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학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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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3년 성현·유자광 등이 왕명으로 조선시대의 의궤와 악보를 정리하여 편찬한 악서(樂書). 예술서. <동동>과 <정읍>의 가사는 ≪대악후보 大樂後譜≫와 ≪악장가사 樂章歌詞≫에도 없고, 오직 ≪악학궤범≫에서만 볼 수 있는 노래이여서 국문학적으로 귀중한 자료이다. 권6의 아부악기도설(雅部樂器圖說)과 권7의 당부악기도설(唐部樂器圖說)은 먼저 악기의 전체 모양을 그림으로 보이고, 그 그림에다 악기의 치수를 일일이 적고, 그 재료를 설명하였다. 이는 실제 악기제작에 참고가 되게 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임을 알 수 있다. 권8 중 당악정재의물도설(唐樂呈才儀物圖說)은 당악정재에 쓰이는 의물과 복식을 그림으로 전체 모양을 그리고 여기에다 치수를 기입하고 그에 쓰이는 재료를 적어서, 실제 그 제작을 가능하게 설명하고...
악학궤범 (樂學軌範)
1493년 성현·유자광 등이 왕명으로 조선시대의 의궤와 악보를 정리하여 편찬한 악서(樂書). 예술서. <동동>과 <정읍>의 가사는 ≪대악후보 大樂後譜≫와 ≪악장가사 樂章歌詞≫에도 없고, 오직 ≪악학궤범≫에서만 볼 수 있는 노래이여서 국문학적으로 귀중한 자료이다. 권6의 아부악기도설(雅部樂器圖說)과 권7의 당부악기도설(唐部樂器圖說)은 먼저 악기의 전체 모양을 그림으로 보이고, 그 그림에다 악기의 치수를 일일이 적고, 그 재료를 설명하였다. 이는 실제 악기제작에 참고가 되게 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임을 알 수 있다. 권8 중 당악정재의물도설(唐樂呈才儀物圖說)은 당악정재에 쓰이는 의물과 복식을 그림으로 전체 모양을 그리고 여기에다 치수를 기입하고 그에 쓰이는 재료를 적어서, 실제 그 제작을 가능하게 설명하고...
악공과 악생을 지도하고 궁중의례에서 음악과 춤을 이끌어가는 위치에 있는 악인(樂人)을 가리키는 경칭. 악사는 악공과 악생을 지도하고 의례 음악을 지휘·감독하는 위치에 있는 악인을 가리키는 경칭이다. 궁중 음악의 전문가로 악기 개조와 제작까지 담당하였다. 일부는 전악 등 관직에 임명되어 연향에서 노래를 이끌고 제례에서 가자를 이끄는 도창 역할을 하였다. 악사들은 『악학궤범』·『금합자보』·『양금신보』 등 악보 편찬에도 참여해 음악 전승에 기여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장악 기관의 명칭과 상위 기관 및 직제가 변하면서, 악사(樂師)의 개념은 이전과 달리 직제명으로 쓰이게 되었다. 민속 연주자를 뜻하는 악사(樂士)와는 다른 개념이다.예조판서 성현(成俔)이 전악 박곤(朴𦓼) · 김복근(金福根) 등과 함께 『악학궤범...
악사 (樂師)
악공과 악생을 지도하고 궁중의례에서 음악과 춤을 이끌어가는 위치에 있는 악인(樂人)을 가리키는 경칭. 악사는 악공과 악생을 지도하고 의례 음악을 지휘·감독하는 위치에 있는 악인을 가리키는 경칭이다. 궁중 음악의 전문가로 악기 개조와 제작까지 담당하였다. 일부는 전악 등 관직에 임명되어 연향에서 노래를 이끌고 제례에서 가자를 이끄는 도창 역할을 하였다. 악사들은 『악학궤범』·『금합자보』·『양금신보』 등 악보 편찬에도 참여해 음악 전승에 기여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장악 기관의 명칭과 상위 기관 및 직제가 변하면서, 악사(樂師)의 개념은 이전과 달리 직제명으로 쓰이게 되었다. 민속 연주자를 뜻하는 악사(樂士)와는 다른 개념이다.예조판서 성현(成俔)이 전악 박곤(朴𦓼) · 김복근(金福根) 등과 함께 『악학궤범...
고구려에서 사용된 토고(土鼓) 중 하나거나 고려와 조선 전기 아악(雅樂)에서 쓰인 북. 상은 고구려에서 사용된 토고이며, 고려와 조선 전기 아악(雅樂)에서 사용된 북이다. 고구려의 성곽 유적 호로고루에서 ‘상’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견되었으며, 복원 과정을 통해 북의 지름이 55cm인 북임을 알게 되었다. 고려와 조선에서 사용된 상은 아악, 제례, 회례에서 사용되었다.고려와 조선 전기에 사용되었던 상고는 『악학궤범(樂學軌範)』에 기록된바 그 모양은 고대 중국 군영(軍營)^4]에서 사용되던 기고(騎鼓)[^5] 혹은 [소고(小鼓)인 비(鼙)와 같으며, 겉은 가죽인데 속에는 겨[糠][^6]를 넣고 칠한 판으로 받쳐놓고 친다고 하였다. 통의 길이가 2척 4촌 8푼(약 74.4㎝)이고, 양쪽 가죽면의 지름은 1척 4촌...
