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인덕"
검색결과 총 34건
일본에 있는 한국인 뉴커머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단체.
재일본한국인연합회 (在日本韓國人聯合會)
일본에 있는 한국인 뉴커머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단체.
1956년 한국계 신용조합이 결성한 협회.
재일한국신용조합협회 (在日韓國信用組合協會)
1956년 한국계 신용조합이 결성한 협회.
1990년 재일코리안 2세·3세가 결성한 인권 단체.
재일한국민주인권협의회 (在日韓國民主人權協議會)
1990년 재일코리안 2세·3세가 결성한 인권 단체.
1984년 ‘민족교육을 추진하는 연락회’, ‘민족강사회’, ‘민족교육 문화센터’ 등 3개의 조직체가 중심이 되어 결성된 단체.
민족교육촉진협의회 (民族敎育促進協議會)
1984년 ‘민족교육을 추진하는 연락회’, ‘민족강사회’, ‘민족교육 문화센터’ 등 3개의 조직체가 중심이 되어 결성된 단체.
1960년 10월 결성된 민단 산하 청년단체.
재일한국청년동맹 (在日韓國靑年同盟)
1960년 10월 결성된 민단 산하 청년단체.
근우회 도쿄지회는 1928년 결성된 근우회 일본지회의 하나이다. 1927년 신간회 본부가 결성되자 여성운동계 내부에서 여성운동의 통합운동이 일어나 근우회가 조직되면서, 일본 도쿄에서도 근우회 지회가 조직되었다. 위원장 박화성을 비롯해 이완구, 박봉순 등이 역원으로 선출되었다. 신간회 도쿄지회와 사무실을 함께 쓰며 다수의 활동을 같이 하였다. 근우회 정기 전국대회를 둘러싸고 본부와의 갈등이 있었다. 집행부 조직을 통해 적극적인 사업을 전개하였는데, 1928년 3월부터 전개된 여성문제 대강연회와 같은 선전, 선동활동도 있었다. 신간회 도쿄지회의 해산과 함께 해산하였다.
근우회 도쿄지회 (槿友會 東京支會)
근우회 도쿄지회는 1928년 결성된 근우회 일본지회의 하나이다. 1927년 신간회 본부가 결성되자 여성운동계 내부에서 여성운동의 통합운동이 일어나 근우회가 조직되면서, 일본 도쿄에서도 근우회 지회가 조직되었다. 위원장 박화성을 비롯해 이완구, 박봉순 등이 역원으로 선출되었다. 신간회 도쿄지회와 사무실을 함께 쓰며 다수의 활동을 같이 하였다. 근우회 정기 전국대회를 둘러싸고 본부와의 갈등이 있었다. 집행부 조직을 통해 적극적인 사업을 전개하였는데, 1928년 3월부터 전개된 여성문제 대강연회와 같은 선전, 선동활동도 있었다. 신간회 도쿄지회의 해산과 함께 해산하였다.
신간회 도쿄지회는 1927년 5월 도쿄에서 조직된 신간회 (산하) 조직이다. 민족주의자 조헌영, 전진한 등을 중심으로 공산주의자 강소천, 한림 등이 연대하여 조직을 구성하였다. 출범식에서는 정치적, 경제적 각성을 촉진하고, 단결을 공고히 하며,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한다는 강령을 내걸었다. 조직 초반부터 주도권을 둘러싼 내부논쟁이 있었으나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가 조직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종결되었다. 『신간신문』을 발간하기로 준비했으나 본부의 명령으로 발간하지 못했다. 신간회 도쿄지회에 설립에 이어 교토, 오사카, 나고야에 지회가 결성되었다.
신간회 도쿄지회 (新幹會 東京支會)
신간회 도쿄지회는 1927년 5월 도쿄에서 조직된 신간회 (산하) 조직이다. 민족주의자 조헌영, 전진한 등을 중심으로 공산주의자 강소천, 한림 등이 연대하여 조직을 구성하였다. 출범식에서는 정치적, 경제적 각성을 촉진하고, 단결을 공고히 하며,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한다는 강령을 내걸었다. 조직 초반부터 주도권을 둘러싼 내부논쟁이 있었으나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가 조직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종결되었다. 『신간신문』을 발간하기로 준비했으나 본부의 명령으로 발간하지 못했다. 신간회 도쿄지회에 설립에 이어 교토, 오사카, 나고야에 지회가 결성되었다.
