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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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문은 고려시대 조회와 의례를 맡아보던 관서이다. 조하의, 원구 등 각종 의례에서 국왕을 비롯한 참여원의 진퇴를 안내하는 등의 집사원 역할을 하였다. 합문이라고도 한다. 또한 각문지후 등은 의례의 집사원만이 아니라 국왕의 정무 공간이 정전이나 편전의 문을 관리하면서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는 역할도 담당하였다.
각문 (閣門)
각문은 고려시대 조회와 의례를 맡아보던 관서이다. 조하의, 원구 등 각종 의례에서 국왕을 비롯한 참여원의 진퇴를 안내하는 등의 집사원 역할을 하였다. 합문이라고도 한다. 또한 각문지후 등은 의례의 집사원만이 아니라 국왕의 정무 공간이 정전이나 편전의 문을 관리하면서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는 역할도 담당하였다.
감찰어사는 고려시대 관료에 대한 감찰 등을 담당하던 어사대의 종6품 관직이다. 백관의 규찰과 제사·조회·전곡의 출입 등을 감찰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고려 후기에 어사대가 감찰사로 개칭되면서 감찰어사가 감찰사로 바뀌기도 하였다.
감찰어사 (監察御史)
감찰어사는 고려시대 관료에 대한 감찰 등을 담당하던 어사대의 종6품 관직이다. 백관의 규찰과 제사·조회·전곡의 출입 등을 감찰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고려 후기에 어사대가 감찰사로 개칭되면서 감찰어사가 감찰사로 바뀌기도 하였다.
고공사는 고려와 조선시대 관리의 근무 성과인 공과(功過)를 평가하는 일을 관장하던 관서이다. 관료에 대한 인사를 담당한 상서이부가 세부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그 속사로 설치한 관서이다. 관원의 근무 평가서인 도력장(都歷狀)을 제출받아 해당 관원의 재능과 능력, 근무 성과에 따른 공로와 과실 등을 평가하여 관원 개인의 고과를 매겼다. 낭중과 원외랑이 소속 관직으로 있었다.
고공사 (考功司)
고공사는 고려와 조선시대 관리의 근무 성과인 공과(功過)를 평가하는 일을 관장하던 관서이다. 관료에 대한 인사를 담당한 상서이부가 세부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그 속사로 설치한 관서이다. 관원의 근무 평가서인 도력장(都歷狀)을 제출받아 해당 관원의 재능과 능력, 근무 성과에 따른 공로와 과실 등을 평가하여 관원 개인의 고과를 매겼다. 낭중과 원외랑이 소속 관직으로 있었다.
관구는 고려시대 국자감과 보문각 등에 소속된 관직이다. 문한직보다는 행정 사무를 담당하는 실무를 맡은 직으로 이해된다. 관구는 주로 겸직으로 운영되었다. 예종대 중추원의 관직자를 보문각의 관구로 임명하였다는 것에서 보문각에 대한 국왕의 관심을 짐작할 수 있다.
관구 (管勾)
관구는 고려시대 국자감과 보문각 등에 소속된 관직이다. 문한직보다는 행정 사무를 담당하는 실무를 맡은 직으로 이해된다. 관구는 주로 겸직으로 운영되었다. 예종대 중추원의 관직자를 보문각의 관구로 임명하였다는 것에서 보문각에 대한 국왕의 관심을 짐작할 수 있다.
기거랑은 고려시대 중서문하성 낭사의 종5품 관직이다. 중서문하성은 크게 2품 이상의 성재와 3품 이하의 낭사로 구분되는데, 기거랑은 낭사의 하나이다. 간쟁과 봉박을 담당하였으며, 어사대와 함께 대간을 구성하였다. 공민왕 대에 정5품 관직이 되었다.
기거랑 (起居郎)
기거랑은 고려시대 중서문하성 낭사의 종5품 관직이다. 중서문하성은 크게 2품 이상의 성재와 3품 이하의 낭사로 구분되는데, 기거랑은 낭사의 하나이다. 간쟁과 봉박을 담당하였으며, 어사대와 함께 대간을 구성하였다. 공민왕 대에 정5품 관직이 되었다.
