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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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이후 통리기무아문에서 우리나라를 여행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에게 발급한 문서. 여행증명서.
호조 (護照)
개항기 이후 통리기무아문에서 우리나라를 여행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에게 발급한 문서. 여행증명서.
조선 중기 작자미상의 계회도.
호조낭관계회도 (戶曹郞官契會圖)
조선 중기 작자미상의 계회도.
조선시대 호조에서 관장하던 공물을 말한다. 공물은 지방의 각 고을에서 직접 현물로 납부하거나 방납(防納)을 통해 대납하였다. 원공물(元貢物)·별무(別貿)·경기(京畿) 전세조공물(田稅條貢物) 등으로 구분된다. 원공물은 대동법 시행 이후 선혜청에 이관되지 않고 호조에 그대로 남은 공물을 말한다. 별무는 공안(貢案)에 등재된 공물 외로 각 시기별 사정에 따라 추가로 공물을 마련하는 것을 말한다. 조선정부는 공안을 개정하지 않고 기존 공물에서 별무를 통한 추가 조달로 왕실과 중앙각사가 절용(節用)에 힘쓰게 하여 공물을 줄이도록 하였다.
호조공물 (戶曹貢物)
조선시대 호조에서 관장하던 공물을 말한다. 공물은 지방의 각 고을에서 직접 현물로 납부하거나 방납(防納)을 통해 대납하였다. 원공물(元貢物)·별무(別貿)·경기(京畿) 전세조공물(田稅條貢物) 등으로 구분된다. 원공물은 대동법 시행 이후 선혜청에 이관되지 않고 호조에 그대로 남은 공물을 말한다. 별무는 공안(貢案)에 등재된 공물 외로 각 시기별 사정에 따라 추가로 공물을 마련하는 것을 말한다. 조선정부는 공안을 개정하지 않고 기존 공물에서 별무를 통한 추가 조달로 왕실과 중앙각사가 절용(節用)에 힘쓰게 하여 공물을 줄이도록 하였다.
공랑(公廊)은 조선시대, 도성 안에 있던 시전 상인이 물품을 판매하던 공간이다. 공랑은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되었는데, 방 1개는 1평 남짓의 작은 크기였다. 조선의 중앙정부는 도성민들에게 공랑을 조성해 주고, 그 대가로 공랑세(公廊稅)라는 세금을 징수하였는데, 17세기부터는 공랑세를 더 이상 징수하지 않고 대신 시전 상인을 잡역에 동원하였다.
공랑 (公廊)
공랑(公廊)은 조선시대, 도성 안에 있던 시전 상인이 물품을 판매하던 공간이다. 공랑은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되었는데, 방 1개는 1평 남짓의 작은 크기였다. 조선의 중앙정부는 도성민들에게 공랑을 조성해 주고, 그 대가로 공랑세(公廊稅)라는 세금을 징수하였는데, 17세기부터는 공랑세를 더 이상 징수하지 않고 대신 시전 상인을 잡역에 동원하였다.
고려 후기 상서호부의 후신으로 호구(戶口)·공부(貢賦)·전량(錢粮)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
민부 (民部)
고려 후기 상서호부의 후신으로 호구(戶口)·공부(貢賦)·전량(錢粮)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
감생청은 1880년대 초반, 정부의 재정을 절감하기 위하여 정부기구 축소 및 감원 등의 개혁 작업을 추진하려고 관상감(觀象監) 휘하에 임시로 설치된 관서이다. 구관당상(句管堂上)인 어윤중(魚允中)이 개혁 작업을 주도하여 ‘감생청 감생별단(減省別單)’을 임금에게 알렸으며, 이후 약 4~5개월 동안 각종 개혁안을 건의하였으나, 종친과 보수 세력의 반대로 설립 6개월 만인 1883년 5월 1일 폐지되었다.
감생청 (減省廳)
감생청은 1880년대 초반, 정부의 재정을 절감하기 위하여 정부기구 축소 및 감원 등의 개혁 작업을 추진하려고 관상감(觀象監) 휘하에 임시로 설치된 관서이다. 구관당상(句管堂上)인 어윤중(魚允中)이 개혁 작업을 주도하여 ‘감생청 감생별단(減省別單)’을 임금에게 알렸으며, 이후 약 4~5개월 동안 각종 개혁안을 건의하였으나, 종친과 보수 세력의 반대로 설립 6개월 만인 1883년 5월 1일 폐지되었다.
조선시대 호조에 소속된 한 부서.
별고색 (別庫色)
조선시대 호조에 소속된 한 부서.
