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3·1_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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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는 남북국시대, 심지(心地)가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八公山)에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시대 법상종 소속 사찰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사명대사가 동화사에서 의승군을 이끌었다. 18세기 전반에는 염불수행자 기성 쾌선이 머물렀고, 18세기 후반에는 화엄학의 대가였던 인악 의첨이 머물며 후학을 가르쳤다. 일제 강점기에는 30본산의 하나였으며 동화사 지방 학림의 스님들이 3·1 만세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팔공산 동화사 (八公山 桐華寺)
동화사는 남북국시대, 심지(心地)가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八公山)에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시대 법상종 소속 사찰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사명대사가 동화사에서 의승군을 이끌었다. 18세기 전반에는 염불수행자 기성 쾌선이 머물렀고, 18세기 후반에는 화엄학의 대가였던 인악 의첨이 머물며 후학을 가르쳤다. 일제 강점기에는 30본산의 하나였으며 동화사 지방 학림의 스님들이 3·1 만세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강태성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수원군 향남면에서 태어나 성장하였고, 1919년 향남면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당시 수원 지역 독립운동은 크게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일제는 이를 억압하고자 4월 15일 제암리에 나타나 주민들을 제암리교회에 가두고 방화하는 한편, 총격을 가하는 만행을 저질렸다. 강태성은 이때 제암리교회에서 부인과 함께 순국하였다.
강태성 (姜太成)
강태성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수원군 향남면에서 태어나 성장하였고, 1919년 향남면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당시 수원 지역 독립운동은 크게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일제는 이를 억압하고자 4월 15일 제암리에 나타나 주민들을 제암리교회에 가두고 방화하는 한편, 총격을 가하는 만행을 저질렸다. 강태성은 이때 제암리교회에서 부인과 함께 순국하였다.
김덕용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향남면 제암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월 31일 향남면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당시 수원 지역 독립운동이 확산되며 격렬해지자 일본 군인은 대대적인 보복에 나섰다. 4월 15일 제암리에 나타난 일제수비대는 주민들을 제암리교회에 가두고 방화하는 한편, 총격을 가하는 만행을 저질렸다. 이때 김덕용도 주민들과 함께 순국하였다.
김덕용 (金德用)
김덕용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향남면 제암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월 31일 향남면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당시 수원 지역 독립운동이 확산되며 격렬해지자 일본 군인은 대대적인 보복에 나섰다. 4월 15일 제암리에 나타난 일제수비대는 주민들을 제암리교회에 가두고 방화하는 한편, 총격을 가하는 만행을 저질렸다. 이때 김덕용도 주민들과 함께 순국하였다.
김세열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수원군 팔탄면 고주리에서 태어났으며, 향남면 발안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성열의 동생으로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5일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에서 김세열을 포함한 일가족 6명은 무참하게 살해되어 순국하였다.
김세열 (金世烈)
김세열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수원군 팔탄면 고주리에서 태어났으며, 향남면 발안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성열의 동생으로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5일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에서 김세열을 포함한 일가족 6명은 무참하게 살해되어 순국하였다.
김연방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화수리에서 태어나 관직 생활을 하다가 을사늑약 이후 낙향하여 고향 지사들과 국채보상운동과 사립학교설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우정면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후원하는 등 지역사회 명망가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13일 발안에 도착한 일본군에 의해 집에서 살해되었다.
김연방 (金然昉)
김연방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화수리에서 태어나 관직 생활을 하다가 을사늑약 이후 낙향하여 고향 지사들과 국채보상운동과 사립학교설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우정면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후원하는 등 지역사회 명망가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13일 발안에 도착한 일본군에 의해 집에서 살해되었다.
