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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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민황제본풀이」는 저승에 다녀 온 세민황제의 내력을 풀이한 제주특별자치도의 채록 무가이다. 연행 상황에 대한 언급은 없이 사설만을 기록한 두 편의 채록본이 남아 있다. 굿에서 구연된 현장 사례를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서사의 주인공을 신격으로 모시는 의례도 없기 때문에, 어떤 신격의 본풀이로서 제주도 무속 집단이 공유해 온 서사무가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고소설 「당태종전」, 구비설화 「덕진다리」와 유사한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세민황제본풀이 (世民皇帝本풀이)
「세민황제본풀이」는 저승에 다녀 온 세민황제의 내력을 풀이한 제주특별자치도의 채록 무가이다. 연행 상황에 대한 언급은 없이 사설만을 기록한 두 편의 채록본이 남아 있다. 굿에서 구연된 현장 사례를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서사의 주인공을 신격으로 모시는 의례도 없기 때문에, 어떤 신격의 본풀이로서 제주도 무속 집단이 공유해 온 서사무가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고소설 「당태종전」, 구비설화 「덕진다리」와 유사한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고종황제 어사진」은 1905년 대한제국 황실사진가 김규진이 촬영한 고종황제의 사진이다.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사진 크기는 35.0×42.8㎝이다. 제작자와 시기가 명확하게 기록된 최초의 고종황제 초상 사진으로, 현재 남아있는 고종의 어사진 중에는 가장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고종황제 어사진 (高宗皇帝 御寫眞)
「고종황제 어사진」은 1905년 대한제국 황실사진가 김규진이 촬영한 고종황제의 사진이다.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사진 크기는 35.0×42.8㎝이다. 제작자와 시기가 명확하게 기록된 최초의 고종황제 초상 사진으로, 현재 남아있는 고종의 어사진 중에는 가장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대한국국제는 1899년 8월 17일, 공포된 대한제국의 국제(國制)이다.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으로서 근대적 주권국가임을 대외적으로 선포하고, 대내적으로 황제권의 내용을 공법(公法)에 의거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1899년 6월에 설립된 법규교정소에서 작성하였고, 황제의 재가를 받아 반포하였다.
대한국국제 (大韓國國制)
대한국국제는 1899년 8월 17일, 공포된 대한제국의 국제(國制)이다.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으로서 근대적 주권국가임을 대외적으로 선포하고, 대내적으로 황제권의 내용을 공법(公法)에 의거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1899년 6월에 설립된 법규교정소에서 작성하였고, 황제의 재가를 받아 반포하였다.
곤룡포 부 용문보는 황제의 평상복인 황색 곤룡포 1점과 곤룡포에 부착된 용무늬 표장이다. 조선 시대 왕의 평상복은 다홍색 곤룡포였는데 고종황제 때부터 황색 곤룡포를 착용했다. 이 황색 곤룡포는 순종황제가 입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용무늬 표장인 용문보가 양어깨와 가슴, 등에 2쌍 4점이 부착되어 있다. 그리고 가슴에는 해를, 등에는 달을 상징하는 원형 무늬가 수놓아져 있다. 이 곤룡포는 20세기 초기의 단령(깃) 양식을 보여 준다. 이 황제 곤룡포는 대한제국 시기 국왕의 평상시 복식 제도를 참조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황실 유물이다.
곤룡포 부 용문보 (袞龍袍 付 龍紋補)
곤룡포 부 용문보는 황제의 평상복인 황색 곤룡포 1점과 곤룡포에 부착된 용무늬 표장이다. 조선 시대 왕의 평상복은 다홍색 곤룡포였는데 고종황제 때부터 황색 곤룡포를 착용했다. 이 황색 곤룡포는 순종황제가 입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용무늬 표장인 용문보가 양어깨와 가슴, 등에 2쌍 4점이 부착되어 있다. 그리고 가슴에는 해를, 등에는 달을 상징하는 원형 무늬가 수놓아져 있다. 이 곤룡포는 20세기 초기의 단령(깃) 양식을 보여 준다. 이 황제 곤룡포는 대한제국 시기 국왕의 평상시 복식 제도를 참조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황실 유물이다.
1917년 상하이[上海]에서 신규식(申圭植) 등이 독립운동의 활로와 이론의 정립을 모색하기 위해 임시정부의 수립에 관한 민족대회의의 소집을 제의·제창한 문서.
대동단결선언 (大同團結宣言)
1917년 상하이[上海]에서 신규식(申圭植) 등이 독립운동의 활로와 이론의 정립을 모색하기 위해 임시정부의 수립에 관한 민족대회의의 소집을 제의·제창한 문서.
