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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총 296건
조선시대 왕세자 또는 왕세손이 관례 전에 착용하던 관모(冠帽). # 내용 형태는 면류관에서 평천판(平天板) 없이 각(殼)만을 살린 것으로, 모정(帽頂)이 비어 있다. 이 각은 색라(色羅)로 싸고 지금(紙金)으로 장식하였으며, 쌍옥도(雙玉導 : 비녀)를 꽂았다. 양 갓에는 주조(朱組)를 늘어뜨려 턱밑에서 맺게 되어 있었다. 공정책을 쓸 때의 머리 모양은 쌍동계(雙童髻)였다. 면복이나 강사포 착용시에는 면류관이나 원유관을 쓰는데, 관례 전에는 관모 대신 공정책을 썼다. 또한, 상복(常服)인 곤룡포에도 공정책을 썼는데, 그 때의 곤룡포는 흑색으로 왕세자는 금식사조원룡보(金飾四爪圓龍補)와 옥대를 띠었고, 왕세손은 금식삼조방룡보(金飾三爪方龍補)와 수정대(水精帶)를 띠었다. - 『국조속오례의보서례(國朝續五禮儀補序例)...
공정책 (空頂幘)
조선시대 왕세자 또는 왕세손이 관례 전에 착용하던 관모(冠帽). # 내용 형태는 면류관에서 평천판(平天板) 없이 각(殼)만을 살린 것으로, 모정(帽頂)이 비어 있다. 이 각은 색라(色羅)로 싸고 지금(紙金)으로 장식하였으며, 쌍옥도(雙玉導 : 비녀)를 꽂았다. 양 갓에는 주조(朱組)를 늘어뜨려 턱밑에서 맺게 되어 있었다. 공정책을 쓸 때의 머리 모양은 쌍동계(雙童髻)였다. 면복이나 강사포 착용시에는 면류관이나 원유관을 쓰는데, 관례 전에는 관모 대신 공정책을 썼다. 또한, 상복(常服)인 곤룡포에도 공정책을 썼는데, 그 때의 곤룡포는 흑색으로 왕세자는 금식사조원룡보(金飾四爪圓龍補)와 옥대를 띠었고, 왕세손은 금식삼조방룡보(金飾三爪方龍補)와 수정대(水精帶)를 띠었다. - 『국조속오례의보서례(國朝續五禮儀補序例)...
조선시대 궁중 또는 양반집 군노(軍奴)나 하인이 쓰던 털로 만든 모자. # 내용 짐승의 털을 다져서 전(氈)을 만들고, 그것을 골에 넣어 위는 높고 둥글며 전이 편평하고 넓게 되어 있는 평량자형의 쓰개이다. 전립(戰笠, 氈笠) 또는 병립이라고도 하는데, 전립(戰笠)이라고 할 때는 무관(武官)이나 대관(大官)이 쓰는 안울림벙거지도 포함된다. 벙거지는 대개 흑의(黑衣)와 병용하거나 전령복(傳令服)에 사용하였다. 안올림벙거지는 양테 안쪽에 남색 운문단으로 안을 하였다. 일반 벙거지는 아무 장식도 없는 만듦새로 그 재료는 돼지털을 사용하였다. 또한, 벙거지는 일반 모자를 속되게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80)
벙거지
조선시대 궁중 또는 양반집 군노(軍奴)나 하인이 쓰던 털로 만든 모자. # 내용 짐승의 털을 다져서 전(氈)을 만들고, 그것을 골에 넣어 위는 높고 둥글며 전이 편평하고 넓게 되어 있는 평량자형의 쓰개이다. 전립(戰笠, 氈笠) 또는 병립이라고도 하는데, 전립(戰笠)이라고 할 때는 무관(武官)이나 대관(大官)이 쓰는 안울림벙거지도 포함된다. 벙거지는 대개 흑의(黑衣)와 병용하거나 전령복(傳令服)에 사용하였다. 안올림벙거지는 양테 안쪽에 남색 운문단으로 안을 하였다. 일반 벙거지는 아무 장식도 없는 만듦새로 그 재료는 돼지털을 사용하였다. 또한, 벙거지는 일반 모자를 속되게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80)
순종이 황태자로 있을 때 거행된 가례(嘉禮: 혼례)시 동궁비(황태자비) 윤비가 착용하였던 오조룡보(五爪龍補)가 부착된 홍색 원삼(圓衫) 1점. 동궁비 원삼은 순종이 황태자로 있을 때 거행된 가례에서 동궁비 윤비가 착용하였던 오조룡보가 부착된 홍색 원삼 1점이다. 다홍색 운봉문(雲鳳紋) 비단에 동일한 문양이 직금된 매우 화려한 원삼이다. 오조룡원보 2쌍 4점이 부착되어 있다. 조선의 마지막 국혼이었던 병오년 가례 시 황태자비 신분인 윤비가 착용하였다. 20세기 초반의 전형적인 왕실 원삼 형태를 보인다. 윤황후가 세종대학교 설립자에게 기증하였다. 1979년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밝혀진 왕실 가례복으로서 가치가 높다.봉비시 의복발긔] ‘다홍직금구봉원삼 황...