김정헌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향남면 제암리에서 태어나 동학에 입문하여 농민운동에 참여하였다. 천도교인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후, 청년들 모아 개혁운동을 도모하였다. 1919년 4월 5일 발안 장터에서 시위행진을 하였고 시위가 격렬하게 전개되자 일본군은 4월 15일 제암리, 고주리, 수촌리 등지에서 학살을 저질렀다. 이때 김정헌은 제암리교회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정헌 (金正憲)
김정헌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향남면 제암리에서 태어나 동학에 입문하여 농민운동에 참여하였다. 천도교인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후, 청년들 모아 개혁운동을 도모하였다. 1919년 4월 5일 발안 장터에서 시위행진을 하였고 시위가 격렬하게 전개되자 일본군은 4월 15일 제암리, 고주리, 수촌리 등지에서 학살을 저질렀다. 이때 김정헌은 제암리교회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주남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수원군 팔탄면에서 태어났으며, 큰아버지는 화성 지역 천도교 지도자 김흥렬, 중부는 구국동지회(救國同志會)를 조직한 독립운동가 김성열이다. 3월 31일 발안 장터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온 가족이 동참하는 등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후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풀려났다. 제암리 학살사건 이후 고주리에서 김주남 가족 6명이 일본군에게 무참히 살해되었다.
김주남 (金周男)
김주남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수원군 팔탄면에서 태어났으며, 큰아버지는 화성 지역 천도교 지도자 김흥렬, 중부는 구국동지회(救國同志會)를 조직한 독립운동가 김성열이다. 3월 31일 발안 장터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온 가족이 동참하는 등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후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풀려났다. 제암리 학살사건 이후 고주리에서 김주남 가족 6명이 일본군에게 무참히 살해되었다.
김주업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큰아버지는 화성 지역 천도교 지도자 김흥렬, 중부는 구국동지회를 조직한 김성열이었다. 3월 31일 향남면 발안 장터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온 가족이 동참하였다. 이후 체포되어 수원경찰서 등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풀려났다. 제암리 학살사건 이후 김주업은 고주리에서 가족 6명과 함께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김주업 (金周業)
김주업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큰아버지는 화성 지역 천도교 지도자 김흥렬, 중부는 구국동지회를 조직한 김성열이었다. 3월 31일 향남면 발안 장터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온 가족이 동참하였다. 이후 체포되어 수원경찰서 등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풀려났다. 제암리 학살사건 이후 김주업은 고주리에서 가족 6명과 함께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김흥렬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천도교 전교사와 순회교사로서 청년들에게 항일의식을 일깨웠다. 3 · 1운동 소식을 접하고 발안 장터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31일 가족 6명이 마을 주민들과 만세운동에 참가하였고, 이후 검거되어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났다. 4월 15일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 김흥렬 일가 6명은 무참하게 살해당하였다.
김흥렬 (金興烈)
김흥렬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천도교 전교사와 순회교사로서 청년들에게 항일의식을 일깨웠다. 3 · 1운동 소식을 접하고 발안 장터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31일 가족 6명이 마을 주민들과 만세운동에 참가하였고, 이후 검거되어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났다. 4월 15일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 김흥렬 일가 6명은 무참하게 살해당하였다.
김흥복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1일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일가족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가하였다. 김흥복의 가족은 발안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났으나,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에서 김흥복을 비롯한 일가족 6명은 무참하게 살해되어 순국하였다.
김흥복 (金興福)
김흥복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1일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일가족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가하였다. 김흥복의 가족은 발안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났으나,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에서 김흥복을 비롯한 일가족 6명은 무참하게 살해되어 순국하였다.
박원개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군북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군북 장터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군북 경찰주재소를 파괴하는 등 격렬히 대항하다 일제 군경의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원개 (朴元介)
박원개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군북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군북 장터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군북 경찰주재소를 파괴하는 등 격렬히 대항하다 일제 군경의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변갑섭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에서 일어난 삼진 연합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진전면 양촌리 냇가에 모여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일본 헌병의 저지에 맞서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다가 일본 헌병의 총칼을 맞고 4월 4일 순국하였다.
변갑섭 (卞甲燮)
변갑섭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에서 일어난 삼진 연합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진전면 양촌리 냇가에 모여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일본 헌병의 저지에 맞서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다가 일본 헌병의 총칼을 맞고 4월 4일 순국하였다.
