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류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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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해파리의 노래』, 『금모래』, 『봄의 노래』 등을 저술한 시인·문학평론가·친일반민족행위자.
김억 (金億)
일제강점기 때, 『해파리의 노래』, 『금모래』, 『봄의 노래』 등을 저술한 시인·문학평론가·친일반민족행위자.
서춘은 일제 강점기 조선일보사 주필, 매일신보 주필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9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도쿄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1919년 2·8독립선언의 실행위원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독립 시위를 전개하다가 투옥되었다. 출옥 이후 교토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해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경제 시평과 해설, 강연 등의 평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일보』 주필을 지내면서 조선총독부에서 주최하는 시국강연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나, 친일 행적으로 1996년 서훈이 취소되었다.
서춘 (徐椿)
서춘은 일제 강점기 조선일보사 주필, 매일신보 주필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9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도쿄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1919년 2·8독립선언의 실행위원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독립 시위를 전개하다가 투옥되었다. 출옥 이후 교토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해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경제 시평과 해설, 강연 등의 평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일보』 주필을 지내면서 조선총독부에서 주최하는 시국강연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나, 친일 행적으로 1996년 서훈이 취소되었다.
일제강점기 「무정」「소년의 비애」, 「방황」 등을 저술한 소설가.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이광수 (李光洙)
일제강점기 「무정」「소년의 비애」, 「방황」 등을 저술한 소설가.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정춘수는 일제강점기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 이사장, 일본기독교조선교단 고문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73년(고종 10)에 태어나 1953년에 사망했다. 충북 청주 출생으로 감리교 성서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민족대표로 참여하였으며 1927년 신간회 간사로 선출되었다.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전향성명서를 발표하고 풀려났다. 이후 국민정신총동원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을 조직하고 일본기독교조선교단에서 활동하는 등 일제에 협력하였다.
정춘수 (鄭春洙)
정춘수는 일제강점기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 이사장, 일본기독교조선교단 고문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73년(고종 10)에 태어나 1953년에 사망했다. 충북 청주 출생으로 감리교 성서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민족대표로 참여하였으며 1927년 신간회 간사로 선출되었다.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전향성명서를 발표하고 풀려났다. 이후 국민정신총동원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을 조직하고 일본기독교조선교단에서 활동하는 등 일제에 협력하였다.
일제강점기 사헌부감찰, 탁지아문참의, 한성판윤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유정수 (柳正秀)
일제강점기 사헌부감찰, 탁지아문참의, 한성판윤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최남선은 일제강점기 『심춘순례』, 『백두산근참기』, 『금강예찬』 등을 저술한 문인이다. 언론인이자 사학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90년(고종 27)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했다. 일본 유학 후 『소년』 등 잡지를 발행하고 저술을 통해 신문화운동을 벌였다. 조선어사전 편찬을 기획했고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계명구락부에 참여했고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35년부터 한국과 일본의 문화 뿌리가 같다는 ‘문화동원론’을 주장하며 일본 신도 보급, 학병지원 권유 등 친일활동에 적극 나섰다.
최남선 (崔南善)
최남선은 일제강점기 『심춘순례』, 『백두산근참기』, 『금강예찬』 등을 저술한 문인이다. 언론인이자 사학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90년(고종 27)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했다. 일본 유학 후 『소년』 등 잡지를 발행하고 저술을 통해 신문화운동을 벌였다. 조선어사전 편찬을 기획했고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계명구락부에 참여했고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35년부터 한국과 일본의 문화 뿌리가 같다는 ‘문화동원론’을 주장하며 일본 신도 보급, 학병지원 권유 등 친일활동에 적극 나섰다.
장지연은 대한제국기 황성신문사 사장, 경남일보 주필 등을 역임한 언론인이다. 1864년(고종 1)에 태어나 1921년에 사망했다. 을미사변이 나자 의병궐기 호소 격문을 각처에 발송했고, 아관파천 때에는 고종 환궁을 요청하는 만인소를 기초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해 전국에 배포한 혐의로 투옥되었고, 『경남일보』에 한일강제병합을 비난하며 자결한 매천 황현의 「유고시」를 실어 정간조치를 당하게 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는 글도 일부 발표했다. 1962년 대한민국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장지연 (張志淵)
장지연은 대한제국기 황성신문사 사장, 경남일보 주필 등을 역임한 언론인이다. 1864년(고종 1)에 태어나 1921년에 사망했다. 을미사변이 나자 의병궐기 호소 격문을 각처에 발송했고, 아관파천 때에는 고종 환궁을 요청하는 만인소를 기초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해 전국에 배포한 혐의로 투옥되었고, 『경남일보』에 한일강제병합을 비난하며 자결한 매천 황현의 「유고시」를 실어 정간조치를 당하게 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는 글도 일부 발표했다. 1962년 대한민국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 등을 역임한 정치인. 경제인, 친일반민족행위자.
한상룡 (韓相龍)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 등을 역임한 정치인. 경제인, 친일반민족행위자.