동궁비 원삼 (東宮妃 圓衫)
순종이 황태자로 있을 때 거행된 가례(嘉禮: 혼례)시 동궁비(황태자비) 윤비가 착용하였던 오조룡보(五爪龍補)가 부착된 홍색 원삼(圓衫) 1점. 동궁비 원삼은 순종이 황태자로 있을 때 거행된 가례에서 동궁비 윤비가 착용하였던 오조룡보가 부착된 홍색 원삼 1점이다. 다홍색 운봉문(雲鳳紋) 비단에 동일한 문양이 직금된 매우 화려한 원삼이다. 오조룡원보 2쌍 4점이 부착되어 있다. 조선의 마지막 국혼이었던 병오년 가례 시 황태자비 신분인 윤비가 착용하였다. 20세기 초반의 전형적인 왕실 원삼 형태를 보인다. 윤황후가 세종대학교 설립자에게 기증하였다. 1979년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밝혀진 왕실 가례복으로서 가치가 높다.봉비시 의복발긔] ‘다홍직금구봉원삼 황...
조선시대 기녀(妓女)·의녀(醫女) 등 특수층여자가 얹은머리 위에 쓰던 쓰개. # 내용 차액(遮額)이라고도 한다. 그 형태를 ≪임하필기 林下筆記≫와 ≪증보문헌비고 增補文獻備考≫에서는 검은 색 또는 자색 비단의 가운데를 접어 두 겹으로 하고 두꺼운 종이를 그 안에 접어넣고 머리에 쓰는데 이마에서 정수리를 덮고 뒤에 드리워 어깨를 덮는다고 하였다. 또한,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기녀는 검은 베[黑褐]로 된 것을 쓰고 의녀는 검은 비단[黑緞]으로 된 것을 쓰는데, 그 형상은 책갑(冊匣)과 같다고 하였다. 이 가리마는 광해군 중기 이후 얹은머리의 금지와 더불어 족두리를 쓰게 되어 차차 사라져갔는데, 신윤복(申潤福)의 그림에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정조 때까지는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임하필기(林下筆記)...
가리마
조선시대 기녀(妓女)·의녀(醫女) 등 특수층여자가 얹은머리 위에 쓰던 쓰개. # 내용 차액(遮額)이라고도 한다. 그 형태를 ≪임하필기 林下筆記≫와 ≪증보문헌비고 增補文獻備考≫에서는 검은 색 또는 자색 비단의 가운데를 접어 두 겹으로 하고 두꺼운 종이를 그 안에 접어넣고 머리에 쓰는데 이마에서 정수리를 덮고 뒤에 드리워 어깨를 덮는다고 하였다. 또한,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기녀는 검은 베[黑褐]로 된 것을 쓰고 의녀는 검은 비단[黑緞]으로 된 것을 쓰는데, 그 형상은 책갑(冊匣)과 같다고 하였다. 이 가리마는 광해군 중기 이후 얹은머리의 금지와 더불어 족두리를 쓰게 되어 차차 사라져갔는데, 신윤복(申潤福)의 그림에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정조 때까지는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임하필기(林下筆記)...
길과 소매의 색이 다른 직령포(直領袍). # 내용 조선 후기 생성된 융복(戎服)의 겉옷 안에 입는 중의(中衣)이다. 소매가 경편(輕便)하게 좁은 모양이라 하여 ‘협수(夾袖)’, 소매를 덧댔다고 하여 ‘겹수(裌袖)’, 소매가 특이하므로 ‘수의(袖衣)’라고도 한다. 또한 동달이도 소매와 관계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동’은 소매를 가리키는 우리말이므로 ‘동달이’는 소매를 달았다는 뜻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형태는 길의 양옆 아랫부분과 등이 터져 있으며, 겹과 홑의 두 가지가 있다. 겉고름은 겉길과 같은 색, 안고름은 홑일 때는 남색, 겹인 경우에는 안길과 같은 색이다. 동달이는 주황색 길에 대홍색(大紅色) 소매를 단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마병(馬兵)의 경우에는 다홍 일색이 아니라, 소매의 색채를 달리하여 소속이나 직무를...