변상복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에서 일어난 삼진 연합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진전면 양촌리 냇가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일본 헌병의 저지에 맞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일본 헌병의 발포로 총상을 입고 4월 4일 순국하였다.
변상복 (卞相福)
변상복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에서 일어난 삼진 연합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진전면 양촌리 냇가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일본 헌병의 저지에 맞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일본 헌병의 발포로 총상을 입고 4월 4일 순국하였다.
손두원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22일 경상북도 안동 길안면 천지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고, 길안면사무소와 주재소에서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3월 24일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명목으로 체포하려고 하자, 극력 저항하다가 일본 경찰의 발포로 총상을 입고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손두원 (孫斗源)
손두원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22일 경상북도 안동 길안면 천지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고, 길안면사무소와 주재소에서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3월 24일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명목으로 체포하려고 하자, 극력 저항하다가 일본 경찰의 발포로 총상을 입고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신태윤은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곡성군의 3 · 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9일 곡성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곡성군 청년들을 규합하여 만세운동을 계획 · 준비하였고, 3월 29일 장터에 모인 시위 군중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다 일제 관헌에 체포되어 2년의 옥고를 치렀다. 1925년 『삼일신고강의』를 발간하였고, 해방 후 곡성군 건국준비위원장과 조선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신태윤 (申泰允)
신태윤은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곡성군의 3 · 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9일 곡성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곡성군 청년들을 규합하여 만세운동을 계획 · 준비하였고, 3월 29일 장터에 모인 시위 군중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다 일제 관헌에 체포되어 2년의 옥고를 치렀다. 1925년 『삼일신고강의』를 발간하였고, 해방 후 곡성군 건국준비위원장과 조선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이기봉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 연합 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이 연합하여 전개한 삼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헌병 주재소가 있는 진동면을 향해 행진하다 헌병대와 격렬하게 충돌하였고, 일제 경찰의 무차별 총격으로 순국하였다.
이기봉 (李基鳳)
이기봉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 연합 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이 연합하여 전개한 삼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헌병 주재소가 있는 진동면을 향해 행진하다 헌병대와 격렬하게 충돌하였고, 일제 경찰의 무차별 총격으로 순국하였다.
이기선은 일제강점기,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홍천읍의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4월 2일 동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시작하였고, 4월 3일 내촌면에서는 천도교단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는데, 시위를 사전 탐지한 일제 헌병의 무차별 총격을 받고 순국하였다.
이기선 (李基先)
이기선은 일제강점기,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홍천읍의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4월 2일 동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시작하였고, 4월 3일 내촌면에서는 천도교단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는데, 시위를 사전 탐지한 일제 헌병의 무차별 총격을 받고 순국하였다.
이석종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서 전개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2일 거창읍 장날에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거창 지역의 만세운동을 주도하던 인물들이 체포되자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는데, 시위대의 해산을 요구하던 일제 경찰의 무차별 총격에 의해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석종 (李錫宗)
이석종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서 전개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2일 거창읍 장날에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거창 지역의 만세운동을 주도하던 인물들이 체포되자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는데, 시위대의 해산을 요구하던 일제 경찰의 무차별 총격에 의해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성하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아우내 만세운동은 아우내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아우내 장터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작되었다. 시위가 격렬하게 전개되자 일제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였고, 이성하도 이때 시위 현장에서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
이성하 (李星夏)
이성하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아우내 만세운동은 아우내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아우내 장터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작되었다. 시위가 격렬하게 전개되자 일제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였고, 이성하도 이때 시위 현장에서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
이신규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4일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서울에서 양평군 양근리 시장에 도착하여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하면서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군중에게 배포하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보안법」 위반 협의로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1926년 1월 24일 사망하였다.
이신규 (李藎珪)
이신규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4일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서울에서 양평군 양근리 시장에 도착하여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하면서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군중에게 배포하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보안법」 위반 협의로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1926년 1월 24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