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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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에 있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 소속의 교회이다. 1958년에 조용기 목사와 최자실 목사가 설립했으며, 2022년을 기준으로 등록 교인은 57만 명으로 단일 교회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또한 60여 개국에서 700여 명의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2023년 현재 이영훈 목사가 담임목사로 사역 중이다. 순복음이란 성령충만의 복음이라는 의미로 오순절의 신앙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용어이다. 이 교회의 특색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요약된다.
여의도순복음교회 (汝矣島純福音敎會)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에 있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 소속의 교회이다. 1958년에 조용기 목사와 최자실 목사가 설립했으며, 2022년을 기준으로 등록 교인은 57만 명으로 단일 교회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또한 60여 개국에서 700여 명의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2023년 현재 이영훈 목사가 담임목사로 사역 중이다. 순복음이란 성령충만의 복음이라는 의미로 오순절의 신앙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용어이다. 이 교회의 특색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요약된다.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es)은 1872년 미국의 펜실베니아주 앨러게니(Allegheny)에서 러셀(Russel, C. T.)을 중심으로 창립된 기독교계 신종교이다. 삼위일체론 등 주류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부정한다. 예수는 유일신 여호와의 아들이며 여호와 하나님보다 낮은 존재로 이해한다. 우리나라에는 1912년에 전해졌다. 2019년 기준 대한민국에는 102,456명의 신자들과 1,266개의 회중(교회)이 있다.
여호와의 증인 (여호와의 證人)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es)은 1872년 미국의 펜실베니아주 앨러게니(Allegheny)에서 러셀(Russel, C. T.)을 중심으로 창립된 기독교계 신종교이다. 삼위일체론 등 주류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부정한다. 예수는 유일신 여호와의 아들이며 여호와 하나님보다 낮은 존재로 이해한다. 우리나라에는 1912년에 전해졌다. 2019년 기준 대한민국에는 102,456명의 신자들과 1,266개의 회중(교회)이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924년에 설립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를 계승한 한국 개신교 교회들과 한국 정교회의 협의체이다. 한국 기독교계의 협력과 일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하여 창설된 범기독교 협의체이다. 1924년 9월에 결성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에서 시작되었으며 1937년, 일본의 종교간섭으로 폐쇄되었다가 1946년에 재발족하였다. 현재 9개의 교단과 5개의 연합기관, 지역협의회가 가입해 있다. 약칭은 NCCK(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韓國基督敎敎會協議會)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924년에 설립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를 계승한 한국 개신교 교회들과 한국 정교회의 협의체이다. 한국 기독교계의 협력과 일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하여 창설된 범기독교 협의체이다. 1924년 9월에 결성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에서 시작되었으며 1937년, 일본의 종교간섭으로 폐쇄되었다가 1946년에 재발족하였다. 현재 9개의 교단과 5개의 연합기관, 지역협의회가 가입해 있다. 약칭은 NCCK(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이다.
한국크리스찬아카데미는 강원용(姜元龍)을 중심으로 1965년 12월에 발족한 기독교 사회 운동 단체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인간화 실현을 목표로 삼아 대화, 민주화, 중간 집단 육성 등에 힘썼다. 2015년 이후, 재단 법인 '여해와 함께'의 부설 기구가 되었다.
한국크리스찬아카데미 (韓國ChristianAcademy)
한국크리스찬아카데미는 강원용(姜元龍)을 중심으로 1965년 12월에 발족한 기독교 사회 운동 단체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인간화 실현을 목표로 삼아 대화, 민주화, 중간 집단 육성 등에 힘썼다. 2015년 이후, 재단 법인 '여해와 함께'의 부설 기구가 되었다.
보빙사는 1883년(고종 21)에 푸트 미국공사의 조선 부임에 답례하여 미국에 파견한 사절단이다. 보빙사는 답례로 외국에 파견하는 사절단을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1883년 미국에 파견한 사절단을 의미한다. 1883년 푸트 공사가 부임하자 고종은 이에 대한 답례로 전권대신 민영익, 부대신 홍영식, 종사관 서광범으로 구성된 보빙사를 파견하여 개화정책을 추진하는 데 미국의 도움을 받고자 하였다.
