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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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원(陵園)은 고대부터 국왕과 왕후의 무덤을 일컫던 능(陵)과 조선 후기 세자 및 후궁들의 묘소를 일컫던 원(園)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능원이라는 용어는 『삼국사기』부터 등장하지만 이때는 왕릉 및 왕실의 묘역을 통칭하는 것이었다. 국왕의 능과 세자 및 후궁의 원을 합쳐 능원이라고 부른 것은 조선 후기부터이다.
능원 (陵園)
능원(陵園)은 고대부터 국왕과 왕후의 무덤을 일컫던 능(陵)과 조선 후기 세자 및 후궁들의 묘소를 일컫던 원(園)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능원이라는 용어는 『삼국사기』부터 등장하지만 이때는 왕릉 및 왕실의 묘역을 통칭하는 것이었다. 국왕의 능과 세자 및 후궁의 원을 합쳐 능원이라고 부른 것은 조선 후기부터이다.
덕릉(德陵)은 조선 태조의 4대조인 추존왕 목조의 능이다. 목조 덕릉과 효공왕후 안릉이 쌍릉으로 조영되어 있어서, 덕안릉(德安陵)이라고도 한다. 덕릉은 경흥부성 남쪽 안릉과 4리쯤 떨어져 있었으나 1410년 현재의 자리로 천릉하면서 쌍릉으로 조성하고 왕릉에 준해 석물을 갖추었다. 덕릉은 현재 함경남도 신흥군 가평면 능리에 있다.
덕릉 (德陵)
덕릉(德陵)은 조선 태조의 4대조인 추존왕 목조의 능이다. 목조 덕릉과 효공왕후 안릉이 쌍릉으로 조영되어 있어서, 덕안릉(德安陵)이라고도 한다. 덕릉은 경흥부성 남쪽 안릉과 4리쯤 떨어져 있었으나 1410년 현재의 자리로 천릉하면서 쌍릉으로 조성하고 왕릉에 준해 석물을 갖추었다. 덕릉은 현재 함경남도 신흥군 가평면 능리에 있다.
명릉(明陵)은 조선 제19대 국왕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여흥민씨의 합장릉 및 제2계비 인원왕후 경주김씨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쌍릉, 인원왕후는 뒷편 동원이강으로 조성되어 있다. 명릉은 정종 후릉의 체제를 따라 왕릉 석문 간소화의 표본이 된 곳이다. 사적으로 지정된 ‘고양 서오릉’에 자리한다.
명릉 (明陵)
명릉(明陵)은 조선 제19대 국왕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여흥민씨의 합장릉 및 제2계비 인원왕후 경주김씨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쌍릉, 인원왕후는 뒷편 동원이강으로 조성되어 있다. 명릉은 정종 후릉의 체제를 따라 왕릉 석문 간소화의 표본이 된 곳이다. 사적으로 지정된 ‘고양 서오릉’에 자리한다.
남양주 사릉은 조선 제6대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 여산송씨의 능이다. 단종과 함께 폐위된 정순왕후의 묘는 해주정씨 선산에 조성되었으며, 1698년 복위 뒤 왕릉의 모습으로 봉릉되었다. 사릉을 봉릉하면서 석물의 크기는 정종 후릉, 석물의 수량은 덕종 경릉을 따랐다. 사적 남양주 사릉(南楊州 思陵)으로 지정되어 있다.
남양주 사릉 (南楊州 思陵)
남양주 사릉은 조선 제6대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 여산송씨의 능이다. 단종과 함께 폐위된 정순왕후의 묘는 해주정씨 선산에 조성되었으며, 1698년 복위 뒤 왕릉의 모습으로 봉릉되었다. 사릉을 봉릉하면서 석물의 크기는 정종 후릉, 석물의 수량은 덕종 경릉을 따랐다. 사적 남양주 사릉(南楊州 思陵)으로 지정되어 있다.
선릉(宣陵)은 조선 제9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의 능이다. 왕릉과 비릉이 동서쪽 다른 언덕 위에 각각 조성되어 있어서 동원이강(同原異岡) 형식이다. 성종 선릉은 『국조오례의』에 가장 부합하게 건립한 조선 왕릉이며, 이후 16세기 왕릉 조영의 기준이 되었다. 사적 서울 선릉과 정릉으로 지정되어 있다.
선릉 (宣陵)
선릉(宣陵)은 조선 제9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의 능이다. 왕릉과 비릉이 동서쪽 다른 언덕 위에 각각 조성되어 있어서 동원이강(同原異岡) 형식이다. 성종 선릉은 『국조오례의』에 가장 부합하게 건립한 조선 왕릉이며, 이후 16세기 왕릉 조영의 기준이 되었다. 사적 서울 선릉과 정릉으로 지정되어 있다.