동달이
길과 소매의 색이 다른 직령포(直領袍). # 내용 조선 후기 생성된 융복(戎服)의 겉옷 안에 입는 중의(中衣)이다. 소매가 경편(輕便)하게 좁은 모양이라 하여 ‘협수(夾袖)’, 소매를 덧댔다고 하여 ‘겹수(裌袖)’, 소매가 특이하므로 ‘수의(袖衣)’라고도 한다. 또한 동달이도 소매와 관계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동’은 소매를 가리키는 우리말이므로 ‘동달이’는 소매를 달았다는 뜻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형태는 길의 양옆 아랫부분과 등이 터져 있으며, 겹과 홑의 두 가지가 있다. 겉고름은 겉길과 같은 색, 안고름은 홑일 때는 남색, 겹인 경우에는 안길과 같은 색이다. 동달이는 주황색 길에 대홍색(大紅色) 소매를 단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마병(馬兵)의 경우에는 다홍 일색이 아니라, 소매의 색채를 달리하여 소속이나 직무를...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황남대총 남분 목관 안에서 출토된 장신구. # 내용 197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과대길이 99㎝, 요패길이 소형 18∼22㎝, 대형 79.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몸에 착용한 상태로 출토되었다. 문양이 투각된 방형 과판(銙板) 밑에 역시 문양이 투각된 심엽형(心葉形) 수식을 늘어뜨린 것 34매를 연결하였다. 경주의 신라 시대 고분에서 출토되는 과대와 같은 형식이다. 다만, 좌우 끝에 교구(鉸具 : 허리띠장식)가 달려 있는 점이 다르다. 과판은 가죽 같은 허리띠에 꿰어단 듯 주위에 구멍이 있다. 요패는 크고 긴 1조와 작고 짧은 것 6조가 발견되었는데, 어느 것이나 타원형 금판 사이에 작은 방형 금판을 경첩으로 연결한 형식으로, 영락장식은 없다. 수식은 비취색 곱은옥[曲玉]세 개, 금제 장규형(長圭形) 및...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皇南大塚 南墳 金製 허리띠)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황남대총 남분 목관 안에서 출토된 장신구. # 내용 197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과대길이 99㎝, 요패길이 소형 18∼22㎝, 대형 79.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몸에 착용한 상태로 출토되었다. 문양이 투각된 방형 과판(銙板) 밑에 역시 문양이 투각된 심엽형(心葉形) 수식을 늘어뜨린 것 34매를 연결하였다. 경주의 신라 시대 고분에서 출토되는 과대와 같은 형식이다. 다만, 좌우 끝에 교구(鉸具 : 허리띠장식)가 달려 있는 점이 다르다. 과판은 가죽 같은 허리띠에 꿰어단 듯 주위에 구멍이 있다. 요패는 크고 긴 1조와 작고 짧은 것 6조가 발견되었는데, 어느 것이나 타원형 금판 사이에 작은 방형 금판을 경첩으로 연결한 형식으로, 영락장식은 없다. 수식은 비취색 곱은옥[曲玉]세 개, 금제 장규형(長圭形) 및...
남의 머리털로 여러 가지 머리 모양을 만들어 치레로 머리에 쓰는 물건. # 내용 가발은 다리[月子]나 가체와는 달리 머리에 씌우는 기본 바탕 위에 머리털을 심은 것이다. 머리 전체에 씌우는 전가발과 밑 부분에만 사용하는 부분가발이 있다. 개화기 이후 서양식 연극과 무용, 오페라 등에서 극중 인물의 창조를 위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 뒤 숱이 적거나 대머리인 남자들이나, 머리형을 색다르고 아름답게 보이기를 원하는 여성들 사이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가발이 보편화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당시 전세계적으로 가발을 이용한 머리 모양의 유행과 더불어 이미지 변화를 위한 패션 상품으로 가발이 등장하여 1970년대 전반까지 지속되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가발은 사람의 머리카락으로만...
가발 (假髮)
남의 머리털로 여러 가지 머리 모양을 만들어 치레로 머리에 쓰는 물건. # 내용 가발은 다리[月子]나 가체와는 달리 머리에 씌우는 기본 바탕 위에 머리털을 심은 것이다. 머리 전체에 씌우는 전가발과 밑 부분에만 사용하는 부분가발이 있다. 개화기 이후 서양식 연극과 무용, 오페라 등에서 극중 인물의 창조를 위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 뒤 숱이 적거나 대머리인 남자들이나, 머리형을 색다르고 아름답게 보이기를 원하는 여성들 사이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가발이 보편화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당시 전세계적으로 가발을 이용한 머리 모양의 유행과 더불어 이미지 변화를 위한 패션 상품으로 가발이 등장하여 1970년대 전반까지 지속되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가발은 사람의 머리카락으로만...
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입는 승려의 법의(法衣). # 내용 종파와 법계에 따라 그 색과 형태에 엄격한 규정이 있다. 가사는 범어(梵語)인 ‘카사야(Kasaya)’에서 음을 딴 것으로, 괴색(壞色)·부정색(不正色)·탁색(濁色)·탁염색(濁染色)·염색 등으로 번역된다. 색에 의한 명칭으로는 염의(染衣)·염색의·부정색의·괴색의·탁적의(濁赤衣)·황갈색의 등이 있다. 용도에 따라서는 삼의(三衣)·승의(僧衣)·비구의(比丘衣)라 하며, 공덕의 측면을 강조하여서 법복·법의·불의·공덕의라고도 한다. 인도에서는 사계절의 평상복으로 착용하였는데, 중국에 전래되면서 불교의식 및 법회 때 편삼 위에 걸치는 의식복으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중엽에 흑장삼(黑長衫)과 붉은 가사가 전래되어, 전통적인 바지...