내시부는 고려시대 궁중에서 국왕과 그 가족의 생활을 보조하던 환관의 관청이다. 애초 남반의 관직으로 소수로 운영되었다. 고려 후기로 가면서 그 수가 늘고 점차 국왕의 측근으로 활동하였다. 이에 1356년(공민왕 5)에 환관의 직제를 정비하고 내시부가 설치되었다.
내시부 (內侍府)
내시부는 고려시대 궁중에서 국왕과 그 가족의 생활을 보조하던 환관의 관청이다. 애초 남반의 관직으로 소수로 운영되었다. 고려 후기로 가면서 그 수가 늘고 점차 국왕의 측근으로 활동하였다. 이에 1356년(공민왕 5)에 환관의 직제를 정비하고 내시부가 설치되었다.
단련사는 고려시대 10도 12주 절도사 체제하의 지방관이다. 995년(성종 14)에 성종이 12목 체제를 12주 절도사 체제로 개편하면서 12주 외에 도단련사 등과 함께 단련사를 설치하였다. 1005년(목종 8)에 12주 절도사 체제가 개편되면서 혁파되었다.
단련사 (團練使)
단련사는 고려시대 10도 12주 절도사 체제하의 지방관이다. 995년(성종 14)에 성종이 12목 체제를 12주 절도사 체제로 개편하면서 12주 외에 도단련사 등과 함께 단련사를 설치하였다. 1005년(목종 8)에 12주 절도사 체제가 개편되면서 혁파되었다.
대상은 신라 말과 고려 초의 관직이다. 고려를 세운 왕건은 마진의 관계를 국초에 그대로 답습하여 문관·무관의 공적 질서 체계를 정비하였는데, 대상은 그 체계의 하나였다. 936년(태조 19) 후삼국통일을 전후하여 태조가 관계를 16등급으로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대상은 4품으로 7등급이었다. 995년(성종 14) 종래의 관계를 폐지하고 문산계·무산계와 향직 체계로 개편하면서, 대상은 향직 체계로 흡수되어 16위계의 향직 가운데 품계는 제4품의 상(上)으로 제7위가 되었다.
대상 (大相)
대상은 신라 말과 고려 초의 관직이다. 고려를 세운 왕건은 마진의 관계를 국초에 그대로 답습하여 문관·무관의 공적 질서 체계를 정비하였는데, 대상은 그 체계의 하나였다. 936년(태조 19) 후삼국통일을 전후하여 태조가 관계를 16등급으로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대상은 4품으로 7등급이었다. 995년(성종 14) 종래의 관계를 폐지하고 문산계·무산계와 향직 체계로 개편하면서, 대상은 향직 체계로 흡수되어 16위계의 향직 가운데 품계는 제4품의 상(上)으로 제7위가 되었다.
대제는 고려시대 보문각과 예문관에 설치된 관직이다. 애초 예종이 일종의 왕실 도서관 역할을 하면서 당대의 학자들을 모아 놓을 공간으로 청연각을 만들고, 보문각으로 고치는 과정에서 대제도 두었다. 또한 예문관에도 대제가 있었다. 대제 등은 유학적 경륜이나 문장 등으로 한 시대에 이름난 경우가 많았다.
대제 (待制)
대제는 고려시대 보문각과 예문관에 설치된 관직이다. 애초 예종이 일종의 왕실 도서관 역할을 하면서 당대의 학자들을 모아 놓을 공간으로 청연각을 만들고, 보문각으로 고치는 과정에서 대제도 두었다. 또한 예문관에도 대제가 있었다. 대제 등은 유학적 경륜이나 문장 등으로 한 시대에 이름난 경우가 많았다.