수릉(綏陵)은 조선의 추존왕 문조와 신정왕후의 합장 단릉이다. 수릉은 1830년 효명세자 연경묘로 처음 조성하였으며, 1834년 익종으로 추존, 수릉으로 봉릉하였다. 1846년 1차 천릉 후 1855년 지금의 자리로 2차 천릉하였고 1890년 신정왕후를 합장하였다. 1970년 5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어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수릉 (綏陵)
수릉(綏陵)은 조선의 추존왕 문조와 신정왕후의 합장 단릉이다. 수릉은 1830년 효명세자 연경묘로 처음 조성하였으며, 1834년 익종으로 추존, 수릉으로 봉릉하였다. 1846년 1차 천릉 후 1855년 지금의 자리로 2차 천릉하였고 1890년 신정왕후를 합장하였다. 1970년 5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어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숙릉(淑陵)은 조선 태조의 증조할아버지 익조의 비 정숙왕후 등주최씨의 능이다. 정숙왕후는 태조의 증조할아버지 익조 이행리의 왕후이며, 태조 즉위 후 정숙왕후 숙릉으로 추존되었다. 숙릉은 사진 등의 자료가 없지만, 『춘관통고』로 볼 때 목조 덕릉, 익조 지릉과 동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숙릉은 현재 북한의 강원도 문천시 초한사(草閑社)에 있다.
숙릉 (淑陵)
숙릉(淑陵)은 조선 태조의 증조할아버지 익조의 비 정숙왕후 등주최씨의 능이다. 정숙왕후는 태조의 증조할아버지 익조 이행리의 왕후이며, 태조 즉위 후 정숙왕후 숙릉으로 추존되었다. 숙릉은 사진 등의 자료가 없지만, 『춘관통고』로 볼 때 목조 덕릉, 익조 지릉과 동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숙릉은 현재 북한의 강원도 문천시 초한사(草閑社)에 있다.
순릉(順陵)은 조선 성종의 비 공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공혜왕후는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넷째 딸이며, 그 언니가 예종의 비 장순왕후이다. 1648년 순릉 석인상들이 파손되자 석물의 표면 전체를 깎아 냈는데, 얼굴은 17세기의 형태로 바꾸었고 의복은 기존의 15세기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사적 파주 삼릉에 있다.
순릉 (順陵)
순릉(順陵)은 조선 성종의 비 공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공혜왕후는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넷째 딸이며, 그 언니가 예종의 비 장순왕후이다. 1648년 순릉 석인상들이 파손되자 석물의 표면 전체를 깎아 냈는데, 얼굴은 17세기의 형태로 바꾸었고 의복은 기존의 15세기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사적 파주 삼릉에 있다.
순릉(純陵)은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의 비 경순왕후 문주박씨의 능이다. 경순왕후는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 이춘의 왕후이며, 태조 즉위 후 경순왕후 순릉으로 추존되었다. 순릉은 사진 등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지만, 『춘관통고』로 볼 때 조선 전기 추존 왕릉의 전형적인 모습과 동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함경남도 함흥시 동명사에 있다.
순릉 (純陵)
순릉(純陵)은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의 비 경순왕후 문주박씨의 능이다. 경순왕후는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 이춘의 왕후이며, 태조 즉위 후 경순왕후 순릉으로 추존되었다. 순릉은 사진 등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지만, 『춘관통고』로 볼 때 조선 전기 추존 왕릉의 전형적인 모습과 동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함경남도 함흥시 동명사에 있다.
숭릉(崇陵)은 조선 제18대 국왕인 현종과 명성왕후 청풍김씨의 쌍릉 합장릉이다. 1674년에 조성한 현종 숭릉의 돌거리는 효종의 옛 영릉 돌거리를 재사용하였으며, 이는 조선왕릉 중 돌거리 재사용의 첫 사례이다. 숭릉 정자각은 팔작지붕의 8칸 건물로서 ‘구리 동구릉 숭릉 정자각’이라는 명칭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숭릉은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숭릉 (崇陵)
숭릉(崇陵)은 조선 제18대 국왕인 현종과 명성왕후 청풍김씨의 쌍릉 합장릉이다. 1674년에 조성한 현종 숭릉의 돌거리는 효종의 옛 영릉 돌거리를 재사용하였으며, 이는 조선왕릉 중 돌거리 재사용의 첫 사례이다. 숭릉 정자각은 팔작지붕의 8칸 건물로서 ‘구리 동구릉 숭릉 정자각’이라는 명칭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숭릉은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안릉(安陵)은 조선 태조의 4대조 목조의 비 효공왕후 평창이씨의 능이다. 목조 덕릉과 쌍릉으로 조영되어 있어서 덕안릉이라고도 한다. 안릉은 경흥부성 남쪽 덕릉과 4리쯤 떨어져 있었으나 1410년 현재의 위치로 천릉하였고, 쌍릉으로 조성하면서 왕릉에 준해 돌거리를 갖추었다. 안릉은 현재 함경남도 신흥군 가평사(加平社)에 자리한다.
