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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돌을 들어올리는 성인남자놀이. # 내용 이 놀이에 쓰이는 돌은 지방에 따라 들독 · 등돌 · 든돌 · 진쇠돌 · 당산돌 · 신돌 · 초군돌 · 차돌백이돌 등으로도 불린다. 크기는 장사가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의 무거운 돌이며, 작은 돌은 쌀 한 가마 정도의 무게로 등뒤로 넘기기를 할 수 있는 들돌이다. 대개 타원형이거나 원형으로, 한 마을이 가지는 들돌의 수는 한두 개인데 많은 곳은 대여섯 개인 곳도 있다. 이 들돌 때문에 마을 이름이 거석거리 · 들독거리 · 거석마을 등으로 불리는 곳도 있다. 대개 동네 어귀나 당산나무 밑, 노두목, 정자 앞, 당집 앞, 장자집 마당, 텃논 등에 놓여 있다. 들돌의 생성 보유 유래는 마을마다 간단한 전설이 있다. 전라남도 흑산도 진리에는 입향시조가 당을 조성하고 번쩍번쩍 빛나는 돌을 발견하여...
들돌들기
무거운 돌을 들어올리는 성인남자놀이. # 내용 이 놀이에 쓰이는 돌은 지방에 따라 들독 · 등돌 · 든돌 · 진쇠돌 · 당산돌 · 신돌 · 초군돌 · 차돌백이돌 등으로도 불린다. 크기는 장사가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의 무거운 돌이며, 작은 돌은 쌀 한 가마 정도의 무게로 등뒤로 넘기기를 할 수 있는 들돌이다. 대개 타원형이거나 원형으로, 한 마을이 가지는 들돌의 수는 한두 개인데 많은 곳은 대여섯 개인 곳도 있다. 이 들돌 때문에 마을 이름이 거석거리 · 들독거리 · 거석마을 등으로 불리는 곳도 있다. 대개 동네 어귀나 당산나무 밑, 노두목, 정자 앞, 당집 앞, 장자집 마당, 텃논 등에 놓여 있다. 들돌의 생성 보유 유래는 마을마다 간단한 전설이 있다. 전라남도 흑산도 진리에는 입향시조가 당을 조성하고 번쩍번쩍 빛나는 돌을 발견하여...
자원·목표·가치관을 공유하는 가족원을 인적 구성으로 자원의 배분활동 및 소비활동을 행하는 경제단위. # 내용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던 원시시대에는 가정이 생산의 장소가 되어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자급자족하였다. 그 뒤 문화가 발달하면서 분업이 발생하고 시장이 나타났으며, 오늘날에는 그 규모가 커지고 다양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의 변천을 거치며 가정도 경제의 한 부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가계는 경제생활 단위로서의 가정 또는 가족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가계는 자원, 목표 및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가족원들을 통해 자원을 획득, 배분, 소비하는 과정을 행하는 경제 주체이며 하나의 체계로서 소비자 단위가 된다. 가계활동의 주요 내용은 소득을 획득하고, 그 소득을 소비지출로 배분하며, 재화와...
가계 (家計)
자원·목표·가치관을 공유하는 가족원을 인적 구성으로 자원의 배분활동 및 소비활동을 행하는 경제단위. # 내용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던 원시시대에는 가정이 생산의 장소가 되어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자급자족하였다. 그 뒤 문화가 발달하면서 분업이 발생하고 시장이 나타났으며, 오늘날에는 그 규모가 커지고 다양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의 변천을 거치며 가정도 경제의 한 부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가계는 경제생활 단위로서의 가정 또는 가족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가계는 자원, 목표 및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가족원들을 통해 자원을 획득, 배분, 소비하는 과정을 행하는 경제 주체이며 하나의 체계로서 소비자 단위가 된다. 가계활동의 주요 내용은 소득을 획득하고, 그 소득을 소비지출로 배분하며, 재화와...
집의 이동을 위하여 헐고 옮기기 쉽도록 임시로 짓는 가설물. 여막·초막·뜸집.# 내용 가가를 짓는 경우는 시가지에서 난전을 열 때, 공사장에서 햇볕을 가려야 할 때, 화소(火巢 : 능원·묘 밖의 풀과 나무를 불태우는 일)를 열거나 명당을 가봉(加封)하거나 혈(穴) 위에 차일을 칠 때, 군인이 일정한 수직처에서 따로 떨어져 번을 설 때, 집을 짓거나 성을 쌓거나 도로를 닦을 때 감역관(監役官)이나 감동관(監董官)들이 거처할 장소가 필요할 경우, 배 위에 거처할 장소를 마련해야 될 때 등이다. 집을 지을 때에는 이엉이나 솔가지, 띠 등을 써서 짓는데, 보통 단칸이며 문짝이나 들창이 따로 없고 맨바닥인 것이 일반적이다. 공사장에서 햇볕을 가려야 할 때에는 벽체 없이 지으며, 거처를 위하여 지을 때는 벽체를 설비하기도 한다....