상 (相)
고구려에서 사용된 토고(土鼓) 중 하나거나 고려와 조선 전기 아악(雅樂)에서 쓰인 북. 상은 고구려에서 사용된 토고이며, 고려와 조선 전기 아악(雅樂)에서 사용된 북이다. 고구려의 성곽 유적 호로고루에서 ‘상’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견되었으며, 복원 과정을 통해 북의 지름이 55cm인 북임을 알게 되었다. 고려와 조선에서 사용된 상은 아악, 제례, 회례에서 사용되었다.고려와 조선 전기에 사용되었던 상고는 『악학궤범(樂學軌範)』에 기록된바 그 모양은 고대 중국 군영(軍營)^4]에서 사용되던 기고(騎鼓)[^5] 혹은 [소고(小鼓)인 비(鼙)와 같으며, 겉은 가죽인데 속에는 겨[糠][^6]를 넣고 칠한 판으로 받쳐놓고 친다고 하였다. 통의 길이가 2척 4촌 8푼(약 74.4㎝)이고, 양쪽 가죽면의 지름은 1척 4촌...
한 옥타브 안에 사용된 일곱 음을 가리키는 국악용어. 칠성(七聲). 조선 성종 때에 칠성과 칠음이라는 용어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음이 『악학궤범』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음(音)의 개념은 정확히 말하여 성(聲)의 개념보다 한 단계 높은 의미를 지녔고, 그것은 율(律)과 악(樂)의 개념보다 한 단계 낮은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되는데, 그러한 근거는 조선 초기부터 사용된 전악(典樂, 정6품)·전율(典律, 정7품)·전음(典音, 정8품)·전성(典聲, 정9품)이라는 장악원(掌樂院) 소속 잡직의 체아직(遞兒職) 녹관(祿官)의 관직명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악학궤범(樂學軌範)』 - 『한국음악통사』(송방송, 일조각, 1984)
칠음 (七音)
한 옥타브 안에 사용된 일곱 음을 가리키는 국악용어. 칠성(七聲). 조선 성종 때에 칠성과 칠음이라는 용어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음이 『악학궤범』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음(音)의 개념은 정확히 말하여 성(聲)의 개념보다 한 단계 높은 의미를 지녔고, 그것은 율(律)과 악(樂)의 개념보다 한 단계 낮은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되는데, 그러한 근거는 조선 초기부터 사용된 전악(典樂, 정6품)·전율(典律, 정7품)·전음(典音, 정8품)·전성(典聲, 정9품)이라는 장악원(掌樂院) 소속 잡직의 체아직(遞兒職) 녹관(祿官)의 관직명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악학궤범(樂學軌範)』 - 『한국음악통사』(송방송, 일조각, 1984)
조선 전기, 세종대에 처음 지어져 가례에서 무무와 함께 헌가가 아뢰던 아악곡. 「무열지곡」은 조선 전기 세종대에 처음 지어져 회례와 양로연에서 무무와 함께 헌가가 아뢰던 아악곡이다. 1432년에 그 곡명과 악장이 처음 지어졌으나 이듬해에 기존 악장을 일부 수정하여 새롭게 지었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무열지곡」은 총 4자 16구로서 전반 8구는 태조의 무공을, 후반 8구는 태종의 무공을 찬양하였다. 두 악장은 각각 1자1음씩 32음이 하나의 악곡을 이루었고, 이를 반복 연주함으로써 두 수의 악장을 노래한다. 세종 말기 4종의 신악이 창제된 뒤로 「무열지곡」은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1433년(세종 15)에 새롭게 고쳐진 악장과 악보는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수록되어 전해온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무열지곡」은 총...
무열지곡
조선 전기, 세종대에 처음 지어져 가례에서 무무와 함께 헌가가 아뢰던 아악곡. 「무열지곡」은 조선 전기 세종대에 처음 지어져 회례와 양로연에서 무무와 함께 헌가가 아뢰던 아악곡이다. 1432년에 그 곡명과 악장이 처음 지어졌으나 이듬해에 기존 악장을 일부 수정하여 새롭게 지었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무열지곡」은 총 4자 16구로서 전반 8구는 태조의 무공을, 후반 8구는 태종의 무공을 찬양하였다. 두 악장은 각각 1자1음씩 32음이 하나의 악곡을 이루었고, 이를 반복 연주함으로써 두 수의 악장을 노래한다. 세종 말기 4종의 신악이 창제된 뒤로 「무열지곡」은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1433년(세종 15)에 새롭게 고쳐진 악장과 악보는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수록되어 전해온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무열지곡」은 총...