안릉 (安陵)
안릉(安陵)은 조선 태조의 4대조 목조의 비 효공왕후 평창이씨의 능이다. 목조 덕릉과 쌍릉으로 조영되어 있어서 덕안릉이라고도 한다. 안릉은 경흥부성 남쪽 덕릉과 4리쯤 떨어져 있었으나 1410년 현재의 위치로 천릉하였고, 쌍릉으로 조성하면서 왕릉에 준해 돌거리를 갖추었다. 안릉은 현재 함경남도 신흥군 가평사(加平社)에 자리한다.
여주영릉(驪州寧陵)은 조선 제17대 국왕인 효종과 인선왕후 덕수장씨의 능이다. 여주영릉은 1659년 구리 동구릉에 조성되었으나 167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현재 여주영릉은 인종 효릉을 모방해 제작하여 16세기의 돌거리 도상(圖像)에 17세기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1674년 인선왕후의 능을 효종릉 아래에 조성하여 동원상하릉이라는 보기 드문 형식이 만들어졌다. 현재 사적 '여주 영릉과 영릉(驪州 英陵과 寧陵)'으로 지정되어 있다.
여주 영릉 (驪州 寧陵)
여주영릉(驪州寧陵)은 조선 제17대 국왕인 효종과 인선왕후 덕수장씨의 능이다. 여주영릉은 1659년 구리 동구릉에 조성되었으나 167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현재 여주영릉은 인종 효릉을 모방해 제작하여 16세기의 돌거리 도상(圖像)에 17세기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1674년 인선왕후의 능을 효종릉 아래에 조성하여 동원상하릉이라는 보기 드문 형식이 만들어졌다. 현재 사적 '여주 영릉과 영릉(驪州 英陵과 寧陵)'으로 지정되어 있다.
온릉(溫陵)은 조선 제11대 국왕 중종의 비 단경왕후 거창신씨의 능이다. 단경왕후는 폐위된 뒤 묘소가 친정 선산에 조성되었으며, 1739년 복위되면서 왕릉으로 조성되었다. 온릉은 정순왕후 사릉 돌거리의 수량과 크기를 따랐으며, 이 돌거리 제작 전반을 별간역(別看役) 최천약(崔天若)이 지휘하였다. 사적 ‘양주 온릉’으로 지정되어 있다.
온릉 (溫陵)
온릉(溫陵)은 조선 제11대 국왕 중종의 비 단경왕후 거창신씨의 능이다. 단경왕후는 폐위된 뒤 묘소가 친정 선산에 조성되었으며, 1739년 복위되면서 왕릉으로 조성되었다. 온릉은 정순왕후 사릉 돌거리의 수량과 크기를 따랐으며, 이 돌거리 제작 전반을 별간역(別看役) 최천약(崔天若)이 지휘하였다. 사적 ‘양주 온릉’으로 지정되어 있다.
원릉(元陵)은 조선 제21대 국왕인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경주김씨의 쌍릉 합장릉이다. 영조의 수릉(壽陵)은 고양 서오릉 정성왕후 홍릉에 조성되었으나, 영조 승하 후 현재의 위치에 새롭게 조성되었다. 원릉은 효종 옛 영릉의 자리에 조성되어 지대석 등 일부 돌거리는 재사용되었다. 원릉은 사적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원릉 (元陵)
원릉(元陵)은 조선 제21대 국왕인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경주김씨의 쌍릉 합장릉이다. 영조의 수릉(壽陵)은 고양 서오릉 정성왕후 홍릉에 조성되었으나, 영조 승하 후 현재의 위치에 새롭게 조성되었다. 원릉은 효종 옛 영릉의 자리에 조성되어 지대석 등 일부 돌거리는 재사용되었다. 원릉은 사적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의릉(義陵)은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의 능이다. 도조는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이춘이며, 태조 즉위 후 도왕 의릉으로 추존되었다. 의릉은 조선 전기 추존 왕릉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봉분에 병풍석이 설치되어 있으며, 문석인, 무석인, 장명등 등의 돌거리가 건립되어 있다. 의릉은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다.