별례방(別例房)은 조선 후기, 호조에 두었던 속사(屬司)이다. 임진왜란 이후 국가 경비를 담당한 호조의 사무가 증가하면서 3개의 속사를 보다 세분화하여 업무를 분장하였다. 이때 경비사의 업무 가운데 국가 경비 지급과 일본인들에게 지급하는 물품을 관장하는 업무를 전담한 것이 별례방이다.
별례방 (別例房)
별례방(別例房)은 조선 후기, 호조에 두었던 속사(屬司)이다. 임진왜란 이후 국가 경비를 담당한 호조의 사무가 증가하면서 3개의 속사를 보다 세분화하여 업무를 분장하였다. 이때 경비사의 업무 가운데 국가 경비 지급과 일본인들에게 지급하는 물품을 관장하는 업무를 전담한 것이 별례방이다.
광흥창(廣興倉)은 조선시대에 관리의 녹봉을 관장하던 호조 소속 정4품 아문이다. 광흥창의 연원은 고려 말 좌창에서 찾을 수 있다. 광흥창의 규모는 점점 확대되어 1470년(성종 1)에는 풍저창의 강창을 합속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광흥창은 상당한 재원을 보유하였는데, 18세기 광흥창의 재원은 호조 내 8개 기관 중에서 3번째로 가장 많았다.
광흥창 (廣興倉)
광흥창(廣興倉)은 조선시대에 관리의 녹봉을 관장하던 호조 소속 정4품 아문이다. 광흥창의 연원은 고려 말 좌창에서 찾을 수 있다. 광흥창의 규모는 점점 확대되어 1470년(성종 1)에는 풍저창의 강창을 합속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광흥창은 상당한 재원을 보유하였는데, 18세기 광흥창의 재원은 호조 내 8개 기관 중에서 3번째로 가장 많았다.
고려시대 서경(西京)에 설치되었던 관서(官署).
보조 (寶曹)
고려시대 서경(西京)에 설치되었던 관서(官署).
조선시대 호조 산하의 한 관서.
경비사 (經費司)
조선시대 호조 산하의 한 관서.
조선시대 호조의 종8품의 중인 관직.
계사 (計士)
조선시대 호조의 종8품의 중인 관직.
문인들의 계회 광경을 그린 그림.
계회도 (契會圖)
문인들의 계회 광경을 그린 그림.
조선 전기에, 호조참의, 충청도도체찰부사, 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안철손 (安哲孫)
조선 전기에, 호조참의, 충청도도체찰부사, 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수민원(綏民院)은 대한제국기에 해외여행권 발급 업무를 관장하던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1902년 11월 16일에 설치되었고, 총 21조로 이루어진 「수민원규칙」도 마련되었다. 수학(修學), 유람, 농공상업으로 외국에 여행하는 사람에게 여행권을 발급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여행 목적을 엄격히 심사하여 규칙에 위반되지 않으면 허락하였다.
수민원 (綏民院)
수민원(綏民院)은 대한제국기에 해외여행권 발급 업무를 관장하던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1902년 11월 16일에 설치되었고, 총 21조로 이루어진 「수민원규칙」도 마련되었다. 수학(修學), 유람, 농공상업으로 외국에 여행하는 사람에게 여행권을 발급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여행 목적을 엄격히 심사하여 규칙에 위반되지 않으면 허락하였다.
육조(六曹)의 판서를 가리키던 총칭.
육경 (六卿)
육조(六曹)의 판서를 가리키던 총칭.
우대언은 조선 초기, 태종 대와 세종 전반기에 설치되었던 대언사의 세 번째 관직이다. 1401년(태종 1)부터 1433년(세종 15)까지 승정원을 혁파하고 대신 설치된 대언사의 관직으로, 태종 대에는 호조를 담당하는 호방의 역할을 하였고, 세종 전반기에는 예조를 담당하는 예방의 역할을 하였다. 대언사가 혁파되면서 우대언은 우승지로 바뀌었다.
우대언 (右代言)
우대언은 조선 초기, 태종 대와 세종 전반기에 설치되었던 대언사의 세 번째 관직이다. 1401년(태종 1)부터 1433년(세종 15)까지 승정원을 혁파하고 대신 설치된 대언사의 관직으로, 태종 대에는 호조를 담당하는 호방의 역할을 하였고, 세종 전반기에는 예조를 담당하는 예방의 역할을 하였다. 대언사가 혁파되면서 우대언은 우승지로 바뀌었다.
조선시대 호조(戶曹)에 소속된 경비사(經費司)의 한 분과.
세폐색 (歲幣色)
조선시대 호조(戶曹)에 소속된 경비사(經費司)의 한 분과.
조선 초기 삼사(三司)의 종3품 관직.
우승 (右丞)
조선 초기 삼사(三司)의 종3품 관직.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지리산(智異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에 창건된 사찰.
지리산 안국사 (智異山 安國寺)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지리산(智異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에 창건된 사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