타악기의 하나. 송나라의 제도에 의하여 진고 하나를 쓰기 바랍니다.”라 하였다. 이에 따르면 세종 이전에는 대고, 그리고 세종 이후에는 진고가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진고는 헌가의 악기로서 음악을 시작할 때와 그칠 때, 그리고 매구(句) 끝에 노고(路鼓)와 동시에 치는데 퇴(槌)는 나무로 만든다. 진고는 문묘와 종묘의 헌가에서 사용되는데 종묘 제향에서 아헌에 먼저 진고 10통을 친 다음에 고축삼성(鼓柷三聲) 등의 절차로 음악이 시작되고, 종헌에는 아예 고축삼성은 없어 진고 3통으로 음악을 시작하는 것이 조선시대 후기의 전통이었다. - 『국역악학궤범』Ⅰ(민족문화추진회, 1980) - 『한국악기대관(韓國樂器大觀)』(장사훈, 한국국악학회, 1969)
진고 (晉鼓)
타악기의 하나. 송나라의 제도에 의하여 진고 하나를 쓰기 바랍니다.”라 하였다. 이에 따르면 세종 이전에는 대고, 그리고 세종 이후에는 진고가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진고는 헌가의 악기로서 음악을 시작할 때와 그칠 때, 그리고 매구(句) 끝에 노고(路鼓)와 동시에 치는데 퇴(槌)는 나무로 만든다. 진고는 문묘와 종묘의 헌가에서 사용되는데 종묘 제향에서 아헌에 먼저 진고 10통을 친 다음에 고축삼성(鼓柷三聲) 등의 절차로 음악이 시작되고, 종헌에는 아예 고축삼성은 없어 진고 3통으로 음악을 시작하는 것이 조선시대 후기의 전통이었다. - 『국역악학궤범』Ⅰ(민족문화추진회, 1980) - 『한국악기대관(韓國樂器大觀)』(장사훈, 한국국악학회, 1969)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가자를 이끄는 위치에 있는 노래 잘하는 악사. 도창은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가자를 이끄는 노래 잘하는 악사를 말한다. 아악 제례에서 노래는 등가에만 편성되었고, 도창은 등가에서 가자를 이끌며 노래를 지도하는 악사 역할을 담당하였다. 복식은 복두와 강공복을 착용해 가자 및 악생과 구별하였다. 숙종 이후 문묘 제례에서는 헌가에도 노래가 포함되어 도창이 편성되었다. 문묘의 등가·헌가에 각각 가자 2인과 도창 2인을 편성하였다. 종묘 제례에서는 도창이 없었으나 현재는 종묘와 문묘 등의 제사에서 가창자를 모두 도창이라 한다. 또한 20세기 창극에서 무대 옆 해설자 역할을 도창이라 한다.# 내용 『악학궤범(樂學軌範)』1493년]의 아악진설도설(雅樂陳設圖說)에 따르면, 사직(社稷) · 풍운뇌우(風雲雷雨) · 선농...
도창 (導唱)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가자를 이끄는 위치에 있는 노래 잘하는 악사. 도창은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가자를 이끄는 노래 잘하는 악사를 말한다. 아악 제례에서 노래는 등가에만 편성되었고, 도창은 등가에서 가자를 이끌며 노래를 지도하는 악사 역할을 담당하였다. 복식은 복두와 강공복을 착용해 가자 및 악생과 구별하였다. 숙종 이후 문묘 제례에서는 헌가에도 노래가 포함되어 도창이 편성되었다. 문묘의 등가·헌가에 각각 가자 2인과 도창 2인을 편성하였다. 종묘 제례에서는 도창이 없었으나 현재는 종묘와 문묘 등의 제사에서 가창자를 모두 도창이라 한다. 또한 20세기 창극에서 무대 옆 해설자 역할을 도창이라 한다.# 내용 『악학궤범(樂學軌範)』1493년]의 아악진설도설(雅樂陳設圖說)에 따르면, 사직(社稷) · 풍운뇌우(風雲雷雨) · 선농...
