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윤지"
검색결과 총 25건
경보는 후백제 견훤과 고려 초 국왕들이 스승으로 공경한 승려이다. 그는 백계산 승려 도선의 제자였고 중국에 가서 구법을 행한 뒤 귀국하여서는 후백제 견훤의 공경을 받았다. 후에 고려 태조가 삼국을 통일하고 태조를 비롯하여 3대 정종에 이르기까지 고려 국왕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입적하여서는 통진대사로 추증되었다.
경보 (慶甫)
경보는 후백제 견훤과 고려 초 국왕들이 스승으로 공경한 승려이다. 그는 백계산 승려 도선의 제자였고 중국에 가서 구법을 행한 뒤 귀국하여서는 후백제 견훤의 공경을 받았다. 후에 고려 태조가 삼국을 통일하고 태조를 비롯하여 3대 정종에 이르기까지 고려 국왕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입적하여서는 통진대사로 추증되었다.
규봉사(圭峰寺)는 고려 진각국사 혜심(慧諶)과 혜근(惠勤)이 수도한 사찰이다. 신라시대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는 설, 1183년(명종 13)에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知訥)이 창건하였다는 설 등이 있으나, 주변 유물로 보아 지눌의 창건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末寺)이다.
무등산 규봉사 (無等山 圭峰寺)
규봉사(圭峰寺)는 고려 진각국사 혜심(慧諶)과 혜근(惠勤)이 수도한 사찰이다. 신라시대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는 설, 1183년(명종 13)에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知訥)이 창건하였다는 설 등이 있으나, 주변 유물로 보아 지눌의 창건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末寺)이다.
명봉사(鳴鳳寺)는 남북국시대 경상북도 예천군 효자면 소백산에 있는 신라의 승려 두운이 창건한 사찰이다. 신라 말 고려초에 자적선사(慈寂禪師) 홍준(弘俊)이 주석하다가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조선시대를 비롯하여 근대까지 화재와 중창을 거듭하였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소백산 명봉사 (小白山 鳴鳳寺)
명봉사(鳴鳳寺)는 남북국시대 경상북도 예천군 효자면 소백산에 있는 신라의 승려 두운이 창건한 사찰이다. 신라 말 고려초에 자적선사(慈寂禪師) 홍준(弘俊)이 주석하다가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조선시대를 비롯하여 근대까지 화재와 중창을 거듭하였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보문사(普門寺)는 고려 전기 승려 담진이 창건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사찰이다. 조선시대 비구니들이 상주하며 수행하기 시작하였으며 일제 시기 황폐화되었으나 비구니 은영이 주석하면서 절을 크게 중창하였고 1972년에 비구니 종단인 보문종을 창종하면서 보문종의 본산이 되었다.
서울 보문사 (서울 普門寺)
보문사(普門寺)는 고려 전기 승려 담진이 창건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사찰이다. 조선시대 비구니들이 상주하며 수행하기 시작하였으며 일제 시기 황폐화되었으나 비구니 은영이 주석하면서 절을 크게 중창하였고 1972년에 비구니 종단인 보문종을 창종하면서 보문종의 본산이 되었다.
복구는 수선사 13대 승려이자 공민왕대 왕사로 재책봉된 승려이다. 젊은 시절 선종 승과에 합격하였으며 이후 백암사(白巖寺), 월남사(月南寺), 수선사(修禪社), 불갑사(佛岬寺) 등을 주석하였으며 입적한 후에는 각진국사로 추봉되었다.
복구 (復丘)
복구는 수선사 13대 승려이자 공민왕대 왕사로 재책봉된 승려이다. 젊은 시절 선종 승과에 합격하였으며 이후 백암사(白巖寺), 월남사(月南寺), 수선사(修禪社), 불갑사(佛岬寺) 등을 주석하였으며 입적한 후에는 각진국사로 추봉되었다.
복천암은 신라시대 창건된 사찰로, 조선 초에는 왕실의 원찰로 시주와 중건이 이루어졌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의 하나이며 고려 초 사용된 기와가 출토되었고 2건의 보물과 4건의 지정문화재가 전한다.
속리산 복천암 (俗離山 福泉庵)
복천암은 신라시대 창건된 사찰로, 조선 초에는 왕실의 원찰로 시주와 중건이 이루어졌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의 하나이며 고려 초 사용된 기와가 출토되었고 2건의 보물과 4건의 지정문화재가 전한다.
