진도에 귀향하여 화실인 운림산방을 마련하고 제작 활동에 몰두했다. 1867년에는 『소치실록』을 저술하였다. 김정희 일파 가운데 남종화풍을 토착화시킨 화가로 지목된다. 다방면의 화재에 능통하였지만 산수화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허련 (許鍊)
허련은 조선 후기 「선면산수도」·「김정희초상」 등을 그린 화가이다. 초년에는 해남의 윤선도 고택에서 윤두서의 작품을 통하여 전통 화풍을 익혔다. 대흥사 초의의 소개로 1839년 상경하여 김정희 문하에서 서화를 수업하였다. 1846년 헌종에게 그림을 바쳐 궁중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1856년에는 진도에 귀향하여 화실인 운림산방을 마련하고 제작 활동에 몰두했다. 1867년에는 『소치실록』을 저술하였다. 김정희 일파 가운데 남종화풍을 토착화시킨 화가로 지목된다. 다방면의 화재에 능통하였지만 산수화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