우정승은 고려시대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충숙왕 대 도첨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중서문하성(뒤의 도첨의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우정승 (右政丞)
우정승은 고려시대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충숙왕 대 도첨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중서문하성(뒤의 도첨의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원고려기사』는 1917년에 간행된 고려와 몽골(원)에 관한 역사서이다. 청나라 말의 문정식이 『영락대전』 권4446과 『원사』 고려전 등을 참고하여 1900~1904년 사이에 엮은 책이다. 그가 1904년에 죽은 후 『신원사』를 지은 가소민, 나진옥 등을 거쳐 왕국유가 그 원고 간 산일될 것을 우려하여 1917년에 간행되었다. 1216~1301년 사이 고려-몽골 관계 기록을 서문, 본기, 부록의 셋으로 나누어 수록하고 있으며, 부록에서는 탐라 관계 기사를 다루고 있다.
원고려기사 (元高麗紀事)
『원고려기사』는 1917년에 간행된 고려와 몽골(원)에 관한 역사서이다. 청나라 말의 문정식이 『영락대전』 권4446과 『원사』 고려전 등을 참고하여 1900~1904년 사이에 엮은 책이다. 그가 1904년에 죽은 후 『신원사』를 지은 가소민, 나진옥 등을 거쳐 왕국유가 그 원고 간 산일될 것을 우려하여 1917년에 간행되었다. 1216~1301년 사이 고려-몽골 관계 기록을 서문, 본기, 부록의 셋으로 나누어 수록하고 있으며, 부록에서는 탐라 관계 기사를 다루고 있다.
자정원은 고려 후기 충선왕이 설치한 관서이다. 몽골(원)에 존재하던 황후의 재정 관련 기구를 본떠 만든 기구로 생각된다. 하지만 충렬왕이 복위하면서 폐지되었다. 공교롭게도 나중에 몽골(원)의 기황후의 재정 기구 역시도 자정원으로 같은 명칭이었다.
자정원 (資政院)
자정원은 고려 후기 충선왕이 설치한 관서이다. 몽골(원)에 존재하던 황후의 재정 관련 기구를 본떠 만든 기구로 생각된다. 하지만 충렬왕이 복위하면서 폐지되었다. 공교롭게도 나중에 몽골(원)의 기황후의 재정 기구 역시도 자정원으로 같은 명칭이었다.
정역별감은 고려 후기 지방 역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에 22역도를 관리하던 관역사가 있었는데, 후기에 이를 대신하여 역에 설치한 관직이다. 정역별감은 역의 회복을 위해 정역소복별감을 보내서 점차 상설화하여 정역별감으로 바뀐 것으로 이해된다. 공양왕 대에 역승으로 바뀌었다.
정역별감 (程驛別監)
정역별감은 고려 후기 지방 역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에 22역도를 관리하던 관역사가 있었는데, 후기에 이를 대신하여 역에 설치한 관직이다. 정역별감은 역의 회복을 위해 정역소복별감을 보내서 점차 상설화하여 정역별감으로 바뀐 것으로 이해된다. 공양왕 대에 역승으로 바뀌었다.
좌시중은 고려 후기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우왕대에 문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재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좌시중 (左侍中)
좌시중은 고려 후기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우왕대에 문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재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좌정승은 고려 후기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충숙왕 대 도첨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중서문하성(뒤의 도첨의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좌정승 (左政丞)
좌정승은 고려 후기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충숙왕 대 도첨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중서문하성(뒤의 도첨의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지리업은 고려시대 과거의 잡업 가운데 한 과이다. 궁궐과 왕릉 등의 위치를 선정하는 지사를 뽑는 과거의 한 종류이다. 1136년(인종 14)에 정한 규칙에 따르면, 3일에 걸쳐 첩경, 독경 등의 방식으로 시험을 치룬 것을 알 수 있다. 합격생들에게는 지리생, 지리정, 지리박사, 지리사, 부통, 대통 등의 지위를 부여하였고, 별사전을 지급하였다.
지리업 (地理業)
지리업은 고려시대 과거의 잡업 가운데 한 과이다. 궁궐과 왕릉 등의 위치를 선정하는 지사를 뽑는 과거의 한 종류이다. 1136년(인종 14)에 정한 규칙에 따르면, 3일에 걸쳐 첩경, 독경 등의 방식으로 시험을 치룬 것을 알 수 있다. 합격생들에게는 지리생, 지리정, 지리박사, 지리사, 부통, 대통 등의 지위를 부여하였고, 별사전을 지급하였다.