황해북도 개풍군 영북면에 위치한 사찰로, 고려 전기 화엄종 고승인 원융국사 결응(圓融國師決凝)이 이곳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경덕국사 난원(景德國師爛圓)의 비와 탑이 건립되었다. 고려 전기에는 국가의 중요한 사찰로 운영되었으나, 조선시대 들어서 점차 폐허화된 것으로 보인다.
개풍 복흥사 (開豊 復興寺)
황해북도 개풍군 영북면에 위치한 사찰로, 고려 전기 화엄종 고승인 원융국사 결응(圓融國師決凝)이 이곳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경덕국사 난원(景德國師爛圓)의 비와 탑이 건립되었다. 고려 전기에는 국가의 중요한 사찰로 운영되었으나, 조선시대 들어서 점차 폐허화된 것으로 보인다.
서봉사는 고려 명종 대에 건립되어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瑞峰寺玄悟國師塔碑)(보물 제9호)」가 남아있는 사찰이다. 현재는 사찰 터만 전한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었고 조선 초에 자복사(資福寺)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사세를 떨쳤으나 후기에 이르러 폐사가 되었다.
용인 서봉사 (龍仁 瑞峰寺)
서봉사는 고려 명종 대에 건립되어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瑞峰寺玄悟國師塔碑)(보물 제9호)」가 남아있는 사찰이다. 현재는 사찰 터만 전한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었고 조선 초에 자복사(資福寺)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사세를 떨쳤으나 후기에 이르러 폐사가 되었다.
석왕사(釋王寺)는 지금의 북한 강원도 안변군에 있는 사찰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잠저 시 혹은 우왕 대에 건립되었다는 등의 기록이 전한다. 이성계의 원찰로서 조선 개국 후에는 왕실의 원찰로 기능하였다. 여러 차례 무너지거나 화재로 소실되는 등 개수와 중창이 반복되었으나, 왕조의 창업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찰로 여겨져 조선 말까지 사세를 유지하였다. 일제강점기에도 30 본산으로 지정되어 40여 채의 건물과 48개의 말사를 관장하였다. 사세를 계속해서 유지하였으나 1950년 한국 전쟁으로 건물들이 전소되었다. 이후 북한에서 복원하였다.
설봉산 석왕사 (雪峯山 釋王寺)
석왕사(釋王寺)는 지금의 북한 강원도 안변군에 있는 사찰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잠저 시 혹은 우왕 대에 건립되었다는 등의 기록이 전한다. 이성계의 원찰로서 조선 개국 후에는 왕실의 원찰로 기능하였다. 여러 차례 무너지거나 화재로 소실되는 등 개수와 중창이 반복되었으나, 왕조의 창업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찰로 여겨져 조선 말까지 사세를 유지하였다. 일제강점기에도 30 본산으로 지정되어 40여 채의 건물과 48개의 말사를 관장하였다. 사세를 계속해서 유지하였으나 1950년 한국 전쟁으로 건물들이 전소되었다. 이후 북한에서 복원하였다.
선원사(禪源寺)는 1232년에 인천광역시 강화도로 천도한 뒤, 집정자였던 최우가 1245년에 자신의 원찰로 창건한 사찰이다. 1236년에 재조대장경 판각이 시작되었고, 선원사는 대장도감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대장경을 봉안, 관리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1398년(태조 7)에 대장경판이 한양의 지천사로 옮겨진 후 별다른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에 폐사 연대가 분명하지 않은 실정이다. 1977년에 지금의 선원사지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으나, 그 위치를 비정하는 데 이견이 많다.
강화 선원사 (江華 禪源寺)
선원사(禪源寺)는 1232년에 인천광역시 강화도로 천도한 뒤, 집정자였던 최우가 1245년에 자신의 원찰로 창건한 사찰이다. 1236년에 재조대장경 판각이 시작되었고, 선원사는 대장도감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대장경을 봉안, 관리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1398년(태조 7)에 대장경판이 한양의 지천사로 옮겨진 후 별다른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에 폐사 연대가 분명하지 않은 실정이다. 1977년에 지금의 선원사지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으나, 그 위치를 비정하는 데 이견이 많다.