보빙사 (報聘使)
보빙사는 1883년(고종 21)에 푸트 미국공사의 조선 부임에 답례하여 미국에 파견한 사절단이다. 보빙사는 답례로 외국에 파견하는 사절단을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1883년 미국에 파견한 사절단을 의미한다. 1883년 푸트 공사가 부임하자 고종은 이에 대한 답례로 전권대신 민영익, 부대신 홍영식, 종사관 서광범으로 구성된 보빙사를 파견하여 개화정책을 추진하는 데 미국의 도움을 받고자 하였다.
쇄국정책은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문호를 닫고 서양과 통상하지 않았던 대외정책이다.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지 않고 문호를 닫아 서로 통상하지 않는 정책을 말한다. 주로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의 대외정책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으나, 최근에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 또는 통상 거부 정책으로 고쳐서 표현하고 있다.
쇄국정책 (鎖國政策)
쇄국정책은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문호를 닫고 서양과 통상하지 않았던 대외정책이다.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지 않고 문호를 닫아 서로 통상하지 않는 정책을 말한다. 주로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의 대외정책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으나, 최근에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 또는 통상 거부 정책으로 고쳐서 표현하고 있다.
수신사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 체결 이후부터 주일 조선공사가 파견되기 전까지 네 차례 일본에 파견한 사절단이다. 수신사란 ‘옛 우호를 닦고 신의를 두터이 하기 위해’ 파견된 사절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일본 사절 파견에 답례로 파견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상 문제 협상, 정치적 사건 수습 등으로 사절 파견의 성격이 바뀌어 나갔다.
수신사 (修信使)
수신사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 체결 이후부터 주일 조선공사가 파견되기 전까지 네 차례 일본에 파견한 사절단이다. 수신사란 ‘옛 우호를 닦고 신의를 두터이 하기 위해’ 파견된 사절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일본 사절 파견에 답례로 파견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상 문제 협상, 정치적 사건 수습 등으로 사절 파견의 성격이 바뀌어 나갔다.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은 1882년(고종 19) 12월 4일, 외교 통상 사무를 관장할 목적으로 통리아문을 확충 · 개편하여 만든 중앙 관청이다. 그 예하에 정각사(征榷司) · 장교사(掌交司) · 부교사(富敎司) · 우정사(郵程司)의 4사와 동문학(同文學)을 두었다. 1887년 4월 27일 직무 규정을 개정하여 종래의 4사 1학 체제를 총무사 · 교섭사 · 번역사 · 기록사 · 통상사 · 회계사의 6사 체제로 개편하였다.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은 1882년(고종 19) 12월 4일, 외교 통상 사무를 관장할 목적으로 통리아문을 확충 · 개편하여 만든 중앙 관청이다. 그 예하에 정각사(征榷司) · 장교사(掌交司) · 부교사(富敎司) · 우정사(郵程司)의 4사와 동문학(同文學)을 두었다. 1887년 4월 27일 직무 규정을 개정하여 종래의 4사 1학 체제를 총무사 · 교섭사 · 번역사 · 기록사 · 통상사 · 회계사의 6사 체제로 개편하였다.
통리군국사무아문은 1882년(고종 19) 12월 4일에 군국기무와 편민이국(便民利國)에 관한 내정 일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한 최고의 행정기구이다. 그 예하에 이용사(理用司) · 군무사(軍務司) · 감공사(監工司) · 전선사(典選司) · 농상사(農桑司) · 장내사(掌內司) 등 6사를 두고 재정 · 군사 등 국정 전반을 통괄하면서 개화 · 자강 업무를 추진하였다.
통리군국사무아문 (統理軍國事務衙門)
통리군국사무아문은 1882년(고종 19) 12월 4일에 군국기무와 편민이국(便民利國)에 관한 내정 일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한 최고의 행정기구이다. 그 예하에 이용사(理用司) · 군무사(軍務司) · 감공사(監工司) · 전선사(典選司) · 농상사(農桑司) · 장내사(掌內司) 등 6사를 두고 재정 · 군사 등 국정 전반을 통괄하면서 개화 · 자강 업무를 추진하였다.