조선시대 제례의식에서 연주된 아악곡. 선농·선잠·우사의 제례의식에서는 남려궁(南呂宮), 풍운뇌우의 제례의식에서는 대려궁(大呂宮), 사직의 제례의식에서는 응종궁(應鐘宮)의 숙안지악이 각각 연주되었다. 조선 성종 때 풍운뇌우의 제례의식에서 연주되었던 숙안지악의 전폐악장을 번역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성남(城南)의 제단에 제사가 잘 갖추어졌도다. 조두(俎豆)를 진설(陳設)하니 서직(黍稷)이 향기롭도다. 악을 갖추어 주하니 경(磬)과 관(管)의 소리가 쟁쟁하도다. 공손히 폐백(幣帛)을 받드니 신은 내려와 편히 흠향하소서. - 『세종실록 오례의(世宗實錄 五禮儀)』 - 『악학궤범(樂學軌範)』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숙안지악 (肅安之樂)
조선시대 제례의식에서 연주된 아악곡. 선농·선잠·우사의 제례의식에서는 남려궁(南呂宮), 풍운뇌우의 제례의식에서는 대려궁(大呂宮), 사직의 제례의식에서는 응종궁(應鐘宮)의 숙안지악이 각각 연주되었다. 조선 성종 때 풍운뇌우의 제례의식에서 연주되었던 숙안지악의 전폐악장을 번역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성남(城南)의 제단에 제사가 잘 갖추어졌도다. 조두(俎豆)를 진설(陳設)하니 서직(黍稷)이 향기롭도다. 악을 갖추어 주하니 경(磬)과 관(管)의 소리가 쟁쟁하도다. 공손히 폐백(幣帛)을 받드니 신은 내려와 편히 흠향하소서. - 『세종실록 오례의(世宗實錄 五禮儀)』 - 『악학궤범(樂學軌範)』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나라의 기관이나 민간에서 활동하는 음악 연주자의 범칭. 악공은 나라의 기관이나 민간에서 활동하는 음악 연주자의 범칭이다. 조선 초까지는 아악·속악 연주자를 모두 포함했으나 세조의 악제 개혁 이후 속악 연주자로 한정되고 아악 연주자는 ‘악생’으로 구분되었다. 신분도 악생은 양인, 악공은 공천에서 선발되었다. 그러나 실제 두 집단이 항상 엄격히 구분된 것은 아니다. 악공은 제례·조회·연향에서 음악과 춤을 담당했고, 종묘·영녕전에서는 『보태평』·『정대업』의 춤을, 외연에서는 가면무인 「처용무」도 맡았다. 또한 아악기를 포함한 다양한 악기 연주와 노래, 춤까지 수행한 종합적인 연행자였다.한편, 『악학궤범(樂學軌範)』1493년]에 따르면, 종묘 · 영녕전의 [등가(登歌)와 헌가(軒架)에는 향악기 · 당악기가 주를 이루지만...
악공 (樂工)
나라의 기관이나 민간에서 활동하는 음악 연주자의 범칭. 악공은 나라의 기관이나 민간에서 활동하는 음악 연주자의 범칭이다. 조선 초까지는 아악·속악 연주자를 모두 포함했으나 세조의 악제 개혁 이후 속악 연주자로 한정되고 아악 연주자는 ‘악생’으로 구분되었다. 신분도 악생은 양인, 악공은 공천에서 선발되었다. 그러나 실제 두 집단이 항상 엄격히 구분된 것은 아니다. 악공은 제례·조회·연향에서 음악과 춤을 담당했고, 종묘·영녕전에서는 『보태평』·『정대업』의 춤을, 외연에서는 가면무인 「처용무」도 맡았다. 또한 아악기를 포함한 다양한 악기 연주와 노래, 춤까지 수행한 종합적인 연행자였다.한편, 『악학궤범(樂學軌範)』1493년]에 따르면, 종묘 · 영녕전의 [등가(登歌)와 헌가(軒架)에는 향악기 · 당악기가 주를 이루지만...
한민족 문화권에 전승되어 온 고유의 음악 및 이를 바탕으로 변화, 창작된 한국음악의 총칭. 국악은 한민족 문화권에 전승되어 온 고유의 음악 및 이를 바탕으로 변화, 창작된 한국음악의 총칭이다. 현재 사용되는 ‘국악’ 용어 및 개념의 직접적인 뿌리는 대한제국기 국가 음악 기관에 양악이 도입된 시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전통사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외래 음악의 상대 개념으로 사용되어 온 ‘향악’이 ‘국악’으로 대체되었고, 향악은 국악의 한 갈래로 수렴되었으며, 국악이 외래 음악인 양악의 반대 개념으로 자리잡았다.제정_의 제2조 정의] ## 원전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악학궤범(樂學軌範)』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단행본 - 김영운, 『국악개론』(음악세계, 2015) - 한명희...