신륵사는 삼국시대 승려 아도가 창건하였다는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산(月岳山)에 있는 사찰이다. 조선시대 무학 자초, 사명 휴정 등이 중창한 사찰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퇴락되었다가 근래에 국사당 · 산신각을 지었고, 1960년에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월악산 신륵사 (月岳山 神勒寺)
신륵사는 삼국시대 승려 아도가 창건하였다는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산(月岳山)에 있는 사찰이다. 조선시대 무학 자초, 사명 휴정 등이 중창한 사찰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퇴락되었다가 근래에 국사당 · 산신각을 지었고, 1960년에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쌍계사(雙溪寺)는 고려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에 있는 사찰이다. 조선 영조 대에 건립된 쌍계사 중건비(雙溪寺重建碑銘)가 현전한다. 중건비에 의하면 쌍계사는 고려 후기 행촌(杏村) 이암이 발원하여 중창하고 목은 이색이 연기문(緣起文)을 지었으며 조선 영조 대에 화재가 있어 중창이 이루어졌다.
작봉산 쌍계사 (鵲峰山 雙溪寺)
쌍계사(雙溪寺)는 고려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에 있는 사찰이다. 조선 영조 대에 건립된 쌍계사 중건비(雙溪寺重建碑銘)가 현전한다. 중건비에 의하면 쌍계사는 고려 후기 행촌(杏村) 이암이 발원하여 중창하고 목은 이색이 연기문(緣起文)을 지었으며 조선 영조 대에 화재가 있어 중창이 이루어졌다.
영국사(寧國寺)는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천태산(天台山)에 있는 사찰이며 12세기 고려시대 원각국사가 주석한 사찰이다. 신라시대 창건된 사찰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려 원각국사 덕소가 주석하고 입적하여 원각국사비가 건립되었다.
천태산 영국사 (天台山 寧國寺)
영국사(寧國寺)는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천태산(天台山)에 있는 사찰이며 12세기 고려시대 원각국사가 주석한 사찰이다. 신라시대 창건된 사찰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려 원각국사 덕소가 주석하고 입적하여 원각국사비가 건립되었다.
영조는 고려 초 중국 보자원, 용화사 등을 주석한 승려이다. 호는 제운 또는 진각이다. 당나라 말에 저장성 항주 일대로 가서 선법을 구하다가 설봉을 찾아 선법의 대의를 묻고 수도하였으며, 설봉의 밑에서 오도하여 법을 전해 받았고, 청원행사의 7세손이 되었다. 누더기 한 벌을 걸치고 대중을 위한 여러 가지 일을 사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포납이라 불렸다고 한다. 오월의 왕은 그를 내도량으로 청하여 공양을 올리고 설법을 청하였다. 영조의 법문이 『경덕전등록』에 전한다.
영조 (靈照)
영조는 고려 초 중국 보자원, 용화사 등을 주석한 승려이다. 호는 제운 또는 진각이다. 당나라 말에 저장성 항주 일대로 가서 선법을 구하다가 설봉을 찾아 선법의 대의를 묻고 수도하였으며, 설봉의 밑에서 오도하여 법을 전해 받았고, 청원행사의 7세손이 되었다. 누더기 한 벌을 걸치고 대중을 위한 여러 가지 일을 사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포납이라 불렸다고 한다. 오월의 왕은 그를 내도량으로 청하여 공양을 올리고 설법을 청하였다. 영조의 법문이 『경덕전등록』에 전한다.
의선(義旋)은 당대 세족인 조인규의 아들이며 고려와 원 양국에서 활약한 승려이다. 왕명을 받아 묘련사, 영원사 등 주요 사찰들에 주지하였으며, 원 황제로부터 삼장법사로 높여졌고 북경 소재 사찰인 연성사도 주석하였다. 황제의 명으로 고려로 향을 전하는 사신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의선 (義旋)
의선(義旋)은 당대 세족인 조인규의 아들이며 고려와 원 양국에서 활약한 승려이다. 왕명을 받아 묘련사, 영원사 등 주요 사찰들에 주지하였으며, 원 황제로부터 삼장법사로 높여졌고 북경 소재 사찰인 연성사도 주석하였다. 황제의 명으로 고려로 향을 전하는 사신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지겸은 고려 강종, 고종대 국사를 지낸 승려이다. 명종대 승과에 합격하여 후에 대선사(大禪師)에 올랐으며 그 과정에서 등고사(登高寺), 욱금사(郁錦寺), 국청사 등을 주석(駐錫)하였다. 강종이 즉위한 후에는 당시 권력자인 최충헌의 추천으로 국사로 책봉되었으며 이후 고종도 그를 스승으로 높였다. 중국 선문의 원상에 관한 옛 기록을 수집하여 1219년에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을 간행한 사실이 전한다.