일제강점기 오사카조선노동동맹회 초대위원장, 오사카조선노동조합 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한 노동운동가.
송장복 (宋章福)
일제강점기 오사카조선노동동맹회 초대위원장, 오사카조선노동조합 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한 노동운동가.
일제강점기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초대위원장으로 활동한 재일 노동운동가.
이헌 (李憲)
일제강점기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초대위원장으로 활동한 재일 노동운동가.
한신교육사건은 1948년 전후 오사카부와 효고현에서 전개된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운동이다. 해방 후 귀국하려는 조선인을 위한 국어강습소는 1946년 전국에 500여 개, 학생 수는 6만 명에 달했다. 1947년 GHQ(연합국 군최고사령관 총사령부)는 재일조선인도 일본의 교육법에 따르도록 지시했고, 이를 어기는 학교는 폐쇄하겠다고 공표했다. 야마구치현 지사가 1948년 3월 조선인 학교를 폐쇄한다고 통고를 하자 수많은 조선인이 현청 앞에서 투쟁했다. 이 사건을 기념하여 재일본조선인연맹은 4월 24일을 우리말, 우리글을 지킨 ‘교육투쟁 기념일’로 정했다.
한신교육사건 (阪神敎育事件)
한신교육사건은 1948년 전후 오사카부와 효고현에서 전개된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운동이다. 해방 후 귀국하려는 조선인을 위한 국어강습소는 1946년 전국에 500여 개, 학생 수는 6만 명에 달했다. 1947년 GHQ(연합국 군최고사령관 총사령부)는 재일조선인도 일본의 교육법에 따르도록 지시했고, 이를 어기는 학교는 폐쇄하겠다고 공표했다. 야마구치현 지사가 1948년 3월 조선인 학교를 폐쇄한다고 통고를 하자 수많은 조선인이 현청 앞에서 투쟁했다. 이 사건을 기념하여 재일본조선인연맹은 4월 24일을 우리말, 우리글을 지킨 ‘교육투쟁 기념일’로 정했다.
일본 노동자와 학생, 그리고 재일조선인이 오사카부(大阪府) 스이타시(吹田市)에서 한국전쟁에 협력하는 것을 반대해서 일으킨 사건.
스이타 사건 (Suita[吹田] 事件)
일본 노동자와 학생, 그리고 재일조선인이 오사카부(大阪府) 스이타시(吹田市)에서 한국전쟁에 협력하는 것을 반대해서 일으킨 사건.
한석희(韓皙曦)가 고베(神戶)에서 운영한 도서관.
청구문고 (靑丘文庫)
한석희(韓皙曦)가 고베(神戶)에서 운영한 도서관.
1947년 결성된 재일조선인의 청년조직.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 (在日本朝鮮民主靑年同盟)
1947년 결성된 재일조선인의 청년조직.
1942년 장덕수(張德秀)가 주도하여 만든 독립운동 비밀결사 단체.
조선독립청년당 (朝鮮獨立靑年黨)
1942년 장덕수(張德秀)가 주도하여 만든 독립운동 비밀결사 단체.
1950년 재일조선학생동맹의 일부가 조직한 학생 단체.
재일한국학생동맹 (在日韓國學生同盟)
1950년 재일조선학생동맹의 일부가 조직한 학생 단체.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재일동포로 1946년에 구성된 민족단체.
재일본대한민국민단 (在日本大韓民國民團)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재일동포로 1946년에 구성된 민족단체.
1955년 5월 25일에 결성된 친북성향의 재일동포 단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在日本朝鮮人總聯合會)
1955년 5월 25일에 결성된 친북성향의 재일동포 단체.
일제강점기 때, 간민회 일본조사부원, 동제회 평의원, 대한국민회 중부경호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강 (金綱)
일제강점기 때, 간민회 일본조사부원, 동제회 평의원, 대한국민회 중부경호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김난섭 (金蘭燮)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대한제국기 때, 항일의병투쟁과 군자금 모금, 일본인 처단 활동 등을 전개한 의병.
김덕순 (金德順)
대한제국기 때, 항일의병투쟁과 군자금 모금, 일본인 처단 활동 등을 전개한 의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