가가 (假家)
집의 이동을 위하여 헐고 옮기기 쉽도록 임시로 짓는 가설물. 여막·초막·뜸집.# 내용 가가를 짓는 경우는 시가지에서 난전을 열 때, 공사장에서 햇볕을 가려야 할 때, 화소(火巢 : 능원·묘 밖의 풀과 나무를 불태우는 일)를 열거나 명당을 가봉(加封)하거나 혈(穴) 위에 차일을 칠 때, 군인이 일정한 수직처에서 따로 떨어져 번을 설 때, 집을 짓거나 성을 쌓거나 도로를 닦을 때 감역관(監役官)이나 감동관(監董官)들이 거처할 장소가 필요할 경우, 배 위에 거처할 장소를 마련해야 될 때 등이다. 집을 지을 때에는 이엉이나 솔가지, 띠 등을 써서 짓는데, 보통 단칸이며 문짝이나 들창이 따로 없고 맨바닥인 것이 일반적이다. 공사장에서 햇볕을 가려야 할 때에는 벽체 없이 지으며, 거처를 위하여 지을 때는 벽체를 설비하기도 한다....
손쉽게 먹거나 오래 저장하기 위하여 농산물·축산물·수산물 등의 천연재료와 첨가물을 이용해 만든 식품. 그래서 여러 가지 제품을 적절히 선정하여 함께 사용하여야 한다. 따라서 식품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분주한 현대생활에 간편한 식사, 자원의 효용, 위생적인 처리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가공식품은 날로 증가되고 있다. 특히 요즈음에는 반가공식품 · 완제품 등 다양하게 가공되어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선정할 수 있다. - 『식품가공학』(유태종·이상건, 문운당, 1994) - 『발효 및 식품공업·한국의 화학공업』(권태완, 한국화학공학회, 1994) - 『總合食料工業』(櫻井芳人, 朝倉書店, 1980) - Encyclopedia of Food, Agriculture and Nutrition(Lapites, D.N., McGaw Hill, 1977)
가공식품 (加工食品)
손쉽게 먹거나 오래 저장하기 위하여 농산물·축산물·수산물 등의 천연재료와 첨가물을 이용해 만든 식품. 그래서 여러 가지 제품을 적절히 선정하여 함께 사용하여야 한다. 따라서 식품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분주한 현대생활에 간편한 식사, 자원의 효용, 위생적인 처리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가공식품은 날로 증가되고 있다. 특히 요즈음에는 반가공식품 · 완제품 등 다양하게 가공되어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선정할 수 있다. - 『식품가공학』(유태종·이상건, 문운당, 1994) - 『발효 및 식품공업·한국의 화학공업』(권태완, 한국화학공학회, 1994) - 『總合食料工業』(櫻井芳人, 朝倉書店, 1980) - Encyclopedia of Food, Agriculture and Nutrition(Lapites, D.N., McGaw Hill, 1977)
집안 살림의 수입과 지출을 적는 장부. 당시의 생활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명절을 쇠는 비용이며, 다음이 하인들의 새경으로 나타났다. 또한, 검소한 생활비 지출 등의 양상이 가계부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현대에 와서 가계부가 널리 보급되어 일반화되기는 했으나 가계부의 기록 방법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가계 수입과 가계 지출을 항목별로 세분해서 기록하는 등 좀더 항목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고, 가계부 형식이 결산하기에 편리한 방법으로 개선되었을 뿐이다. 가계 부기의 형식에는 일기장 형식, 1일 수지 집계표 형식, 특수 현금 출납부 형식 등이 있다. 일기장 형식은 기입이 간단해 편리하기는 하나, 지출란이 하나로 되어 있어서 비목별 지출 사항을 수시로 파악할 수 없고, 월말에 결산을 행할 때 시간과 노력이...
가계부 (家計簿)
집안 살림의 수입과 지출을 적는 장부. 당시의 생활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명절을 쇠는 비용이며, 다음이 하인들의 새경으로 나타났다. 또한, 검소한 생활비 지출 등의 양상이 가계부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현대에 와서 가계부가 널리 보급되어 일반화되기는 했으나 가계부의 기록 방법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가계 수입과 가계 지출을 항목별로 세분해서 기록하는 등 좀더 항목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고, 가계부 형식이 결산하기에 편리한 방법으로 개선되었을 뿐이다. 가계 부기의 형식에는 일기장 형식, 1일 수지 집계표 형식, 특수 현금 출납부 형식 등이 있다. 일기장 형식은 기입이 간단해 편리하기는 하나, 지출란이 하나로 되어 있어서 비목별 지출 사항을 수시로 파악할 수 없고, 월말에 결산을 행할 때 시간과 노력이...