첨사부는 고려시대에 동궁의 살림과 사무적인 일을 총괄하던 관청이다. 태자의 생활을 관리하고 관련 기구를 총괄하기 위한 조직으로 마련된 관서이다. 1068년(문종 22) 동궁의 직제 강화에 의하여 정3품 지부사 1인, 정3품 첨사 1인, 종3품 소첨사 1인을 동궁 소속관직으로 설치하면서 등장하였다. 고려말 공양왕 대까지 존속하였다.
첨사부 (詹事府)
첨사부는 고려시대에 동궁의 살림과 사무적인 일을 총괄하던 관청이다. 태자의 생활을 관리하고 관련 기구를 총괄하기 위한 조직으로 마련된 관서이다. 1068년(문종 22) 동궁의 직제 강화에 의하여 정3품 지부사 1인, 정3품 첨사 1인, 종3품 소첨사 1인을 동궁 소속관직으로 설치하면서 등장하였다. 고려말 공양왕 대까지 존속하였다.
청연각은 고려 전기 예종 때 설치되었던 비각이다. 예종이 문신들과 더불어 6경을 강론하고 문예와 예악으로써 유학을 진흥시키기 위하여 설치된 일종의 궁중 도서관으로, 궁궐 북쪽에 위치한 자화전의 서쪽에 위치하였다. 1116년(예종 11) 8월에 설치하였으나, 그해 11월에 보문각으로 합쳐졌다.
청연각 (淸讌閣)
청연각은 고려 전기 예종 때 설치되었던 비각이다. 예종이 문신들과 더불어 6경을 강론하고 문예와 예악으로써 유학을 진흥시키기 위하여 설치된 일종의 궁중 도서관으로, 궁궐 북쪽에 위치한 자화전의 서쪽에 위치하였다. 1116년(예종 11) 8월에 설치하였으나, 그해 11월에 보문각으로 합쳐졌다.
총관은 고려 후기 몽골(원)이 쌍성총관부 등에 설치한 관직이다. 몽골(원)이 행성의 하부 조직인 총관부 등에 설치한 관직이다. 로의 규모에 따라 정3품 또는 종3품이며, 몽골(원)이 고려의 양계 지역을 확보하고 동녕부, 쌍성총관부를 설치하면서 그 총관부에도 설치되었다. 총관은 이들 총관부의 장관직에 해당한다.
총관 (摠管)
총관은 고려 후기 몽골(원)이 쌍성총관부 등에 설치한 관직이다. 몽골(원)이 행성의 하부 조직인 총관부 등에 설치한 관직이다. 로의 규모에 따라 정3품 또는 종3품이며, 몽골(원)이 고려의 양계 지역을 확보하고 동녕부, 쌍성총관부를 설치하면서 그 총관부에도 설치되었다. 총관은 이들 총관부의 장관직에 해당한다.
평장정사는 고려 후기 몽골(원)이 고려에 설치하였던 정동행성의 고위 관직이다. 행성에 설치된 관직으로, 품계는 종1품, 정원은 2인이다. 원의 행성 관제에 의하면 장관인 승상의 바로 아래 관직이며, 승상을 임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승상 대신 각 행성의 최고관직으로 장관직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려에도 몽골(원)이 정동행성을 두면서 그 관직이 마련되어 종종 임명한 사례가 보인다.
평장정사 (平章政事)
평장정사는 고려 후기 몽골(원)이 고려에 설치하였던 정동행성의 고위 관직이다. 행성에 설치된 관직으로, 품계는 종1품, 정원은 2인이다. 원의 행성 관제에 의하면 장관인 승상의 바로 아래 관직이며, 승상을 임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승상 대신 각 행성의 최고관직으로 장관직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려에도 몽골(원)이 정동행성을 두면서 그 관직이 마련되어 종종 임명한 사례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