가사 (袈裟)
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입는 승려의 법의(法衣). # 내용 종파와 법계에 따라 그 색과 형태에 엄격한 규정이 있다. 가사는 범어(梵語)인 ‘카사야(Kasaya)’에서 음을 딴 것으로, 괴색(壞色)·부정색(不正色)·탁색(濁色)·탁염색(濁染色)·염색 등으로 번역된다. 색에 의한 명칭으로는 염의(染衣)·염색의·부정색의·괴색의·탁적의(濁赤衣)·황갈색의 등이 있다. 용도에 따라서는 삼의(三衣)·승의(僧衣)·비구의(比丘衣)라 하며, 공덕의 측면을 강조하여서 법복·법의·불의·공덕의라고도 한다. 인도에서는 사계절의 평상복으로 착용하였는데, 중국에 전래되면서 불교의식 및 법회 때 편삼 위에 걸치는 의식복으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중엽에 흑장삼(黑長衫)과 붉은 가사가 전래되어, 전통적인 바지...
여자용 머리쓰개. # 내용 ‘머릿수건’이라고도 한다. 여자가 일을 할 때 흩어지는 머리카락을 손쉽게 처리하기 위한 수발방법(修髮方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구당서』 고려조에 부인이 머리에 건귁을 쓴다는 기록과 고구려 고분 벽화의 그림으로 미루어 고구려에서는 이미 수식(首飾)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보면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각저총 여인상과 같이 수건으로 머리를 완전히 싸덮은 것이고, 또 하나는 쌍영총 여인상과 같이 정수리는 노출되게 하여 이마 위만을 싸올린 형태이다. 6·25 이전까지만 하여도 북쪽 지방 사람들한테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으로 개성지역, 황해도, 함경도지방의 부인들은 수건을 접어서 머리의 주위 및 상부까지를 덮어 뒤에서 맺었다. 평안도지방의 부인들은...
건귁 (巾幗)
여자용 머리쓰개. # 내용 ‘머릿수건’이라고도 한다. 여자가 일을 할 때 흩어지는 머리카락을 손쉽게 처리하기 위한 수발방법(修髮方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구당서』 고려조에 부인이 머리에 건귁을 쓴다는 기록과 고구려 고분 벽화의 그림으로 미루어 고구려에서는 이미 수식(首飾)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보면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각저총 여인상과 같이 수건으로 머리를 완전히 싸덮은 것이고, 또 하나는 쌍영총 여인상과 같이 정수리는 노출되게 하여 이마 위만을 싸올린 형태이다. 6·25 이전까지만 하여도 북쪽 지방 사람들한테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으로 개성지역, 황해도, 함경도지방의 부인들은 수건을 접어서 머리의 주위 및 상부까지를 덮어 뒤에서 맺었다. 평안도지방의 부인들은...
포대(布帶) 또는 혁대(革帶) 표면에 띠돈[銙板, 飾板]을 붙인 띠. # 내용 띠돈의 소재에 따라 옥대(玉帶)·서대(犀帶)·금대·은대·석대(石帶)·각대 등으로 불린다. 과대는 포대를 모체로 하여 계급분화과정에서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발생하였다. 즉, 옷을 여미고 몸을 보호하는 구실에서 지배계급의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장신구로 변천된 것이다. 초기의 과대는 금판을 오린 약한 것이었고, 그 양식이 매우 복잡하여 실용적이기보다는 의식용이거나 주술적 의미를 지닌 상징물로 쓰였던 것 같다. 삼국시대의 과대는 백제의 품관제(品官制)와 신라의 복식금제령(服飾禁制令)에서 보면 신분상의 등급에 따라 과(銙)의 재료·색·수를 달리하여 등급표시의 상징으로 쓰였으며, 남녀·고하(高下)가 모두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과대는...
과대 (銙帶)
포대(布帶) 또는 혁대(革帶) 표면에 띠돈[銙板, 飾板]을 붙인 띠. # 내용 띠돈의 소재에 따라 옥대(玉帶)·서대(犀帶)·금대·은대·석대(石帶)·각대 등으로 불린다. 과대는 포대를 모체로 하여 계급분화과정에서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발생하였다. 즉, 옷을 여미고 몸을 보호하는 구실에서 지배계급의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장신구로 변천된 것이다. 초기의 과대는 금판을 오린 약한 것이었고, 그 양식이 매우 복잡하여 실용적이기보다는 의식용이거나 주술적 의미를 지닌 상징물로 쓰였던 것 같다. 삼국시대의 과대는 백제의 품관제(品官制)와 신라의 복식금제령(服飾禁制令)에서 보면 신분상의 등급에 따라 과(銙)의 재료·색·수를 달리하여 등급표시의 상징으로 쓰였으며, 남녀·고하(高下)가 모두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과대는...
1979년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에 소재한 광주이씨(廣州李氏) 이언웅(李彦雄)과 그의 며느리 청주한씨(淸州韓氏) 묘에서 출토된 1550년대의 남녀 복식 20점. 과천 출토 광주 이씨 의복은 1979년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에 소재한 광주 이씨 이언웅과 그의 며느리 청주 한씨 묘에서 출토한 복식이다. 광주 이씨 선산 묘지를 이장하던 중 이언웅의 묘와 청주 한씨 묘에서 1550년대의 남녀 의복류와 염습구 등 54점을 수습하였다. 이 중 장옷 2점, 액주름 2점, 저고리 8점, 치마 2점 등 20점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현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남녀 복식이 섞인 채 기증되어 성별 구분에 주의가 요구된다. 16세기 여성의 저고리와 치마 양식이 확인되는 귀중한 자료이다.광주이씨 의복’으로 명칭이 정해졌으나 후에 며느리의 묘에서도...