국가가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출하거나 임금정책, 사회보장제도 등을 수립하기 위하여 가계의 경제 상태 및 생활 수준의 변동 상황을 파악하는 통계조사. 이로 볼 때 우리나라 국민의 소득 수준 및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97년의 우리나라 근로자 가계의 소비 지출 구성비를 살펴보면, 외식비(10.9%)를 포함한 식료품비는 28.7%이고, 주거비는 3.4%, 광열·수도비는 4.5%, 가구·가사비는 4.2%, 피복·신발비는 6.6%, 보건·의료비는 4.5%, 교육비는 10.3%, 교양·오락비는 5.2%, 교통·통신비는 13.1%, 기타 소비지출이 19.5%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정보화의 영향으로 교통·통신비의 비중이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건강 관리에 따른 보건·의료비의 비중도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가계 조사는 가계의...
가계조사 (家計調査)
국가가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출하거나 임금정책, 사회보장제도 등을 수립하기 위하여 가계의 경제 상태 및 생활 수준의 변동 상황을 파악하는 통계조사. 이로 볼 때 우리나라 국민의 소득 수준 및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97년의 우리나라 근로자 가계의 소비 지출 구성비를 살펴보면, 외식비(10.9%)를 포함한 식료품비는 28.7%이고, 주거비는 3.4%, 광열·수도비는 4.5%, 가구·가사비는 4.2%, 피복·신발비는 6.6%, 보건·의료비는 4.5%, 교육비는 10.3%, 교양·오락비는 5.2%, 교통·통신비는 13.1%, 기타 소비지출이 19.5%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정보화의 영향으로 교통·통신비의 비중이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건강 관리에 따른 보건·의료비의 비중도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가계 조사는 가계의...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조선후기 성산이씨 관련 주택. # 내용 1983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안채 · 사랑채 · 서재 · 사당 · 대문간채 · 중문간채가 현존하며, 대략 1760년(영조 36)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이 집은 성산이씨(星山李氏)가 대대로 살아온 “한개”마을에 있다. 한개마을은 해발 300m의 영취산을 주산으로 좌청룡 우백호가 감싸면서 발달한 형국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성산이씨 시조인 고려의 개국공신 이능일(李能一)의 15대손인 이우(李友)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대략 1445년(세종 27)경이라고 한다. 인물이 다수 배출되고 공조판서까지 출자하면서 영조 때부터는 명문으로 발돋음했고, 마을에 규모 있는 집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 집은 마을 안길...
대산동 교리댁 (大山洞 校理宅)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조선후기 성산이씨 관련 주택. # 내용 1983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안채 · 사랑채 · 서재 · 사당 · 대문간채 · 중문간채가 현존하며, 대략 1760년(영조 36)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이 집은 성산이씨(星山李氏)가 대대로 살아온 “한개”마을에 있다. 한개마을은 해발 300m의 영취산을 주산으로 좌청룡 우백호가 감싸면서 발달한 형국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성산이씨 시조인 고려의 개국공신 이능일(李能一)의 15대손인 이우(李友)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대략 1445년(세종 27)경이라고 한다. 인물이 다수 배출되고 공조판서까지 출자하면서 영조 때부터는 명문으로 발돋음했고, 마을에 규모 있는 집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 집은 마을 안길...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조선후기 사도세자의 호위무관 출신 이석문 관련 주택. # 내용 1983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이던 훈련원 주부 이석문(李碩文)이 사도세자 참변 이후 영조 50년(1774)에 세자를 추모하며 북향으로 문을 내고 평생 은거하던 집이다. 가전(家傳)에 순조10년(1810) 손자 사헌부 장령(掌令) 이진(李鎭)이 안채와 사랑채를 신축하고 대문 안 맞배집을 서재로 개수했다 한다. 사랑채는 고종3년(1866)에 중수하였다. 원래 장판각 · 안대문채 · 마방과 뜰아랫채가 더 있었으나 없어졌고 지금은 대문 · 안채 · 사랑채 · 안행랑채 · 사당과 북비댁이 일곽을 이루고 있다. 대문간채는 솟을대문 · 방 · 마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솟을대문 측벽에 쪽문 내고...