국악 (國樂)
한민족 문화권에 전승되어 온 고유의 음악 및 이를 바탕으로 변화, 창작된 한국음악의 총칭. 국악은 한민족 문화권에 전승되어 온 고유의 음악 및 이를 바탕으로 변화, 창작된 한국음악의 총칭이다. 현재 사용되는 ‘국악’ 용어 및 개념의 직접적인 뿌리는 대한제국기 국가 음악 기관에 양악이 도입된 시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전통사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외래 음악의 상대 개념으로 사용되어 온 ‘향악’이 ‘국악’으로 대체되었고, 향악은 국악의 한 갈래로 수렴되었으며, 국악이 외래 음악인 양악의 반대 개념으로 자리잡았다.제정_의 제2조 정의] ## 원전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악학궤범(樂學軌範)』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단행본 - 김영운, 『국악개론』(음악세계, 2015) - 한명희...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전통음악의 구조적 특징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악조. 평조는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전통음악의 구조적 특징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악조이다. 음계, 선율의 특징인 선법, 중심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조 등 세 가지 구성요소와 관련된다. 평조의 음계가 5음 음계임은 고려 시대 이후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오직 선법과 조 개념이 시대에 따라 변천되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 쓰인 평조는 오직 선법명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 평조가 조명으로도 사용된다. 『양금신보』 4조 중 평조계면조는 조명으로만 쓰였다. 같은 책 4조의 평조는 선법과 조의 복합적 의미를 지닌 악조명이다.선법명으로서의 평조는 『세조실록』 권48과 『악학궤범』 권1에 중국음악이론의 5조 중 치조(徵調)와...
평조 (平調)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전통음악의 구조적 특징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악조. 평조는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전통음악의 구조적 특징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악조이다. 음계, 선율의 특징인 선법, 중심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조 등 세 가지 구성요소와 관련된다. 평조의 음계가 5음 음계임은 고려 시대 이후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오직 선법과 조 개념이 시대에 따라 변천되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 쓰인 평조는 오직 선법명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 평조가 조명으로도 사용된다. 『양금신보』 4조 중 평조계면조는 조명으로만 쓰였다. 같은 책 4조의 평조는 선법과 조의 복합적 의미를 지닌 악조명이다.선법명으로서의 평조는 『세조실록』 권48과 『악학궤범』 권1에 중국음악이론의 5조 중 치조(徵調)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이후 거문고 악곡에서 사용되는 악조. 우조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이후 거문고 악곡에서 사용되는 악조이다. 음계와 선율의 특징을 나타내는 선법, 중심음의 높낮이와 관련된 조 등의 요소와 관련된다. 우조의 음계가 5음계임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조와 선법의 개념은 변천되었다. 조선 전기 우조라는 악조는 중심음의 높낮이만을 의미하는 조명으로만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 『악학궤범』에 우조는 두 가지 의미의 조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둘 다 높은 조의 명칭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렇게 조 명칭으로만 쓰이던 우조가 임진왜란 이후 그 개념 속에 선법의 의미가 추가되었다.초기 『악학궤범』에 설명되어 있는 우조는 〈표 1〉과 같이 두 가지 의미의 조명으로 사용되었다. 하나는...
우조 (羽調)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이후 거문고 악곡에서 사용되는 악조. 우조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이후 거문고 악곡에서 사용되는 악조이다. 음계와 선율의 특징을 나타내는 선법, 중심음의 높낮이와 관련된 조 등의 요소와 관련된다. 우조의 음계가 5음계임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조와 선법의 개념은 변천되었다. 조선 전기 우조라는 악조는 중심음의 높낮이만을 의미하는 조명으로만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 『악학궤범』에 우조는 두 가지 의미의 조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둘 다 높은 조의 명칭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렇게 조 명칭으로만 쓰이던 우조가 임진왜란 이후 그 개념 속에 선법의 의미가 추가되었다.초기 『악학궤범』에 설명되어 있는 우조는 〈표 1〉과 같이 두 가지 의미의 조명으로 사용되었다. 하나는...
조선 후기에, 대사간,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후원은 조선후기 대사간,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98년(선조 31)에 태어나 1660년(현종 1)에 사망했다. 광평대군의 7세손으로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김상헌 등의 천거로 지평에 임명되었으며 병자호란 때에 주전론을 주장하였다. 1644년 심기원의 역모를 진압하는 공을 세우고 형조참판으로 회맹연에 참여하였다. 효종이 추진한 북벌계획에 적극 앞장섰으며 추쇄도감제조로 전국의 노비를 추쇄하였다. 우의정으로 재임할 때 송시열과 송준길을 발탁하여 등용하는 데 힘썼다.이어 1655년 예조판서로서 추쇄도감제조(推刷都監提調)가 되어 전국의 노비를 추쇄, 강화를 방비했고, 또한 장악원에 소장된 『악학궤범』을 개간해 사고(史庫)에...
이후원 (李厚源)
조선 후기에, 대사간,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후원은 조선후기 대사간,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98년(선조 31)에 태어나 1660년(현종 1)에 사망했다. 광평대군의 7세손으로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김상헌 등의 천거로 지평에 임명되었으며 병자호란 때에 주전론을 주장하였다. 1644년 심기원의 역모를 진압하는 공을 세우고 형조참판으로 회맹연에 참여하였다. 효종이 추진한 북벌계획에 적극 앞장섰으며 추쇄도감제조로 전국의 노비를 추쇄하였다. 우의정으로 재임할 때 송시열과 송준길을 발탁하여 등용하는 데 힘썼다.이어 1655년 예조판서로서 추쇄도감제조(推刷都監提調)가 되어 전국의 노비를 추쇄, 강화를 방비했고, 또한 장악원에 소장된 『악학궤범』을 개간해 사고(史庫)에...