과천 출토 광주이씨 의복 (果川 出土 廣州李氏 衣服)
1979년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에 소재한 광주이씨(廣州李氏) 이언웅(李彦雄)과 그의 며느리 청주한씨(淸州韓氏) 묘에서 출토된 1550년대의 남녀 복식 20점. 과천 출토 광주 이씨 의복은 1979년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에 소재한 광주 이씨 이언웅과 그의 며느리 청주 한씨 묘에서 출토한 복식이다. 광주 이씨 선산 묘지를 이장하던 중 이언웅의 묘와 청주 한씨 묘에서 1550년대의 남녀 의복류와 염습구 등 54점을 수습하였다. 이 중 장옷 2점, 액주름 2점, 저고리 8점, 치마 2점 등 20점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현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남녀 복식이 섞인 채 기증되어 성별 구분에 주의가 요구된다. 16세기 여성의 저고리와 치마 양식이 확인되는 귀중한 자료이다.광주이씨 의복’으로 명칭이 정해졌으나 후에 며느리의 묘에서도...
조선시대 왕비의 예복. 1403년(태종 3) 면복(冕服)과 태상왕(太上王) 표리(表裏)와 중궁의 관복(冠服)을 가지고 왔는데, 이 때 가져온 의복은 각색소저사의복(各色素紵紗衣服)과 대홍소저사겹대삼(大紅素紵紗裌大衫)·복청소저겹원령(福靑素紵裌圓領)·청소저사수적계하피(靑素紵紗繡翟雞霞帔) 등이었다. 1456년(세조 2)에 전래된 복식은 주취칠적관(珠翠七翟冠)과 대홍저사대삼(大紅紵絲大衫)·청저사수권금적계배자(靑紵絲綉圈金翟雞背子)·청선라채수권하피(靑線羅采綉圈霞帔)·상아여홀(象牙女笏) 등이었다. 명나라 영락(永樂) 3년(1405)의 예제(禮制)로는 대삼과 하피가 황후의 연거복(燕居服)이고 군왕비의 관복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우리 나라의 왕후도 2등체강원칙(二等遞降原則)에 의하여 대삼·배자·하피·여홀 등을...
대삼 (大衫)
조선시대 왕비의 예복. 1403년(태종 3) 면복(冕服)과 태상왕(太上王) 표리(表裏)와 중궁의 관복(冠服)을 가지고 왔는데, 이 때 가져온 의복은 각색소저사의복(各色素紵紗衣服)과 대홍소저사겹대삼(大紅素紵紗裌大衫)·복청소저겹원령(福靑素紵裌圓領)·청소저사수적계하피(靑素紵紗繡翟雞霞帔) 등이었다. 1456년(세조 2)에 전래된 복식은 주취칠적관(珠翠七翟冠)과 대홍저사대삼(大紅紵絲大衫)·청저사수권금적계배자(靑紵絲綉圈金翟雞背子)·청선라채수권하피(靑線羅采綉圈霞帔)·상아여홀(象牙女笏) 등이었다. 명나라 영락(永樂) 3년(1405)의 예제(禮制)로는 대삼과 하피가 황후의 연거복(燕居服)이고 군왕비의 관복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우리 나라의 왕후도 2등체강원칙(二等遞降原則)에 의하여 대삼·배자·하피·여홀 등을...
기녀가 입던 복식. 의례복은 궁중연회 때 정재(呈才)에 참여한 여령(女伶)의 복식구성과 가례 때 의녀의 착장모습 등에 의하여 알 수 있다. 정재복식의 기본구성은 화관·단삼(單衫)·상(裳)·한삼(汗衫)·대(帶)·혜(鞋 : 운두가 낮은 신) 등이며, 여기에 하피(霞帔 : 어깨의 앞·뒤로 늘이는 긴 끈)와 비구(臂韝)가 첨가되기도 하였다. 동기(童妓)의 복식구성은 입(笠) 또는 화관과 단의(丹衣)·상·말군·대·혜·유소(流蘇 : 단의 위에 늘어뜨리는 장식품) 등이며, 악장(樂章)에 따라 독특한 복식을 보여준다. 재료는 나(羅)·주(紬)·초(綃) 등의 비단을 사용하며, 색은 홍색·녹색·황색·남색 등 원색을 써서 현란하게 장식하였다. 일상복은 김홍도(金弘道)나 신윤복(申潤福)의 풍속도에서 볼 수 있는데, 짧고 좁은 저고리와 속옷을 겹겹이 입은 위로 길고...
기녀복 (妓女服)
기녀가 입던 복식. 의례복은 궁중연회 때 정재(呈才)에 참여한 여령(女伶)의 복식구성과 가례 때 의녀의 착장모습 등에 의하여 알 수 있다. 정재복식의 기본구성은 화관·단삼(單衫)·상(裳)·한삼(汗衫)·대(帶)·혜(鞋 : 운두가 낮은 신) 등이며, 여기에 하피(霞帔 : 어깨의 앞·뒤로 늘이는 긴 끈)와 비구(臂韝)가 첨가되기도 하였다. 동기(童妓)의 복식구성은 입(笠) 또는 화관과 단의(丹衣)·상·말군·대·혜·유소(流蘇 : 단의 위에 늘어뜨리는 장식품) 등이며, 악장(樂章)에 따라 독특한 복식을 보여준다. 재료는 나(羅)·주(紬)·초(綃) 등의 비단을 사용하며, 색은 홍색·녹색·황색·남색 등 원색을 써서 현란하게 장식하였다. 일상복은 김홍도(金弘道)나 신윤복(申潤福)의 풍속도에서 볼 수 있는데, 짧고 좁은 저고리와 속옷을 겹겹이 입은 위로 길고...