대산동 북비고택 (大山洞 北扉故宅)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조선후기 사도세자의 호위무관 출신 이석문 관련 주택. # 내용 1983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이던 훈련원 주부 이석문(李碩文)이 사도세자 참변 이후 영조 50년(1774)에 세자를 추모하며 북향으로 문을 내고 평생 은거하던 집이다. 가전(家傳)에 순조10년(1810) 손자 사헌부 장령(掌令) 이진(李鎭)이 안채와 사랑채를 신축하고 대문 안 맞배집을 서재로 개수했다 한다. 사랑채는 고종3년(1866)에 중수하였다. 원래 장판각 · 안대문채 · 마방과 뜰아랫채가 더 있었으나 없어졌고 지금은 대문 · 안채 · 사랑채 · 안행랑채 · 사당과 북비댁이 일곽을 이루고 있다. 대문간채는 솟을대문 · 방 · 마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솟을대문 측벽에 쪽문 내고...
매년 4월 초순경에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장고도리에서 처녀들이 두 패로 편을 갈라 어물 채취로 승패를 가리는 성인여자놀이. # 내용 해안지방 처녀들의 집단놀이이다. 매년 음력 4월 초순경의 길일을 택하여 거행되며, 초경(初經)을 경험한 처녀(지금은 15세 이상)들만의 놀이로서, 해당화가 만발한 해변에서 펼쳐진다. 이 놀이의 유래나 어원 등에 관한 뚜렷한 전거(典據 ; 근거가 될만한 문헌상의 출처)나 전승(傳承)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이곳에서 살아온 할머니들에 의하면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어머니나 할머니도 처녀시절에 이 놀이를 하였다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 놀이의 유래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놀이가 벌어지기 하루 전, 마을 처녀들은 일찍 아침식사를 마치고 바닷가의 놀이터로 모인다. 거기서...
등바루놀이
매년 4월 초순경에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장고도리에서 처녀들이 두 패로 편을 갈라 어물 채취로 승패를 가리는 성인여자놀이. # 내용 해안지방 처녀들의 집단놀이이다. 매년 음력 4월 초순경의 길일을 택하여 거행되며, 초경(初經)을 경험한 처녀(지금은 15세 이상)들만의 놀이로서, 해당화가 만발한 해변에서 펼쳐진다. 이 놀이의 유래나 어원 등에 관한 뚜렷한 전거(典據 ; 근거가 될만한 문헌상의 출처)나 전승(傳承)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이곳에서 살아온 할머니들에 의하면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어머니나 할머니도 처녀시절에 이 놀이를 하였다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 놀이의 유래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놀이가 벌어지기 하루 전, 마을 처녀들은 일찍 아침식사를 마치고 바닷가의 놀이터로 모인다. 거기서...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안채·사랑채·별당채·사당채·대문간채 등으로 구성된 주택. # 내용 1983년 경상북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911년 이전희(李銓熙)가 창건한 집이다. 1930년에 가묘와 별당을 증축하였다. 안채○사랑채○별당채○사당채○대문간채가 현존한다. 20세기에 들어와 지은 살림집이면서도 마을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 맥을 재현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전통이 얼마나 끈질긴 보수성을 지녔는지를 일깨워 주는 한 증거일 수 있다는 점이 이집의 특성이다. 낮고 직박한 대문간채의 평문이 서편끝간에 있다. 4칸 규모인데 나머지는 헛간이다. 대문안에 들어서면 사랑채가 보이고 우측에 별당채가 있다. 중문은 별당채 지나면서 안행랑채와 이룬 골목안에 있다. 이런 구성도...
대산동 월곡댁 (大山洞 月谷宅)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안채·사랑채·별당채·사당채·대문간채 등으로 구성된 주택. # 내용 1983년 경상북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911년 이전희(李銓熙)가 창건한 집이다. 1930년에 가묘와 별당을 증축하였다. 안채○사랑채○별당채○사당채○대문간채가 현존한다. 20세기에 들어와 지은 살림집이면서도 마을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 맥을 재현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전통이 얼마나 끈질긴 보수성을 지녔는지를 일깨워 주는 한 증거일 수 있다는 점이 이집의 특성이다. 낮고 직박한 대문간채의 평문이 서편끝간에 있다. 4칸 규모인데 나머지는 헛간이다. 대문안에 들어서면 사랑채가 보이고 우측에 별당채가 있다. 중문은 별당채 지나면서 안행랑채와 이룬 골목안에 있다. 이런 구성도...