계천기원절(繼天紀元節)은 1897년 9월 17일(양력 10월 12일), 조선 왕조 제26대 왕인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새로운 연호인 광무(光武)를 채택하여 황제로 즉위한 날이다. 계천기원절을 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열강 사이에서 대한제국을 독립국으로 선포한 것을 기념하여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었다.
계천기원절 (繼天紀元節)
계천기원절(繼天紀元節)은 1897년 9월 17일(양력 10월 12일), 조선 왕조 제26대 왕인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새로운 연호인 광무(光武)를 채택하여 황제로 즉위한 날이다. 계천기원절을 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열강 사이에서 대한제국을 독립국으로 선포한 것을 기념하여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었다.
해방 이후 『소연가』, 『우수의 황제』 등을 저술한 시인.
김수돈 (金洙敦)
해방 이후 『소연가』, 『우수의 황제』 등을 저술한 시인.
염제신(廉悌臣)은 고려 후기 서북면도통사(西北面都統使), 영삼사사(領三司事), 영문하부사(領門下府事)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와 원을 오가며 관직 생활을 했던 관료이다. 1302년(충렬왕 30) 출생하여 원(元) 평장사(平章事)인 고모부 말길(末吉)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충숙왕 대에 정동행성 관원으로서 고려에 와서 충숙왕의 신임을 받았고, 공민왕 대에는 고우성(高郵城) 공격을 위한 고려군을 이끌었으며, 공민왕 5년 개혁 당시 서북면도원수(西北面都元帥)로 원의 공격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1382년(우왕 8)에 사망하였다.
염제신 (廉悌臣)
염제신(廉悌臣)은 고려 후기 서북면도통사(西北面都統使), 영삼사사(領三司事), 영문하부사(領門下府事)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와 원을 오가며 관직 생활을 했던 관료이다. 1302년(충렬왕 30) 출생하여 원(元) 평장사(平章事)인 고모부 말길(末吉)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충숙왕 대에 정동행성 관원으로서 고려에 와서 충숙왕의 신임을 받았고, 공민왕 대에는 고우성(高郵城) 공격을 위한 고려군을 이끌었으며, 공민왕 5년 개혁 당시 서북면도원수(西北面都元帥)로 원의 공격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1382년(우왕 8)에 사망하였다.
대한제국 때 설치되었던 황제 직속의 최고 군통수기관.
원수부 (元帥府)
대한제국 때 설치되었던 황제 직속의 최고 군통수기관.
성우는 해방 이후 동국역경원장, 조계종 단일계단 전계대화상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911년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성은 김씨, 호는 자운(慈雲)이다. 1927년 합천 해인사 장경각에서 혜운을 은사로 하여 사미계를 받았다. 1955년부터 타계한 1992년까지 해인사 주지, 조계종 총무원장, 동국역경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해외의 불교 현황을 시찰한 뒤 인간 존엄의 도덕성 회복을 역설하고 자비에 바탕을 둔 보시정신과 정토사상을 중시하였다. 1992년 해인사에서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입적하였다. 행적비와 사리탑이 해인사에 있다. 한국불교의 기강을 확립한 공이 크다.
성우 (盛祐)
성우는 해방 이후 동국역경원장, 조계종 단일계단 전계대화상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911년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성은 김씨, 호는 자운(慈雲)이다. 1927년 합천 해인사 장경각에서 혜운을 은사로 하여 사미계를 받았다. 1955년부터 타계한 1992년까지 해인사 주지, 조계종 총무원장, 동국역경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해외의 불교 현황을 시찰한 뒤 인간 존엄의 도덕성 회복을 역설하고 자비에 바탕을 둔 보시정신과 정토사상을 중시하였다. 1992년 해인사에서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입적하였다. 행적비와 사리탑이 해인사에 있다. 한국불교의 기강을 확립한 공이 크다.
순종은 대한제국기 제2대(재위: 1907∼1910) 황제이다. 1874년 2월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 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875년 세자로 책봉되었다. 1882년 뒤에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가 된 민씨를 세자빈으로 맞았고, 1904년에는 윤씨를 황태자비로 새로 맞이하였다. 1907년 고종이 일제의 강요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자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를 융희(隆熙)로 고쳤다. 대한제국 붕괴 후 순종은 왕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서 거처하다가 1926년에 사망하였다.