조선시대 여자들이 정장을 할 때 입던 속치마. # 내용 『청장관전서(靑壯館全書)』 사소절(士小節)에는 “먼저 짧고 작은 흰 치마를 입고 그 위에 치마를 입는데, 무족(無足)에 오합(五合) 또는 칠합(七合)의 호칭이 있다.”고 하였다. 『조선여속고(朝鮮女俗考)』에서 보면 이에 주하여 “무족상(無足裳)은 짧은 데에 차가 있어 이에 따라 새[升]의 홉[合]과 같이 오합·칠합의 이름이 있는데, 접은 단은 십합위승식(十合爲升式)의 층을 두어 5, 6겹으로 접어서 무릎 가까이에서 위의 치마를 버티었다.”고 하였다. 이 무족상 곧 무지기는 고려 때의 부인들이 입었다고 하는 선군(旋裙)과 동일한 제도의 치마로서, 현대의 페티코트(petticoat)와 같은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겉치마를 푸하게 버티기 위한 것이었다. 무지기는 모시 12폭으로써...
무지기
조선시대 여자들이 정장을 할 때 입던 속치마. # 내용 『청장관전서(靑壯館全書)』 사소절(士小節)에는 “먼저 짧고 작은 흰 치마를 입고 그 위에 치마를 입는데, 무족(無足)에 오합(五合) 또는 칠합(七合)의 호칭이 있다.”고 하였다. 『조선여속고(朝鮮女俗考)』에서 보면 이에 주하여 “무족상(無足裳)은 짧은 데에 차가 있어 이에 따라 새[升]의 홉[合]과 같이 오합·칠합의 이름이 있는데, 접은 단은 십합위승식(十合爲升式)의 층을 두어 5, 6겹으로 접어서 무릎 가까이에서 위의 치마를 버티었다.”고 하였다. 이 무족상 곧 무지기는 고려 때의 부인들이 입었다고 하는 선군(旋裙)과 동일한 제도의 치마로서, 현대의 페티코트(petticoat)와 같은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겉치마를 푸하게 버티기 위한 것이었다. 무지기는 모시 12폭으로써...
조선시대 때 왕이나 백관이 평상시 집무 중에 입던 옷. 신라의 의복제도는 백제보다 약 2세기 반이 뒤진 520년(법흥왕 7)에야 정해졌다. 이것은 자(紫)·비(緋)·청(靑)·황(黃)으로 신분을 구별하는 4색공복제도였다. 648년(진덕여왕 2) 김춘추(金春秋)가 당나라 태종(太宗)에게 진복(珍服)을 청하여 가져왔고 649년부터 당나라의 의관제를 시행하였다. 고구려에 대한 기록은 ≪신당서 新唐書≫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국왕의 옷은 오채복(五采服), 관은 금테를 두른 백라관(白羅冠), 혁대는 금구(金釦)를 장식한 것을 띠었다고 한다. 또, 조신은 금·은으로 장식한 청라조우관(靑羅鳥羽冠)을 쓰고 의복은 통수삼(筒袖杉)에 대구고(大口袴)를 입었으며, 백혁대(白革帶)를 띠고 황혁리(黃革履)를 신었다고 한다. 고려는 신라의 제도를 그대로...
상복 (常服)
조선시대 때 왕이나 백관이 평상시 집무 중에 입던 옷. 신라의 의복제도는 백제보다 약 2세기 반이 뒤진 520년(법흥왕 7)에야 정해졌다. 이것은 자(紫)·비(緋)·청(靑)·황(黃)으로 신분을 구별하는 4색공복제도였다. 648년(진덕여왕 2) 김춘추(金春秋)가 당나라 태종(太宗)에게 진복(珍服)을 청하여 가져왔고 649년부터 당나라의 의관제를 시행하였다. 고구려에 대한 기록은 ≪신당서 新唐書≫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국왕의 옷은 오채복(五采服), 관은 금테를 두른 백라관(白羅冠), 혁대는 금구(金釦)를 장식한 것을 띠었다고 한다. 또, 조신은 금·은으로 장식한 청라조우관(靑羅鳥羽冠)을 쓰고 의복은 통수삼(筒袖杉)에 대구고(大口袴)를 입었으며, 백혁대(白革帶)를 띠고 황혁리(黃革履)를 신었다고 한다. 고려는 신라의 제도를 그대로...