양념하지 않고 소금만 뿌려 구운 고기음식. # 내용 소금구이라고도 한다. 방자(房子)란 관청의 종을 말하며, 상전을 기다리면서 밖에서 고기 한조각을 얻어 즉석에서 구워 먹은 데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고려도경(高麗圖經)』 방자조에도 방자라는 하인은 박봉이라 채소 등이 급여될 뿐이어서 간혹 윗사람이 먹다남긴 고기찌꺼기를 비록 조금 변질되어 냄새가 나도 달게 먹고 집에 가지고 가기도 한다고 하였다. 방자구이는 소금만 뿌려서 굽는 것이므로 특별한 양념재료나 조리기술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식품이 가지고 있는 자체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 먹을 때는 날파나 상추의 겉절이를 곁들여 먹기도 하였다. - 『고려이전 한국식생활사연구』(이성우, 향문사, 1978)
방자구이 (房子구이)
양념하지 않고 소금만 뿌려 구운 고기음식. # 내용 소금구이라고도 한다. 방자(房子)란 관청의 종을 말하며, 상전을 기다리면서 밖에서 고기 한조각을 얻어 즉석에서 구워 먹은 데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고려도경(高麗圖經)』 방자조에도 방자라는 하인은 박봉이라 채소 등이 급여될 뿐이어서 간혹 윗사람이 먹다남긴 고기찌꺼기를 비록 조금 변질되어 냄새가 나도 달게 먹고 집에 가지고 가기도 한다고 하였다. 방자구이는 소금만 뿌려서 굽는 것이므로 특별한 양념재료나 조리기술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식품이 가지고 있는 자체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 먹을 때는 날파나 상추의 겉절이를 곁들여 먹기도 하였다. - 『고려이전 한국식생활사연구』(이성우, 향문사, 1978)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조선후기 유학자 한주 이진상 관련 주택. # 내용 1983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767년(영조 43) 이민검(李敏儉)이 창건했던 것을 1866년(고종 3) 한주 이진상(李震相)이 중건하였다. 대문간채 · 사랑채 · 안채 · 아래채 · 고방채 · 중문간채 · 사당 · 정자 · 행랑채가 현존한다. 마을의 제일 깊은 막다른 위치에 있고 경사진 비탈 끝에 동향한 평삼문형 대문이 있다. 방 · 대문 · 마구간 순으로 평면 구조인데 마구간 위에 다락이 있어 층계로 오를 수 있게 되어 특색을 보인다. 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사랑채가 있다. 남향한 맞배지붕 건물로 평면은 정면 4칸 반, 측면 2칸 반 규모이다. 향 좌측의 방이 큰 사랑방이다. 아랫방 · 윗방 그리고 뒤쪽의 넓은 골방, 좌측 반 칸의...
대산동 한주종택 (大山洞 寒洲宗宅)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조선후기 유학자 한주 이진상 관련 주택. # 내용 1983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767년(영조 43) 이민검(李敏儉)이 창건했던 것을 1866년(고종 3) 한주 이진상(李震相)이 중건하였다. 대문간채 · 사랑채 · 안채 · 아래채 · 고방채 · 중문간채 · 사당 · 정자 · 행랑채가 현존한다. 마을의 제일 깊은 막다른 위치에 있고 경사진 비탈 끝에 동향한 평삼문형 대문이 있다. 방 · 대문 · 마구간 순으로 평면 구조인데 마구간 위에 다락이 있어 층계로 오를 수 있게 되어 특색을 보인다. 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사랑채가 있다. 남향한 맞배지붕 건물로 평면은 정면 4칸 반, 측면 2칸 반 규모이다. 향 좌측의 방이 큰 사랑방이다. 아랫방 · 윗방 그리고 뒤쪽의 넓은 골방, 좌측 반 칸의...
외기를 막기 위하여 방안에 치는 휘장. 고구려 고분벽화의 생활하는 모습 가운데는 건축물에 부착된 장막을 볼 수 있다. 또 따로 침상을 꾸민 주인공 내외가 거처하는 부분에 친 방장을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고구려의 귀족이나 왕족들은 넓은 방의 네 벽에 거대하고 두꺼운 유막을 늘여 일단 외기를 차단하였던 것 같다. 방 한쪽에 따로 침상을 놓고 그 침상에 천장과 벽체를 방장이나 병풍으로 둘러 설치하여 또하나의 공간을 구성하는 시설법을 구사하였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 『삼국사기』의 집에 관한 금령(禁令)에도 비단을 써서 전을 두른 발을 육두품은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였고, 수를 놓은 병풍도 쓸 수 없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육두품 이상의 골품에서는 사용할 수 있다는...