지겸 (至謙)
지겸은 고려 강종, 고종대 국사를 지낸 승려이다. 명종대 승과에 합격하여 후에 대선사(大禪師)에 올랐으며 그 과정에서 등고사(登高寺), 욱금사(郁錦寺), 국청사 등을 주석(駐錫)하였다. 강종이 즉위한 후에는 당시 권력자인 최충헌의 추천으로 국사로 책봉되었으며 이후 고종도 그를 스승으로 높였다. 중국 선문의 원상에 관한 옛 기록을 수집하여 1219년에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을 간행한 사실이 전한다.
천희(千熙)는 공민왕대 국사를 지낸 화엄종 승려이다. 일찍이 승과에 합격하여 수학하다가 중국 강남 지역을 유학하여 몽산덕이와 만봉시위로부터 인가를 받아 귀국하였다. 화엄종 승려였으나 간화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으며 국사가 된 후 신돈이 실각할 때까지 불교계를 주도한 주요 승려 중 하나였다. 말년에는 화엄종의 종찰인 부석사 중창에 힘썼다.
천희 (千熙)
천희(千熙)는 공민왕대 국사를 지낸 화엄종 승려이다. 일찍이 승과에 합격하여 수학하다가 중국 강남 지역을 유학하여 몽산덕이와 만봉시위로부터 인가를 받아 귀국하였다. 화엄종 승려였으나 간화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으며 국사가 된 후 신돈이 실각할 때까지 불교계를 주도한 주요 승려 중 하나였다. 말년에는 화엄종의 종찰인 부석사 중창에 힘썼다.
충감은 고려 후기 국사로 책봉된 선승(禪僧)이다. 보조 국사 지눌의 법손이며 원명국사로 책봉되었다. 승과에 합격하였고 원에 들어가서는 몽산덕이의 법맥을 계승한 철산소경을 직접 초빙해 함께 귀국하였다. 용천사, 선원사 등을 주석하였고 충숙왕의 명을 받아 보광사에서 주석하다가 입적하였다.
충감 (沖鑑)
충감은 고려 후기 국사로 책봉된 선승(禪僧)이다. 보조 국사 지눌의 법손이며 원명국사로 책봉되었다. 승과에 합격하였고 원에 들어가서는 몽산덕이의 법맥을 계승한 철산소경을 직접 초빙해 함께 귀국하였다. 용천사, 선원사 등을 주석하였고 충숙왕의 명을 받아 보광사에서 주석하다가 입적하였다.
충담은 고려 태조의 왕사를 지낸 선승이다. 신라 말기 무주에서 활동하다가 입당구법(入唐求法)하여 귀국한 승려로, 고려 개국 후 개경으로 이동하여 태조의 공경을 받았다. 그는 고려시대 왕사로 임명된 첫 사례이며 이후 왕명으로 원주 흥법사에서 주석하다가 입적하였다. 태조가 직접 그의 비문을 찬술하였다.
충담 (忠湛)
충담은 고려 태조의 왕사를 지낸 선승이다. 신라 말기 무주에서 활동하다가 입당구법(入唐求法)하여 귀국한 승려로, 고려 개국 후 개경으로 이동하여 태조의 공경을 받았다. 그는 고려시대 왕사로 임명된 첫 사례이며 이후 왕명으로 원주 흥법사에서 주석하다가 입적하였다. 태조가 직접 그의 비문을 찬술하였다.
충지(冲止)는 고려 후기 수선사의 6세 사주이며 입적 후 원감국사(圓鑑國師)로 추증된 승려이다. 무신집권기에 과거 급제를 하였다가 늦은 나이에 출가하였다. 원나라 황제에게 수선사의 면세를 요청하는 글, 수선사를 황제의 원찰로 삼기를 요청하는 글 등을 지은 것이 유명하다. 이외에도 많은 시를 지었는데 불교의 이치나 설법 외에도 세태와 백성들의 고통 등을 다룬 내용도 다수 확인되어 어려운 현실을 당면한 고려시대 지식인의 현실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충지 (冲止)
충지(冲止)는 고려 후기 수선사의 6세 사주이며 입적 후 원감국사(圓鑑國師)로 추증된 승려이다. 무신집권기에 과거 급제를 하였다가 늦은 나이에 출가하였다. 원나라 황제에게 수선사의 면세를 요청하는 글, 수선사를 황제의 원찰로 삼기를 요청하는 글 등을 지은 것이 유명하다. 이외에도 많은 시를 지었는데 불교의 이치나 설법 외에도 세태와 백성들의 고통 등을 다룬 내용도 다수 확인되어 어려운 현실을 당면한 고려시대 지식인의 현실 인식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