상중(喪中)에 있는 상제나 복인(服人)이 입는 예복. # 내용 상복을 엄숙하게 갖추어 입는 것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죽은 사람을 예로써 보내기 위한 산 사람들의 예의 표현방법이다. 상복을 입는 것을 성복(成服)한다고 하는데, 초종(初終) · 습(襲) · 소렴(小殮) · 대렴(大殮)이 끝난 다음날 성복한다. 성복은 상복을 입어야 할 유복자(有服者)들이 각기 해당되는 상복을 입는 것으로서, 죽은 사람에 대한 유복자들의 친소원근(親疎遠近)과 존비(尊卑)의 신분에 따라서 참최(斬衰) · 자최(齊衰) · 대공(大功) · 소공(小功) · 시마(緦麻) 등 다섯가지의 상복, 즉 오복(五服)을 입는 것이다. 고대 우리 나라의 상복에 대한 기록은 ≪삼국지 三國志≫ 동이전(東夷傳) 고려조(高麗條)와 ≪수서...
상복 (喪服)
상중(喪中)에 있는 상제나 복인(服人)이 입는 예복. # 내용 상복을 엄숙하게 갖추어 입는 것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죽은 사람을 예로써 보내기 위한 산 사람들의 예의 표현방법이다. 상복을 입는 것을 성복(成服)한다고 하는데, 초종(初終) · 습(襲) · 소렴(小殮) · 대렴(大殮)이 끝난 다음날 성복한다. 성복은 상복을 입어야 할 유복자(有服者)들이 각기 해당되는 상복을 입는 것으로서, 죽은 사람에 대한 유복자들의 친소원근(親疎遠近)과 존비(尊卑)의 신분에 따라서 참최(斬衰) · 자최(齊衰) · 대공(大功) · 소공(小功) · 시마(緦麻) 등 다섯가지의 상복, 즉 오복(五服)을 입는 것이다. 고대 우리 나라의 상복에 대한 기록은 ≪삼국지 三國志≫ 동이전(東夷傳) 고려조(高麗條)와 ≪수서...
궁중 잔치 때 춤을 추는 무동(舞童)이 쓰던 건(巾). # 내용 그 모양은 복두(幞頭)와 비슷하여 포(布)로 만들고 능각(稜角 : 뾰족한 모)이 있으며, 무(武)에 양각(兩脚)이 있다. 다만 복두와 다른 것은 복두는 전후단(前後段)이 있어 전단은 낮고 후단은 조금 높은데 비하여 각건은 전후단이 없이 경사져 있으며 앞부분을 제외한 정부(頂部) 둘레와 중앙에 세로로 백선으로 장식하고 있다. 당시 무동의 복장은 이 각건에 흑선(黑襈 : 옷의 가장자리를 흑색 헝겊으로 두른 것)을 두른 백색 중단을 입고 그 위에 홍포(紅袍)를 덧입고 남야대(藍也帶 : 남색의 띠)를 띠었으며 흑화를 신었다. - 『진찬의궤(進饌儀軌)』 - 『진서(晉書)』
각건 (角巾)
궁중 잔치 때 춤을 추는 무동(舞童)이 쓰던 건(巾). # 내용 그 모양은 복두(幞頭)와 비슷하여 포(布)로 만들고 능각(稜角 : 뾰족한 모)이 있으며, 무(武)에 양각(兩脚)이 있다. 다만 복두와 다른 것은 복두는 전후단(前後段)이 있어 전단은 낮고 후단은 조금 높은데 비하여 각건은 전후단이 없이 경사져 있으며 앞부분을 제외한 정부(頂部) 둘레와 중앙에 세로로 백선으로 장식하고 있다. 당시 무동의 복장은 이 각건에 흑선(黑襈 : 옷의 가장자리를 흑색 헝겊으로 두른 것)을 두른 백색 중단을 입고 그 위에 홍포(紅袍)를 덧입고 남야대(藍也帶 : 남색의 띠)를 띠었으며 흑화를 신었다. - 『진찬의궤(進饌儀軌)』 - 『진서(晉書)』
백관이 관복(官服)에 두르던 띠. # 내용 착용자의 신분과 계급에 따라 차별을 두었다. 관원이 공복 등에 띠를 두르던 것은 신라시대에 이미 제도화되었고, 고려에서는 계급에 따라 구분하여 제도화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더욱 발달되어 계급에 따라 장식이 다양해졌다. 조선 말기 각대를 보면 가죽바탕에 비단으로 싸고 그 위에 석줄이나 다섯줄의 금줄 혹은 검정줄을 그어 띠의 바닥[帶鞓]을 만들었다, 그리고 양끝은 장방형의 띠돈[大銙]과 걸이쇠[鉸具]를 붙여 띠의 앞 중심에 오도록 하였다. 그 양옆은 작은 장방형의 띠돈[小銙]을 대고 다시 그 양옆은 심엽형(心葉形)의 띠돈을 간격을 두어 붙이고, 뒷면에는 장방형의 띠돈을 연결해 붙였다. 띠의 길이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가슴둘레보다 커서 보통 120㎝ 정도이며...