방장 (房帳)
외기를 막기 위하여 방안에 치는 휘장. 고구려 고분벽화의 생활하는 모습 가운데는 건축물에 부착된 장막을 볼 수 있다. 또 따로 침상을 꾸민 주인공 내외가 거처하는 부분에 친 방장을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고구려의 귀족이나 왕족들은 넓은 방의 네 벽에 거대하고 두꺼운 유막을 늘여 일단 외기를 차단하였던 것 같다. 방 한쪽에 따로 침상을 놓고 그 침상에 천장과 벽체를 방장이나 병풍으로 둘러 설치하여 또하나의 공간을 구성하는 시설법을 구사하였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 『삼국사기』의 집에 관한 금령(禁令)에도 비단을 써서 전을 두른 발을 육두품은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였고, 수를 놓은 병풍도 쓸 수 없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육두품 이상의 골품에서는 사용할 수 있다는...
조선시대 왕비의 예복. # 내용 명나라에서 전래된 옷으로 붉은 색의 모시로 지었으며 문식(文飾)이 없다. 1403년(태종 3) 면복(冕服)과 태상왕(太上王) 표리(表裏)와 중궁의 관복(冠服)을 가지고 왔는데, 이 때 가져온 의복은 각색소저사의복(各色素紵紗衣服)과 대홍소저사겹대삼(大紅素紵紗裌大衫)·복청소저겹원령(福靑素紵裌圓領)·청소저사수적계하피(靑素紵紗繡翟雞霞帔) 등이었다. 1456년(세조 2)에 전래된 복식은 주취칠적관(珠翠七翟冠)과 대홍저사대삼(大紅紵絲大衫)·청저사수권금적계배자(靑紵絲綉圈金翟雞背子)·청선라채수권하피(靑線羅采綉圈霞帔)·상아여홀(象牙女笏) 등이었다. 명나라 영락(永樂) 3년(1405)의 예제(禮制)로는 대삼과 하피가 황후의 연거복(燕居服)이고 군왕비의 관복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우리...
대삼 (大衫)
조선시대 왕비의 예복. # 내용 명나라에서 전래된 옷으로 붉은 색의 모시로 지었으며 문식(文飾)이 없다. 1403년(태종 3) 면복(冕服)과 태상왕(太上王) 표리(表裏)와 중궁의 관복(冠服)을 가지고 왔는데, 이 때 가져온 의복은 각색소저사의복(各色素紵紗衣服)과 대홍소저사겹대삼(大紅素紵紗裌大衫)·복청소저겹원령(福靑素紵裌圓領)·청소저사수적계하피(靑素紵紗繡翟雞霞帔) 등이었다. 1456년(세조 2)에 전래된 복식은 주취칠적관(珠翠七翟冠)과 대홍저사대삼(大紅紵絲大衫)·청저사수권금적계배자(靑紵絲綉圈金翟雞背子)·청선라채수권하피(靑線羅采綉圈霞帔)·상아여홀(象牙女笏) 등이었다. 명나라 영락(永樂) 3년(1405)의 예제(禮制)로는 대삼과 하피가 황후의 연거복(燕居服)이고 군왕비의 관복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우리...
기름을 연료로 하여 불을 켤 수 있도록 만든 그릇. # 내용 그 재료에 따라 목제·토제·대리석·백자·사기·놋쇠·철제 따위의 등잔이 있다. 여기에 한지·솜·마사(麻絲) 등으로 심지를 만들어 기름이 배어들게 하여 불을 켠다. 등잔의 기원은 언제부터인지 확실하게 근원을 밝히기는 어려우나, 삼국시대의 발굴품 중에서 각종 형태의 등잔들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미 그 이전부터 있었음을 추정 할 수 있다. 신라의 유물로는 토기로 된 다등식와등(多燈式瓦燈)이 있고, 백제의 것으로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자등잔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옥등잔이라고도 하는 대리석등잔이 있었다. 특히 작은 옥등잔은 인등(引燈)이라고 하여 무가(巫家)의 행사에도 사용되었고 연등(燃燈)에도 사용되었다. 큰 것은 지름이 한자[一尺]에 달하는 것도...
등잔 (燈盞)
기름을 연료로 하여 불을 켤 수 있도록 만든 그릇. # 내용 그 재료에 따라 목제·토제·대리석·백자·사기·놋쇠·철제 따위의 등잔이 있다. 여기에 한지·솜·마사(麻絲) 등으로 심지를 만들어 기름이 배어들게 하여 불을 켠다. 등잔의 기원은 언제부터인지 확실하게 근원을 밝히기는 어려우나, 삼국시대의 발굴품 중에서 각종 형태의 등잔들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미 그 이전부터 있었음을 추정 할 수 있다. 신라의 유물로는 토기로 된 다등식와등(多燈式瓦燈)이 있고, 백제의 것으로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자등잔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옥등잔이라고도 하는 대리석등잔이 있었다. 특히 작은 옥등잔은 인등(引燈)이라고 하여 무가(巫家)의 행사에도 사용되었고 연등(燃燈)에도 사용되었다. 큰 것은 지름이 한자[一尺]에 달하는 것도...