통리내무아문은 1882년(고종 19) 11월 18일에 백성에게 편리하고 나라에 이로운 것을 도모하기 위해 설치한 중앙 관청이다. 백성에게 편리하고 나라에 이로운〔편민이국(便民利國)〕 내정 개혁과 개화 · 자강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2월 4일에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으로 개칭하여 담당 직무와 기능을 선명히 표명하였다.
통리내무아문 (統理內務衙門)
통리내무아문은 1882년(고종 19) 11월 18일에 백성에게 편리하고 나라에 이로운 것을 도모하기 위해 설치한 중앙 관청이다. 백성에게 편리하고 나라에 이로운〔편민이국(便民利國)〕 내정 개혁과 개화 · 자강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2월 4일에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으로 개칭하여 담당 직무와 기능을 선명히 표명하였다.
통리아문은 1882년 11월 17일, 외교 통상 전문가인 묄렌도르프가 고빙된 것을 계기로, 외교 통상 사무를 전담하기 위해 설치된 중앙 관청이다. 창설 당시 조영하가 판리, 김홍집이 협판, 묄렌도르프가 참의 등에 각각 임명되었다. 1882년 12월 4일에 통리아문은 담당 직무와 기능을 선명하게 표명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통리아문 (統理衙門)
통리아문은 1882년 11월 17일, 외교 통상 전문가인 묄렌도르프가 고빙된 것을 계기로, 외교 통상 사무를 전담하기 위해 설치된 중앙 관청이다. 창설 당시 조영하가 판리, 김홍집이 협판, 묄렌도르프가 참의 등에 각각 임명되었다. 1882년 12월 4일에 통리아문은 담당 직무와 기능을 선명하게 표명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통상사는 1880년(고종 17) 12월 20일에 설치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의 예하 기관인 12사(司) 가운데 하나로, 외국과의 통상을 담당한 부서이다. 임오군란으로 폐지되었다가, 1887년 4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이 6사(司) 체제로 개편되었을 때 복설되었다. 갑오개혁 때는 외무아문의 산하 부서의 하나인 통상국으로 계승되었다.
통상사 (通商司)
통상사는 1880년(고종 17) 12월 20일에 설치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의 예하 기관인 12사(司) 가운데 하나로, 외국과의 통상을 담당한 부서이다. 임오군란으로 폐지되었다가, 1887년 4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이 6사(司) 체제로 개편되었을 때 복설되었다. 갑오개혁 때는 외무아문의 산하 부서의 하나인 통상국으로 계승되었다.
대한제국기 때, 김석윤 대장의 참모 및 모병책으로 활약하며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
고사훈 (高士訓)
대한제국기 때, 김석윤 대장의 참모 및 모병책으로 활약하며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
원영의가 조선 태조로부터 순종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교과서.
국조사 (國朝史)
원영의가 조선 태조로부터 순종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교과서.
대한제국기 때, 경상도, 강원도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김대규 (金大圭)
대한제국기 때, 경상도, 강원도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대한제국기 때, 정용기의 산남의진에서 청송지방 소모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남석인 (南錫仁)
대한제국기 때, 정용기의 산남의진에서 청송지방 소모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대한제국기 때, 공주 용당에서 의진을 결성하였으며, 국권 피탈 이후 고향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한 의병장·독립운동가.
노원섭 (盧元燮)
대한제국기 때, 공주 용당에서 의진을 결성하였으며, 국권 피탈 이후 고향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한 의병장·독립운동가.
개항기 때, 안의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일본군 및 척후대 공격, 경부철도 파괴 활동 등을 전개한 의병장.
노응규 (盧應奎)
개항기 때, 안의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일본군 및 척후대 공격, 경부철도 파괴 활동 등을 전개한 의병장.
1905년 정교가 역사 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
대동역사 (大東歷史)
1905년 정교가 역사 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
1899년 김택영이 중학생 이상의 수준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 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
대한역대사략 (大韓歷代史略)
1899년 김택영이 중학생 이상의 수준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 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