궁중의 오례 중 군례에 연주한 음악. 군례악은 궁중의 오례 중 군례에 연주한 음악이다. 군례의 구성 요소는 시대에 따라 달랐으나, 대체로 사례와 관련된 의례, 군사훈련과 관련된 의례, 자연현상과 관련된 재앙이나 역질을 물리치는 의례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군례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으나 군례의 음악은 조선시대에 형성되었다. 조선시대 군례에 사용한 음악은 의례의 성격에 따라 각각 달랐고,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가 서로 달랐다. 군례악 중 군사 훈련과 관련된 의례에는 취타악기를 사용하여 군영음악의 특징을 보여준다. 군례악과 군악은 서로 개념이 다르다.『세종실록(世宗實錄)』 - 『악학궤범(樂學軌範)』 ## 논문 - 이숙희, 「조선조 군례에 사용한 음악의 종류와 성격」(『한국음악연구』 32, 한국국악학회, 2002)
군례악 (軍禮樂)
궁중의 오례 중 군례에 연주한 음악. 군례악은 궁중의 오례 중 군례에 연주한 음악이다. 군례의 구성 요소는 시대에 따라 달랐으나, 대체로 사례와 관련된 의례, 군사훈련과 관련된 의례, 자연현상과 관련된 재앙이나 역질을 물리치는 의례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군례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으나 군례의 음악은 조선시대에 형성되었다. 조선시대 군례에 사용한 음악은 의례의 성격에 따라 각각 달랐고,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가 서로 달랐다. 군례악 중 군사 훈련과 관련된 의례에는 취타악기를 사용하여 군영음악의 특징을 보여준다. 군례악과 군악은 서로 개념이 다르다.『세종실록(世宗實錄)』 - 『악학궤범(樂學軌範)』 ## 논문 - 이숙희, 「조선조 군례에 사용한 음악의 종류와 성격」(『한국음악연구』 32, 한국국악학회, 2002)
조선 전기, 아악(雅樂)의 무무(武舞)를 출 때 사용한 의례용 타악기. 독은 조선 전기 아악(雅樂)의 무무(武舞)를 출 때 사용한 의례용 타악기의 하나이다. 세종조 회례연의 헌가(軒架) 악대의 경우 독은 48인이 추는 육일무(六佾舞)의 무무 왼쪽에 위로부터 응(應), 아(雅), 상(相), 독(牘)의 순서로 배치되어, 무무 왼편 가장 아래쪽에 위치했다. 무무의 왼쪽에 배치되는 타악기는 나무, 대나무 혹은 가죽으로 만들고 무무의 오른쪽에는 금속으로 만든 타악기 순(錞), 탁(鐲), 요(鐃), 탁(鐸)이 함께 배치되었다. 대나무로 길게 만들어, 무무를 출 때 북과 함께 땅을 다지듯이 내려쳐 소리를 냈다.[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234595) ## 원전 - 『악학궤범』 - 『국조오례서례』 - 『악서』 - 『증보문헌비고』...
독 (牘)
조선 전기, 아악(雅樂)의 무무(武舞)를 출 때 사용한 의례용 타악기. 독은 조선 전기 아악(雅樂)의 무무(武舞)를 출 때 사용한 의례용 타악기의 하나이다. 세종조 회례연의 헌가(軒架) 악대의 경우 독은 48인이 추는 육일무(六佾舞)의 무무 왼쪽에 위로부터 응(應), 아(雅), 상(相), 독(牘)의 순서로 배치되어, 무무 왼편 가장 아래쪽에 위치했다. 무무의 왼쪽에 배치되는 타악기는 나무, 대나무 혹은 가죽으로 만들고 무무의 오른쪽에는 금속으로 만든 타악기 순(錞), 탁(鐲), 요(鐃), 탁(鐸)이 함께 배치되었다. 대나무로 길게 만들어, 무무를 출 때 북과 함께 땅을 다지듯이 내려쳐 소리를 냈다.[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234595) ## 원전 - 『악학궤범』 - 『국조오례서례』 - 『악서』 - 『증보문헌비고』...