각대 (角帶)
백관이 관복(官服)에 두르던 띠. # 내용 착용자의 신분과 계급에 따라 차별을 두었다. 관원이 공복 등에 띠를 두르던 것은 신라시대에 이미 제도화되었고, 고려에서는 계급에 따라 구분하여 제도화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더욱 발달되어 계급에 따라 장식이 다양해졌다. 조선 말기 각대를 보면 가죽바탕에 비단으로 싸고 그 위에 석줄이나 다섯줄의 금줄 혹은 검정줄을 그어 띠의 바닥[帶鞓]을 만들었다, 그리고 양끝은 장방형의 띠돈[大銙]과 걸이쇠[鉸具]를 붙여 띠의 앞 중심에 오도록 하였다. 그 양옆은 작은 장방형의 띠돈[小銙]을 대고 다시 그 양옆은 심엽형(心葉形)의 띠돈을 간격을 두어 붙이고, 뒷면에는 장방형의 띠돈을 연결해 붙였다. 띠의 길이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가슴둘레보다 커서 보통 120㎝ 정도이며...
관례 때 입는 옷. # 내용 관례는 남자가 성년이 되었다는 표식으로 올리는 통과의례(通過儀禮)로 보통 15세에서 20세 사이에 치르나, 조선시대 후기에는 조혼의 풍습과 더불어 10세 전후에 치르기도 하였다. 관례에는 초가(初加)·재가(再加)·삼가(三加)의 절차가 있으며, 절차에 따라 차리는 복장이 달랐다. 관례자는 쌍상투[雙紒]를 틀고 사규삼(四䙆衫)을 입고, 늑백(勒帛)을 두르고, 채리(彩履 : 색 헝겊으로 꾸미 신)를 신고 정한 자리에 나온다. 시중하는 사람인 찬자(贊者)가 관례자의 머리를 빗겨서 외상투를 틀고 망건(網巾)을 씌우면, 의식을 주관하는 빈객(賓客)이 축사를 읽고 찬자는 치포관(緇布冠)에 계(筓)를 꽂고 복건(幅巾)을 빈객에게 준다. 빈객이 관례자에게 복건을 씌운 뒤에 관례자는 방에 들어가서 사규삼을 벗고 심의(深衣)...
관례복 (冠禮服)
관례 때 입는 옷. # 내용 관례는 남자가 성년이 되었다는 표식으로 올리는 통과의례(通過儀禮)로 보통 15세에서 20세 사이에 치르나, 조선시대 후기에는 조혼의 풍습과 더불어 10세 전후에 치르기도 하였다. 관례에는 초가(初加)·재가(再加)·삼가(三加)의 절차가 있으며, 절차에 따라 차리는 복장이 달랐다. 관례자는 쌍상투[雙紒]를 틀고 사규삼(四䙆衫)을 입고, 늑백(勒帛)을 두르고, 채리(彩履 : 색 헝겊으로 꾸미 신)를 신고 정한 자리에 나온다. 시중하는 사람인 찬자(贊者)가 관례자의 머리를 빗겨서 외상투를 틀고 망건(網巾)을 씌우면, 의식을 주관하는 빈객(賓客)이 축사를 읽고 찬자는 치포관(緇布冠)에 계(筓)를 꽂고 복건(幅巾)을 빈객에게 준다. 빈객이 관례자에게 복건을 씌운 뒤에 관례자는 방에 들어가서 사규삼을 벗고 심의(深衣)...
머리를 보호하고 장식하기 위하여 또는 신분이나 의례에 따라 격식을 갖추기 위하여 머리에 쓰는 물건. # 내용 관모는 사람의 머리를 싸는 용기(容器)가 되는 것이므로 머리를 어떻게 처리하였느냐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진다. 시대에 따라 그 명칭과 종류가 다양한데, 형태상으로 보아 크게 관(冠)·모(帽)·갓[笠]·건(巾)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관은 이마에 두르는 부분 위에 앞에서 뒤로 연결되는 다리가 있는 것이고, 모는 머리 전면을 싸는 것, 갓은 차양이 있는 것, 건은 한 조각 천으로 싸는 가장 간단한 형태의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관모가 구별되는 것은 아니고, 서로 넘나드는 것이 많다. 예를 들면 ‘익선관(翼善冠)’을 ‘절상건(折上巾)’이라고도 하고, ‘전립(氈笠)’은 ‘전모’라고도 하여 그 구별이 어렵다. 관모의 명칭...
관모 (冠帽)
머리를 보호하고 장식하기 위하여 또는 신분이나 의례에 따라 격식을 갖추기 위하여 머리에 쓰는 물건. # 내용 관모는 사람의 머리를 싸는 용기(容器)가 되는 것이므로 머리를 어떻게 처리하였느냐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진다. 시대에 따라 그 명칭과 종류가 다양한데, 형태상으로 보아 크게 관(冠)·모(帽)·갓[笠]·건(巾)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관은 이마에 두르는 부분 위에 앞에서 뒤로 연결되는 다리가 있는 것이고, 모는 머리 전면을 싸는 것, 갓은 차양이 있는 것, 건은 한 조각 천으로 싸는 가장 간단한 형태의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관모가 구별되는 것은 아니고, 서로 넘나드는 것이 많다. 예를 들면 ‘익선관(翼善冠)’을 ‘절상건(折上巾)’이라고도 하고, ‘전립(氈笠)’은 ‘전모’라고도 하여 그 구별이 어렵다. 관모의 명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