의릉 (義陵)
의릉(義陵)은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의 능이다. 도조는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이춘이며, 태조 즉위 후 도왕 의릉으로 추존되었다. 의릉은 조선 전기 추존 왕릉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봉분에 병풍석이 설치되어 있으며, 문석인, 무석인, 장명등 등의 돌거리가 건립되어 있다. 의릉은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다.
인릉(仁陵)은 조선 제23대 국왕인 순조와 순원왕후 안동김씨의 합장 단릉이다. 1834년 파주에 조성된 순조 인릉은 1856년 현재 자리로 천릉되었으며, 이 자리는 세종 옛 영릉 자리이다. 순조 인릉을 새로 조성하면서 옛 영릉과 인근의 장경왕후 옛 희릉 돌거리가 재사용되었다. 사적으로 서울 헌릉과 인릉 내에 있다.
인릉 (仁陵)
인릉(仁陵)은 조선 제23대 국왕인 순조와 순원왕후 안동김씨의 합장 단릉이다. 1834년 파주에 조성된 순조 인릉은 1856년 현재 자리로 천릉되었으며, 이 자리는 세종 옛 영릉 자리이다. 순조 인릉을 새로 조성하면서 옛 영릉과 인근의 장경왕후 옛 희릉 돌거리가 재사용되었다. 사적으로 서울 헌릉과 인릉 내에 있다.
파주 장릉(坡州 長陵)은 조선 제16대 국왕인 인조와 인열왕후 청주한씨의 합장 단릉이다. 처음에는 파주 북운천리에 조성되었으나 1731년 지금의 자리로 천릉되었다. 이때 쌍릉에서 단릉으로 바뀌어 병풍석을 새로 제작하였으며, 다른 돌거리들은 대부분 옮겨서 사용하였다. 1970년 5월 26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파주 장릉 (坡州 長陵)
파주 장릉(坡州 長陵)은 조선 제16대 국왕인 인조와 인열왕후 청주한씨의 합장 단릉이다. 처음에는 파주 북운천리에 조성되었으나 1731년 지금의 자리로 천릉되었다. 이때 쌍릉에서 단릉으로 바뀌어 병풍석을 새로 제작하였으며, 다른 돌거리들은 대부분 옮겨서 사용하였다. 1970년 5월 26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정릉(定陵)은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는 조선 태조의 아버지 환조의 능이다. 환조는 조선 태조의 아버지 이자춘이며, 태조 즉위 후 환조 정릉으로 추존되었다. 의혜왕후 영흥최씨 화릉과 상하 동원이영(同原異塋) 형태이며, 정릉이 위쪽, 화릉이 아래쪽에 있다. 정릉에는 태조 선대 능 중 유일하게 신도비가 건립되어 있다.
정릉 (定陵)
정릉(定陵)은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는 조선 태조의 아버지 환조의 능이다. 환조는 조선 태조의 아버지 이자춘이며, 태조 즉위 후 환조 정릉으로 추존되었다. 의혜왕후 영흥최씨 화릉과 상하 동원이영(同原異塋) 형태이며, 정릉이 위쪽, 화릉이 아래쪽에 있다. 정릉에는 태조 선대 능 중 유일하게 신도비가 건립되어 있다.
정릉(貞陵)은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신천강씨의 능이다. 처음에는 도성 내 취현방에 조성되었으나, 1409년 지금의 위치로 천릉되었다. 1669년 신덕왕후를 종묘에 부묘하면서 정자각 등을 건립해 왕릉의 규모에 맞추었다. 사적 서울 정릉으로 지정되어 있다.
정릉 (貞陵)
정릉(貞陵)은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신천강씨의 능이다. 처음에는 도성 내 취현방에 조성되었으나, 1409년 지금의 위치로 천릉되었다. 1669년 신덕왕후를 종묘에 부묘하면서 정자각 등을 건립해 왕릉의 규모에 맞추었다. 사적 서울 정릉으로 지정되어 있다.
제릉(齊陵)은 조선 태조의 비 신의왕후 안변한씨의 능이다. 신의왕후는 조선 건국 전에 승하해 해풍군 치속촌에서 장사지냈다. 1392년 제릉에 봉릉되었으며, 1407년에 왕릉의 규모로 개수하였다. 제릉은 현재 북한의 개성시 판문군 지동에 있으며, 북한 보존급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제릉 (齊陵)
제릉(齊陵)은 조선 태조의 비 신의왕후 안변한씨의 능이다. 신의왕후는 조선 건국 전에 승하해 해풍군 치속촌에서 장사지냈다. 1392년 제릉에 봉릉되었으며, 1407년에 왕릉의 규모로 개수하였다. 제릉은 현재 북한의 개성시 판문군 지동에 있으며, 북한 보존급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