1783년(정조 7) 사직서에서 사직단의 시설과 각종 의식의 식례(式例)·의절(儀節) 및 사실(史實) 등을 기록한 의궤. 또한 「악도설」은 헌가(軒架)·등가(登歌)·시용헌가(時用軒架)·시용등가, 무도설은 문무(文舞)·무무(武舞)·시용문무·시용무무, 제복도설에는 전하면복(殿下冕服)·왕세자면복·재관관복(齋官冠服), 척도도설은 포백척반(布帛尺半)·주척전(周尺全)·영조척반(營造尺半)·조례기척반(造禮器尺半) 등이 그려져 있으며, 아울러 『오례의(五禮儀)』·『악학궤범』 등을 인용해 각 도(圖)를 설명하고 있다. 권1 「식례」의 사단위판제식에 의하면, 북쪽의 정위(正位)에는 국사지위(國社之位)를 모시며, 동쪽의 배위(配位)에는 후토씨(后土氏)의 신을 모시게 되어 있다. 직단위판식에 의하면, 정위에는 국직지위(國稷之位)를, 배위에는...
사직서의궤 (社稷署儀軌)
1783년(정조 7) 사직서에서 사직단의 시설과 각종 의식의 식례(式例)·의절(儀節) 및 사실(史實) 등을 기록한 의궤. 또한 「악도설」은 헌가(軒架)·등가(登歌)·시용헌가(時用軒架)·시용등가, 무도설은 문무(文舞)·무무(武舞)·시용문무·시용무무, 제복도설에는 전하면복(殿下冕服)·왕세자면복·재관관복(齋官冠服), 척도도설은 포백척반(布帛尺半)·주척전(周尺全)·영조척반(營造尺半)·조례기척반(造禮器尺半) 등이 그려져 있으며, 아울러 『오례의(五禮儀)』·『악학궤범』 등을 인용해 각 도(圖)를 설명하고 있다. 권1 「식례」의 사단위판제식에 의하면, 북쪽의 정위(正位)에는 국사지위(國社之位)를 모시며, 동쪽의 배위(配位)에는 후토씨(后土氏)의 신을 모시게 되어 있다. 직단위판식에 의하면, 정위에는 국직지위(國稷之位)를, 배위에는...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의 무구로 구분되며 춤을 출 때 갖추어야 할 도구. (2) 농 악 농악의 무구는 목놀이춤으로 사용되는 것은 부등상모·뻗은상모·채상모·열두발상모 등이 있으며, 연주무용에 쓰이는 것은 꽹과리·장구·북·소고 등의 악기가 있다. (3) 탈 춤 탈춤의 무구로 쓰이는 것은 목놀이춤에 쓰이는 각종 탈을 비롯하여 손짓춤에 쓰이는 부채·방울·수건·지팡이·인형·소고·북 등이 있다. (4) 기 타 범무(梵舞)는 바라·법고(法鼓)·꽃·타주(打柱)대로 춘다. 그 밖에 살풀이춤에서는 수건, 승무(僧舞)에서는 북을 사용한다. - 『악학궤범(樂學軌範)』 - 『진작의궤(進爵儀軌)』 - 『한국전통무용연구』(장사훈, 일지사, 1977) -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농악편-(문화재관리국, 1982) -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무구 (舞具)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의 무구로 구분되며 춤을 출 때 갖추어야 할 도구. (2) 농 악 농악의 무구는 목놀이춤으로 사용되는 것은 부등상모·뻗은상모·채상모·열두발상모 등이 있으며, 연주무용에 쓰이는 것은 꽹과리·장구·북·소고 등의 악기가 있다. (3) 탈 춤 탈춤의 무구로 쓰이는 것은 목놀이춤에 쓰이는 각종 탈을 비롯하여 손짓춤에 쓰이는 부채·방울·수건·지팡이·인형·소고·북 등이 있다. (4) 기 타 범무(梵舞)는 바라·법고(法鼓)·꽃·타주(打柱)대로 춘다. 그 밖에 살풀이춤에서는 수건, 승무(僧舞)에서는 북을 사용한다. - 『악학궤범(樂學軌範)』 - 『진작의궤(進爵儀軌)』 - 『한국전통무용연구』(장사훈, 일지사, 1977) -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농악편-(문화재관리국, 1982) -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음악적인 소리를 내기 위한 모든 도구. 악기는 음악적인 소리를 내기 위한 모든 도구이다. 넓은 의미로는 소리를 낼 수 모든 물체를 포함한다. 악기의 유형은 소리를 내는 방법 및 진동 원리에 따라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 이전에 음악을 연주해 온 악기를 근원을 기준으로 아악기·당악기·향악기로 분류하였다. 또한 재료를 기준으로 한 팔음 분류 체계도 있다. 국악기의 범주에는 궁중 및 민간의 음악가들이 연주해 온 악기와 일상에서 노래와 춤에 수반되어 온 생활 악기가 있고, 이밖에 주악에 사용된 의물도 악기로 간주되었다.우리나라에서는 『삼국사기』 「악지」에서 신라악 · 고구려악 · 백제악 등, 국가별로 구분한 예가 있고, 『고려사』 「악지」와 조선 전기 『악학궤범』에서는 음악의 근원에 따른 아악...