1년을 24개로 구분한 24절기 가운데 열두 번째 절기. 24절기. # 내용 소서와 입추(立秋) 사이에 들며, 음력 6월, 양력 7월 23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120°가 되는 때이다. 이 시기는 대개 중복(中伏) 때이며 더위가 심한 시기이다. 옛날에는 논의 김을 매어주었으나 지금은 제초제를 뿌리고 논김은 매지 않는다. 그러나 밭김은 매어주고 논밭두렁의 잡초베기와 퇴비장만 등이 이 무렵에 계속된다. 옛날 중국에서는 대서입기일(大暑入氣日)로부터 입추까지의 기간을 5일씩 끊어서 삼후(三候)로 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썩은 풀이 변하여 반딧불이 되고, 중후(中候)에는 흙이 습하고 무더워지며, 말후(末候)에는 큰비가 때때로 내린다고 하였다. 이 무렵은 몹시 더우며, 소서 때로부터 장마전선이 한반도에 동서로 걸쳐 큰 장마를 이루는 때가 자주...
대서 (大暑)
1년을 24개로 구분한 24절기 가운데 열두 번째 절기. 24절기. # 내용 소서와 입추(立秋) 사이에 들며, 음력 6월, 양력 7월 23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120°가 되는 때이다. 이 시기는 대개 중복(中伏) 때이며 더위가 심한 시기이다. 옛날에는 논의 김을 매어주었으나 지금은 제초제를 뿌리고 논김은 매지 않는다. 그러나 밭김은 매어주고 논밭두렁의 잡초베기와 퇴비장만 등이 이 무렵에 계속된다. 옛날 중국에서는 대서입기일(大暑入氣日)로부터 입추까지의 기간을 5일씩 끊어서 삼후(三候)로 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썩은 풀이 변하여 반딧불이 되고, 중후(中候)에는 흙이 습하고 무더워지며, 말후(末候)에는 큰비가 때때로 내린다고 하였다. 이 무렵은 몹시 더우며, 소서 때로부터 장마전선이 한반도에 동서로 걸쳐 큰 장마를 이루는 때가 자주...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 가락식토기(可樂式土器)는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이다. 토기의 입술을 겹아가리로 만들고 그 위에 짧은빗금무늬, 격자무늬, 거치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이 명칭은 1963년 고려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서울가락동유적에서 유래하지만, 한강 유역보다는 대전을 중심으로 한 금강 유역 일대의 지역성을 잘 보여 주는 토기 형식이다.# 특징과 변화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 토기인 가락식토기는 납작바닥의 바리모양토기에 겹아가리의 전체 혹은 하단, 몸통에 걸쳐 짧은빗금무늬, 석쇠무늬, 톱니무늬 등을 시문한 토기를 말한다. 가락식토기는 겹아가리의 하단부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에서...
가락식토기 (可樂式土器)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 가락식토기(可樂式土器)는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이다. 토기의 입술을 겹아가리로 만들고 그 위에 짧은빗금무늬, 격자무늬, 거치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이 명칭은 1963년 고려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서울가락동유적에서 유래하지만, 한강 유역보다는 대전을 중심으로 한 금강 유역 일대의 지역성을 잘 보여 주는 토기 형식이다.# 특징과 변화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 토기인 가락식토기는 납작바닥의 바리모양토기에 겹아가리의 전체 혹은 하단, 몸통에 걸쳐 짧은빗금무늬, 석쇠무늬, 톱니무늬 등을 시문한 토기를 말한다. 가락식토기는 겹아가리의 하단부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에서...
여자의 손가락에 끼는 장식물. 이로써 볼 때 가락지는 조선시대가 유교를 지도이념으로 삼고, 그 사상이 생활윤리 전반을 지배하던 시대이므로, 혼례를 인간 대사[^1]의 하나로 삼는 가운데 이성지합(二姓之合)[^2]과 부부일신(夫婦一身)[^3]을 상징하는 표지로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락지는 한 짝의 고리인 반지를 두 짝으로 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반지나 가락지나 그 재료나 기교면에서는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유물에 의하면 재료는 도금(鍍金)^4] 또는 [은(銀)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명나라에 대한 진공(進貢)^5]이 어려웠을 뿐더러 면진공정책(免進貢政策)을 위해서도 [금의 사용을 금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밖에 칠보 · 옥 · 마노...