순종 (純宗)
순종은 대한제국기 제2대(재위: 1907∼1910) 황제이다. 1874년 2월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 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875년 세자로 책봉되었다. 1882년 뒤에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가 된 민씨를 세자빈으로 맞았고, 1904년에는 윤씨를 황태자비로 새로 맞이하였다. 1907년 고종이 일제의 강요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자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를 융희(隆熙)로 고쳤다. 대한제국 붕괴 후 순종은 왕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서 거처하다가 1926년에 사망하였다.
대한제국기 경무사, 군부대신, 독립협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안경수 (安駉壽)
대한제국기 경무사, 군부대신, 독립협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1919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가사.
인산가 (因山歌)
1919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가사.
「옥환기봉」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이 작품은 중국 후한 시대 광무제의 한실 부흥과 곽후 폐출 사건 등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작가는 곽후가 폐위되고 음후가 황후가 된 원인을 역사 기록인 『후한서』와 소설인 「동한연의」를 참조하여 창작하였다. 이 작품은 작가가 역사의 공백을 메운다는 뚜렷한 작가 의식을 가지고 창작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옥환기봉 (玉環奇逢)
「옥환기봉」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이 작품은 중국 후한 시대 광무제의 한실 부흥과 곽후 폐출 사건 등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작가는 곽후가 폐위되고 음후가 황후가 된 원인을 역사 기록인 『후한서』와 소설인 「동한연의」를 참조하여 창작하였다. 이 작품은 작가가 역사의 공백을 메운다는 뚜렷한 작가 의식을 가지고 창작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은 1907년 7월 24일,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점하기 위해 체결한 불평등조약이다. 전체 7개 항목으로 이루어진 이 조약으로 일제는 대한제국 정부의 시정을 개선한다는 명목하에 법령의 제정 및 중요한 행정상의 처분 등 일체의 사무에 대해 승인권을 장악함으로써 입법, 사법 및 고등 관리의 임면 등 대한제국의 내정을 실질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한일신협약 (韓日新協約)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은 1907년 7월 24일,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점하기 위해 체결한 불평등조약이다. 전체 7개 항목으로 이루어진 이 조약으로 일제는 대한제국 정부의 시정을 개선한다는 명목하에 법령의 제정 및 중요한 행정상의 처분 등 일체의 사무에 대해 승인권을 장악함으로써 입법, 사법 및 고등 관리의 임면 등 대한제국의 내정을 실질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시대 대중국관계에서 임시로 파견되던 비정규 사절 또는 그 사신.
진하사 (進賀使)
조선시대 대중국관계에서 임시로 파견되던 비정규 사절 또는 그 사신.
북인도의 고승 불타다라가 번역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을 1380년에 간행한 불교경전.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권1 (大方廣圓覺脩多羅了義經 卷一)
북인도의 고승 불타다라가 번역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을 1380년에 간행한 불교경전.
한주학파는 1870년대에 형성된 한주 이진상의 유학을 계승한 철학유파이다. 1860년 이진상이 ‘심즉리’라는 학설을 제창하였다. 허유와 곽종석 등 그의 문인이 심즉리설을 지지하면서 1878년 선석사의 학술모임을 계기로 결성되었다. 퇴계학파 내에서 이황의 학설에 정면 배치되는 학설이라고 비난하였으나 점차 경북 서남부, 경남북동부 등 퇴계학의 중심지로 확산되었다. 균형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실용학문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만국공법과 외교적 협력을 통한 독립운동을 중시하였다. 1919년에 파리 평화회의에 제출한 독립청원서에 가장 많이 서명한 학파이다.
한주학파 (寒洲學派)
한주학파는 1870년대에 형성된 한주 이진상의 유학을 계승한 철학유파이다. 1860년 이진상이 ‘심즉리’라는 학설을 제창하였다. 허유와 곽종석 등 그의 문인이 심즉리설을 지지하면서 1878년 선석사의 학술모임을 계기로 결성되었다. 퇴계학파 내에서 이황의 학설에 정면 배치되는 학설이라고 비난하였으나 점차 경북 서남부, 경남북동부 등 퇴계학의 중심지로 확산되었다. 균형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실용학문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만국공법과 외교적 협력을 통한 독립운동을 중시하였다. 1919년에 파리 평화회의에 제출한 독립청원서에 가장 많이 서명한 학파이다.
고종 황제가 조복(朝服)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초상화.
고종 어진 (高宗 御眞)
고종 황제가 조복(朝服)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초상화.
고려전기 『대방광불화엄경』의 한역본을 현종 연간에 간행한한 불교경전. 대장도감본.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一)
고려전기 『대방광불화엄경』의 한역본을 현종 연간에 간행한한 불교경전. 대장도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