악기 (樂器)
음악적인 소리를 내기 위한 모든 도구. 악기는 음악적인 소리를 내기 위한 모든 도구이다. 넓은 의미로는 소리를 낼 수 모든 물체를 포함한다. 악기의 유형은 소리를 내는 방법 및 진동 원리에 따라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 이전에 음악을 연주해 온 악기를 근원을 기준으로 아악기·당악기·향악기로 분류하였다. 또한 재료를 기준으로 한 팔음 분류 체계도 있다. 국악기의 범주에는 궁중 및 민간의 음악가들이 연주해 온 악기와 일상에서 노래와 춤에 수반되어 온 생활 악기가 있고, 이밖에 주악에 사용된 의물도 악기로 간주되었다.우리나라에서는 『삼국사기』 「악지」에서 신라악 · 고구려악 · 백제악 등, 국가별로 구분한 예가 있고, 『고려사』 「악지」와 조선 전기 『악학궤범』에서는 음악의 근원에 따른 아악...
고려시대, 송나라에서 들어온 당악정재 수연장과 오양선의 반주 음악. 「중강령」은 송나라에서 고려로 유입된 당악정재 수연장과 오양선의 반주음악의 하나이다. 『악학궤범』권4의 ‘시용당악정재도의’에는 오양선의 중강령을 찾을 수 없다. 또한 『악학궤범』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이르러서는 수연장과 근천정·성택·육화대·하황은 같은 당악정재의 반주 음악으로 연주되었다.『악학궤범(樂學軌範)』권4의 ‘시용당악정재도의(時用唐樂呈才圖儀)’에는 오양선의 「중강령」을 찾을 수 없다. 조선 초기에는 수연장 · [근천정(覲天庭) · 성택(聖澤) · 육화대(六花隊) · 하황은(荷皇恩) 같은 당악정재의 반주 음악으로 연주되었다. 다른 이름으로는 「중강조(中腔調)」라고도 한다. # 내용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중강령 (中腔令)
고려시대, 송나라에서 들어온 당악정재 수연장과 오양선의 반주 음악. 「중강령」은 송나라에서 고려로 유입된 당악정재 수연장과 오양선의 반주음악의 하나이다. 『악학궤범』권4의 ‘시용당악정재도의’에는 오양선의 중강령을 찾을 수 없다. 또한 『악학궤범』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이르러서는 수연장과 근천정·성택·육화대·하황은 같은 당악정재의 반주 음악으로 연주되었다.『악학궤범(樂學軌範)』권4의 ‘시용당악정재도의(時用唐樂呈才圖儀)’에는 오양선의 「중강령」을 찾을 수 없다. 조선 초기에는 수연장 · [근천정(覲天庭) · 성택(聖澤) · 육화대(六花隊) · 하황은(荷皇恩) 같은 당악정재의 반주 음악으로 연주되었다. 다른 이름으로는 「중강조(中腔調)」라고도 한다. # 내용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조선후기 민간의 성악곡인 만대엽·중대엽·삭대엽 등 오늘날 가곡의 전신에 해당하는 악곡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음악용어. 대엽조는 조선 후기 민간의 성악곡인 만대엽·중대엽·삭대엽 등 오늘날 가곡의 전신에 해당하는 악곡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음악용어이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동속가사’라 하여 우리나라 고유의 문학 장르에 대엽조가 있으며, 대엽조는 길고 짧은 구별이 없이 만·중·삭의 세 가지 가락이 있다고 하였다. 17세기 후반에는 각 악조마다 중대엽은 초중대엽·이중대엽·삼중대엽의 세 곡으로, 삭대엽은 초삭대엽·이삭대엽·삼삭대엽의 세 곡으로 분화되었다. 이익은 이 무렵의 중대엽과 삭대엽 계통 여러 악곡을 통칭하면서 ‘대엽조’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星湖僿說)』 - 『악학궤범...
대엽조 (大葉調)
조선후기 민간의 성악곡인 만대엽·중대엽·삭대엽 등 오늘날 가곡의 전신에 해당하는 악곡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음악용어. 대엽조는 조선 후기 민간의 성악곡인 만대엽·중대엽·삭대엽 등 오늘날 가곡의 전신에 해당하는 악곡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음악용어이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동속가사’라 하여 우리나라 고유의 문학 장르에 대엽조가 있으며, 대엽조는 길고 짧은 구별이 없이 만·중·삭의 세 가지 가락이 있다고 하였다. 17세기 후반에는 각 악조마다 중대엽은 초중대엽·이중대엽·삼중대엽의 세 곡으로, 삭대엽은 초삭대엽·이삭대엽·삼삭대엽의 세 곡으로 분화되었다. 이익은 이 무렵의 중대엽과 삭대엽 계통 여러 악곡을 통칭하면서 ‘대엽조’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星湖僿說)』 - 『악학궤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