가락지
여자의 손가락에 끼는 장식물. 이로써 볼 때 가락지는 조선시대가 유교를 지도이념으로 삼고, 그 사상이 생활윤리 전반을 지배하던 시대이므로, 혼례를 인간 대사[^1]의 하나로 삼는 가운데 이성지합(二姓之合)[^2]과 부부일신(夫婦一身)[^3]을 상징하는 표지로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락지는 한 짝의 고리인 반지를 두 짝으로 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반지나 가락지나 그 재료나 기교면에서는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유물에 의하면 재료는 도금(鍍金)^4] 또는 [은(銀)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명나라에 대한 진공(進貢)^5]이 어려웠을 뿐더러 면진공정책(免進貢政策)을 위해서도 [금의 사용을 금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밖에 칠보 · 옥 · 마노...
정월 또는 겨울철에 중부 이북지방과 강원도 등지에서 여러 명의 부녀자 또는 아이들이 둘러앉아 가락지를 숨기고 찾아내며 노는 성인여자놀이. # 내용 ‘반지놀음’이라고도 하며, 주로 정월 또는 겨울철에 방안에서 하는 놀이이다. 중부 이북지방과 강원도 등지에서 많이 행해졌다. 놀이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7, 8명의 여자들이 빙 둘러앉아서 가위바위보를 하여 술래를 정한다. 진 사람이 술래가 되는데 이를 범 또는 고양이라고 한다. 술래를 원 안에 앉히고 눈을 감기거나 가린다. 술래를 중심으로 둘러앉은 사람들은 가락지를 옆 사람의 치마 밑으로 돌리면서 “숨겨라, 숨겨라.” 하고 장단을 맞추면서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가 그 중 한 사람에게 가락지를 감춘 뒤 “끝” 하는 신호에 따라 술래가 눈을 뜨고 감춘 가락지를 찾기...
가락지 찾기 놀이
정월 또는 겨울철에 중부 이북지방과 강원도 등지에서 여러 명의 부녀자 또는 아이들이 둘러앉아 가락지를 숨기고 찾아내며 노는 성인여자놀이. # 내용 ‘반지놀음’이라고도 하며, 주로 정월 또는 겨울철에 방안에서 하는 놀이이다. 중부 이북지방과 강원도 등지에서 많이 행해졌다. 놀이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7, 8명의 여자들이 빙 둘러앉아서 가위바위보를 하여 술래를 정한다. 진 사람이 술래가 되는데 이를 범 또는 고양이라고 한다. 술래를 원 안에 앉히고 눈을 감기거나 가린다. 술래를 중심으로 둘러앉은 사람들은 가락지를 옆 사람의 치마 밑으로 돌리면서 “숨겨라, 숨겨라.” 하고 장단을 맞추면서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가 그 중 한 사람에게 가락지를 감춘 뒤 “끝” 하는 신호에 따라 술래가 눈을 뜨고 감춘 가락지를 찾기...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도와 주기 위한 중간 단계의 돌. # 내용 계단의 바닥돌이나 마루 아래의 섬돌 등이 이에 해당한다. 특수한 것으로는 말을 탈 때 딛고 서서 올라타기 편하게 한 노둣돌도 이에 속한다. 마루에 올라서기 편하게 한 디딤돌은 보통 보석(步石) 또는 섬돌이라 부르는데, 적당한 자연석을 약간만 다듬어서 쓰기도 하지만 대개는 화강석을 잘 다듬어서 장대석으로 만들어 쓴다. 마루가 아니더라도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문지방이 높은 경우에는 문지방의 안팎으로 디딤돌을 놓는다. 잘 지은 집에서는 디딤돌의 길이를 길게 하여 주초석과 주초석 사이를 꽉 채우기도 하고 약간만 틔워 놓기도 한다. 마루가 상당히 높은 경우에는 디딤돌을 2단으로 놓는다. 이럴 때는 아랫단은 넓게 하고 그 위에 다시 한 단을...
디딤돌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도와 주기 위한 중간 단계의 돌. # 내용 계단의 바닥돌이나 마루 아래의 섬돌 등이 이에 해당한다. 특수한 것으로는 말을 탈 때 딛고 서서 올라타기 편하게 한 노둣돌도 이에 속한다. 마루에 올라서기 편하게 한 디딤돌은 보통 보석(步石) 또는 섬돌이라 부르는데, 적당한 자연석을 약간만 다듬어서 쓰기도 하지만 대개는 화강석을 잘 다듬어서 장대석으로 만들어 쓴다. 마루가 아니더라도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문지방이 높은 경우에는 문지방의 안팎으로 디딤돌을 놓는다. 잘 지은 집에서는 디딤돌의 길이를 길게 하여 주초석과 주초석 사이를 꽉 채우기도 하고 약간만 틔워 놓기도 한다. 마루가 상당히 높은 경우에는 디딤돌을 2단으로 놓는다. 이럴 때는 아랫단은 넓게 하고 그 위에 다시 한 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